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신

[느비프레] I promise you, honey. 2

“여행? 어디로요?”

“이번에는 몬드에 가려고 합니다. 여행자께서는 식견이 넓으시니, 추천하시는 장소라도 있습니까?”

멜모니아 궁의 제 집무실에서, 느비예트는 여행자를 맞이했다. 항상 동반하는 작은 요정 같은 동료는 오는 길에 만난 리넷과 함께 카페에 가기로 했단다. 덕분에 여행자는 혼자였고, 느비예트는 조금 편안한 마음으로 그를 대할 수 있었다. 외견상으로도, 행동과 말투로도 어린 그의 동반자를 두고 이야기하기에는 예민한 문제가 나올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몬드 말이죠……. 음, 좋은 곳이에요. 목가적이고. 근데 가서 머물 곳은 있어요?”

“현지의 숙박시설을 이용하려고 했습니다만……, 문제가 있습니까?”

“문제라기보다는. 아니, 문제인가.”

여행자는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몬드에 있는 숙박시설, 지금 우인단이 전세를 냈거든요. 나랑 페이몬은 야영 위주로 다니니까 상관없지만, 여행은 얘기가 다르지 않나요.”

“그렇습니까. 곤란하게 되었군요.”

느비예트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몬드로 여행이 어렵다면, 차라리 리월로 목적지를 바꾸어도 좋을지도 모르겠다. 리월항이나, 경책 산장. 한쪽은 화려하고, 한쪽은 듣기로는 고요하다고 했다. 어디로 가건 느비예트에게 목적지 자체는 문제가 아니었다.

“호텔 지배인을 개인적으로 아는데, 임대업도 같이 하고 있나 봐요. 단기라도 몬드의 빈방을 내어줄 수 있을 텐데. 전문 숙소가 아니라 민박 형태여도 괜찮다면 연락해 볼까요?”

아침에 사람을 수배해 사 온 8조각 한정 케이크를 무참하게 잘라 입에 넣으며 여행자가 말했다. 이런 케이크가 있었다고 그 하얀 요정이 안다면 뒷일이 귀찮아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물론,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사실을 발설할 일은 없겠지만.

“마음 씀씀이에 감사합니다. 그렇군요. 개인적으로는 그러한 형태의 주거 형태가 조금 더 마음에 듭니다.”

“그래요? 이번엔 혼자 가는 게 아니라고 했지요, 분명. 느비예트 씨 성격 생각하면, 집에만 있어도 재미있는 쪽이 마음이 편할지도 모르겠네요.”

“오해를 산 모양이군요. 딱히 틀어박혀 있는 걸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

“그런 의미는 아닌데…….”

여행자는 곤란한 표정이었다. 느비예트는 그래 봬도 제가 주변에 ‘둥지에 틀어박혀 있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준다는 사실을 잘 자각하고 있었다. 자각한들 루틴이 바뀔 일이 없으니 신경 쓰지 않는 것뿐이었다.

“그래도 일행이 있다니 다행이에요. 몬드까지 간다고 해서 처음엔 놀랐거든요. 길 찾는 거 괜찮나 싶어서.”

느비예트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이놈의 소문은 누가 퍼뜨린 건지. 결단코. 그래, 결단코. 느비예트는 자신이 길치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단지 육지는 어딜 봐도 비슷해 보였을 뿐이다. 특히 그게 숲이나 산처럼 반복되는 풍경이라면 더더욱. 그 어떤 수룡에게 물어봐도 같은 대답이 나올 것이다. 물론, 현재 생존해 있는 수룡이라고는 느비예트 혼자뿐인지라 물어볼 방도 같은 건 없었다.

“여행은 일행이 있으면 더 재미있으니까. 이번에는 좀 느긋하게 즐기고 오길 바라요. 아무리 그래도 저번처럼 반나절은 여행가는 기분은 안 들잖아요.”

“예, 그때 말씀해 주신 덕분에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를 표합니다.”

“개인적으론 느비예트 씨가 같이 여행 갈 만한 사람이 누군지 궁금하지만, 이건 호기심이 도를 지나친 얘기겠죠. 하지만 누구라도 궁금해할걸요. 아, 말해달라는 건 아니에요.”

“음? 당신도 아는 사람입니다. 아까 오는 길에 만났다고 하더니, 그가 이야기하지 않았나 보군요.”

“예?”

어쩐지 등 뒤가 서늘한 느낌이 든다. 여행자는 곰곰이 생각했다. 멜모니아 궁에 올 때 만난 사람이라고는 리넷과 프레미네 뿐인데. 그러니까, 그 말인즉.

“……우와……. 엄청 의외네. 친해요?”

“자신은 있습니다.”

보기 드물게 의기양양한, 그러나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아채지 못할 표정 변화. 눈치가 빠른 여행자는 이것저것 쓸모없는 정보를 순식간에 알아채고 말았지만 그것도 익숙한 일이다. 그래서 그냥 웃어버렸다.

“그렇군요. 저도 프레미네와 친하다고 생각하지만, 여행이라……. 아무래도 느비예트 씨가 앞서가는 모양이에요.”

“이건 양보할 수 없습니다.”

“그래요, 근데 뭐라고 해야 하나. 생각보다 적극적이네요. 프레미네가 그 성격에 먼저 여행 가자고 하진 않았을 거 아니에요.”

여행자는 이제는 아무 맛도 나지 않는 한정판 케이크의 남은 부스러기를 입에 밀어 넣었다. 프레미네가 몬드까지 가자고, 다른 누구도 아니고 바빠 죽겠는 최고심판관에게 먼저 이야기한다니, 말이 안 된다. 확신할 수 있었고, 모라 전부를 걸어도 좋았다. 그런 내기, 너무나도 판세가 기울어져 있어 눈감고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여전히 표정을 잘 읽을 수 없는 눈앞의 수룡은 기다랗고 끄트머리만이 조금 파란, 신비한 색의 속눈썹을 내리깔았다. 고민할 때의 얼굴이다.

“물론 제가 제안했습니다. 말씀대로, 그러한 성격을 가진 사람인지라 걱정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만. 다행히 기뻐하더군요.”

“뭐, 좋건 나쁘건 호의를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이니까요. 근데, 그렇구나. 어쩐지 느비예트 씨 만난다고 하니까 좀 안절부절못하더라니.”

“아마 저를 신경 쓴 거겠지요. 그는 약간 오해하고 있어요. 딱히 숨기는 일도 아닙니다만, 주변에 이야기할 일도 없어서 말입니다. 지금 아는 건 메로피드 요새의 관리자나, 음, 아마 그녀라면 어느 정도 알고 있겠군요. 안내처의 세드나 말입니다.”

“확실히 느비예트 씨랑 사적인 얘기할 만한 사람이 얼마 없는 것 같긴 해요. 프레미네도 개인적인 얘기, 잘 안 하고. 그런데 그거, 푸리나도 모르는 일이에요?”

“그녀와 그런 이야기를 한 기억은 없군요. 알려야 하는 일입니까?”

“아니, 그거야 느비예트 씨 자유지만. 오래 지냈잖아요. 나중에 알게 되면 섭섭하지 않을까. 아, 이건 좀 참견이 지나친 이야기네요. 그냥, 제 가족이 생각나서요.”

“가족이라…….”

그런 게 아닙니다만. 분명 느비예트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말을 꺼내지 않은 이유는 나름대로 여행자를 배려한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몇백 년을 매일 같이 얼굴을 보고 지냈다면, 그건 가족과 가까운 형태가 아닌가. 물론 인간이 아닌 그의 관점에서는 다를 수도 있겠다. 용의 패권을 둘러싼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도 섞여 있을 테고. 여행자는 말을 꺼낸 걸 반성했다.

“그러면, 제 쪽에서 소중한 친구 두 사람에게 몬드에서 지낼 곳을 선물하도록 할게요. 얼마 전에도 호텔 주인인 할아버지께서 방이 남는다고 혀를 찼었으니 충분할 거예요. 디어 헌터라고 요리가 괜찮은 곳이 있는데, 거기 근처 방을 부탁해 볼게요.”

느비예트는 잠시 눈을 깜빡이더니 작게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신세 지겠습니다. 인간 아이에게 식사는 중요하지요.”

“프레미네가 좋아할 거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인 추천은 역시 높이 쌓기려나.”

“높이 쌓기? 음식 이름입니까?”

“맞아요. 생긴 거 보면 왜 그런 이름인지 알 수 있을걸요. 몬드에는 해산물 요리가 그렇게 많지 않으니까, 차라리 고기 요리를 즐기는 게 낫지 않나 싶어서요.”

“과연.”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보다 가서 직접 보고 느끼는 게 더욱 기억에 남겠지. 여행자는 티바트 대륙에 처음 표류했을 때를 떠올렸다. 약간의 불안감. 그것을 뛰어넘는 미지를 향한 두근거림. 먼 곳으로 떠나는 첫 여행이라면, 더더욱.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될 것이다. 소중한 두 친구에게 좋은 추억이 생겼으면 좋겠다. 안전 면에서야 걱정할 바가 없지 않은가. 걱정이었던 길 찾기도, 프레미네가 같이 있다면 걱정할 바가 아닐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기는 벌써 잔뜩 먹고 리넷과 헤어졌는데 너는 아직도 무얼 하느냐며, 페이몬이 집무실 안으로 찾아왔다. 그리고 남은 접시의 흔적으로 뭘 먹었는지 들키고 말아, 잔뜩 삐친 페이몬에게 맛있는 걸 더 사주기로 하며 여행자는 느비예트와 헤어졌다.

 

*

 

“다녀왔어. 페이몬은 변함이 없네.”

“그래? 나도 같이 얘기하고 싶었는데, 아쉽다.”

리넷이 저택에 돌아오면, 빨래를 걷는 프레미네의 모습이 보였다. 역시 오늘도. 그런 생각을 하며 리넷은 프레미네를 흘깃 보았다. 요즘 그는 이상하게 분주하다. 슬슬 말해줄 타이밍이 된 것 같은데, 내가 얘를 잘못 알고 있는 걸까. 리니는 때 되면 말해주겠지, 라고 하지만 신경을 쓰지 않는 모양새는 아니었다. 얘기하지 않는다면 이제 찔러볼 수밖에.

“프레미네.”

“응?”

“요즘 무슨 일 있어?”

“어, 어……. 으아.”

낑낑대며 물에 젖은 이불을 빨랫줄에 올리던 프레미네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리고 중심이 쏠려 이불이 프레미네를 덮쳤고, 그는 더욱 당황해 온몸으로 바둥거렸다. 보다 못한 리넷이 프레미네의 몸에서 이불을 걷어 빨랫줄에 대신 널었다.

“아, 고마워.”

“그래서. 무슨 일인데?”

“그, 저기. 말하려고는 했는데…….”

우물쭈물하는 프레미네를 데리고 리넷은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테이블 앞에 앉히고, 마법 같은 마술로 티 세트를 꺼내 차를 준비하며 그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었다. 따뜻한 차와 최고심판관이 선물로 보낸 과자 조금이 테이블 위를 장식할 때쯤이 되어서야, 프레미네는 결심한 듯 제 양손을 꼬옥 쥐었다.

“나, 얼마 뒤에 일주일 정도……, 멀리 나가.”

“일주일이나? 별일이네. 「아버지」께서 내린 명령은 아닌 것 같은데……. 정말 무슨 일 있는 거야?”

프레미네는 고개를 저었다.

“명령, 은 아니고……. 내가, 가고 싶어서.”

“어디로?”

“몬드…….”

“몬드?”

리넷은 답지 않게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 멀리 나간다고는 했지만 그 정도로 먼 곳에 갈 줄은 생각도 못 했다. 그런 리넷의 반응에 움찔 놀랐지만, 프레미네는 착실히 설명을 계속했다.

“저기, 그게. 느비예트 님이 같이 가지 않겠냐고 하셔서. 「아버지」도, 괜찮으면 다녀오라셔. ……미안해, 조금 더 일찍 말하고 싶었는데.”

“……하아.”

한숨 같은, 당황스러운 소리가 입에서 빠져나왔다. 또 그 최고심판관이다. 어쩐지 어느 순간부터 그가 우리 인생에 적극적으로 함께 하게 된 기분이 든다. 물론 프레미네의 인생이고, 프레미네의 결정이다. 프레미네가 무언가를 제 의지로 결정한 것은 축하할 만한 일이다. 그렇지만.

“오늘 기력을 벌써 다 쓴 것 같아.”

“미, 미안.”

“네가 사과할 일이 아니야. 그래, 정확히 언제 가는데?”

“아마 2주쯤 뒤야. 그러니까, 자리 비운 동안 지장이 없게 저택을 많이 보수하고 싶었어.”

요즘 바쁘게 돌아다녔던 건 다 그 일주일을 위해서라고. 과연, 이해하지 못할 행동이 이해가 가는 행동으로 바뀐 순간이었다. 리넷은 저도 모르게 눈이 가늘어지고 귀가 뒤로 눕고 말았지만. 그 분위기에 프레미네가 쭈뼛거리며 차를 마셨다. 그 모습을 보고 정신이 든 리넷은 스스로를 점검해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프레미네가 그렇게 하고 싶은 거라면 됐어. 오빠한테는 내가 말해둘까?”

“……으응, 아니야. 내가 이야기해야지. 이야기하지 못할 말도 아니잖아.”

그렇게 말하면서도, 프레미네의 목소리는 묘하게 떨리고 있었다. 섬세한 아이다. 뭘 생각하는지 리넷에게는 빤히 보였다. 저택의 가족들을 신경 쓰는 거겠지. 그들을 내버려 두고, 잠시라고는 하지만 언제 내려올지 모르는 임무도 내팽개치고, 혼자 휴가를 가는 셈이다. 솔직한 심정으로, 기왕 욕심을 부릴 거라면 그런 건 신경 쓰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곳은 프레미네의 집이다. 모두가 프레미네의 가족이다. 누구도 프레미네가 행복을 찾는 일을 매도하지 않는다. 리넷은,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프레미네.”

“응.”

“우리는 프레미네의 편이야.”

“…….”

“오빠도, 나도, 다른 사람들도, 「아버지」도. 프레미네의 편이야.”

“……응.”

조심스레, 옅은 금발이 끄덕인다.

“그러니까 다른 생각하지 마. 프레미네는 잘하고 있어.”

물론 개인적으로 최고심판관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건 별수 없지만.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게 세상에는 있는 법이고, 말한다 한들 어찌할 수 없는 건 말하지 않는 게 좋았다.

“리넷.”

“응?”

“……나도, 리넷의 편이니까. 리넷의, 가족이니까.”

“응.”

저런 말을 조금 더 당당하게 할 수 있게 된 건, 분명 그 최고심판관의 역할이 어느 정도 기여하고 있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는 게 싫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결국 다른 개체이고, 설령 피로 이어졌다 해도 그 사실은 변함이 없다. 다른 길을 걷게 될 것이다. 모든 것은 변한다. 멈춰있을 수는 없다. 지금 또한 변하고 있다. 단지 우리가 가족이라는 사실만이, 영원히 바뀌지 않을 뿐이다. 리넷은 스스로를 달래듯 생각했다. 현실은, 그러하니까. 변하지 않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얼마나 위안이 되는가.

“선물 사와.”

“응, 가족 몫은 챙겨와야지.”

“그럼. 얘기 들었을 때 오빠 반응이 기대되네.”

“……으음.”

사람을 놀리면서 입에 댄 홍차는 적당하게 식어, 딱 마시기 좋았다. 복잡한 표정의 프레미네를 보는 건 나쁘지 않다. 그는 언제나 무언가를 양보하듯 한 걸음 절제한 얼굴만을 하고 있었으니까. 인정할 수밖에 없다. 리넷은, 결국 그가 최고심판관과 지금 같은 관계가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카테고리
#기타
작품
#원신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