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신

[느비프레] 잿불과 데자뷰 Another

분기 A

어느 엔딩의 갈래

서류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되먹지 않는 생각이 머리에 맴도는 걸 안다. 모든 것이 제가 벌인 잘못이었다. 공정, 공평, 그런 것을 소홀히 한 업보일까. 기왕지사 업이 찾아온다면 느비예트 본인에게 찾아왔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 아이는 고작 인간이고, 너무나도 여리고, 그리고, 어렸다. 전부 내 탓이다.

얼마 전부터 프레미네의 상태가 이상했다. 멍하니 있다가 대화를 놓치고,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몸이 평소보다 뜨겁고. 머리가 조금 아프다고 했다.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상태는 며칠간 지속되었고, 마지막에 얼굴을 보았을 때 몽유병에 걸린 것처럼 휘청거리며 걷는 아이는 저택에 보내기가 주저될 정도였다. 그러고는 일주일 정도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저택에서 짧은 편지가 도착했다. 몸이 매우 좋지 않아 당분간 만날 수 없을 거라는 말이, 모르는 이의 필체로 적혀있었다.

당일 늦은 저녁, 부프 데테 저택의 문을 두드리면 마술사 쌍둥이 중 동생이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문을 열어주었다. 찾아와 주어서 고마워요, 프레미네가 기뻐할 거예요. 안내받은 방에 들어서기도 전부터 이상을 깨달았다. 안정되지 않은 원소력. 문을 열고 들어가면 죽은 듯 잠들어 있는 프레미네가 있었다. 며칠 전부터 깨어나지 않는다고, 의사도 약도 소용이 없다고 소녀의 고양이 귀가 옆을 향했다. 소녀가 자리를 뜨고, 이 기이할 정도로 일그러진 원소력의 원인을 확인했다.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그럴 리가 없다고 부정하고 싶었으니까.

인간을 이렇게나 가까이에 둔 적이 없었기에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인간을 포함한 하위생물을 구성하는 원소력은 생각보다 불안정해서 보다 강한 힘에 이끌리는 경향이 있다. 그것이 존재의 붕괴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지만 분명 존재했다. 기억, 사고력, 그런 추상적인 개념이 오염된 채로 순환해 나약한 신체를 버티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서 프레미네는 죽어가고 있었다. 느비예트를 가까이 한 탓에.

느비예트는 프레미네의 잠든 얼굴을 가만히 보았다. 평온한 얼굴은 변함없이 사랑스러웠다. 제 행동이 원인이 되어 소중한 걸 잃는 일을 몇 번을 반복해야 하는 걸까? 다행히 이번에는 일이 최악의 사태로 번지기 전에 예방할 기회가 있었다. 아이의 목소리가 느비예트를 부를 일은 영영 없어지겠지만, 그것은 프레미네가 사라져 버려도 마찬가지였다.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 하얀 이마에 손을 뻗었다. 꼴사납게도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보지 못한 체를 했다. 아주 희미한 빛. 그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느비예트는 저택을 떠났다.

며칠이 지났다. 루키나 분수가 「바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프레미네는 무사한 모양이었다. 아이가 찾아오던 집무실은 다시 적막해졌다. 그 고요함은 심장이 저리고, 그렇지만 원래 있어야 할 형태였다. 느비예트에게는 멀리서라도 프레미네의 행복을 기도할 자격조차 없었다.

아이에게서 회수한 기억은 온통 따뜻한 색이었다. 느비예트는 제 손에 남는 게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느비예트의 평생으로 따지자면 찰나에 가까운 시간. 너무나도 큰 선물을 받지 않았는가.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된다. 때때로 멍하니 아이가 주로 앉아있던 소파를 바라보게 되는 건, 정말로 어쩔 수 없었다.

 

*

 

눈을 뜨면 리넷이 있었다. 이게 다 무슨 일인지 물어보니, 기억하지 못하느냐며, 갑자기 쓰러졌다고 한다. 벌써 일주일도 더 시간이 지났다고. 프레미네는 눈만 껌뻑였다.

그 사람도 많이 걱정됐는지 찾아왔었어. 그래도 벌써 멜모니아궁에 갈 생각은 마.

그 사람이라니?

말하게 하지 마. 최고심판관 말이야.

……최고심판관 님이? 왜?

응?

우리 또 무슨 일, 있었어? 그분이 왜 나를……?

프레미네, 그게 무슨…….

저기, 모르는 새에 뭘 잘못한 걸까? 그게 아니면, 그런 사람이 올 리가…….

……프레미네, 정말 괜찮은 거 맞아?

응, 아무 데도 아픈 곳 없어.

리넷은 더 말하지 않았다. 머리가 조금 멍하고 쑤시는 듯 아프다고, 프레미네도 말하지 않았다. 저녁 식사 시간, 리니가 유난히 프레미네를 쳐다보았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오늘은 외출하지 않느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임무가 있는 게 아닌 이상은 항상 저녁 식사 시간을 지킨 프레미네였는데, 무슨 말을 하는 걸까. 이 시간에 바깥에 나갈 리가 없잖아, 그렇게 대답하면 식탁은 조용해졌다.

저녁을 먹고 나서 방에 돌아왔다. 페어의 보수 겸 자재를 모아둔 상자를 꺼냈다. 얼마 전 잠수하다 주웠던 예쁜 유리로 태엽 장치를 만들려고 했던 게 생각나 보관함을 찾아 열면, 텅 비어있었다. 이게 어디 갔지. 증발해 버린 모양이다. 아무리 찾아도 방에는 물건이 너무 많아 찾을 길이 요원했다. 아쉬움은 남지만 포기하고 프레미네는 일기장을 들었다. 자잘한 그림과 함께 하루 일어난 일을 기록하면 기억은 일종의 동화가 된다. 펜을 찾아 일기장의 가름끈을 찾아 새 페이지를 열면, 바로 옆 페이지가 꽉 차 있었다. 마치 홀린 듯 읽어내리면, 페이지는 점점 거꾸로 역행했다. 누군가와의 이야기가 가득 쓰여있었다. 낯설고, 기이하다. 「느비예트 님」과의 나날, 앞으로 그와 하고 싶은 일들, 경험한 적 없는 감정. 모르는 새에 망상벽이 생겼나. 페이지를 가득 메운 글씨가 분명 제 것임에, 프레미네는 공포를 느꼈다. 일기장을 덮는다. 모르는 새에 호흡이 거칠어져 있었고, 식은땀이 흘렀다. 느비예트 님. 입을 타고 나온 누군가의 호칭은 신기하게도 낯설지 않았다.

 

*

 

용도 결국에는 생물이기에, 짧더라도 수면이 필요했다. 잠에 들면 반드시 아이와의 일이 꿈에 나타났다. 만나지 못한 지 한 달이 넘어가고 있었기 때문일까. 갈 곳 없는 제 감정의 무게를 깨달을 때마다 느비예트는 미간에 주름이 졌다. 그것을 걱정하는 이는 이제 없다.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멜모니아 궁 바깥으로 나가지 않은 지도 꽤 되었다. 아이와 느비예트는 좋아하는 것이 닮아서, 약속하지 않아도 산책길이 겹칠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것조차 아이에게 해가 될 것 같았다.

사실은, 딱 한 번 멀리에서 프레미네를 본 적이 있었다. 가족과 카페에서 차를 마시는 아이는, 안색이 나쁘지 않아 보였다. 느비예트는 그 모습을 보는 관객이었다. 완전한 외부인. 원래 그랬어야 할 삶의 형태.

잠을 자는 방에는 여전히 아이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여분의 옷, 칫솔, 돌려줄 수 없게 된 동화책. 옷을 끌어안아 보고, 버릴 수 없는 칫솔을 외면하고, 동화책을 펼쳐 읽어본다. 잠들기 전 곁에서 책을 읽어주던 목소리가 이제는 희미했다. 시간이 그리 지나지 않았는데, 기억의 휘발은 걷잡을 수 없었다.

 

*

 

편두통이 지속되고 있다. 진통제는 들지 않았고, 결국 통증을 달고 일상을 영위해야 했다. 오늘은 에피클레스 오페라 하우스의 공판일이다. 프레미네는 오랜만에 최고심판관이 법정에 선다고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걸 들었다.

일감을 받을 때 이외에는 잠수하는 횟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프레미네는 요즘 잠수가 즐겁지 않았다. 「바다」에 들어가면 이상하게 마음이 무겁고 일렁였다. 너저분한 방안에서 가만히 누워 천장을 보았다. 제 방 천장이 낯설었다. 조금 더 높고 화려한 천장을 알고 있었던 것 같은데.

누워서 멍하니 시간을 보내다, 재판이 시작될 시간이 다가오는 걸 알았다. 최고심판관이 서는 법정은 언제나 사람들이 가득하니, 호기심이 들어도 그뿐이었다.

방을 나오면 리니와 마주쳤다. 요즘 들어 리니와 리넷이 유독 자신을 신경 쓴다는 사실을 프레미네는 알고 있었다. 둘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 캐물을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무리 같은 가족일지라도 둘은 혈연이고, 프레미네는 그렇지 않았다. 그것은 언제나 프레미네의 안에서 일종의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 되었다.

오늘 최고심판관이 진행한다던데, 재판 구경 안 가?

그런 거 관심 없는 거 알잖아.

……정말 이상하네. 무슨 일 있었어?

응?

그 사람이랑, 무슨 일 있었냐고. 꼭 모르는 사람처럼…….

…….

프레미네는 뭐라 대답할 수가 없었다. 모르는 사람이 맞는데,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될 것 같아서. 그런 프레미네의 반응을 보고 리니는 무언가 오해한 모양이었다.

이야기 하고 싶지 않으면 무리해서 말하지 않아도 되지만, 혼자 앓지 마. 속만 상해.

응…….

머리가 너무 아팠다. 아니, 온몸이 저렸다. 무언가가 계속해서 그리웠다. 나는 무얼 놓치고 있는 걸까.

요즘 비가 잦네……. 프레미네, 우산 챙겨 다녀.

 

*

 

오늘도, 내일도, 계속해서. 곁에 있어 달라고 수줍어하며 이야기한 목소리도, 머나먼 일처럼 느껴진다. 「생일」에 프레미네에게 받았던 유리로 만든 태엽 장치를 서랍에서 꺼내면, 그것은 변함없이 맑은 물이 들어있었다. 태엽을 돌린다. 물방울이 아래에서 위로 솟아올랐다. 생각보다 아이가 남기고 간 것은 많았다. 두 손에 다 들지 못할 만큼이나 많았다.

아이의 말대로 어쩌면 하루하루가 생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인간 사회에서 생일은 일반적으로 특별히 기쁜 날이니까. 그렇다면 지금은 생일 파티에 혼자 남아버린 걸까. 촛농이 흘러내리는 케이크, 비어버린 초대석. 그렇게까지 처량한 몰골이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모르는 새에 찬장에 과자가 많이 쌓이고 말았다. 이제는 먹을 사람도 없는데.

아직은 선명하게 기억나는 파란 눈과 색이 옅은 머리카락. 이것조차 감정만 남은 채 천천히 잊어갈 게 틀림없었다. 오늘도, 내일도, 계속해서.

 

*

 

처음에 든 생각은, 왜, 라는 한 글자였다. 제가 무엇을 잘못했나요, 말해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무엇이든 고칠 수 있었는데. 온몸이 너무 아프고 눈물이 멈추지 않아서, 프레미네는 이불을 뒤집어쓴 채 흐느끼기만 했다. 가족들에게 걱정 끼치고 싶지 않았지만 「바다」에 들어가면 그 사람은 전부 알아버릴 테니까. 알게 되면, 싫어할 테니까.

무언가를 계속 잊고 있다고 생각했던 찜찜함은, 기억이 돌아옴과 함께 자연스레 해소되고 말았다. 프레미네는 그를 잊고 있었다. 아니, 그가 그것을 원했다. 기억을 앗아간 손길이 누구인지 착각할 리가 없었다. 정말 좋아하는 느비예트 님은 프레미네를 잘라낸 것이다.

내내 불안했다. 느비예트 님이 눈앞에서 사라지면 어쩌지, 하고. 그것을 삼켜내지 못하고 몇 번이고 불안함을 호소한 프레미네가 느비예트 님을 질리게 한 것이 틀림없었다. 쓸모없는 프레미네는 버려져도 마땅했다.

식사조차 거르고 방 안을 나오지 않고 있으니, 가족이 걱정하는 건 당연했다. 시간이 될 때마다 문 앞에 식사를 가져다주는 리니와 리넷에게 너무나도 미안했다. 그렇지만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흐르는 눈물에 빠져 익사할 것만 같았다. 한참을 울다가 잠들었다, 깨어나고, 눈앞에 보이는 건 제 방의 풍경이었다. 이대로 사라지고 싶었다. 마음이 너무 아파서, 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그래도 며칠이 지나면 눈물은 말라버리는 법이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가족들에게 사과했다. 정말 무슨 일이 있던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말에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식사는 입에 들어가지 않았다. 삼킨다 한들, 금세 게워 내고 말았다.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보고 싶어서, 그와 만났던 곳을 찾아다녔다. 그럼에도 「바다」와 멜모니아궁에는, 발을 들일 수 없었다. 두려웠다. 멜모니아궁 근처에라도 갈 일이 생기면 바닥을 보고 걸었다. 속이 거북할 지경이었다.

신상 주변에 서면 문득 하늘이 노랗다고 생각했다. 의아함에 올려다보면,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누군가의 비명이, 희미하다.

 

*

 

멜모니아궁으로 돌아가는 길, 궁 앞이 소란스러워 흘깃 쳐다보면 누군가가 아이가 쓰러졌다고 소리를 질렀다. 폰타인에 아이가 어디 한둘인가. 그러나 이상하게 불안했다. 빠른 걸음으로 인파를 뚫으면, 심장이 내려앉는 광경이 있었다. 쓰러져 있는 건 프레미네였다. 그래서는 안 된다고 알면서도, 급하게 안아 올린 몸은 기억보다 훨씬 가벼웠다. 궁 내의 의무실로 서둘러 프레미네를 옮기면, 채혈과 함께 간단한 검사가 이루어졌다. 그 작은 몸에서 피를 뽑아내는 것은 차마 지켜보기가 힘들었다. 필요한 절차. 공정과 공평. 지긋지긋하다.

어서 자리를 떠야 한다는 걸 알지만, 오랜만에 본 아이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욕심은 언제나 화를 부른다는 걸 알면서도. 결국 프레미네는 눈을 뜨고 말았다. 느비예트를 보고, 백지장이 되다 못해 새파래져서는.

……저기, 저, 미안, 해요. 이럴, 생각이…….

저야말로 휴식을 방해해서 미안합니다. 쉬도록 하세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지만, 등을 돌리는 건 간단했다. 보이지 않으면 멀어지는 것도 쉬운 일이다. 몇 걸음 걸었을 때, 잔뜩 흐느끼는 목소리가 들려와 그마저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지만.

잘못, 했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가지 말아요…….

자신을 모를 터인 소년의 애원. 그 부자연스러움에 실패했구나, 깨닫고 말았다. 제 망설임이 이번에도 일을 그르치고 말았다고. 돌아본 프레미네는 무릎에 얼굴을 묻고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당장에라도 안아주고 싶지만, 그것은 누구를 위한 행동일까.

먼저 설명하지 못해 미안합니다. 설명할 상황도 아니었을뿐더러…….

다, 전부, 저 때문이에요……. 이제, 이제 나쁜 말 안 할게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런 말 마십시오. 프레미네 군이 잘못한 건 없습니다. 저와 있으면 당신이 위험해진다는 걸, 뒤늦게라도 설명해야겠군요.

침대 옆 의자에 앉아 이야기했다. 제 본질과, 원소력의 문제, 전부 어리석은 제 탓임을. 프레미네는 가만히 듣고 있다가, 이야기가 끝나자 훌쩍거리면서 고개를 들었다. 눈가가 안쓰러울 정도로 붉게 부풀어서, 느비예트는 무심코 손을 뻗을 뻔했다.

……그런 거, 불공평해. 그러면, 느비예트 님은, 계속 외롭기만 하잖아요…….

저는 괜찮습니다. 프레미네 군, 진심으로 사과합니다. 마주칠 일이 없도록, 노력할 테니…….

……싫어요.

…….

같이 있고 싶어요. 같이 있게, 해주세요. 명령이어도 듣고 싶지 않아요.

느비예트는 머리를 감싸고 싶어졌다. 하나, 단 하나 원소력의 위계를 동등하게 끌어올릴 방법이 있기는 하나, 그것은 너무나도 폭력적이다. 아이를 놓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행사할 힘이 아니지 않는가. 그렇지만 프레미네가 이런 일로 우는 얼굴도 보고 싶지 않았다. 욕심 같은 건, 화만 불러올 게 뻔한데도.

방법이, 없지는 않습니다.

있다면, 들려주세요.

그 방안을 택한다면 프레미네 군의 시간이 멈추게 됩니다. 더는 자라지 않고, 늙지 않고, ……주변의 모든 사람이 떠나간 후에도 프레미네 군은 그 자리에 있게 되겠지요.

……저는 변하지 않게 되는군요.

그렇습니다. 돌이킬 수 없게 됩니다. 늘어난 수명은 인간이 견딜 수 있는 시간이 아닙니다. 그러니 부탁입니다. 저를 잊어주십시오. 마지막까지 멋대로 굴어서 미안합니다.

프레미네는 더 울지 않았다. 느비예트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쓰게 웃을 뿐이었다.

그런 말을 할 거면, 좀 더 표정 관리를 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요. ……울지 말아요.

그 말대로, 눈물이 멋대로 뺨을 흐르고 있었다. 프레미네는 노래하듯이, 물의 용아, 울지 마, 하고 속삭였다.

……이리 와요. 멀어서 답답해.

하지만…….

거짓말쟁이. 제가 원하는 거, 다 들어주기로 했잖아요.

어쩔 수 없이 다가가 침대 끄트머리에 앉으면 프레미네가 폭 기대왔다. 꿈에도 그려왔던 온기에, 느비예트는 제 떨리는 손을 숨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느비예트 님 거, 할래요. 저, 그러고 싶어요.

저는, 프레미네 군이 그러기를 원치 않습니다.

제가, ……싫어졌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바라는 걸 말해줬으면 하는 마음은, 변해버렸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프레미네의 손이 느비예트의 뺨에 닿았다. 눈물자국을 닦아내는 작은 손은 따뜻하고 사랑스럽다. 어찌할 바를 모르겠을 정도로.

들어주세요. 제 소원.

더는 견딜 수 없었다. 품에 안은 몸은 기억보다 더욱 작았다. 미안하다고 몇 번이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상처입혀서, 느비예트가 공평을 버린 탓에 모든 일이 벌어져서, 미래를 빼앗아서, 추악한 감정만을 보여줄 수밖에 없어서. 프레미네는 그 모든 감정을 인간은 사랑이라고 부른다고, 그저 기쁘다고 했다. 그 입술에 느비예트는 제 피를 흘려 넣었다. 제 욕심이 이 아이를 진정으로 망가뜨리는 날이 오지 않기를 기도하면서.

카테고리
#2차창작
페어
#BL
작품
#원신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