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비프레] 잿불과 데자뷰 7
생일을 축하하는 법
카드 마술에서 가장 간단한 건, 카드의 숫자를 세는 것. 어디까지나 도박의 기술로서는 대부분의 업장에서 금지되어 있지만, 마술의 기교라면 금지할 이유가 없다. 남은 카드와 뽑은 카드의 숫자를 머릿속에서 굴리며 프레미네는 표정을 최대한 숨기며 집중했다. 그런 프레미네의 얼굴은 마술사답지 않게 여유가 없다. 이런 면에서는 다른 방향으로 성장하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리니는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까, 저번 주 오늘 휴일이었잖아.”
“응.”
남은 카드는 삼분의 일. 생각을 정리하려는 듯 찻잔을 들고 입을 가져다 대는 모습을 보면 역시 아직 미숙하다. 노력하는 모습에는 매너리즘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어서, 아직 푸르구나, 하고 다른 사람 일처럼 생각하게 된다.
“최고심판관의 생일이라. 그날 뭐 했어?”
“푸훕.”
쿨럭, 커헉. 홍차가 뜨거워서 기침하는 건 아닐 터였다. 리니는 입술 끝을 올렸다. 옆에서 리넷이 고개를 저었다.
“오빠, 장난이 너무 심해.”
“아니야. 이런 건 일상을 이야기하면서 해야 효과가 좋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 프레미네. 일단 진정하고.”
기침이 잦아든 프레미네를 리넷이 다정히 등을 두드렸다. 그 사이에도 리니의 손은 무자비하게 카드의 숫자 면을 뒤집었다가, 커버로 돌아간다. 프레미네의 눈이 카드에 그대로 꽂혀있는 걸 기특하다고 해야 할지. 자, 이제 한 장.
“이게 마지막이야. 그래서, 이건 뭘까?”
“……쿨럭, ……후……. 하트, 3.”
“자신 있어?”
“있어.”
“흐음.”
재미없다는 표정을 숨길 생각도 없이 리니는 카드의 숫자 면을 보여주었다. 하트 3. 완벽한 정답이었다.
“역시 가족을 대상으로 이건 너무 쉬워.”
“프레미네는 주의력이 좋으니까, 그런 건 훈련 축에도 안 들 거라고 예상은 했어.”
“그렇지. 그런데 진짜 공휴일에 뭐 했어? 너 그날 엄청 늦게 들어왔잖아.”
잊은 줄 알았던 화제가 다시 화살촉을 돌려, 프레미네는 움찔 놀랐다. 그러더니 얼굴이 천천히 아래서부터 위로 익어 오른다.
“나, 나 아까부터 속이 안 좋아서……. 시, 실례할게!”
빠르게 방을 나가 계단을 뛰어내리듯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둘만 남은 방에서, 리넷은 리니를 빤히 바라보았다.
“오빠, 재밌어하지 말고.”
“리넷 너도.”
“……앗. 들켰어.”
“내가 속을 거라고 생각한 그 생각에 경의를 표하지.”
리니는 카드를 마치 제 손인 양 자유자재로 파라락 소리를 내며 이리저리 굴렸다. 손재주, 말재주, 그 모든 것이 무대를 구성하는 초석이 된다. 말재간으로 지지 않는 건 아주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프레미네는 아직 한참 멀었다고 할 수 있었다.
“프레미네, 괜찮을까?”
“다시 돌아오면 모르는 척해주지 뭐.”
“나도 그 의견에 찬성. 차 마실래? 최고심판관이 준 과자 아직도 남아있어…….”
“리넷이 타 준다면 좋아. 나는 그 과자 좋아하는데. 살이 잘 안 찌는 맛이야.”
*
체력이 한계를 맞이할 때까지 뛰었더니 성의 바깥까지 나와버렸다. 새파란 바다, 그리 맑지 않은 하늘을 보며 프레미네는 자리에 주저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둘 다 짓궂을 때가 있다니까…….”
잠수모라도 쓰고 싶다. 그렇지만 들고나오지 않았다. 「바다」는 코앞이고, 이대로 한 번 입수해서 머리를 식힌 다음에 들어갈까. 좋은 생각이다. 첨벙첨벙, 걸음마다 물이 튕기는 소리가 났다. 물이 깊은 곳으로 걷다 보면 어느새 허리까지 차올랐다. 그대로, 머리를 수면 아래로 넣어 미끄러지듯 「바다」로 떨어진다. 반대편으로 돌아서 본 수면 저편의 하늘은 형태가 일렁이고, 마치 모든 걱정이 현실이 아니라는 듯 따뜻한 빛만을 물 아래로 보내고 있었다.
그리하여 결국 최고심판관의 생일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폰타인의 공휴일제도는 엄격하다. 그건 공공기관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기 때문에, 공휴일이란 멜모니아 성 전체가 법을 어기는 날이었다.
점심 무렵이 지나 자그마한 꾸러미를 들고 느비예트의 집무실에 방문하면, 창밖을 보고 있는 뒷모습이 있었다. 일하는 도중이 아니라 다행이다. 느비예트는 프레미네를 친절히 맞이해 주었다.
“어서 오십시오, 프레미네 군.”
“오, 오랜만이에요. ……일, 방해한 건 아닌가요?”
“신경 쓸 것 없습니다. 집무실에 있을 때는 일하는 도중이 아니라고 봐도 좋습니다.”
그런 것치고는 책상 위의 서류 양이 어마어마했다. 자꾸 그쪽으로 시선이 가는 걸 어떻게든 막으면서, 근처에 다가온 느비예트에게 꾸러미를 건넸다. 건네기 전에 프레미네가 심호흡을 세 번 정도 했던 것은 그 자리의 누구도 언급하지 않았다.
“저, 생일 축하해요. 선물……, 필요 없을지도 모르지만.”
“프레미네 군의 성의라면 무엇이든 기쁩니다. 혹시 포장을 풀어보아도 괜찮습니까?”
“그럼요, 느비예트 님 건데요. 정말, 정말 별것 아니지만…….”
포장지를 푸는 손길은 섬세하다. 아주 깔끔하게 포장이 벗겨진 상자를 열면, 작은 태엽 장치가 들어있었다. 겉모습은 투명하고, 섬세한 조각이 되어있는 케이스 안에 물이 차 있는 것처럼 보였다. 느비예트가 태엽을 돌리면 무슨 원리인지 신기하게도 내부 장치가 돌면서 물방울이 아래에서부터 위로 계속해서 올라왔다.
“잠수하다 예쁜 유리를 얻어서……. 그걸 사용해서 만든 거예요. 하나만 만들 수 있었으니까, 하나밖에 없다면 선물로 주고 싶어서…….”
횡설수설하는 제가 부끄럽다. 프레미네는 저도 모르게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받은 선물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느비예트는 프레미네의 손을 조심스레 잡아 얼굴을 보았다. 파란 눈은 떨리고 있었다. 느비예트는 저도 모르게 작게 웃었다.
“……아……, 저기.”
“실례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느비예트는 프레미네를 안아다가 소파에 앉으며 제 무릎 위에 올렸다. 프레미네가 갸우뚱하면서 위를 올려다보아도 천장이 보이지, 느비예트의 얼굴이 보이지는 않았다. 뒤를 돌아보는 편이 나았겠지. 어쨌든 예전의 프레미네라면 새빨개져서 도망 나오려고 버둥거렸겠지만 그의 품은 이제는 익숙했다. 이제는 숨쉬기가 조금 간지러울 뿐이다. 익숙해진다는 건 신기했다.
“후우……. 계속 이렇게 있고 싶군요.”
“많이 피곤하신가요? 저, 그만 가봐도 괜찮아요.”
“지금 가면 곤란합니다. 이제 좀 쉬는 느낌이 나는 도중이지 않습니까.”
허리를 꼭 끌어안으며 하는 말이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기에 프레미네는 그냥 가만히 느비예트의 품에 몸을 기댔다. 등 뒤의 사람이 오늘따라 작게 느껴진다. 키가 크지는 않았으니, 그만큼 그가 지쳐있다는 뜻이리라.
“……실은 오늘이 생일은 아닙니다.”
“……엣. 저, 착각을.”
“아니, 프레미네 군의 성의가 잘못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주 기쁩니다. 그냥, 정말로 생일이 아닌 것뿐입니다. 저는 제 생일이 정확히 언제인지 모릅니다.”
“…….”
목덜미에 느껴지는 숨결이, 귀에 가까이 들리는 듣기 좋은 소리가, 편안하다. 프레미네는 어렵지 않게 깨달았다. 저택에도 제 생일이 언제인지 몰라 임의로 생일을 받는 아이들은 많다. 느비예트는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생일, 누가 지어줬어요?”
“필요하다고 해서 적당한 날짜로 제가 붙였습니다.”
“……그렇구나.”
정말 외로운 사람이다. 이름조차도 아는 이가 드물고, 사람과 필요 이상의 관계는 맺지 않고. 물론, 그것은 상처받지 않는다는 뜻도 되겠지만. 프레미네는 제 허리를 감싼 느비예트의 왼손을 만지작거렸다. 장갑을 끼고 있으므로 체온은 느껴지지 않았다. 약간 용기를 내서 장갑을 벗기면, 예쁜 형태의 손이 드러났다. 그것을 두 손으로 꼭 잡는다. 느비예트의 손은 조금 차갑고, 프레미네의 손은 남들보다 조금 따뜻했다. 섞이면 적당한 체온이 되었다.
“계속 신기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알겠어요.”
“무엇이 말입니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매일매일, 느비예트 님을 만날 때마다, 생일파티처럼 설레서.”
“그렇습니까.”
“생각해 보면 그 하루하루가, 느비예트 님의 생일이었던 거예요.”
“…….”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다는 자각은 있었다. 그렇지만 프레미네는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당신을 만날 수 있는 나날을, 축하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서.
“……오늘을 축하할 수 있어서 기뻐요. 내일도, 생일을 맞이해 주세요.”
“내일도 말입니까.”
“내일도,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저와, 만나주세요.”
욕심을 부린다면, 앞으로 계속. 그렇지만 그 말만은 입 밖으로 낼 수가 없었다. 왜인지 더 말했다간 울어버릴 것 같아서, 그렇게 된다면 느비예트는 곤란해할 테니까. 사람을 앞에 두고 눈물 흘리는 게 허락되는 건 어린아이뿐이니까.
“생일이 다른 사람이나 프레미네 군의 말대로 기쁜 날이라면, 그 3일로는 모자라겠지요.”
일방적으로 잡혀 있던 손을 마주 잡으면서, 느비예트가 말했다.
“프레미네 군의 말대로 정말 매일이 제 생일이라면, 매일 곁에 있어 주십시오. 당신의 생일 또한, 제 생일의 일부가 될 테니.”
그러면서 프레미네의 뺨에 제 뺨을 비볐다. 마치 순진한 짐승이 위로하는 듯한 행동에, 결국 이유도 없이 눈물이 터져버렸다. 닦아내고 싶어도 양손이 느비예트에게 잡혀 있었다. 이래서는 안 되는데. 즐거운 날에, 축하해야 할 날에. 느비예트의 입술이 뺨에 닿았다. 눈물을 핥는 혀는 생각 이상으로 따뜻하고 다정하다.
“다행입니다. 슬퍼서, 싫어서, 그런 의미로 흘리는 눈물이 아닌 듯하니.”
“……응, 기뻐요. 느비예트 님이랑 있으면, 계속 기뻐요.”
마치 기쁜 것을 더는 느끼게 될 수 없을까 두려워질 만큼 당연하게도 기뻤다. 그런 프레미네에게 느비예트는 입 맞췄다. 입안을 파고들어 오는 혀는 조금 소금기가 남아있어서, 부끄러워졌다. 그러나 그 맛은 금세 지워지고 만다. 남는 건 순수한 타액의 미끌미끌 거리는 느낌뿐이었다.
“……느비예트 님이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 말에 느비예트는 뭐라고 대답했던가. 어느새 도착한 바다 이슬 꽃이 많이 피어있는 곳에서, 프레미네는 그 곁에 가만히 앉아 위를 올려다보았다. 구름이 어느새 개었는지 수면에서 들어오는 빛이 맑았다. 바다 이슬 꽃은 그 자리에 있었고, 다정했다. 마치 프레미네가 마음에 품은 「외로운 사람」같다. 분명 느비예트는 「저는 외롭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말 자체의 뜻보다, 무언가 깊이 숨은 의미가 있는 말이었다. 프레미네는 알고 있었다. 멜뤼진, 푸리나, 성에서 일하는 사람들, 그 모두가 그의 곁에 있다. 그런데도 왜인지 여전히 그는 외로워 보였다. 한낱 어린애의 시야에서는, 그랬다. 그를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올까. 그가 속내를 이야기하는 날이 올까. 그를 볼 때마다 느껴지는, 기쁨과 함께 찾아오는 초조함이 잦아들 날이 올까. 어느새 눈가가 미적지근해져서, 눈에서 흘러나온 물방울이 수면 위를 향해 부유했다. 물 아래는 좋았다. 무엇하나 티가 나지 않았다. 여전히 바다 이슬 꽃의 곁은 프레미네의 피난처였고, 꽃은 말 한마디 없이 프레미네를 지지했다.
바다 이슬 꽃의 곁에 있으면 느비예트가 보고 싶다. 눈이 제 온도를 찾으면, 저택에 돌아가 씻은 뒤 그를 찾아가기로 했다. 물론 없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프레미네가 가만히 그 자리에 앉아서 생각만 하지는 않는 결과가 될 것이다. 느비예트는 어느새 프레미네의 일상이자 태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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