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네리아
심장이 두근거리는 건, 이 눈이 당신을 인식했을 때. 입가가 풀어지는 건, 이 눈이 당신과 마주쳤을 때. 그런 입에서 들뜬 소리가 나오는 건, 당신에게 처음 오늘의 인사를 할 때. 벌써 며칠이고 느비예트와 만나지 못했다. 멜모니아 궁에 찾아가도 그는 항상 부재중이었고, 앞으로 며칠 더 바쁠 예정이라는 안내를 들었다. 이렇게 연락할 방도도 없이 만남이
카드 마술에서 가장 간단한 건, 카드의 숫자를 세는 것. 어디까지나 도박의 기술로서는 대부분의 업장에서 금지되어 있지만, 마술의 기교라면 금지할 이유가 없다. 남은 카드와 뽑은 카드의 숫자를 머릿속에서 굴리며 프레미네는 표정을 최대한 숨기며 집중했다. 그런 프레미네의 얼굴은 마술사답지 않게 여유가 없다. 이런 면에서는 다른 방향으로 성장하는 게 좋을지도 모
여행 전날, 새벽에 저택 앞으로 마중을 나오겠다는 느비예트의 말에 끄덕이며 이것저것 준비를 위해 프레미네는 평소보다 일찍 귀가했다. 물론 짐 꾸리기 등은 진작에 끝난 상태로, 저택에 보수할 것이 있으면 하고, 청소도 하는 평소와 같은 일이 일어날 뿐이었다. 당연하지만 마음은 콩밭에 간 상태였다. 평소 갈 일이 거의 없는 등방울 항구에 가는 것만 해도 설레는
“여행? 어디로요?” “이번에는 몬드에 가려고 합니다. 여행자께서는 식견이 넓으시니, 추천하시는 장소라도 있습니까?” 멜모니아 궁의 제 집무실에서, 느비예트는 여행자를 맞이했다. 항상 동반하는 작은 요정 같은 동료는 오는 길에 만난 리넷과 함께 카페에 가기로 했단다. 덕분에 여행자는 혼자였고, 느비예트는 조금 편안한 마음으로 그를 대할 수 있었다. 외견상으
수면 아래에서 서로 바라본다. 일반적인 미감을 지녔다면 분명 귀엽다고 평가할 만한 생김새의 그 생물체를 보며, 프레미네는 이질적으로 익숙함을 느꼈다. 뭔가가……, 닮았는데. 눈앞의 사람이 혼란에 빠지건 말건, 조개를 품에 안은 생물체는 물속에서 공중제비를 돌 뿐이었다. * “먼 곳으로 나들이를 가고 싶지는 않습니까?” “먼 곳이요?” “예. 예를 들
최고심판관이 직접 법정에 서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 날에는 에피클레스 오페라 하우스도 만석을 넘어서서 최고심판관의 끄트머리라도 보고 싶어 흘깃흘깃 주변을 서성이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니까. 그런 인파 속, 프레미네는 오페라 하우스의 구석 자리에 앉아 폰타인 최고심판관의 공정한 심판 과정을 빠짐없이 눈에 담았다. 제 일을 제대로 해내는 어른은 멋지다. 그런 어
이상하다. 느비예트는 그렇게 생각했다. 문제가 벌어진 것은 점심시간 산책을 겸해 프레미네와 만나 성 주변을 걷던 중의 일이었다. 갑자기 초원에서 큰 지진이 나더니, 눈앞이 새까맣게 물들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밝아진 시야는, 직전과는 전혀 다른 양식의 실내였다. 오래된 유적처럼 보였다. 느비예트는 이 양식을 사용하는 지역을 알고 있었다. 정확히, 알
입맞춤은 아직도 낯설고, 숨을 잘 쉴 수가 없다. 오늘의 「수분 확인」은 유달리 길었다. 입 안을 마음대로 휘젓는 최고심판관의 혀가 버거웠다. 응, 하고 삼켜내지 못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프레미네는 꼭 감은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눈을 뜨면 이채로운 빛의 눈동자와 마주치고 만다. 어쩐지 부끄러워서. 느비예트의 옷자락을 쥔 작은 손이 점차 갈 곳을 잃고 흔
멜모니아 궁의 불이 꺼지는 날은 없다. 정규 업무시간이 끝났음에도 야근을 자처하는 행정관은 많았다. ‘공정’을 위해 이리저리 일을 돌려야 하는 업무 특성상, 아무리 사람을 충원해도 일감이 줄어들지 않기 때문이었다. 어른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적당한 지옥이었다. 그런 저녁, 프레미네는 느비예트의 집무실 소파에 혼자 앉아있었다. 이 방을 벌써 몇 번 왕래했지
잘 다린 화려한 외투를 곱게 접어서 종이가방에 넣었다. 저택을 나와 멜모니아 궁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갈수록 프레미네는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옷을 무슨 정신으로 받아왔더라. 비가 내리던 날, 느비예트 님과 처음으로 대화한 날, 어쩌면 비를 너무 맞아 자기도 모르게 머리에 열이 났었던 걸지도 모른다고 뒤늦게 생각했다. 어떻게 그렇게 편안하게 이
오늘은 하늘이 맑나 싶더니 비가 내렸다. 프레미네는 폰타인 「바다」의 어느 구획 수면에 둥둥 뜬 채 누워 비를 맞고 있었다. 비가 올 때는 잠수해 있는 게 안전할 때가 더 많지만, 그것은 일종의 버릇이었다. 물의 용이 우는 날이면 그의 눈물을 온몸으로 받는 게 마치 당연한 것처럼 되어버렸다. 제 비탄마저 간신히 등 뒤에 짊어진 프레미네에게 타인의 슬픔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