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래컴퍼니

(주) 군래컴퍼니 - 더 왈츠 킹

파벌, 나이, 성별을 뛰어넘어 모두를 대통합하게 만들 수 있는 궁극의 아이돌이라 하면 누가 떠오르는가? 다양한 선남선녀 케이팝 아이돌이나 유명 팝가수들의 이미지가 머릿속에 스쳤을 것이다. 심지어는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군래컴퍼니 직원들에게 익숙한 사람일 테니 금단발을 찰랑거리며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 과장을 떠올렸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사실 매일 아침마다 파벌싸움으로 사람이 죽어나가는 군래컴퍼니에서 싸움을 막고 모두에게 웃음꽃을 피우게 할 수 있는 직원은 딱 하나 뿐이었다. 그 직원을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우리의 영원한 꼰대이자 작가가 틈만 나면 굴리는 펠릭스 멘델스존 과장이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지금 보여주려고 한다. 점심시간, 식후커피 한 잔씩 하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고전적 낭만주의자들에게로 시선을 돌려 보자. 슈만은 블랙 커피, 클라라와 파니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멘델스존은 복숭아 망고 스무디를 먹고 있는 모습이다.

"자꾸 윗선에서 챌린지에 쓸 만한 음악 좀 만들어 봐라 그러는 거 진짜 미치겠어. 드보르작 대리가 슬라브 무곡으로 히트친 뒤로 맨날 저런다니까."

파니가 볼멘소리를 하면서 얼음을 깨물었다. 드보르작 대리의 슬라브 무곡은 드보르작 대리를 하루아침에 무명사원에서 유명디자이너로 만들어준 작품이었는데, 그 짧은 무곡 형태가 꽤나 마음에 들었는지 윗선에서 그런 걸 좀 더 만들어 보라면서 바람을 불어넣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무곡에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고는 아무리 찾아봐도 없지 않은가.

"맞아요, 스트레스받아 죽겠어요. 결혼챌린지 같은 걸 만들 수는 없잖아요."

유행을 타지 않는 축혼행진곡이라고 해도, 곡의 특성상 챌린지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 걸 만들라고 시켜도 무곡 전문이 아니니까..."

슈만이 말끝을 흐리며 커피를 홀짝였다. 왕년에 무도장에서 이름 좀 날렸던 슈만이지만 춤추는 기술과 춤곡 작곡하는 기술 사이에는 큰 관련이 없다. 그건 옆의 멘델스존을 봐도 마찬가지다.

"솔직히 난 다들 그 정도인지는 모르겠어요. 슈트라우스가 유행이라지만 글쎄, 나는 아무리 봐도 평범하고 무난한 딱 무곡 그 정도던데."

친한 사람들 사이니까 이 정도는 괜찮겠지, 라고 생각했던 멘델스존은 바로 여기서 폭탄을 떨어뜨리고 만다.

"나름대로의 매력은 있지 않나, 그래도. 당연히 베토벤 팀장님 제품 같은 거에다가 비교를 할 수는 없지만 소박하고 서정적인 구석이 있는 왈츠들이잖아."

"아아, 그것까지 부정하진 않았어요. 다만 뭐랄까-너무나 비엔나적이랄까-감상적에 가까운 그 느낌 있죠."

"무슨 소리야? 슈트라우스 없는 우리 회사는 다뉴브 없는 오스트리아나 다름없다고!"

갑자기 탕비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며 베를리오즈가 끼어들었다. 멘델스존은 끄응, 하는 소리를 내뱉으며 귀찮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슈트라우스는 훌륭해! 라너하고 같이 왈츠의 판도 자체를 바꿔 놓았다니까? 그거는 베토벤이나 슈베르트 팀장님도 못 해내신 일이었어! 그 지루한 8마디짜리 곡이 끝없이 반복되는 걸 듣고 있으면 얼마나 노이로제가 걸릴 것 같았는데. 드디어 왈츠에 선율이 생긴 거나 다름없어. 이전까지 왈츠는 뭐냐, 그게 체르니 연습곡이지 왈츠였냔 말야."

베를리오즈가 '그건 베토벤도 못 해낸 일이다' 라는 말을 했다는 건 정말 대단한 사건이었다. 멘델스존은 입을 꾹 다물고서 고개를 가로젓는다. 도저히 그 의견에는 동감할 수가 없었다.

"나라고 슈트라우스 왈츠 안 들어 본 게 아니잖아요. 물론 무곡으로서는 괜찮아요, 좋죠. 하지만 그걸 어디 예술음악이라고 부를 수 있냐는 말인 거예요. 솔직히 말해 나는 그 사람이 우리 회사에 직원으로 이렇게 당당히 이름 올렸다는 것부터가 안 믿겨."

"아아, '내가 하는 건 순수 고급 예술이고, 로시니같은 저급 오페라 장르 대중예술이랑은 차원이 다르다' 뭐 그런 거야? 선민의식 쩌시네요."

"갑자기 여기에 로시니를 끼워넣지 마요! 그보다 당신도 로시니 싫어하면서!"

"뭐 그렇게 급 나누는 게 로시니로 나누는 거랑 별반 다를 거 있나. 결국 다 상대적인 거잖아?"

"그래요, 그럼 그러시든가. 로시니나 슈트라우스나 결국 뇌 빼고 써도 되는 공장식 곡들 작곡한다는 데는 별 차이점이 없긴 하죠. 하룻밤에 몇백 곡씩도 써낼 수 있을 사람들이야. 짜깁기하고, 대충 선율 몇 번 반복하고 공식에 맞춰서 음 몇 개만 넣었다 뺐다 하는 게 뭐가 복잡해요?"

"뭐라고?! 누가 지금 슈트라우스 욕했어?!"

갑자기 또 문이 벌컥 열리더니 바그너가 들어온다. 베를리오즈는 이거이거 일이 커지겠군, 하면서 살짝 뒤로 물러나 준다. 언제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좋아하는 관심종자 바그너는 방에서도 중앙에 있지 않으면 마음이 편치 않아 했으니 말이다. 바그너는 커피 한 잔을 내리고 멘델스존 앞에 나름대로 위압감을 주기 위해 발뒤꿈치를 들고 선다.

"또 그쪽이겠지?"

"슈트라우스가 이 정도 열광을 불러일으킬 정도인지는 모르겠다고 했을 뿐입니다. 그쪽그쪽 거리지 마세요, 바그너 대리. 직급상 하극상이라고요."

"하극상이고 뭐고 슈트라우스를 어떻게 욕하냐는 말이야! 슈트라우스의 그 오케스트레이션! 그 호화찬란한 음향! 드라마틱한 서주부! 하기야 그쪽처럼 열정 없는 사내가 어찌 왈츠의 황홀한 도취를 이해하리오. 그 황금빛 샹들리에가 빛을 불어넣는 샴페인의 숨결 아래 남녀가 맞닿아 추는 격정의 댄스를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지!"

바그너의 말을 듣고 멘델스존은 '으, 더러워' 하는 표정을 짓는다. 왈츠를 싫어하기는커녕 오히려 좋아하는 멘델스존이었지만 바그너의 설명을 듣고 나니 어쩐지 춤 자체에도 정이 떨어지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보다 드라마틱한 서주부라, 그건...뭔가 다른 슈트라우스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방금 그 말은 정정해, 바그너 씨. 그쪽보다 우리 동생이 왈츠는 잘 출 거야."

그 부분만 정정해 주고 다른 부분은 정정해 주지 않는 누나도 옛날에 비해 참, 시니컬해졌다고 해야 할지 뭐라고 해야 할지. 멘델스존은 미간을 누르며 끄응, 하는 소리를 냈다.

"아니 그러니까, 나는 슈트라우스가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요. 바그너 씨가 그렇게 생각하든 아니든 내 알 바는 아닌데,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그냥 내 의견이 좀 그렇다고 한마디 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그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과장님."

멘델스존은 헛웃음을 터뜨린다. 이번에는 브람스였다! 브람스는 경멸하는 눈길로 바그너를 째려보다가 멘델스존에게로 고개를 돌린다.

"저 저급한 돼지 여물같은 자식의 의견에 별로 동조해 주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슈트라우스 곡은 더 이상 단순한 대중예술, 무곡 이 정도로 취급하실 게 아니라고 봅니다. 슈트라우스는 비엔나 왈츠의 개척자예요. 하나의 장르를 만든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데요. 거기에다가 지금의 슈트라우스에게 열광하는 이 모습은 전 가히 몇십 년 전 리스트 과장님께서 불러일으키셨던 열풍에 비할 바라고 봅니다. 일종의 사회문화적 현상에 가깝다는 거죠. 이건 싸워 봐야 찻잔 속의 태풍인 순수예술가들과는 차원이 다른 영향력이에요. 선배님께서는 못 들어보셨을 수도 있겠지만 '푸른 도나우' 는 꼭 들어보셔야 합니다. 그런 발상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건지, 사람을 그렇게 즐겁게 해 주는 음악이 또 어디 있습니까? 음악이 단순 사람을 기쁘게 만드는 것이라고는 하지 않겠지만 사람을 기쁘게 만드는 힘이 있는 음악이라니 어찌 부럽지 않고 배기겠습니까!"

"너 솔직히 말해 봐. 슈트라우스랑 절친이라서 그렇게 이야기하는 거지. 네가 이렇게 멀쩡한 사고를 가지고 있을 리가 없어."

브람스의 열변에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바그너의 반응이었다. 브람스는 즉각 표정을 굳히고 바그너에게 눈을 부라린다.

"이쪽이야말로 바그너 대리가 멀쩡한 사고 방식을 가졌다는 것에 놀라고 있으니까 입 닥쳐주기를. 의견이 일치한다는 게 몹시 불쾌하군요. 요한 얼굴 봐서 참습니다."

"슈트라우스만 아니었어도 방금 죽빵 꽂았다."

"요한 덕에 임시휴전인 걸 감사하게 아십시오."

진심으로 슈트라우스가 그 정도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 나뿐인 거야? 하고 멘델스존이 외롭게 생각하고 있을 때 멘델스존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이번 슈트라우스 신곡 정말 멋지지 않니? '비엔나 사람들의 기질' 왈츠라니, 지역 특화 상품으로 팔아도 될 정도야."

볼프는 팔짱을 끼고 입술이 댓 발 나온 채 슈트라우스의 신곡을 든 브루크너의 손을 뿌리친다. 바그너가 슈트라우스를 좋아한다니. 믿기를 거부하고 싶었다. 거기에 슈트라우스가 그 정도인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건 멘델스존 쪽이라니. 이건 믿기를 거부하고 싶은 수준이 아니라 죽고 싶은 수준이었다.

"바그너 선생님께서 정신을 어서 차리셔야 하는데. 요사스러운 슈트라우스한테 홀려가지고."

"슈트라우스가 요사스럽다니! 얼마나 로컬 술집에서 인기가 많은데."

"그러니까요. 그런 대중적인 음악이 뭐가 좋다고 바그너 선생님께서는 저기서."

탕비실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싸움판이 된 모습이었다. 베를리오즈, 바그너, 브람스 셋에게 신나게 말로 두들겨맞고 있는 멘델스존.

"대중적인 음악도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지! 그렇게까지 거부하기만 할 건 없지 않니? 그런 거에서 영감을 받을 수도 있는 거고."

브루크너는 고개를 살짝 갸우뚱한다. 역시 브루크너랑은 말이 안 통한다. 볼프는 그래, 이 정도면 이건 깨어 있는 신세대와 트로트 수준의 곡에서 못 빠져나온 구세대의 갈등이다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려고 한다. (세대 구분에 따르면 멘델스존과 본인이 같은 세대일 수 없다는 점은 편리하게 잊어 주도록 한다.)

"야!"

볼프는 소리를 쳐서 방금 화장실에서 손을 닦으며 나온 말러를 불러세운다. 말러는 왜. 한마디와 함께 짝다리를 짚고 선다.

"슈트라우스가 그렇게 좋냐?"

"뭐 남들이 좋다는 걸 나한테 어쩌라고. 난 별로 안 좋아해."

"아니 다 좋다좋다 난리를 치잖아. 바그너 선생님도 좋아한다 그러시고."

"바그너 선생님이 좋아하는지 안 좋아하는지가 내 알 바야, 슈트라우스는 음악이 아닌데."

말러는 그렇게 이야기하고 쌩 자기 자리로 간다. 말러의 말을 듣고 볼프는 역시 자신의 의견이 맞다는 데에 한층 확신을 더하고 마음속으로 바그너 선생님께서 다시 빛의 길로 돌아오시기를 기도한다. 브루크너에게 정신 차리라고 하기 위해 고개를 돌린 볼프는, 브루크너도 커피 한 잔 마시려고 탕비실에 갔다가 어느덧 같이 멘델스존에게 '슈트라우스는 예술이다' 라는, 씨알도 안 먹히는 설득을 하는 파티에 합류했음을 알게 된다. 문을 열자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이 얼굴이 뻘개진 멘델스존이 소리를 치고 있었다.

"알겠다고요! 알겠는데 난 그냥 슈트라우스 취향이 아니라고! 그만 좀 하라고! 난 슈트라우스 2세가 아니라 슈트라우스 1세 이야기였다고! 다른 사람 이야기로 나 좀 그만 공격하라고!"

"그건 모르겠고 슈트라우스는 최고라고!"

"슈트라우스의 그 선율을 이해를 못 하겠냐니까요?! 그 꽉 막힌 취향 좀 어떻게 해 보십시오!"

"춤 추는 건 좋아하시면서 거기서 슈트라우스가 싫다고 하셔도 설득력이 없어요!"

"마음을 좀 열고 들어봐라 좀!"

볼프는 조용히 문을 닫는다. 멘델스존을 도와줄 마음도 없었고 여기서 본인이 한 마디 해봐야 본인도 같이 공격당할 거라는 확신만이 들었다.

"오, 나 언제 이렇게 인기인 됐지?"

눈치 없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고개를 쓱 디밀었다. 볼프는 눈을 흘긴다.

"니 이야기 아니거든."

그로부터 십 분쯤 뒤,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탕비실 문을 쓱 연다.

"뭣들 하십니까?"

"아 글쎄 얘가 슈트라우스가 싫다잖아!"

"슈트라우스 곡을 이해를 못 하겠대!"

"슈트라우스는 저급 예술이라고 그랬어!"

"아니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어요! 그냥 내 취향이 아니라고 했지!"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아직도 실컷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쓱 둘러보고 잠깐 버퍼링이 걸렸다가 뭐, 상관없나 하는 투로 어깨를 으쓱한다.

"아 예, 그건 그렇고 제가 오늘이 동생 생일이어서 출장 뷔페 불렀는데 드실 분 1층으로 오라고 하려 들렀습니다."

'출장뷔페' 라는 말을 듣는 순간 싸우고 있던 모두가 조용해진다. 그리고 얼굴에도 화색이 돈다.

"아유 무슨 그런 비싼 걸 해. 아유 참."

"출장뷔페라니 살다가 회사에서 이런 호사도 다 누려보고 아유 이 참."

"또 이런 걸 해 주는데 안 갈 수가 없지!"

그렇게 아까까지만 해도 죽어라 싸우고 있던 사람들은 출장뷔페에서 뭘 먹을지 고민하며 행복한 표정으로 함께 엘리베이터에 오른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맥심 커피믹스와 빈츠, 후레쉬파이 등 다양한 과자가 널브러진 탕비실 바닥을 보고 새로 주문해야 하는 과자를 메모지에 끼적끼적 적는다.

결과적으로 슈트라우스로 시작된 싸움조차 슈트라우스가 있으면 끝나는 셈이었다. 이미 1층에서는 브람스 파 바그너 파 가릴 것 없이 모두가 비싼 초코무스 케이크와 칠면조 요리, 무슨 푸아그라인지 뭔지와 캐비어 같은 최고급 요리를 입 안에 즐겁게 밀어넣고 있었다.

어쩌면 슈트라우스는, 군래컴퍼니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매일 분투하고 있는 전사인지도?

카테고리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