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로아이

도시락 이벤트가 두근거릴 시기는 지났나요? 


스즈키 코타로, 나이 26세, 186cm의 건장한 성인 남성. 그는 지금 자신의 화장실에 반나체로 갇혀 있다. 이유는 터무니없다. 여자친구가 자신한테 도시락을 만들어 주겠다고, 완성될 때까지는 비밀이라며 냅다 이리로 밀어 넣었기 때문이다. 이렇게만 들으면 알콩달콩한 커플의 귀여운 일화 같지만...  그는 몇분 전만 해도 그 '귀여운' 애인에게 죽을 뻔했다. 아니,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물리적으로.

스즈키 코타로가 알람을 꺼놓았는데도 일찍 일어났다는 게 아이카의 살인미수 동기였다. 코타로의 반사신경이 조금만 늦었어도 아이카가 휘두르는 검은 프라이팬이란 둔기에 후두부를 맞아 빈사 상태에 빠졌을 것이다. 어떤 의미로 코타로는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겪은 게 맞은 셈이었다.

그나저나 지금 몇 시지? 더듬더듬 핸드폰을 찾아 습관적으로 허리춤을 만지던 코타로의 손이 우뚝 멈춘다. 아 맞다. 나 지금 팬티 차림이었지.

“어이! 아이카! 나 출근!”

휙. 순간 열린 화장실 문틈으로 옷가지와 핸드폰이 던져진다. 얼떨결에 받은 코타로가 꿍시렁거리면서 주섬주섬 와이셔츠에 팔 하나를 넣었다.

“나 참, 도시락은 무슨 도시락이야…”

도대체 누가 그런 헛바람을 넣은 건지. 아이카가 다른 사람에 비해 조금… 많이 엉뚱하긴 했지만, 직업이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의 셰프인 자신에게 요리를 해준다는 발상을 할 줄은 몰랐다. 물론 그 생각 자체는 귀여웠었다 만, 그거랑 자신이 아침에 출근도 못 하고 죽을 뻔한 건 엄연히 다른 문제였다.

도시락… 도시락이라니. 그러고 보니 최근에 아이카와 그런 얘기를 했던 기분이 든다. 저번 주 주말이었나? 중학교 동창생인 그녀와 자신이 당시 점심을 어떻게 먹었는지에 대한 주제였던 거 같다.

‘나는 대부분이 편의점 도시락이거나… 가끔 아빠의 사랑이 담긴 맛없는 도시락?’

‘헤에… 너희 집은 아버지가 요리했던 건가.’

‘뭐~ 가끔은. 우리 집은 어머니가 더 잘 벌었거든~ 맞벌이였지만 가사는 대부분 아빠의 몫. 타로짱은?’

‘우리는 할머니가 해 주셨지. 내가 하기도 했지만.’

‘오~ 그때부터 요리사의 재질이 있었던 건가~! 근데 나는 타로짱의 도시락 먹어본 적 없어!’

‘그야… 그때는 너와 난 별로 친하지도 않았고…’

‘타로짱은 누구하고도 안 친했잖아.’

‘그냥 혼자가 편했을 뿐이야.’

‘흐응…~’

잠시 눈을 옆으로 흘기던 아이카가 툭 하고 물어본다.

‘그럼 타로짱은 누구한테 도시락 받아본 적은 없었겠네?’

‘뭐 그렇지.’

도시락을 먹고 싶은 거면 나중에 같이 소풍이라도 가던가. 그런 내용으로 대화는 끝이 났던 거 같다. 변기 뚜껑을 덮어놓고 그 위에 앉은 코타로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아이카의 의도를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아까부터 화장실 문틈으로 미세하게 탄 냄새와 아이카의 비명이 흘러나오고 있는 터라 코타로의 미간은 근심으로 깊어져만 가고 있었다.

“흐아아악!”

“어이! 아이카! 너 뭐한 거야? 괜찮은 거겠지?”

“완전 괜찮아~ 타로짱은 안심하고 열심히 출근 준비나 해~”

이런 상황에서 출근 준비 같은 걸 할 수 있겠냐고! 핸드폰의 시계를 보니 다행히 출근 시간 전까지는 아직 30분 정도 시간이 남았다. 무얼 만들어 주는지는 몰라도 다시는 쟤한테 요리 같은 거 못하게 해야지. 코타로는 한숨을 쉬며 씻기 위해 물을 틀었다.


나가야마 아이카는 대부분의 일에 자신이 있었다. 자기 입으로 말하는 것도 좀 그렇지만, 웬만한 건 몇 번 해보면 금방 익혀 버리곤 했으니까. 공부, 운동, 연기, 미술… 전부 한두 번 하면 요령이 눈에 보였다. 그래서 대부분의 일은 익숙해지고 나면 여름철의 땡볕에 놓인 배춧잎처럼 시들해졌다. 그걸 또 아쉽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또 다른 걸 찾으면 되는걸? 아이카에게 정착이란 곧 지루함의 섬에 갇히는 것과 같으니까.

“그러니까~ 도시락 만들기 정도는 나에게 별거 아니라~ 는 말이지!”

뭘 만들어 볼까? 3단 찬합? 아니면 귀여운 캐릭터 도시락? 전날 마트에서 장을 보는 아이카는 콧노래까지 부르면서 자신감에 차 있었다. 자신이 만든 도시락을 먹을 사람이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의 셰프라는 건 그녀에게 그다지 부담 거리도 안되는 것 같았다. 유X브에서 귀여운 곰돌이 모양의 함박스테이크가 메인인 사랑의 도시락 메뉴 레시피를 볼 때까지만 해도 아이카는 여유만만이었다.

그리고 코타로가 새벽 5시에 맞춰둔 알람을 꺼버리고 약 30분간 요리라는 걸 시작하고 나서야 아이카는 깨닫게 된다.

‘아… 그러고 보니 나 요리가 처음이네?’

나가야마 아이카라는 여자는 독립하고 나서는 집에서 밥이라는 걸 먹어본 적이 없었다. 코타로와 사귀고 난 이후에 매일 집밥을 먹으니 까먹고 있었지만… 본래 그녀가 살던 곳의 냉장고는 물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으며 싱크대는 하도 쓰지 않아서 먼지가 쌓일 정도였다. 그때는 밥은 밖에서 먹고 집에서는 거의 장기 훈련과 잠만 자기 위한 곳이었으니까. (아이카의 경우 잠도 밖에서 자는 경우가 많았다지만, 어쨌든.)

아니지, 사실 그녀가 코타로와 같이 살게 되면서 요리를 전혀 시도조차 안 해본 것은 아니었다. 코타로가 뭘 만들 때마다 주변에서 기웃거리며 이것저것 도와준 것도 같은데… 음, 지금 생각해 보니 거의 다 맛보기였군.

무언갈 하려고 해도 코타로가 부엌을 망치지 말라고 잔소리하는 바람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적이 많았다. 그러니까… 지금 좀 부엌이 더러워진 건 어쩌면 코타로의 탓도 있는 거다. 암. 아이카가 그렇게 합리화하던 와중 공중에 튀겨진 기름 탓에 불이 화르륵 붙어버렸다.

“흐아아악!”

“어이! 아이카! 너 뭐한 거야? 괜찮은 거겠지?”

“완전 괜찮아~ 타로짱은 안심하고 열심히 출근 준비나 해~”

괜찮고 말고… 가스레인지 주변이 좀 그을렸지만, 그런 건 코타로가 나간 후에 처리하면 되는 일이었다. 다행히도 함박스테이크는 그렇게 타지 않았다. 뭐… 곰돌이 모양으로 만드는 건 어렵겠지만…

“에이잇! 모양이 무슨 상관이야! 맛만 있으면 되는 거야, 맛만!”

핑크색으로 된 귀여운 캐릭터 도시락통에 얼른 주먹밥과 함박 스테이트를 나름대로 정갈하게 담는 아이카의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간도 봤고, 중간에 좀 사고가 있었지만 제대로 레시피대로 했다. 그런데도 왜 자꾸 가슴이 기분 나쁘게 떨려오고 식은땀이 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노력은 했지만 아마 코타로가 먹기엔 많이 부족할 것이다. 아이카가 아무리 역 앞 라멘집의 단골이라지만,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서 먹는 음식의 수준을 모를 정도로 입맛이 싸구려는 아니었다. 외견의 편견과는 다르게 스즈키 코타로라는 남자는 겨우 라멘 한 그릇에도 호텔급의 청결과 맛을 요구하는 사람, 아니, 요리인이었다. 그런 연인에게 도시락을 만들어 준다니, 어찌 보면 벌칙과도 같은 뻔뻔한 이벤트를 아이카 본인이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대국할 때도 이런 긴장감을 느낀 적이 없는데…’

아이카는 쓴웃음을 지으며 도시락 뚜껑을 닫았다. 스즈키 코타로는 누군가가 해준 음식은 많이 먹어봤을 것이다. 단순히 요리의 맛과 질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누군가가 맛있게 먹어 주기를 기대하면서 정성을 담아 조리한 음식을… 그는 많이 맛봤을 거란 확신이 아이카는 있었다. 코타로는 그런 애정을 받기에 충분한 사람이니까.

그에 비해 자신은 어떤가. 타인을 위해 요리를 해보기는커녕, 자신조차 제대로 돌본 적이 없다. 그럴 필요를 못 느꼈다는 게 정답에 가깝겠지만, 식사도 거르고 가벼운 친분을 쾌락 위주로 쌓으며 장기 기사인 자신에게 몰두해서는… 이대로 혼자 죽어버려도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었던가. 그런 삶을 살았던 텅 빈 인간이 만든 음식이다. 맛이 담길 일이 없다.

자조하면서도 아이카는 도시락을 쌀 보자기 밑에 곱게 접은 종이를 끼워 놓았다. 긴장되는 얼굴로 대충 겉모습이라도 그럴싸하게 보자기로 도시락통을 예쁘게 싸선 리본으로 묶어내자 타이밍 좋게 화장실 안에서 코타로가 나왔다.

“이제 나와도 되는 거냐?”

“짜잔~! 타로짱을 위한 아이카짱의 사랑이 듬뿍 담긴 도시락”

직장 동료들에게 보이기엔 상당히 부담스러운 하트 땡땡이 무늬의 도시락통을 보던 코타로의 시선이 아이카 뒤의 엉망진창이 된 부엌으로 향했다.

“하아… 저거 다 치워 놓아라.”

“걱정하지 마! 제대로 치워놓을게~”

떨떠름한 표정으로 아이카를 보던 코타로가 푹 한숨을 쉬었다. 나원 참, 아침부터 이게 무슨 난리람.

“이런 거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무리할 필요 없어. 다음부터는…”

코타로는 하던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아이카의 시선이 서서히 아래로 향했다. 입가는 올라간 채였지만 어쩐지 처진 분위기에서 코타로는 자신의 실수를 직감했다.

“그…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거야.”

자신이 모르는 곳을 응시하는 보랏빛 눈동자가 슬프게 흔들렸다. 아이카는 종종 이런 얼굴을 하곤 한다. 자신이 몰랐을 고독의 저편을 견디는 미소. 코타로로서는 감히 가늠할 수도, 완전히 치유해줄 수도 없을 과거의 어떤 편린.

눈살을 찌푸리던 그가 애써 아침에 정리해 뒤로 넘긴 초록빛 머리칼을 거칠게 헤집었다. 툭, 커다란 손바닥이 아이카의 푸르스름한 머리 위에 올려졌다.

“알고 있어.”

잠시 입술을 벌렸다가 꾹 닫아 내는 망설임에도 아이카의 시선은 코타로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나 참… 너는 정말 약았다니까.

“그… 고맙다. 맛있게 먹을게.”

그제야 눈앞의 여자가 씩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가슴 속의 어느 한켠이 밝아지는 기분의 미소. 스즈키 코타로가 가장 좋아하는 여자의 제일 보기 좋은 얼굴. 시간은 이미 지각을 확정 짓고 있었지만 코타로는 서두르지도 않고 털레털레 걸어 집 밖을 나갔다. 한 손에는 정말 자신과 어울리지 않은 핑크색 하트 땡땡이 무늬의 도시락 통을 들고서.

스즈키 코타로 님께

어라, 뭔가 편지 이렇게 시작하는 게 맞았나? 좀 어색해도 이해해줘~ 아무래도 익숙해지지 않아서 그래! 편지도 이 요리라는 것도 말이야.

그렇지만 우리 타로짱은 예쁜 여자친구가 이렇게 정성스레 도시락 이벤트를 준비해준 게 필히 감격스러웠겠지? 음! 분명 그럴 거야. 그렇지 않을 리가 없지! 그야, 내가 늘 네가 만들어준 음식을 먹을 때 그랬으니까.

감격스럽고, 고맙고, 사랑스럽고, 행복했어. 단순히 누군가가 나를 위해서 해준 음식을 먹는 것뿐인데도 말이야. 이상하고 또 신기한 일이었지. 왜냐면 그동안 나에게 있어 밥… 식사라는 건 그냥 허기를 채울 수 있으면 그만인 행위였거든.

그래서 어디 한번, 나도 흉내 내 보고 싶었어. 뭐, 보다시피 결과는 그리 만족스럽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맛있게, 아니 적어도 행복하게 먹어줬으면 좋겠다. 나는 늘 타로짱이 해준 밥을 먹으며 그런 생각을 하니까.

그 정도 욕심은 부려도 되겠지?

오늘 하루도 힘내.

당신의 사랑스러운 아이카 짱이​❤️

햄버거는 짰다. 그걸 덮느라 소스는 너무 달았고.

나중에 제대로 된 걸 먹여주마. 아무튼 넌 당분간 부엌에 들어가는 거 금지야.

그래도 맛은 있었네. 그, 뭐냐. 그거다.

행복한 맛이었다. 고마워.

스즈키 코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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