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군래컴퍼니 - 붉은 닭꼬치
아이시스님의 로트닭꼬치 꿈 + 썰에 기반합니다.
배가 고프긴 고픈데, 그렇다고 제대로 한 끼를 먹자니까 귀찮고, 그렇다고 햄버거 같은 걸 사먹기는 싫고, 좋아하는 맛집은 회사랑 멀리 떨어져 있는데 당장 애매하게 배가 고픈 날, 그런 적이 다들 있는가? 뭐 없을지도 모르겠는데 일단 엑토르 베를리오즈에게는 그게 일상이다.
군래컴퍼니 구내식당은 나름 저렴한 가격에 맛있고 배부른 메뉴를 판다. 요컨대 가성비가 최고라는 이야기다. 군래컴퍼니 백*원 로시니가 있는 이상 (백원이라는 게 아니라 사람 이름인데 가린 거다.) 구내식당이 맛없을 수는 없다. 다만, 엑토르에게는 너무…너무 배가 불렀다. 에스카르고 여섯 개에 토마토 브루스케타 약간이면 한끼 금방인데 로시니가 관장하는 구내식당 메뉴는 거의 1.5인분 수준이었다. 중학교 급식도 그렇게는 먹어 본 적 없었다. 물론 동기 멘델스존의 경우에는 그 1.5인분이 본인한테 딱 맞고 매일 메뉴도 바뀌어 나오니 점심식사 정할 필요도 얼마나 좋냐면서 구내식당을 출근도장 찍듯 다녔지만 엑토르 베를리오즈에게는 부담스러운 양이었다. 아마 리스트, 쇼팽, 본인의 식사량을 다 합치면 구내식당 1인분일 테다.
거기다가, 뭔가 그 급식판에 음식을 받아오고 나면 우울해지지 않는가? 엑토르만 그런 것이라면 말고. 내가 이제 돈 벌어서 알아서 먹는 성인이 됐는데 무슨 신학교처럼 배식을 받는다니. 그리고 두 번째 문제, 저녁시간에 출출하면 어디서 밥을 먹나. 회식은 가기 싫고-베토벤 팀장의 입맛이 그다지 신뢰할 만하지 못하다는 건 잘 알려져 있는 이야기였다-그냥 빨리 아무거나 입에 집어넣고 싶은데-그럴 데가 없다. 그 애매함으로 인해서 편의점에나 들어가 컵라면을 사놓고 저녁을 대충 때우고 있었지만 아, 이건 정말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었다. 되너 케밥 정도로 먹으면 딱 좋은데 근처에 그런 가게가 없었다. 아니 왜 없는 거지, 라고 생각해 봤지만 답을 낼 수가 없었다. 그놈의 메*커피, 스*벅스, 이*야 커피 같은 카페만 즐비하고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이런 틈새시장을 공략해야 하는데, 여기 직원이 기획개발부만 해도 백 명은 훌쩍 넘을 텐데…
어쨌든 어김없이 또 그런 날이 돌아왔다. 재채기가 멈추질 않고, 코트 단추를 꽁꽁 여며도 패딩 생각이 간절하고, 폰 중독자들조차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지 않는 그런 날씨와 위에서 말했던 그 애매한 허기만 남은 채 엑토르는 오후 아홉 시에 회사 정문을 나섰다. (군래컴퍼니가 근무시간으로 블랙기업인 건 아니다. 본인이 출근을 늦잠 퍼질러 자다가 오후 한 시에 했을 뿐이다. 엑토르가 출근했을 때는 새벽 5시에 출근했다는 리스트가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렇게 배가 주린 채로 또 한참 차를 타고 집에 가야 한다고? 말도 안 되는 우울한 소리 하지 마, 하고 한숨을 푹 쉬고 있던 그의 눈에 희미한 노란 조명이 들어왔다. 아마 포장마차인 듯했다. 보나마나 오징어, 땅콩, 이런 안주 쥐어주고 맥주랑 소주 같이 팔고, 골뱅이 무침 놓고 그런 데겠지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래, 잠깐 몸이나 녹이고 소주나 한두잔 까고 들어가자라는 마음으로 엑토르는 포장마차의 비닐 문을 들췄다.
빨간 비닐 안쪽에는 의자가 몇 개 놓여 있었다. 주인도 손님도 보이지 않아 잠깐 본인이 이세계로 통하는 통로라도 열어버렸나-고민하던 찰나 조리대 뒤에서 산발의 형체가 솟아난다. (산발? 음 산발이라는 표현은 좀 아닌 것 같다. 엑토르가 입사하고 얼마 안 됐던 때에 했던 그런-볼륨감 있는 헤어스타일이랄까.) 엑토르는 조리대에 있는 조미료와 요리 재료들을 본다. 아무것도 없고 비어 있었다.
“여기 장사 하는 거죠?”
엑토르는 잠깐 회사 건물로 통하는 통로가 막혔나 포장마차의 비닐을 열어 보지만 다행히 길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고개를 내밀자마자 느껴지는 쌀쌀한 바람에 바로 엑토르는 자리를 잡고 앉는다.
“아! 네!”
“메뉴 어떤 거 있어요?”
엑토르는 메뉴판을 달라는 뜻으로 주인장에게 손을 내민다. 주인장이 엑토르의 손에 코팅된 에이포 용지 한 장을 쥐어준다. 메뉴판을 읽는 엑토르의 눈이 불을 켠 듯 밝아진다. 오호라, 닭꼬치라! 치킨 킬러 엑토르에게 딱 맞는 메뉴였다. 이 애매한 배고픔을 달래기에도 닭꼬치 하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처음 온 가게에서부터 도전적인 메뉴를 시도해보기는 싫었던 엑토르는 제일 위의 ‘기본 닭꼬치’ 를 가리킨다.
“그냥 기본으로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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