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帶劍
…내게로 오라
손에 잡힌 것의 한기가 피부를 뚫고 들어와 뼛속까지 파고드는 감각이 선하다. 당장이라도 놓아버리고 싶은 것을 억지로 붙잡은 채로 호흡을 가다듬는다. 장난감이 제 손에서 벗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어린아이 같은 심정을 품었다. 손에 쥔 것을 집착해보려는 마음에 물건을 우그러뜨릴 듯이 쥐었고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쥔 손이 붉어지고 손등 위로 핏줄이 선 모습이 확연해진다. 전완근이 선명하게 갈라지는 팔 근육으로 놓치지 않으려 애쓰나 시간은 속절없이 지나간다.
46 47 48 49…
"젠장,"
손에 쥔 것을 바닥에 내동댕이치려고 했으나 이미 쥔 것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졌었다. 장식도 없는 단순하게 생긴 대검帶劍 하나 불러내는 데 1분을, 아니 50초도 채우지 못 한다는 사실에 열이 뻗친 것이다.
"처음에 비하면 많이 나아졌잖아. 30초에서 10초나 늘었으니까,"
"조용히 해주십시오"
그레이엄 스프링필드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로 날이 선 목소리로 제 앞에 있던 조교에게 얘기했다. 찌를 듯한 두통은 적어도 2분은 갈 것이다. 두통이 끝나면 다시 연달아서 능력을 사용할 수 있지만 그 짧은 시간을 소비해야 한다는 사실조차 아까웠다. 겉으로는 조급함을 최대한 숨기려 했으나 그가 보여주는 모습은 누군가 쫓아와서 빚 갚으라고 멱살이라도 잡는 듯한 초조함이 가득했다. 그 누구도 그에게 재촉하지도 않았고 서둘러 능력을 완성하라고 한 적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서두르고 있었다. 호흡이 겨우 정돈되자 곧장 그는 제 손목을 붙잡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두통이 여전히 남아있으니 제대로 소환될 리가 없었고 손 위에서 붉은 스파크가 작게 일어날 뿐 그 무엇도 나타나지 않았다.
"아직, 부족합니다."
"너 잘하는 거나 해. 학창 시절에 굳이 이런 연습보다 그, 뭐냐 너 좋아하는. 베일리? 걔 소환하고 다루는 거 연습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는 거 아녔어?"
"…베일리는 나오기 싫어진 모양입니다."
조교의 조언에 침묵을 지키다가 겨우 뱉은 말이 저것이다. 그 말에 조교는 더 이상 묻지 않고서 다시 스톱워치를 들었다. 그의 고집을 꺾어보려고 몇 번인가 이런 대화를 나눴으나 그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이런 식의 둘러대기뿐이었다.
“그럼, 잘 좀 해보든가. 이래서 전선에 설 수는 있겠어?”
그레이엄은 대답 없이 제 마음속으로 의식을 가라앉혔다. 손에 처음 쥐었을 때의 서늘한 감각이 뇌리에 박혀있었다. 날붙이 특유의 서늘함에 베인 것도 아닌데 피가 흐르는 듯한 감각을 마음속에서 꺼내어 천천히 그 형상을 그려내기 시작하자 손안에서 한기가 피어오른다. 이번에는 얼마나 지속될지 모르겠으나, 이것이 오늘의 마지막 도전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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