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서 (傷逝)
[가면라이더 W] 할로윈 기념 2차 팬소설 (Non-CP)
앞서 읽기
* 오랜만에 가면라이더 W Non-CP 소설 연성했습니다 야호!
* 본 소설은 가면라이더 W의 팬 창작 작품이며, 작품 본편과 연관이 없음을 밝힙니다.
* 본 소설은 W Retruns V시네마 가면라이더 이터널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오랜만에 본편 이후를 상정하고 썼습니다. IF 아님! 시간대는 지금보다 미래인 시간으로 상정하고 썼어요.
* 이런 내용의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이 연성을 하게 된 계기랄까 영감은 무거운 편이었는데 아웃풋은 가벼웠다는 어쩌구… 제목도 생각 안해두고 있었는데 적당한 단어 골랐어요() 뭐냐 이 가벼운 마인드는
* 아무튼 해피 할로윈! 🎃
가을로 접어든 후토에도 화창한 햇살이 부드럽게 쏟아진다. 청명한 하늘 아래에 서 있는 후토타워는 그 어느 때보다 드높고 당당하게 서 있었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바람은 뜨거운 여름을 잊을 만큼 시원하게 불어오고 있었다.
이렇듯 후토의 시민이라면 자신의 마을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사랑하지만, 그 마을에서 그렇지 않은 이가 딱 한명 있었다.
광장에서 가을맞이 행사가 막 열리던 정오, 검은 정장 차림을 한 중년의 여성이 옥상으로 올라온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올라온 여성은 옥상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후토 타워가 잘 보이는 곳으로 자리를 잡는다. 여기라면 시끄럽지도 않고, 후토 타워도 잘 보이고, 하늘도 쾌청하니 종일 이곳에 자리 잡고 있어도 괜찮을 것이라 혼자서 중얼거린다. 한손 가득 하얀 꽃다발을 쥔 여성은 난간에 기대어 후토 타워를 올려다본다. 오늘만은 여기에 있자. 오늘 밤까지 있다가 다시 돌아가면—
문득, 저 멀리 후토 타워 주변으로 풍선 무리가 날아가는 것이 보인다.
멀리서도 선명히 보이는 알록달록한 풍선은 바람을 타고 더 높이 날아간다. 한순간에 풍선에 사로잡힌 시선은 좀처럼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풍선 무리를 한참을 구경할 때쯤 뒤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려온다.
“날아가는 풍선 모습이 예쁘네.”
목소리를 들은 여성은 뒤돌아서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한다.
“잠깐 옆에 있어도 되지?”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한 여성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그를 한참 바라본다. 그녀를 보며 태연하게 미소 짓는 그는 그녀의 옆에 서서 똑같이 난간에 기댄다. 한참을 혼란스러워하는 그 여성은 이내 미소를 짓더니 다시 난간에 기대어 후토를 바라본다. 두 사람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후토 타워를 바라본다. 언제 어느 순간에 맞아도 시원하기 그지없는 바람을 쐬고 있자면, 무거운 고민거리도 일순간에 내려놓을 수 있지 않겠는가. 스쳐 지나간 바람의 끝자락에 한숨을 깊이 내리 쉰 여성이 입을 열었다.
“당신은 무슨 볼일이길래 어쩌다가 여기에 왔을까?”
가볍고 친근한 말투로 말문을 튼 여성은 그 남자를 바라본다.
“글쎄— 그냥 바람을 따라 여기에 왔을 뿐이야.”
“…….”
서로가 마주 보며 웃고 있었지만, 한쪽의 미소는 그다지 산뜻해 보이지 않았다. 여성의 미소가 먼저 사라져갈 때쯤, 남자가 그녀의 침묵에 답을 이어간다.
“보아하니 종일 여기에 있을 셈인가 본데……. 마침 잘됐네. 나도 말동무가 필요했거든. 당신의 이름, 말해 줄 수 있어?”
어느새 난간 아래를 보고 있던 여성은 이름을 묻는 말에 남자의 얼굴을 다시 보았다. 남자는 변함없는 미소로 하늘을 보고 있었다. 한동안 그의 얼굴 바라본 여성은 다시 멀리 있는 후토 타워를 바라본다.
내 이름은 미나야.
그 후로 그 남자와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을까. 물론 시답잖은 신변잡기만 되풀이했을 뿐이다. 딱히 좋아서 기억하는 일도 아닌, 그저 한순간의 일로 뇌리에 강하게 남겼던 일들로만 말이다. 어쩌다가 이 사람에게 내 신변잡기를 털어놓고 있는 걸까. 실없는 주변 이야기, 쓸데없이 웃으며 대답을 이어주는 말동무. 그저 이 둘만으로 계속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니…….
그녀는 실없는 웃음을 멈추고 멍하니 후토 타워를 바라보았다.
후토로 처음 발을 들인 뒤로 살아온 나날들은 그리 즐겁거나 행복하지는 않았다. 주변에서 마을의 영웅에게 도움을 받았다느니 마을을 구했다느니…… 적당히 주변을 보며 찬동하는 척만 반복할 뿐. 함께하는 마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 마을의 영웅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영웅을 사랑하는 이들은 아무 잘못이 없다.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지만, 그들의 세계로 넘어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직장을 옮겨가며, 터전을 옮겨가며 몇번이고 몸부림을 쳐봤을까. 그 발버둥을 세어볼 수는 있을까. 하지만 그 시도가 반복될수록 그들과의 벽은 더 견고해졌다. 자기 삶을 이곳저곳에 옮겨봐도 익숙해질 수 없는— 이겨낼 수 없는 세상이었다.
그렇게 메마른 슬픔에 닳아 마음마저 마모되어가던 나날이었다.
……닳아버린 마음과 똑 닮은 붉은 노을이 어느새 눈앞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지금을 이렇게 보내는 스스로가 한심해진 건지, 미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담뱃갑 하나를 꺼내 든다. 그것을 산 지는 오래된 듯 비닐과 포장재는 힘없이 구겨져 있었지만, 그 안에 든 권연은 충분했다. 그녀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권연 하나를 집어 들었다. 분명 담배는 끊었으리라 생각했는데…… 이것도 새삼 다시 피우려니 마냥 또 익숙지 않다. 그런 생각을 하며 품에서 라이터를 꺼내 들었다. 미나의 불 지피는 소리를 들은 그 남자가 그녀를 바라봤다. 마찰음이 사라지자 그제야 두 사람이 눈을 마주할 수 있었다.
“뭘, 그렇게 봐?”
“아무것도 아냐. 나도 그거 하나 줄 수 있어?”
남자는 싱긋 웃어 보인다. 남자의 웃음에 그녀는 말도 안 된다는 듯 풋 웃어버린다.
“너도 이런 거 피울 수 있는 거야?”
왠지 모르게 나온 가벼운 웃음이었지만, 이내 작은 미소로 가라앉았다. 그녀는 그에게 권연 한 개비를 넘겨주고는 그에게 불을 지펴줬다. 권연이 타는 소리가 두 사람 사이를 메우고 가라앉은 숨결만이 들렸다.
담배를 피우던 미나는 문득 생각한다. 분명히 그런 일들이 많았고— 이 주민들과 얽힌 과거는 떠올리기 싫었지만, 그녀가 읊은 과거는 정말 싫었던 기억만 있었는지는 확실하지는 않았다. 그저 이상하게도 그 일들은 전부 어떤 선의를 행하고— 그로 인해 보답받아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던 일들이었을 뿐이었다.
미나는 그런 식으로 이 마을에서 살아왔다.
시간은 그로부터 얼마나 더 흘렀을까. 벌써 그렇게 흘렀나 싶어질 시간이었다. 순식간에 드리운 밤하늘에 새삼스럽게 낮이 짧아진 시기라는 것을 체감한다. 후토의 야경을 한참 바라보던 미나는 기지개를 켜고 밤하늘을 바라본다. 듬성듬성 보이는 별 사이로 달이 선명히 보인다. 미나는 별과 달의 틈새로 스며 들어오는 후토의 바람을 잠시 눈을 감으며 맞아본다.
“이제 돌아가려는 거야?”
남자의 목소리에 미나는 그를 바라봤다.
“돌아……가는 거겠지?”
그녀는 잠시 말이 없어지다가 다시 미소 지었다.
나는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러 온 것이니까.
수십 년 전, 나는 어떤 남자에게 구해졌다. 하지만 나를 구했던 남자는 찰나의 순간으로 인해— 세상에 등을 돌리고 이 마을에 복수의 칼날을 겨눴다. 그는 테러와 함께 마을 주민 모두에게 영원한 상처를 남기고 사라졌다.
모두가 최악의 테러리스트로 기억하고 있지만, 내게는 다른 영웅과 맞바꿀 수 없는 유일한 영웅인 그 사람— 다이도 카츠미를 생각하며 이곳에 찾아왔다.
카츠미는 내가 고통에서 해방되어 나의 삶을 살아가길 원했다. 그가 죽은 후에도 나는 어떻게든 살아가 보고자 했다. 그의 집이자 고향인 후토에서 말이다. 하지만 그 일은 쉽지 않았다. 나를 향한 멸시의 말은 아닌 것도 잘 알고 있다. 이곳에서 일어났던 일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인데도 말이다.
그를 잃은 것에 대한 슬픔은 이미 끝나버렸다. 정확히는 슬퍼할 시간조차 제대로 갖지 못한 채 짐을 짊어져야 했었을지도 모른다. 카츠미를 잊은 시간의 대가는 철저하게 돌아왔었다. 잊지 않으려고 노력할 때마다, 그를 떠올릴 때마다 마음은 닳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감정의 삶에도 한계는 있는 법이다. 그를 위해서 살아가면서도 나는 나 나름대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방법은 카츠미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남을 도우며 그 선의에 대한 마음에 기대어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선의를 엮어 삶으로 반복하다 보면 계속 카츠미를 떠올릴 수 있을 테니까.
비로소 슬픔에서 일어나 주변을 둘러봤을 땐,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나버렸지만 말이다.
미나는 가벼워진 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있잖아, 지금 저 달에 작은 달이 붙어 있는 걸 알고 있어?”
언젠가 뉴스에서 보았던 내용이 떠올랐다. 아주 멀리서 날아온 소행성 하나가 지금 지구 곁에 머물며 공전하고 있는 것을. 하지만 이는 잠시뿐이며, 곧 다시 머나먼 길로 떠날 예정이라는 기사 내용이었다.
“저 작은 달은 예전에도 지구를 두 번이나 찾아왔었어. 두 번의 방문 후에 오래 떠나서 있었다가 지금 다시 곁에 있는 거지. 그렇지만 그때처럼 지구와 가까이 있지 않아.”
“…….”
“그리고 곧 아주 머나먼 우주로 떠나겠지.”
“미나.”
“아마……. 너도 마찬가지겠지?”
이 도시를 떠날 생각인 건 아니다. 분명 카츠미도 이 바람을 좋아했을 테니까.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선, 그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지금은 잠시 슬픔에서 손을 놓아야 하는 것도 방법임을 인제야 깨달았을 뿐이니까.
“아마 다시는 못 볼 거야. 네가 말한 저 작은 달처럼.”
“그래서 일부러 찾아와 준 거잖아.”
카츠미.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미나는 마치 준비를 마쳤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고는 천천히 기억을 더듬으며 손끝으로 불꽃을 피워낸다.
“아마 이 힘을 쓰는 것도 정말 마지막이겠지.”
검지 끝에 피어난 불꽃은 국화와 백합꽃으로 엮인 꽃다발에 옮겨붙는다. 불꽃은 그들이 필사적으로 살았던 것처럼 강렬하고 화려하게 피어난다. 미나는 —이 마을의 영웅이 그랬던 것처럼— 후토 타워를 보며 꽃다발을 던진다.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두 번 다시 보지 못할 그 사람에게
감사와 애도를
그녀가 머물던 옥상도 어느새 조용해졌다.
비로소 안식을 가질 수 있게 된 미나는 망자의 밤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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