[화산귀환 2차창작] 청명귀환
화산귀환 2차창작(백업)
눈을 떴다. 느껴지는 것은 그 무엇도 없었지만 단 하나의 생각만으로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화산, 화산으로 내가 돌아왔나?
주변에 인기척이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청명이 보았던 광경에서 그의 주변에 살이 숨 쉬는건 아무것도 없었다. 마지막 숨이었다고 생각했던 것을 내뱉는 순간까지 아무것도.
하지만 지금은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소음이 들렸다. 청명은 뻑뻑한 눈을 굴려 옆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오래 눈을 감았다 뜬 탓인지 모든게 히끄무레하게 보여 확실치 않았지만 몇몇 인영이 그를 보고 놀란 듯 하였다가 허둥지둥 움직였다. 이곳이 화산이면 좋겠지만, 아무것도 명확히 보이지 않는 와중에도 이곳이 화산이 아님을 알았다. 몸을 움직이려 하자 위화감이 느껴졌다.
아- 마지막에 잘린 좌수의 빈 공간이 느껴졌다. 청명은 오른손만을 움직여 바닥을 짚고 상체를 일으켰다. 온몸은 물론 영혼마저 삐걱거리는 느낌이다. 여기는 어디인가, 눈을 깜빡이며 주위를 둘러보려는 찰나, 청명은 느꼈다.
자신의 심장이 뛰고 있지 않다는 것을.
"..?"
바로 어떤 반응을 취할 수 없었던 것은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도 죽을 상처를 입고 기적적으로 회복 한것이 아니었다. 심장이 뛰지 않는데 인간이, 내가 움직이고 있었다.
심장이 뛰지 않는 인간이 있다는 소문을 들어도 헛소리 하지 말라며 입을 돌려버릴 마당에 자신이 그러고 있으니, 무언가 바로 반응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마치 귀가 트이듯 바로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청명은 움직임을 멈췄다.
"됐어! 됐다고!"
"일단 성공한 것이 아닌가!!"
"사고를 하는가? 그가 맞느냔 말이다!"
청명이 눈을 깜빡였다. 기감으로 뭔가를 판단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뻑뻑한 눈을 억지로 뜨고 감으며 시선을 맞춘다. 익숙하지 않은 복장의 사람들과 의원으로 보이는 몇몇의 인원이 청명의 지척에 있었다. 아마 의원인듯한 한 사람이 청명의 눈을 들여다본다. 청명은 태어나서 타인을 이렇게 가까이 둔적이 없었다. 그것도 이렇게 무력하게는 더더욱 없었다. 청명이 흠칫 놀라며 긴장하자 그 남자는 청명의 반응을 보고 더더욱 기뻐했다.
"반응을 하는군!"
그 목소리에 주변 사람들의 환호소리가 터진다. 겨우 코앞의 남자의 얼굴을 인식한 청명은 멍한 상태로도 확실히 이상함을 느꼈다. 그리고 주변에서 감격하는 소리와 함께 죽어서도 잊을 수 없었던 소리가 들린다.
"천마재림 만마앙복-!!"
@@
청명은 오늘도 사제들과 사형들을 굴릴 예정이었다. 굴러가는 이들이야 구를 생각이 없지만, 돌멩이가 굴러갈 생각이 없다고 못 굴리는 청명이 아니었다. 박힌 돌은 뽑아 굴리면 되고, 각진 돌은 깎아서 굴리면 된다. 오늘도 돌멩이들을 아주 기깔나게 굴려야지! 하며 청명은 이른 아침 개인 수련을 마치고 연화봉을 내려가던 중이었다. 확실히 굴린만큼 티가 나니 안 굴릴 수가 없다. 예전의 화산에 비하면 비교 할 수도 없지만...
"... 아닌가?"
문득 이전 화산의 삼대제자의 무위를 생각해본 청명이 고개를 갸웃 했다. 매화검존이었던 청명의 기준으론, 그 시대의 삼대제자도 지금의 삼대제자도 한번에 대가리를 깨버릴 수 있으니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예전이면 모르지만 요즘의 윤종이나 조걸을 데리고 그 시대의 삼대제자와 비무를 벌인다면 꽤 흥미진진한 결과가 나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지...? 누가 가르쳤는데 비무에서 져..?"
청명은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혼자 열 받아서 씩씩거렸다. 내가 가르친 애들이 지는건 말도 안된다. 암 그렇고 말고!!
청명은 그때 장문사형에게 했던 그 말이 옳았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보라, 그렇게 도문의 검수의 털끝도 따라가지 못했던 삼대제자들을 저렇게 만든건 다름아닌 청명이다!
걷기도 싫어 드러누워버리는 개를 흠씬 두들겨 물구나무를 선채 걷게 만든 청명은 그 개를 물구나무 서서 뛰어다니고 재주를 부리게 만들 셈이었다. 과거와 비교도 못하게 강한 화산을 만들고야 말리라! 마치 악당의 계획을 세우는 모양새로 음흉하게 웃던 청명이
"윽...!"
찌를듯한 한기에 뒤를 돌아본 것은 반사적이었다.
북쪽, 북쪽에 뭔가가 있다.
소름도 아니다. 위협을 느낀것도 살기도 아니다. 뭔가 다른 느낌이었다. 굳이 설명 하자면 심장이 떨어지는, 아니 영혼이 당겨 찢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너무나도 생소한 느낌에 청명은 손을 들어 심장이 있는 부분을 손으로 꾹 눌렀다. 두망방이치는 심장이 가라앉을줄을 몰랐다. 등줄기를 흘러내린 땀이 식을때까지 청명은 북쪽의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
저주받을 말을 듣자 마자 반사적으로 청명은 움직였다. 가장 가까운 이의 허리에 메어 있는 칼을 잡아 들고 휘둘렀다. 기뻐하며 그 말을 외치던 교도의 목을 날렸다.
피가 분수처럼 쏟아졌지만 주변 교도들은 웃으며 기뻐할 뿐이었다. 그 저주받을 소리를 내뱉으며 기뻐하며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다. 청명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몇몇은 그를 잡아 누르려고 했지만 청명은 무작정 칼을 휘둘러 그들을 떼어내거나 베어냈다. 눈감도고 펼칠수 있게 몸에 익어있는 검식이나 검초도 없이 그저 도를 휘둘렀다.
"잡아라!"
"나가지 못하게 해!!"
청명이 일어나 칼을 휘두를거라고 생각지 못했는지 당황한 의원같은 교도들은 뒤로 빠지고, 확연하게 강자로 보이는 교도들이 청명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청명은 빠르게 몸의 상태를 확인했다. 내력은 아직 있었지만 그들과 싸워 거뜬히 몰살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청명은 그들의 오른편의 거대한 문을 발견했다. 바람의 흐름을 보아하니 밖으로 연결 되어 있음이 틀림 없었다.
일단 이곳을 빠져나가야한다. 이곳에 있는 모든 것들을 씹어서라도 죽여버리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화산- 청명이 몇일만에 눈을 뜬 것인지 모르지만 화산에는 어린 이대제자와 삼대제자 밖에 없다. 마지막 전투에서 화산은 모든걸 잃었다. 화산의 모든 검수들을 잃었고 장문인도 잃었다. 그가 돌아가지 않으면 안된다. 아니, 다 잃었으니 그라도 돌아가지 않으면 안된다.
청명은 있는 힘껏 검을 휘두르며 출구 쪽으로 몸을 움직었다.
"아악!!"
"잡아라!!"
가까이 있던 교도들이 피를 뿌리며 넘어갔지만 그 뒤에 있는 교도들은 만면에 미소를 지은채 청명에게 달려들었다. 삐걱거리며 움직이는 청명을 아귀같은 손들이 잡아챈다. 헤진 옷을, 상처입은 팔을, 딱딱하게 굳은 다리와 발을 잡아채는 끈적이는 손들을 칼로 베어가며 청명이 의식적으로 숨을 들이켰다. 아무 느낌은 없었으나 제대로 움직이지 않던 근육이 뜯어지는 것과 같은 느낌을 내며 조금 더 수월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윽...!"
목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헛바람 소리와 같이 청명이 비명을 지른다. 그가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기뻐 날뛰는 교도들을 보며 청명은 그곳을 빠져 나가기 위해 다리에 힘을 주었다. 겨우 어떻게든 경공을 펼쳐 자신을 막는 것들을 밟고 문을 막고 있는 교도를 걷어차 뛰쳐나온 곳은 청명의 눈에 익지 않은 곳이었다. 산의 중턱, 새하얀 세상이었다. 온도가 느껴지진 않았지만 숨도 하얗게 얼것 같은 광경이었다.
"매화검존!!!"
청명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바로 한쪽 방향을 바라보았다. 이곳이 어딘지는 모르지만 화산이 저 방향임을 청명은 확신했다. 뒤에서 머리카락을 잡아채는 손을 베어내고 청명은 온 힘을 다해 달리기 시작했다.
@@
청명이 시키는 수련은 고되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가 아니었다. 그의 말로는 힘들었다는 소리조차 나오지 않아야 수련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하는데, 화산의 삼대제자들은 오늘도 입에 단내나게 수련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평소에는 욕 아닌 욕을 씹어대며 버텼지만 오늘은 수련장의 분위기가 영 이상하여 조걸조차도 눈치를 보며 돌을 메단 검을 휘둘렀다.
"....사형"
"조용히 해라"
한참 고민하던 조걸이 윤종을 불렀지만 윤종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조걸을 말렸다. 맨 앞에서 보란듯이 다른 제자들의 수배의 무게로 수련을 하는 청명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새벽 수련을 다녀온 후 한마디도 없다. 간간히 무언가가 신경쓰이는듯 했지만 삼대제자들을 잡두리 하지도 않았고, 이대제자들의 수련에 간섭하지 않았다.
살얼음판 같은 분위기인 와중에 낙안봉으로 수련을 갔던 이대제자들이 돌아왔다. 청명은 그들에게 눈길을 주긴 했지만 별 반응을 하진 않았다. 백천은 약간 거칠어진 숨을 가다듬고 윤종에게 다가갔다.
"청명이는 아직도 저러고 있느냐?"
"예..."
그때 청명이 크게 혀를 차며 들고 있던 수련용 검을 구석에 던저놓는다. 삼대제자들 뿐만 아니라 이제 돌아온 이대제자들도 화들짝 놀라 청명을 바라봤다. 누가 무슨 짓을 저질러 청명을 저렇게 열받게 했는지 모르지만, 이제 또 귀로 한번 죽고 몸으로 한번 죽는 지옥이 시작되는구나 하고 긴장했다.
"...뭘 쳐다봐? 수련이나 해."
청명은 풀러 두었던 도복과 제 매화검을 들고 단장애 쪽으로 사라졌다. 청명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두 눈만 소처럼 꿈뻑이던 그들은 얼굴 한가득 의문을 띄우며 제 대사형들을 쳐다보았다. 저놈이 성질을 부리지 않고 얌전히 수련하러 간것이 이해가 안된 것이다. 아주 쥐잡듯이 잡아야 하는데? 그래야 청명이가 맞는데? 저거 누구지? 하는 제자들의 얼굴에 두 대사형은 할 대답이 없었다. 윤종과 백천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거.... 성질은 난것 같은데 왜 저러는거냐?"
"저라고 알겠습니까..?"
하지만 그중 유이설만이 고개를 갸웃 하며 생각했다. 유이설이 보기에 청명은 화가 난게 아니었다.
'초조해...?'
청명이 사라진 곳을 가만히 보던 유이설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저 작은 사질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도움이 필요하다면 누구보다 앞서 도와줄 것이고, 무리한다면 목숨을 걸어서라도 말릴 것이며 어느 상황에서도 그를 지켜낼 것이다. 지금 청명이 설명하지 않는 것은 필시 그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 유이설은 그때 청명을 혼자 보내지 않기 위해 다음 수련을 하러 몸을 돌렸다.
"하아..."
청명은 날카롭게 선 자신의 기감과 신경을 의식적으로 죽였다. 아침에 느낀 그 이상한 느낌, 그것은 한차례 지나갔으나 그 이후로 아주 얇은 바늘이 되어 청명을 콕콕 찔러대고 있었다. 확실한 살기나 마기라면 차라리 낫다. 이건 청명의 이전 생에서도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었다. 방향은 확실하다. 북쪽에 무언가 있다. 천마는 아니나 이 거슬리는 느낌을 말로 형용할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평소답지 못했고 화산의 모든 제자들이 눈치를 보는 상황이 된 것이다.
청명은 뒷머리를 거칠게 긁었다. 대충 묶은 머리가 반쯤 풀어졌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차라리 혼자라도 가 이 신경을 긁는 원인을 뒤집어 엎어 버리기라도 하면 좋을 것을, 마음대로 산문을 나섰다가는 장문인이 쓰러질것 같아 그러지도 못한다.
차라리- 현종이 그저 까마득한 사손같았다면야 쓰러지던 말던 제 뜻대로 했겠지만...
"아이고 내 팔자야! 이! 나이 먹고! 내가!!"
까마득한 사손이 그의 진짜 장문인이 되었으니, 부디 산문 밖으로 한발자국도 내딛지 말라는 그 명을 안 지킬 수가 없다. 답답한 속과 거슬리게 피부를 찔리는 느낌, 청명은 까마득히 먼 곳을 응시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아오! 내가 어떻게 해서든 나간다 내가!!!"
궁시렁 거리며 산을 오르는 청명은 따끔 거리는 뒷목을 손으로 쓱 쓸어내리며 이 감각이, 이 불안한 느낌이 사라지길 바랬다.
@@@
"사라지기는 무슨!!!"
"와악!!"
"무슨 일이냐!?"
백매관에서 누워있던 청명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소리쳤다. 같은 방을 쓰던 사형제가 놀라 침상에서 굴러 떨어지고 옆방의 윤종과 조걸이 잠이 가득한 얼굴로 검을 들고 튀어 들어왔다. 산발을 하고 화난 고양이처럼 씩씩대는 청명이 분을 참다 못해 발을 구르자 바닥이 쩍 하고 갈라진다. 그걸 보는 사형제들의 입고 떡하고 갈라진다. 바닥을 수리 하는건 어렵지 않다. 문제는 청명이다. 저 정도로 화가 난 청명을 어찌해야 좋을지 그들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아 미치겠네!!"
청명이 이상해진지 달포가 다 되어간다. 처음에는 그저 성질이 좀 났다보다, 했던 것이 점점 말수가 줄고, 혼자 수련을 나가 몇일 돌아오지 않기도 했다. 그나마 장문인이나 장로님에게는 별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바로 가까이에서 보는 청자배들은 청명은 확실히 이상해졌다고 결론을 내렸다.
반쯤 농담식으로 죽을때가 다 된거 아니냐는 말에 손사래를 치며 저게 죽을 날이 잡히겠냐고 이야기했던 청명의 사형제들은 이제 두려움에 턱을 달달 떨었다. 진짜 죽을날이 된게 아닐까? 진짜로?? 사람이 죽을때가 되면 안하던 짓을 한다던데 그 안하던 짓이 사형제들를 안 패는 것인게 아닐까??
차라리 청명이 때리면 좋겠다는 조걸의 헛소리에 윤종이 긍정할쯤에 청명이 터졌다.
"청명아 왜 그러느냐??"
"아! 사형은 몰라도 돼!!"
번뜩이는 시선이 윤종에게 닿는다 흠칫 놀란 윤종이지만 그래도 청자배의 대사형이다. 이제 물러설 수 없이 할말은 해야겠는지 없는 침을 꿀꺽 삼키고 말했다.
"네가 이런것도 달포가 되어간다. 그저 말하지 못할 일이 있겠거니 하는것도 이제 못하겠다. 왜 그러는지 설명을 해다오."
"으....."
청명은 양 손으로 머리를 거의 쥐어 뜯었다. 콕콕 찌르던 그 느낌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더니 지금은 대침이 여기저기 박혔다 빠지는 느낌이었다. 수련을 하다가도 놀라 베일 뻔 하고, 밥을 먹다가도 위장에 쿡쿡 찔려 박히는 느낌에 토악질을 한적도 있다. 심지어 잠을 자다가도 서늘하게 꽂히는 통증에 소스라치게 놀라 일어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니, 사람이 사는게 사는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내공이 있고 도를 닦는 도사여도 수시로 대침에 찔리며 살 수 는 없는 것이다. 차라리 사람이 그렇게 괴롭히면 그 사람 대가리를 깨버리면 되겠는데, 청명을 찌르는 그것은 기척도 없는 형태도 없는 대침이니 말할것도 없다.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잔다. 마음을 놓을 평안한 시간마저 없어 퀭해진 청명을 바라보는 사형제들은 그렇게 가혹하게 굴림을 당했어도 그를 걱정하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청자배에서 가장 나이가 막내지 않은가. 이 생각을 읽었다면 어디 병아리놈들이 봉황을 걱정하냐며 길길이 날뛰어도 모자른 청명은 힘없이 한숨을 쉬었다.
"하아....."
청명도 설명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외에 북쪽에 이변을 느낀 사람이 없었고 이런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도 없었다. 초반에야 혹시나 싶어 의약당도 가봤지만 당소소가 청명사형도 꾀병을 부리고 싶을 때가 있나보죠? 하고 의기양양하게 내밷은 소리에 애꿋은 의약당의 문만 반파되어 날아갔다. 당소소가 어디 의약당의 문을 발로 부수냐며 불을 뿜었지만 청명도 똑같이 불을 뿜고 싶었다. 그것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고 청명을 더더욱 거슬리게 하고 있었다. 그걸 어떻게 설명하고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감을 잡지도 못했다.
청명은 지금도 관자놀이를 쿡 쑤시고 들어오는 대침의 느낌에 인상을 팍 찌푸렸다. 그리고 또 북쪽을 바라보았다. 청명이 북쪽을 신경쓰는걸 이제는 다 알고 있었다. 매번 성질을 내며 바라보는 쪽이 한결같이 북쪽의 한 방향이니 모를 수가 없다. 청명은 오른손을 꾹 쥐었다.
"안되겠다."
"왜...? 뭐가??"
조걸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일단 청명을 붙잡을 준비를 했다. 윤종은 다른 사형제를 시켜 백천을 불러오라 손짓했다. 조용한 가운데 청명이 결심한듯 말했다.
"그래, 다녀올께!"
"어딜 인마...!!"
제일 가까이 있던 조걸이 손을 뻗어 청명의 손목을 붙들었다. 청명이 그 손을 가볍게 휘둘러 떼어내고 창문으로 나가려고 하자 삼대제자들은 제 몸을 던저 창문을 막았다. 아무리 그래도 같이 먹고 잔 사형제를 뚫고(?) 나가지는 않을 것이 아닌가!
다행이 청명은 혀를 차고 방 문쪽을 바라봤다. 조걸은 막을 수 없는 위치, 윤종은 백천이 오고 있는지 확인하느라 고개를 돌린 상태였다. 청명의 눈이 번쩍 빛나고 삼대제자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금방 갔다 온다!"
"어?!"
"안돼!!"
겨우 윤종이 그의 옷자락을 잡았지만 청명은 연기처럼 그 손을 빠져나갔다. 이 광경 언젠가 본적이 있다. 처음 이대제자들이 돌아왔을때 눈이 돌아갔었던 청명이 이렇게 튀어나가려고 한 적이 있었다. 그때보단 확실히 삼대제자들은 강해졌다. 이번엔 그때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다!
"잡아아아!!"
그래, 삼대제자들은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강해지긴 했다. 그런데 문제는 삼대제자 뿐만이 아니라 청명이도 강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청명은 다른 삼대제자와는 급이 다르게 강해졌다.
윤종의 절규에 내공을 끌어쓰며 삼대제자들이 청명을 잡아챈다. 하지만 무슨 조화를 부리는지 청명은 그 포위를 쏙쏙 뚫고 나가 백매관의 문까지 한순간에 도달했다.
역시나 문을 발로 뻥 차내며 밖으로 날아가는 청명을-
"덮쳐!!"
문 앞에 잠복하고 있던 백천이 튀어나와 청명의 허리를 붙들었다. 백천 한명이면 바로 떨처내던 금붕어 똥처럼 달고 튀어나가던 했겠지만 위에서 내리 꽂은 유이설의 발차기에 앞으로 튀어나가던 청명이 바닥으로 훅 떨어졌다. 청명의 속도가 줄자 다른 이대제자들이 팔과 다리를 잡아 메달렸고, 뒤이어 몸을 날린 삼대제자들이 그 위를 봉분처럼 감싸눌렀다.
"으으으으!!!"
"진정해라! 무슨 일인지 설명을 해줘야 같이 나가던 장문인을 설득하던 할 것 아니냐!"
사람들 속에 끼인탓에 청명의 앓는 소리와 백천의 목소리가 둔탁하게 울렸다. 바둥거리던 청명이 포기하는 기색이 느껴지자 사형제들이 그를 놓아주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백매관 앞에 대자로 누워버린 청명은 눈을 감고 크게 한숨을 쉬었다. 일단 어떻게든 진정을 시켰으니 백천은 오늘만큼은 어떠한 설명이라도 들어야겠다며 그 옆을 지키고 섰다.
그때 들린것은 장문인의 목소리였다.
"이 야밤에 무슨 일이냐?"
"장문인!"
제자들은 다같이 장문인에게 포권을 하면서도 청명을 살폈다. 가만히 누워있던 청명이 느릿하게 일어나 창문인에게 포권을 하고 뒷짐을 진다. 한껏 못마땅한 얼굴이지만 입을 열 생각은 없어 보였다.
"청명아, 무슨일이냐?"
"...아무것도 아닙니다. 장문인."
"흠... 그렇다고 하기엔..."
다른 제자들의 표정을 확인한 현종은 작게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청명인 나를 따라오너라. 백천이도."
"예 장문인!"
"....네."
아무래도 다같이 있는 곳에서 이야기 하기엔 어려울 것이다. 장문인이 먼저 뒤돌아 걷기 시작했고 그 뒤를 정말 가기 싫다는 얼굴로 청명이 따랐으며 백천은 윤종에게 눈짓을 하고 맨 마지막에 따라갔다.
현종은 고민했다. 청명이 말을 할 수 있는 문제라면 백천과 상의를 하던 홀로 찾아오던 분명 현종에게 무언가 말을 했을 것이다. 무슨 일이냐 다그처야 할지, 청명이 입을 열기를 기다려야할지, 그냥 보내주어야 할지 명확한 판단이 서지 않았다. 처소로 가려던 발걸음을 약간 틀어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 정도의 시간이 있다면 현종도, 청명도 해야할 말을 정리 할 수 있을 터였다.
장문인의 뒤를 따르는 청명은 머릿속이 복잡했다. 말을 안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할 수가 없었다. 그냥 이상한 느낌이 나니 다녀오겠다는 말을 하면 현종이 허락 할 리가 없었다. 예전이면 몰라, 이제 청명이 화음에만 내려간다고 해도 전전긍긍하다 못해 원시천존을 찾아 헤메니 청명이라고 마음대로 날뛸수가 없었다. 차라리 천마나 마교 관련의 일이라면 입이라도 떼볼 수 있을텐데 영 그런 느낌은 아니었다. 거짓말을 하자니 장문인에게 그럴 순 없었고, 사실을 말하자니 핑계가 마땅치 않다. 일단 장문인을 설득이라도 해보자 싶어 큰 숨을 들이키며 입을 열었던 청명이 예상치 못한 아픔에 크게 신음소리를 내었다.
"아...! 크읏...!!"
"청명아!!"
그 느낌, 대침으로 찌르던 그 느낌은 이제 칼날이 되어 청명의 배를 헤집었다. 입이라도 다물고 있었으면 소리라도 참을것을 무어라 말하려다 예상치 못한 상태에서 고통이 밀려와 소리를 낼 수 밖에 없었다. 청명이 양 손으로 배를 잡으며 살짝 웅크린다. 현종이 놀라 그를 양손으로 감싸 안았고 백천은 습격인가 싶어 기감을 펼쳐 주위를 살핀다. 그 찰나의 시간 청명이 장문인을 밀치며 산문쪽을 바라봤다.
"왔어...!"
새하얗게 질린 청명이 장문인의 소리를 무시하고 빛살처럼 달려나갔다.
조금 전까지만해도 이렇게 가깝지 않았다. 허공을 박차고 날듯이 산문에 도착한 청명은 산문 앞의 인영에 눈을 찌푸렸다. 평소라면 조절하여 소리 없이 바닥으로 내려섰겠지만, 오로지 속도만을 생각한 탓에 청명은 산문 밖으로 큰 소리와 함께 포탄처럼 떨어졌다.
"야 너 뭐 하는 새...끼...."
산문 앞에는 한 사람이 서 있었다. 그의 긴 머리가 산발이 되어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고 비어있는 좌수부분의 옷은 소매가 없이 뜯어져 있어 아물지 않고 까맣게 죽어있는 상처가 보이는 상태였다. 그의 복장은 화산의 사람들에게 눈에 아주 익은, 화산의 무복의 모양새였지만, 피와 먼지가 덕지덕지 묻어있어 제대로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모든게 빛바래고 더러워진 남자의 두 눈만이 형형하게 청명과 그 뒤의 산문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 형상이 가히 악귀와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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