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신

[느비프레] 잿불과 데자뷰 14

푸른 문 저편의 마법

“당신도 굉장하네……. 고양이가 됐으면 비경을 빠져나오기도 쉽지는 않았을 텐데.”

“예, 위험한 경험이었습니다. 출입 제한 조치를 취해두었으니, 피해자가 더 늘지는 않겠지요.”

며칠 전부터 폰타인 성에는 들어가면 고양이가 되는 비경에 대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헛소문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실제로 실종된 피해자까지 나타났기에, 느비예트 본인이 직접 조사에 나섰다. 결과적으로 소문은 사실이었고 비경에서 실종된 사람들-고양이 모습이었다-까지 구조해 냈지만, 비경의 위험도가 너무 높아 출입을 봉쇄해야 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탈수로 축 늘어진 성묘 셋을 같은 체급의 성묘가 된 느비예트가 앞니로 옮기는 건 정말 큰 일이었고,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츄츄족의 처리까지 해야 했다. 신의 눈을 갖고 있다 해도 평범한 인간은 대처조차 어려운 비경임이 틀림없었다.

“무사히 돌아온 건 그렇다 치고, 부작용은 없어?”

때마침 일이 있어 지상에 올라온 라이오슬리가 이야기를 들었고, 그리 거창하지 않은 모험담을 궁금히 여겼다. 눈앞의 이 무뚝뚝한 남자가 고양이라니. 평소 캐묻는 성격이 아닌 라이오슬리에게도 호기심이란 있었고, 솔직히 말해서 누구라도 흥미를 느낄 이야기였다.

“현재로서는 별다른 이상은 없습니다. 비경 내의 원소력이 일그러져 있었으니, 영향이 미치지 않는 지금은 문제가 되는 부분은 없겠지요.”

그렇게 단순한 문제일까, 하고 라이오슬리가 의문을 표하려는 순간. 똑똑, 하고 노크 소리가 들렸다. 문과 책상의 거리가 멀기도 한 탓에 잘못하면 흘려들을 정도로 작은 소리. 그때 라이오슬리는 보았다. 느비예트의 귀가 쫑긋하더니 눈썹의 각도가 미세하게 완만해지는 것을. 어럽쇼.

“들어오십시오.”

커다란 문 사이로 빼꼼 고개를 내민 것은 밀밭 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소년. 라이오슬리에게도 낯익은 얼굴이었다. 방 안을 확인하듯 좌우를 살피더니, 라이오슬리를 발견 하고 깜짝 놀라서 도로 문을 닫고 도망가려는 듯한 모양새를 보였다. 그보다 먼저 빠른 걸음으로 입구까지 느비예트가 마중을 나가자 소년은 사자 앞의 토끼처럼 바들바들 떨면서 문 안으로 들어왔다.

소년의 손을 잡은 느비예트가 가까이 다가올수록 라이오슬리에게는 뭔가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뭔가, 태엽 장치의 동력원이 진동하는 듯한. 골골골골……. 환청이 아닌지 소년도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느비예트를 빤히 보고 있었다.

“잠시 앉아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저, 저어……. 제가 있어도 괜찮아요?”

“중요한 이야기를 하던 건 아닙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막상 당사자는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허, 이것 참. 라이오슬리는 웃음이 터지려는 걸 애써 참아야 했다. 부작용이 아주 노골적이다. 소년을 소파에 앉혀놓고 손을 놓은 이후에도 특유의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더는 웃음을 참기가 힘들어진 라이오슬리는 시그윈의 안부 인사를 전하는 걸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안절부절못하는 소년의 앞에 서면, 새파란 눈동자가 잠시 라이오슬리를 담았다가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 라이오슬리는 무심코 소년의 앞에 무릎을 굽혀 시선을 맞췄다. 느비예트의 시선도 따라왔다. 손을 뻗어 옅은 금발을 쓱쓱 쓰다듬자, 소년은 화들짝 놀라 등받이로 최대한 도망을 갔다. 펭귄을 닮은 모자가 소파 구석으로 떨어졌다.

“잘 지내는 것 같아서 다행이네. 또 보자고.”

“……네, 네에…….”

소년의 머리에 손이 닿은 순간 의문의 모터 소리가 뚝 끊겨버린 건 듣지 않은 걸로 치기로 했다. 또 보자고는 해도 언제 또 지상에 올라올지. 어디, 새 찻잎이 나왔나 구경이나 하고 돌아갈까. 라이오슬리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느비예트의 집무실을 뒤로했다.

둘만이 남은 넓은 집무실. 프레미네는 이제야 마음이 놓인 듯 후아, 하고 크게 숨을 내쉬었다. 아까까지 들리던 이상한 소리도 더는 들리지 않고, 너무 긴장한 나머지 뭔가 잘못 들은 게 틀림없었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합니다.”

“아, 아니에요. 공작님이 계셔서 조금……, 놀라긴 했지만…….”

손가락을 가만히 둘 수 없는 건 왜일까. 그런 프레미네를 보고 느비예트는 잠시 말이 없더니 쿠키와 물을 가져와 곁에 앉았다. 프레미네를 살피는가 싶더니, 작은 몸을 꼭 끌어안고 머리카락에 얼굴을 파묻었다. 갑작스러운 포옹에 프레미네는 놀라 몸을 굳혔다가, 금세 느비예트에게 몸을 맡겼다. 따뜻하고 넓은 품이 기분 좋아서 후후 웃음이 났다.

“왜 그러세요? 무슨 일 있으셨어요?”

“……아무 일도 없습니다.”

아닌 것 같은데. 말을 삼키면서 느비예트의 등에 팔을 둘러서 마주 끌어안으면 머리카락에 뺨을 비벼오는 게 느껴졌다. 간지럽다. 그리고 희미하게 들리는 소리가 점점 커진다. 골골골골골…….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소린데. 뭐더라.

“느비예트 님……? 어디 아파요?”

“지극히 정상입니다.”

“이, 이상한 소리 나는데요…….”

“음?”

그 말을 듣고 깨달았는지 느비예트는 프레미네에게서 떨어졌다. 갸우뚱. 프레미네는 확신했다. 소리의 발신지는 느비예트의 목이었다. 무례가 되지 않기를 기도하며 조심스레 셔츠가 가린 목울대 바로 위에 손을 가져다 대면, 확실히 진동하고 있었다. 어디서 많이 들어봤다 했더니, 리넷의 고양이들이 프레미네의 주변에서 몸을 비비며 자주 내는 소리였다.

“……느, 느비예트 님, 고양이였어요?”

말해놓고 이상한 질문이라는 걸 깨달아서 얼굴에 열이 올랐다. 프레미네는 고개를 푹 숙였다.

“미, 미안해요. 이상한 소리 해서…….”

“흠. 부작용이 있었나 보군요.”

“예?”

“요즘 고양이 비경에 대한 소문이 있지 않았습니까. 어제 일을 마치고 조사를 나갔습니다. 바깥은 비경의 영향이 미치지 않으니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영향이 남아있는 모양입니다.”

고양이 비경. 프레미네도 들은 적이 있었다. 사람이 들어가면 고양이가 되어서 실종된다는 소문이 요즘 돌고 있었으니까. 그런 곳에 갔다 왔다는 말인가. 프레미네는 사색이 되었다.

“호, 혼자서요?”

설마, 하는 마음에 물었다. 그러자 느비예트는 태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이 따라오는 편이 위험합니다. 기본적으로 현지 조사는 혼자서 하는 편입니다.”

“…….”

프레미네는 말문이 막혔다. 속에서 무언가가 치밀어 오르는데, 그게 뭔지 알 수가 없었다. 무서운 듯한, 슬픈 듯한, 그리고, 화가 나는 듯한. 결국 또 바보같이 눈에 눈물만 그렁그렁 고여서. 그런 자신이 답답해서 거칠게 눈물을 닦았다. 느비예트는 놀란 듯한 눈으로 보다가, 무언가를 깨달은 듯 다시 프레미네를 꼭 끌어안았다.

“걱정을 끼쳤군요. 미안합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어른이 될 수 있도록 지켜드리겠다고.”

방울방울 흘러내리는 눈물을 부드럽게 닦는 느비예트의 손이, 장갑이 젖어가고 있었다. 지근거리에 있는 날카로운 눈의 안쪽에서 희미하게 무언가가 빛나서, 프레미네는 눈을 꼭 감아버렸다. 이마에 부드럽고 따뜻한 것이 닿았다. 이미 익숙해진 그 감촉이 무엇인지는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느비예트의 입술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골골골 하는 소리는 멈추지 않아서, 프레미네는 정말 기분이 복잡해졌다. 겁이 나고 슬프고 화가 나는데 기뻤다. 이 사람이 프레미네를 소중히 여긴다는 걸 귀로 확인하는 건, 부끄럽고, 마음속에 항상 모자라던 무언가가 꼭 채워진 것만 같았다.

“……느비예트 님, 못됐어요.”

“미안합니다.”

“……걱정을 어떻게 안 해요…….”

“저는 강하니까요.”

“……못됐다고 해서……, 미안해요…….”

훌쩍이며 품에 매달리면 뒤통수를 가볍게 감싸며 등을 토닥이는 손길이 느껴졌다. 다정하고 부드럽고. 당장 내일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두렵다.

“저랑, ……같이 있어요.”

“물론입니다.”

골골대는 소리가 조금 커졌다. 알기 쉬운 신호에 프레미네는 느비예트의 가슴에 뺨을 문질렀다. 남몰래 고양이 같다고 생각해 왔지만, 정말 고양이 같은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품에서 떨어져 눈을 마주치면 느비예트가 부드럽게 웃었다. 프레미네는 웃을 수 없어서 붉어진 얼굴로 다시 품에 파고들었다. 이래서야 작은 불평도 못 하겠다.

“……목말라요.”

“오늘은 경책 산장의 물을 준비해 봤습니다. 입에 맞으면 좋겠습니다만…….”

손수 입에 가져다주는 물잔에 익숙한 듯 입을 대고 마시면, 감상이 듣고 싶은지 느비예트의 시선이 느껴졌다.

“……맛있어요. 산뜻하고. 입에 남는 것도 없고. 더 마실래요.”

“예.”

고작 물을 마실 뿐인데 왜 이렇게 기뻐 보이는지. 그 표정을 오래 보고 싶어서 꼴깍꼴깍 마셨더니 물 한 컵을 다 비워버렸다. 골골골……. 부끄럽다.

“그거 언제 나아요?”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건 시간이 지나면 돌아오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

원래대로 돌아오면 조금 쓸쓸해질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머리가 싫다. 계속해서 무언가 증거를 확인하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성격이 싫다. 의기소침해져 있으면 느비예트가 장갑을 벗고 맨손으로 프레미네의 손을 잡아 왔다. 물끄러미 올려다보면 조금 높은 곳에 달 두 개가 떠 있다. 정말 좋아하는 색.

“다음에는 제가 찾아가도록 할까요. 언제나 제 사정에 맞춰주시기만 하니, 미안한 기분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아니에요. 집에는, 가족도 많고……. 조금 별난 집이니까…….”

그런 말을 하는 프레미네는 제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느비예트의 눈은 깊고 깊어서, 아무것도 비치지 않으니까. 느비예트가 쓴웃음을 지었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미안합니다. 생각이 짧았군요. 그러면 약속을 하나 더 할까요.”

“약속…….”

“시간이 늦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저는 반드시 이곳에 돌아오겠다고 약속하지요.”

“……응, 기다릴게요.”

막연히 기다리는 건, 사실대로 말하면 느비예트였다. 늦게까지 집무실의 불이 켜져 있는 건 잔업 탓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프레미네는 그 사실을 알고도 느비예트가 그 손으로 제 눈을 가리는 걸 거부하지 않았다. 품에 꼭 끌어안기면 심장 고동 소리보다 커다란 골골거리는 소리.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마법.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는 손길이 기분 좋았다. 불안한 마음이 전부 사라진 건 아니지만, 무게는 많이 가벼워졌다. 정말 좋아하는 느비예트 님이 약속을 어길 리가 없으니까. 내 바다 이슬 꽃은 언제나 곁에 있어 주니까. 조금씩 조금씩, 부정적인 마음을 비워나갈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비어버린 공간이 당신으로 가득 차면 좋을 텐데.

말로 할 수 없어서, 그저 온 힘을 다해서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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