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

알하사이(조합)

둘이 사이 그렇게 좋지 않음

카베x모브 / 타이나리 x 모브 결혼 언급 있음

카베와 타이나리가 결혼해서 분가한 뒤로 알.이랑 사.가 동거하는 내용(내용없음......)


"왔군."

머잖은 곳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알하이탐은 곤두선 신경을 추스르고, 천천히 문을 닫는다. 탁. 둔탁한 소리를 내며 문이 닫힘과 동시에 금요일 저녁의 기분 좋은 소란은 차단된다. 이제 이 저택에 자리잡은 것은 희미한 풀의 내음과 안온한 고요 뿐이다. 알하이탐은 잠시 눈을 감고 ㅡ아마도 곧 작별을 고해야 할ㅡ그가 사랑하는 고요를 만끽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예상대로 목소리의 주인은 소파 위에 팔자 좋게 늘어져 있는 채다. 그 또한 집에 들어선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지 대 마하 마트라의 정복을 입고 있어 가면 속에 가려진 얼굴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그것을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두 가지 경우의 수 중 하나겠지. 무표정하거나, 미간을 살짝 찌푸렸거나. 그가 가면을 벗어던진다. 이번엔 전자인가.

"생각보다 일찍 왔네."

"그건 이쪽이 해야 할 말 같은데. 장기 출장 임무를 신청하지 않았나?"

"임무가 생각보다 일찍 마무리돼서 말이야."

"흠."

알하이탐이 골반께에 손을 받치고 고압적인 시선으로 내려다보았지만 상대는 꿈쩍도 하지 않으며 눈을 마주할 뿐이었다. 그 느릿한 깜빡임은 어쩐지 타인의 신경을 긁는 구석이 있어서, 알하이탐은 살짝 한쪽 눈썹을 들어올렸다.

"이번에는 몇 명이나 심판했지?"

"듣고 싶나? 의외로군."

"아니. 궁금해서 던진 질문은 아니었다. 내 머리는 보다 가치있는 지식을 보존하고 창출해내는 데 쓰여야 해."

"어련하시겠어."

사이노가 한숨을 내쉬며 살짝 고개를 저었다. 알하이탐은 굳이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살짝 기울일 뿐이었다. 시시한 대화다. 금세 지루함을 느낀 그는 잠시 가셨던 피로가 다시금 엄습하는 것을 직감했다.

"용무가 없다면 나는 이만 방에 들어가 봐야겠어."

"아니, 잠깐."

"뭐지?"

"밥은?"

단 두 어절일 뿐이었지만 의미는 명확했다.  

"먹고 왔다."

"식재료는?"

"아하. 이게 본론이군. 일단 한 가지 묻겠는데, 너는 나를 식모라고 생각하는 건가?"

알하이탐이 그리 말하자 사이노는 얼굴이 살짝 상기되는 것 같더니 자세를 바르게 고쳐앉았다. 이 편이 조금 더 보기 좋군. 거기서 거기지만 말이야. 알하이탐이 잠시 다른 생각을 하는 동안 사이노의 입에서는 빠른 어조로 용건이 발화되기 시작했다.

"그런 문제가 아니야. 나는 장기 출장 임무에서 이제 막 돌아왔잖아. 그동안의 가사업무를 충당하는 건 네 몫이라고 판단했을 뿐이다. 내가 집에 돌아와서 처음 마주했던 것이 텅 비어있는 창고였으니 네가 식재료를 사들고 오리라고 짐작했지."

알하이탐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대답했다.

"소론파 치고 나쁘지 않은 추론이라고 해야 하는 건가?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나는 직접 식재료를 사오지 않아. 사람을 시키지. 식재료나 생필품은 내일 새벽 즈음에 도착할 테니 너는 그동안 바깥에서 끼니를 때우는 게 좋겠군. 대 마하 마트라 어르신이시니 일개 서기관이 여비를 챙겨드리지는 않아도 괜찮겠지?"

알하이탐은 자신의 대답이 효율적이고 합리적이었음을 의심치 않았다. 사실의 시인, 정보의 전달, 대안의 제공 그 어느 것도 놓치지 않지 않았는가. 하지만 대화의 상대방은 영 마뜩찮은 표정으로ㅡ사실상 이러한 반응 또한 예상의 범주 내에 들었다고 할 수 있지만ㅡ이쪽을 노려다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 쪽으로 향한다.

"잠깐."

알하이탐이 말했다. 사이노는 의외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돌렸다.

"왜?"

"가면 치우라고."

이어진 말이 끝나자마자 눈살을 찌푸린 덕에 눈의 모양은, 뭐랄까, 굳이 따지자면 역삼각형에 가깝게 변해버렸지만 말이다. 사이노는 한 손으로 머리를 짚고 한숨을 내쉬더니 "이따 돌아와서 치우면 되잖아."라고 말한 뒤 다시 현관문으로 향했다.

그리고 현관문에 손을 대기 직전, 다시 고개를 돌리고 노골적으로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봐."

마찬가지로 방으로 향하고 있던 알하이탐이 고개를 돌린 것을 확인한 뒤, 그는 말을 이었다.

"너는 내가 아는 한 가장 재수없는 동거인이야."

-

사이노와 알하이탐이 동거를 하게 된 경위는 간단했다. 우선, 몇 년 전부터 사이노와 타이나리, 카베와 알하이탐은 각각 동거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친우, 누군가는 악우라고 부르는 관계 속에서 두 쌍의 룸메이트들은 나름대로의 균형과 조화를 지켜가며 무난한 동거생활을 이어가던 중이었다. 그러다 우연찮게도 타이나리와 카베가 비슷한 시기에 짝이 생기면서 나머지 두 사람은 혼자 남겨진 셈이 되었다. 철저한 개인주의자인 두 사람은 그 상황에 그럭저럭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었지만 그들을 남겨두고 떠난 친구들의 눈에는 영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카베와 타이나리는 천신만고의 노력 끝에 두 사람을 설득하여 한시적으로나마 사이노와 알하이탐이 동거를 하도록 만들었다. ("넌 혼자 살았다가는 아무도 모른 채 미라로 발견될 거야." 라든가, "안그래도 괴팍한 성질머리에 독수공방만 하면 인간성이 어떻게 진화할지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는 식의 애정 어린 타박도 포함되었다는 것은 네 사람만이 아는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두 사람의 동거 장소는 부지를 비롯한 여러 요인을 고려한 끝에 알하이탐의 저택으로 결정되었다.

……라는 이야기다.

"동거 약속 일자, 얼마나 남았지?"

"아직 반 년은 남았어."

"정말 이럴 거야? 차라리 혼자 사는 게 낫겠어. 너랑 같이 살 때랑은 비교할 수도 없다니까."

"그만. 그럴 줄 알고 승낙한 거잖아? 나잇값 해야지, 나잇값."

"저쪽이 먼저 나잇값을 안하는데 어떡해."

타이나리는 이어지는 사이노의 투정을 건성으로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만. 너 내 말 제대로 안 듣고 있지? 귀가 다른 쪽으로 돌아가 있잖아. 너 그거 선입견이야. 사막여우의 귀는 너희들의 귀보다 훨씬 가청범위가 넓다고. 아, 어쨌든. 사이노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냥 내 집으로 돌아갈래."

"안돼."

그리고 타이나리는 딱 잘라 거절했다.

"솔직히 같이 살 만 하잖아? 너희 두 사람 성격에 정말 아니다 싶었으면 일주일도 못 갔겠지. 이제 세 달 째니까, 그 정도면 좋은 룸메이트지 뭘. 네가 너무 곱게 자란 거야. 나 같은 룸메이트를 뒀으니 눈만 높아져가지곤."

"'같이 살 만하다'는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지. 나는……."

"그만, 그만. 너 지론파랑 같이 살더니 말하는 것도 지론파 닮아가는 것 같다?"

"너, 그 말 취소해."

사이노가 몸을 가까이 붙이며 으름장을 놓자 타이나리는 과장되게 무서운 기색을 보이며 장난스레 외쳤다. 대 마하 마트라가 사람 괴롭힌다! 그러자 사이노는 몸을 확 뒤로 빼며 주위를 살펴보곤 뾰로통한 얼굴로 타이나리를 바라보았다. 

"그런 농담은 부적절해."

"농담으로 너에게 핀잔을 듣고 싶진 않아. 어쨌든, 너답지 않게 약한 척 그만해. 난 정말로 네가 걱정돼서 둘이 같이 살라고 하는 거야. 아마 저쪽도 마찬가지일 거고. 우리가 분가한 이상 이제 너희 둘은 서로가 아니면 감당할 사람이 없잖아. 정말로 못 견디겠으면 그때 말해. 그럼 널 말릴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까."

오랜 친구가 진심으로 타이르는 말에 사이노도 무어라 말을 덧붙이지 않고 작게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타이나리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비어 있는 사이노의 잔에 술을 따르고, 살짝 어깨를 두드렸다.

"뭐, 같이 사는 게 쉽진 않겠지. 나라고 고충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아쉬운 소리라면 들어줄 테니까 편하게 말해. 네 임무 완수도 축하하는 겸 해서 오늘은 마시자고."

"동틀 때까지도 말할 수 있어."

"아, 그건 좀 봐주라. 나도 애 보러 들어가야 한다고."

두 사람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더니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쿡쿡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곧 두 개의 잔이 맞부딪치고, 이야기는 무르익으며, 밤은 깊어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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