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비프레] 잿불과 데자뷰 13
상자 속
자기 전 책 읽기가 끝나면 프레미네는 항상 말없이 느비예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작은 무게감에 실린 아쉬움과 외로움을 안다. 오늘이 지나가면 내일이 찾아오고, 내일이 찾아오면 또 각자의 일상이 시작된다. 같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은 한정적이고 무정하게도 빨리 흘러서. 주저하듯 망설이던 작은 손은 느비예트의 손을 잡는다. 느비예트는 그 손에 깍지를 끼며 남은 손으로는 서툰 티가 최대한 나지 않도록 부드럽게 옅은 금발을 쓰다듬었다. 성장기의 아이라고는 하나 여전히 손이 작고 부드럽다. 누군가에게 가호를 내릴 수 있게 된 지금도 여전히 신의 눈이라는 유리구슬의 구조에는 자세하지 않지만, 이 여린 손이 대검을 휘두를 수 있는 것은 그 장난감 덕분일 것이다. 참으로, 불쾌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고마운 일임을 알고 있다. 「느비예트가 하사하지 않은」 힘 덕에 프레미네는 오늘까지 무사히 살아있다. 보통 인간으로서, 신의 눈을 소지했을 뿐인, 느비예트의 눈에는 한없이 연약한 「인간」으로서.
생각보다 집요하게 손을 만지작대고 있었는지 파란 눈이 물끄러미 느비예트를 보았다. 평소라면 실례했다며 손을 거두었겠지만 기분이 영 내키지 않았다. 빤히 시선을 마주치자 프레미네는 부끄러운 듯 눈을 피했다. 이럴 때마다 고민이 늘었다. 감정을 심해 깊은 곳에 숨겨두는 건 익숙했지만, 물의 압력으로도 눌리지 않을 만큼 치밀어오를 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아직도 알 수가 없어서.
“저어, 조금 더 깨어있고 싶다고 말하면, 느비예트 님은 곤란하신가요?”
“프레미네 군이 아침에 힘들어질 겁니다.”
“……죄송해요. 그냥, 자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말하고, 마치 말한 것을 후회한 듯 프레미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러한 고집부리는 듯한 태도가 미움받으리라 생각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가엾을 정도로 섬세한 아이. 원하는 것을 말하지 못하는 아이. 사람을 제대로 믿지 못하고, 언제나 발밑이 불안정한 듯 두리번거리며 걷는 걸 안다. 누군가와 있을수록 더욱 외로워하는 것을 안다. 그래도 같이 있고 싶어서 필사적인 것 또한.
작은 어깨를 품에 끌어들이며 느비예트는 생각에 빠졌다. 마음이나 감정 같은 건 말과 행동으로 알리지 않으면 전해지지 않는 법이다. 고개를 숙여 자그마한 입술에 입을 맞췄다. 놀란 듯 커다래져서 깜빡이던 파란 눈이 이내 무언가를 기대하듯 눈꺼풀 아래로 사라졌다. 입 안은 따뜻하고, 느비예트의 혀를 다 받아들인 걸로도 꽉 차버릴 만큼 작고, 열심히 응해오는 혀조차도 작다. 정말로 살아있는 생물이 맞기는 할까. 입술을 떼면 프레미네는 상기된 얼굴로 조금 가쁘게 숨을 쉬며 느비예트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왔다. 느비예트는 그런 프레미네의 뺨을 가볍게 문지르며 말했다.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걱정하는 것처럼 보이나요?”
“표현을 충분히 하지 못한 제 탓입니다.”
파자마 틈새의 가늘고 여린 목을 만지작거리면 품 안의 몸이 바르르 떨었다. 입바른 말을 했지만 사실은 느비예트도 프레미네를 재우고 싶지 않았다. 으스러질 정도로 품에 꼭 안은 채로 놓아주고 싶지 않았다. 마음에 파문이 한 번 생겨나면 걷잡을 수 없다. 그러나 누구를 위한 행동인지 생각하다 보면, 실천으로 옮기기가 주저되는 법이었다.
“프레미네 군의 오늘 밤을 제가 받아 가도 되겠습니까?”
실이 끊긴 인형처럼 품 안의 작은 몸이 뚝 굳어버렸다. 조금의 시간이 지나, 새빨갛다 못해 터질 것 같은 얼굴을 들고 프레미네가 말했다.
“……느비예트 님이 그런 말 하는 거, 이상해.”
한 가지 사실을 느비예트는 오래전에 파악했다. 프레미네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 지금껏 언제나 몸을 겹치는 건 프레미네가 원했기 때문이라고, 느비예트는 그다지 내키지 않지만 상냥한 사람이기에 거절할 수 없었을 뿐이라고. 당연하게도 느비예트는 거절하지 못하는 어른이 아니었다. 프레미네는 제대로 현실을 알고 오만해질 필요가 있었다. 느비예트가 성격이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을 알 기회가 올 날이 있을지, 장담할 수는 없었지만.
“그렇게 이상합니까?”
“왜 이렇게……, 저에게 잘 대해주시는지 모르겠어요.”
언젠가의 의문은 다시 수면으로 부상한 모양이다. 저택의 원장이 프레미네의 행동을 용인하고 있는 건 장기적으로 이 관계가 저택에 이득만을 가져오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누가 말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었다. 프레미네 또한 그 사실을 어렴풋이라도 눈치챘을 것이며, 일종의 부채감으로 작용하고 있을 거라는 사실도. 이 만남이 느비예트에게는 손해밖에 없다고, 진심으로 그렇게 믿게 된 것이다. 느비예트는 실리에 둔하지 않았고, 지금껏 흘러온 모든 게 그의 손바닥 안이라고 하는데도. 아이의 순진함은 나이에 걸맞지 않을 정도였다. 걱정스럽기도 하고, 사랑스럽기도 하고.
“의아한 말을 하는군요.”
“…….”
“프레미네 군에게 그렇게 할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깎아내리는 건 좋지 않은 버릇이지요.”
“저기, 그게……. 미안해요. 굉장히 기뻐서……, 겁이 났어요.”
무엇에 겁먹었는지 캐묻지 않았다. 프레미네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만을 이야기하면 그걸로 됐다. 아직도 신뢰가 모자란다면 더 쌓으면 될 일이니까. 바다가 담긴 눈을 가만히 바라보면, 조용히 일렁이고 있었다.
“제안에 대한 대답을 듣고 싶습니다.”
“……저라도, 괜찮다면…….”
“프레미네 군이 아니면 저에게는 의미가 없습니다.”
머뭇거리던 프레미네는 작은 머리를 끄덕였다. 입맞춤은 깊고, 마치 숨을 빼앗을 것처럼 길었다.
굳이 말하지 않는 이유라면 얼마든지 있었다. 바다에 버림받았음에도 변함없이 바다를 사랑하는 아이가 있다는 걸 알았을 때부터였을까. 멀리서 지켜볼 요량이었다. 개입할 생각은 없었다. 없었을 것이다. 모든 건 물거품과도 같았다. 물이 흐르는 걸 손으로 틀어막을 수 있던가. 투명하기까지 한 감정에 매료당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손에 쥐고 싶어질 거라고 알았기에 그저 관객석에 앉아 있었다.
처음 말을 주고받은 날을 기억한다. 이름을 안다는 부자연스러운 사실은 소년이 쌓아온 명성으로 덮을 수 있었지만, 욕심은 숨겨낼 수가 없어서. 뻔뻔하게 다음 만남을 위한 포석을 깔고, 기약 없이 기다리고. 꼴사납기 그지없는 행동에 몰래 한숨을 쉬었다. 이러한 감정은 처음이라고 변명하기에는 너무나도 오랜 세월을 살아오지 않았는가. 손을 떼어야 한다고 몇 번이고 생각하고, 생각으로만 그치고. 우스운 일이다. 고개를 돌릴수록 제 감정이 선명해지다니.
관객석에 머무르기를 포기하고 무대로 향하는 계단을 밟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것은 운명이다. 반드시 그렇게 되기로 정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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