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창 上
야습
그레이엄 스프링필드는 약하다. 앞으로 할 이야기를 이전에 우선적으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다. 그레이엄은 유약했다. 그가 천성이 그러하건 가족 내의 위치 때문에 그랬건 그의 정신이 단단하지 않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유포니엄에서의 3년이 그에게 이전에 없던 자신감과 자존감을 키워주었더라도 그의 영혼이 철과 같이 단단해진 것은 아니었다. 그가 세상이 다 무너진 얼굴로 창을 휘두르는 것은 이 때문이리라.
-
"경상이 6명, 중상은 4명으로... 사실상 이만큼 살아남은 것도 기적입니다."
그레이엄의 부관은 참담한 목소리로 보고를 끝마쳤다. 야밤에 갑작스럽게 시작된 전투. 보급을 위해 잠시 전선을 물리며 후방으로 이동하던 도중 야습을 당했다. 이전까지 연달아 이어지는 전투 속에서 그의 소대원들은 지칠 대로 지쳤었다. 이런 순간이 몇 번이고 있었으나 이제껏 사망자 없이 작전을 수행한 것이 기적이었다. 그리고 그 행운이 결국 끝을 보고 만 것이다.
"이상한 클로버라도 받았어야 했나,"
그레이엄은 보고를 듣고서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여러 잎을 가진 클로버의 확실하지도 않은 그 행운이라도 빌려오고 싶었다. 그레이엄은 한숨을 내뱉으면서 고개를 푹 숙였다. 마수에게 돌진하여 아가리 안에 총알을 박아넣어 주거나 시퍼렇게 뜬 눈에 대검을 쑤셔 박든 옛 장수들처럼 말을 타고 거대한 마수와 일기토를 벌이는 것이라면 자신 있었다. 실제로 방금 전투에서도 가장 커다란 마수 둘을 홀로 상대했으니까. 그 탓에 몸에 성한 곳이 하나 없었다. 날아드는 발톱을 억지로 받아낸 탓인가 어깨는 조금만 움직여도 끔찍하게 고통스러웠고 마수의 이빨이 지나간 옆구리는 계속해서 화끈거렸다. 이외에도 자잘한 부상들이 기절조차 하지 못 하게 온몸을 괴롭히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제때 보급부대의 지원이 도착했고 이 정도 손실로 끝난 것에 그레이엄은 감사했다.
"무슨 일 있습니까?"
보고가 다 끝났을 텐데 아직 제 곁을 지키고 선 부관에게 그레이엄은 나지막하게 물었다. 혹여 전역하겠다는 의사가 있다면 자신이 아니라 다른 쪽에 의사 전달하라고 얘기해줄 생각이다.
"그리고 사망자 ..."
그 뒤에 이어진 말을 그레이엄은 정확히 기억하지 못 했다. 누군가가 머리를 크게 치고 가는 듯한 아찔한 충격에 정신을 차리지 못 하고 멍하니 앉아 이어지는 보고를 듣는 시늉만 하였다. 그레이엄은 나약했다. 누군가의 생을, 다른 이의 가족을 책임지기에는 어렸고 어리숙했다. 성공적으로 임무를 이끌었던 기억들이 모두 휘발되고 그 자리에 부관이 뱉은 말이 쐐기처럼 날아와 꽂혔다. 사망자. 그들의 이름이 쐐기 위로 쌓였다. 그리고 그 위로 그들의 얼굴이 맺혔고 그들과의 기억이 새어 나왔다. 이후의 일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밀려오는 격통에 의식이 끊겼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푹신한 침상 위에서 눈을 떴다.
1395/1035
- 카테고리
-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