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신

[느비프레] 잿불과 데자뷰

시작에 대하여

오늘은 하늘이 맑나 싶더니 비가 내렸다. 프레미네는 폰타인 「바다」의 어느 구획 수면에 둥둥 뜬 채 누워 비를 맞고 있었다. 비가 올 때는 잠수해 있는 게 안전할 때가 더 많지만, 그것은 일종의 버릇이었다. 물의 용이 우는 날이면 그의 눈물을 온몸으로 받는 게 마치 당연한 것처럼 되어버렸다. 제 비탄마저 간신히 등 뒤에 짊어진 프레미네에게 타인의 슬픔은 아직 버겁다. 그렇지만 혼자서 우는 물의 용을 생각하면 어쩐지, 그 비를 맞아야 할 것 같아서. 혼자 우는 건 외롭다. 프레미네는 그걸 잘 알고 있었다. 「바다」의 깊은 곳, 바다 이슬 꽃이 부드럽게 뺨을 쓸어도 그것은 따뜻하지 않았다. 시리도록 부드러울 뿐. 오늘 비는 마치 소나기처럼 내렸다. 물의 용아, 울지 마. 그렇게 말한다 해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그래서 입을 다문 채 먹먹해진 하늘을 보았다. 들어간 빗물이 눈 끝으로 흘러내렸다. 이것은 제 눈물이 아니다. 존재조차 모르는 타자의 눈물은 차가웠다. 마치 다시는 따뜻해지지 않겠다는 양.

온몸에 힘을 뺀 채 비가 오는 「바다」를 표류했다. 어차피 폰타인의 물 아래는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해, 어디로 흘러가더라도 벽난로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물과 비슷해진 체온은 익숙한 쌀쌀함이다. 흔들리는 수면과 귀를 채웠다 빠져나가는 물이 기분 좋다. 이대로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있어도 좋았다. 빗소리, 귀가 먹먹해지는 바닷물, 개일 일이 없어 보이는 하늘. 그것은 일종의 고요였고, 프레미네는 썩 나쁘지 않은 기분이라고 생각했다. 갑자기 저편에서 무언가가 엄청난 기세로 다가오는 걸 눈치채기 전까지는.

시야 끝에 보이는 그것은 희미하게 발광하고 있어, 뭔지 모를 빛이라고 생각했다. 점점 다가오는 그건, 왜인지 사람의 형상과 닮았다. 그러나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접근속도였다. 놀라 수면아래로 잠수해 들어가면, 잠시 눈을 감은 사이에 몸이 무언가에 홱 채였다. 어, 어어. 깜짝 놀라 열린 입에서 뽀그르르 산소가 빠져나갔다. 달빛을 닮은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 빛나고 있었다. 폰타인에서 그 눈이 누구의 것인지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왜? 그렇게, 프레미네는 생각했지만 허리를 잡힌 채로 육지에 올라올 때까지도 머릿속이 혼란스러운 채 정리되지 않았다. 하얀 머리카락이 물에 젖었고, 거동이 불편해 보일 정도로 싸매입은 옷은 말할 것도 없었다. 들어 올린 프레미네를 모래사장에 내려둔 그 발광체는, 폰타인의 최고심판관이었다. 느비예트 님. 프레미네는 어안이 벙벙해 뭘 말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그 빛을 올려다보았다. 이윽고 천천히, 빛이 사라진다.

“이런 날씨에 그런 곳에서 표류하고 있으면 위험합니다. 당신 정도의 실력을 갖춘 잠수부가 그걸 모를 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혹여 좋지 않은 생각을 하던 건 아닙니까?”

“예? 어……, 어어…….”

뭔가 오해하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프레미네는 말주변이 없고, 이야기해 본 적조차 없는 느비예트에게 무얼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머릿속이 빙글빙글 돌았다. 결국 고개를 젓는 걸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알아들은 듯, 하얀 달을 담은 눈이 조금 부드러워졌다.

“나쁜 마음을 먹지 않았다면 다행입니다. 성 주변을 산책하고 있었더니 멀리 떠내려가는 게 보여서, 혹시나 했습니다.”

“미, 미안해요. 저……, 때문에, 다 젖어서.”

“아닙니다. 원래 젖어있었습니다. 우산을 쓰지 않으니까요.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감기, 걸리면 큰일이에요.”

당황스럽지만, 그럼에도 도망가고 싶지는 않을 정도로 뭔가 낯설지 않았다. 느비예트의 존재 자체가 무언가, 묘하게 익숙했다. 심해, 바다 이슬 꽃, 「바다」의 물에 섞여 들었던 눈물. 그날의 기억이 어째서 떠오르는지.

“이 400년간, 그런 인간다운 병에 걸려본 적은 없습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 그러면 다행이지만……. 저, 저기. 신경 쓰이게 해서……, 미안해요.”

“제 지인의 말이 생각나는군요. 미안하다고 하면 미안한 일만 생겨납니다.”

“아, 음……, 그러면, 걱정해 줘서 고마워요……?”

“좋습니다.”

희미하지만 확실하게, 은백의 눈동자가 웃었다. 프레미네는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하듯 그 얼굴을 보며, 웃을 줄 아는구나, 하고 맥 빠진 생각을 했다.

“위험하게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물어봐도 괜찮습니까?”

“아, 비가 와서…….”

“비가 오면 오히려 물속으로 들어가는 게 안전할 텐데요.”

“……그, 저기. 물의 용이……, 우는 거, 혼자 있게 하기 싫었어요.”

그러자 느비예트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었다. 평소와 같은 표정이었지만 사람의 분위기와 얼굴에 민감한 프레미네는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무언가 말을 잘못했나. 잘 생각해 봤지만, 모르겠다.

“그런 이야기를 믿는군요, 프레미네 군도.”

“제 이름……, 어떻게.”

“폰타인에서 가장 유능한 잠수부의 이름을 이 자리에서 모른다는 건 말도 안 되지요.”

“…….”

부끄럽다. 잠수는 언제나 도피와 안녕의 수단이었을 뿐이다. 프레미네는 저도 모르게 제 옷자락을 꼭 쥐었다.

“하나, 정정하자면 물의 용은 울지 않습니다. 보세요.”

경황이 없어서 이제야 눈치챘다. 어느새 비가 그친 하늘에서 구름이 갈라져 빛이 조금씩 새어오고 있었다. 아, 하고 감탄을 저도 모르게 내뱉을 만큼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흔들리는 수면 위로, 빛이 반짝이며 부서졌다. 넋을 놓은 것처럼 그 풍경을 보는 프레미네에게 느비예트의 손이 조심스레 내밀어졌다.

“둘, 프레미네 군의 말씀대로 인간은 금세 감기에 걸리지요. 일어나는 게 좋겠습니다.”

“앗……. 고, 고마워요.”

프레미네의 손보다 훨씬 커다란 손은, 분명 장갑을 끼고 있음에도 어쩐지 따뜻했다. 바다 이슬 꽃의 부드러움과 사람의 체온. 그리고, 물의 고요함. 자리에서 일어나며 프레미네는 깨달았다. 이 사람의 주변은 물속에 있는 것과 비슷한 안정감이 느껴졌다. 그러니까 낯가림도 어느 정도 덜했던 것이다. 익숙했으니까.

“댁까지 혼자 갈 수 있겠습니까?”

“응, 그럼요. 괜찮아요.”

“그래요. 하지만 인간은 약합니다. 젖었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을 겁니다. 걸치고 가세요.”

그러더니 느비예트는 제 겉옷을 벗어 프레미네에게 둘둘 감싸주었다. 비싼 천을 쓴 것이 틀림없는 옷감이 바닥에 끌릴 것 같았다.

“저기, 이건.”

“돌려주지 않아도 됩니다. 굳이 신경이 쓰인다면, 시간이 날 때 멜모니아 궁의 집무실에 가져다주면 됩니다.”

“……고, 고마워요. 꼭, 꼭 세탁해서 돌려줄게요.”

어쩐지 거절할 수 없는 위압감 같은 게 있었다. 프레미네는 느비예트의 옷에 감싸진 채로 폰타인성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옷에서는 신기하게도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굳이 따진다면 젖은 물비린내. 가면서 몇 번 뒤를 돌아보았지만 가벼운 차림이 된 최고심판관은 「바다」를 가만히 바라볼 뿐, 이쪽을 돌아보지 않았다. 저택에 돌아가니 거실에서 차를 마시던 리넷이 눈을 둥글게 뜨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신기한 일이 있었다, 고, 그렇게밖에 프레미네는 말할 수 없었다. 우스운 꼴로 프레미네를 둘둘 감은 옷을 보고 리넷은 더 말하지 않았다. 우선 샤워부터 하는 게 좋겠어, 하고 걱정해 주었을 뿐. 프레미네는 그 말에 따랐다. 그리고 샤워를 끝내고 세탁실에 들어가 손수 느비예트의 외투를 기계에 넣었다. 어느새 하늘이 맑아서, 이렇게 좋은 날이면 금세 세탁물이 마를 것 같았다. 아무 냄새도 나지 않던 옷에서는, 저택에서 쓰는 것과 같은 세제의 냄새가 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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