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비프레] I promise you, honey. 4

커튼으로는 막을 수 없는 빛이다. 눈이 부셔 어렴풋이 눈을 뜨면, 그것이 앞에 있다―, 그렇게 인식하기도 전에 느비예트의 예쁘장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늘을 만들 만큼 긴 속눈썹이 감겨있었다. 몇 번 그의 거처에서 외박하고 들어간 적이야 있지만, 느비예트가 늦게 깨는 날은 없었다. 귀중한 장면이다. 카메라가 작았다면, 그래서 근처에 놓고 잘 수 있었다면 분명 이 얼굴을 촬영했을 게 틀림없었다. 그렇지만 카메라는 짐가방에 들어가 있고, 조금이라도 움직였다간 느비예트는 눈을 뜰 것이다. 아쉬움이 반, 그가 제 앞에서 마음을 놓았다는 사실에 대한 기쁨이 반. 가만히 바라보다 슬슬 세수라도 해야겠다 싶어 상반신을 일으키며, 느비예트의 뺨에 입 맞췄다. 그는 예상대로 어렵지 않게 눈을 떴다.

“좋은 아침이에요, 느비예트 님.”

“좋은 아침입니다. ……어디에 갑니까?”

“엥? 저기, 세수를.”

“이리 오십시오.”

강제성이 담긴 손길이다. 그대로 다시 침대에, 정확히는 느비예트의 품에 누워버린 프레미네는 눈만 깜빡였다. 커다란 손이 프레미네의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저, 느비예트 님?”

“여유롭게 행동합시다. 아직 오전 7시를 조금 지나지 않았습니까.”

프레미네 또한 대충 그쯤 되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한 시간대였다. 환경에 관한 느비예트의 말은 틀린 적이 없었다. 평소 저택에서라면 이것보다 일찍 일어나기 때문에 게으름 피우는 듯한 착각이 든다. 느긋하게 지내려고 온 여행인데, 생각해 보니 빠르게 행동하는 건 의미가 없었다. 프레미네는 몸에 힘을 뺐다. 어제는 피곤해서 제가 언제 잠든 줄도 모르고 기절하다시피 숙면했다. 덕분에 더 잠이 오진 않지만, 느비예트의 품 안에서 그의 심장 뛰는 걸 느끼는 사치는 누리고 싶었다. 이 사람은 심장이 무척 느리게 뛴다. 심장 고동이 느리면 오래 산다는 소리가 있는데, 그래서 오래도록 살아있는지도 모르겠다.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 프레미네를 잊지 말고, 그렇지만 행복하게. 욕심일까.

“느비예트 님, 이거 제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어제 안 주무시지 않았나요?”

“흠. 그렇습니다. 자는 시간이 아깝다고 느껴지더군요.”

“……주제넘은 말인 거 알지만……. 거, 건강에 안 좋아요. 피곤하실 텐데.”

“괜찮습니다. 오래도록 활동할 수 있는 몸입니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프레미네를 보는 이채로운 눈은 평소와 다름없이 피곤함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기는 했다. 그래도 프레미네는 고개를 저었다. 느비예트는 눈을 껌뻑였다. 가끔가다 프레미네가 이런 식으로 나오면 꽤 고집스러운 이야기가 나오고는 했기 때문이다.

“몇 시간만이라도, ……눈, 감고라도 있어 주세요.”

역시나 예상대로. 가만히 쳐다보자 프레미네는 안절부절못하고 느비예트를 꼭 끌어안았다.

“혹시, 혹시라도. 혹시라도……, 피곤할 수 있으니까요…….”

이것은 반쯤 거짓말일 것이다. 거짓말이라기보다는, 그렇게 말해서 프레미네 자신을 안심시키기 위한 암시의 일종이다. 느비예트는 소년의 화법에 어느새 익숙해졌고, 때때로 그가 무언가를 두려워한다는 것도 알았다. 이번 여행, 프레미네가 원하는 대로 해주고 싶었기 때문에 느비예트는 딱히 불만을 느끼지 않았다. 하나 조건을 내걸고 싶어지기는 했지만.

“곁에 있어 준다면, 좋습니다.”

“……정말요?”

“정말입니다.”

“알았어요.”

프레미네를 고쳐 안으면서 느비예트는 새까만 시야를 앞에 두고 반성했다. 물론 느비예트가 거짓말에 서툴기도 했지만, 대충 그런 척한다고 속아 넘어갈 상대가 아니었다. 잠자리를 가린다고 말하면 봐줄까. 그런 소리를 했다간 다음 여행은 생각도 못하게 될 것 같았다. 오늘 밤은 시간이 흐르는 게 아깝더라도 제대로 자야겠다. 그러면 프레미네는 자연스레 느비예트에게 상을 주게 되어있었다. 지금도 나름대로, 눈을 감는 대신 프레미네의 시간이라는 상을 주지 않는가. 그러한 보상 체계가 느비예트는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아무것도 생각하면 안 돼요.”

“알겠습니다.”

“대, 대답도 하면 안 돼요.”

“…….”

정말 고집스럽다. 이대로 잠들어 버리는 것도 물론 가능하지만, 눈만 감고 있어도 좋다고 말한 건 프레미네였다. 그 말은 자도록 하되 잠이 오지 않더라도 눈이라도 감고 있으라는 뜻이었지만, 느비예트에게는 아무래도 좋았다. 죽은 듯 누워 품 안의 작은 체온의 숨결을 듣는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시간을 흘려보낼 이유가 되고도 남았다.

“……눈, 뜨면 안 된다니까요.”

흐릿하게 뜬 시야에 곤란한 듯한 표정이 웃고 있었다. 그 이마에 입맞춤하고, 느비예트는 얌전히 눈을 감았다. 생각하는 게 비슷한지도 모르겠다. 잠으로 함께 있는 시간을 보내기에는, 서로의 풋풋하기까지 한 초조함이 방해하고 만다. 아직 한참 어린 그는 그렇다 치고, 느비예트는……. 어쩔 수 없이, 처음 겪는 일은 누구라도 그렇지 않은가. 모든것이 낯설었다.

“……――……, ……―.”

희미하게 콧노래가 들렸다. 표정이 보고 싶었다. 하지만 약속했으니까. 지금 느비예트가 눈을 감고 있는 게, 프레미네가 원하는 것. 가만히 눈을 감고, 중간중간 끊기는 노래를 듣는다. 청각이 끊기는 원인이 잠시 잠들었기 때문인지, 프레미네의 의지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이, 이런 거, 다 못 먹어요.”

느비예트는 난감해하는 프레미네의 표정과 테이블 위에 나온 음식을 번갈아 보았다. 스테이크와 치즈, 그리고 감자. 스테이크와 치즈, 그리고 감자. 스테이크와 치즈, 그리고 감자. 여행자의 추천인 「높이 쌓기」다. 확실히 한 번 보면 잊기 힘든 것이 틀림없는 인상적인 요리였다. 찰칵. 곤란해 보이는 프레미네와 함께 「높이 쌓기」를 찍었다. 누가 그랬던가, 여행에서 남는 것은 결국 사진이라고. 느비예트는 프레미네의 필름으로 가득해질 이 작은 기계가 꽤 마음에 들었다.

“뭐, 뭘 찍는 거예요.”

“프레미네 군의 사진입니다.”

“……그게 아니라. 아니, 우…….”

“전부 먹지 않아도 됩니다.”

이게 다 느비예트가 메뉴판도 보지 않고 「높이 쌓기」를 주문한 탓이다. 실제로 나온 요리를 보고, 여행자와 그의 많이 먹는 동반자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해치울 양이라고 가늠했다. 성장기라고는 해도 프레미네가 먹어봐야 반절 정도일까. 디어 헌터의 웨이트리스는 양에 대한 별다른 말이 없었다. 느비예트와 함께 있어서 2인분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느비예트는 식사할 생각이 없었다. 프레미네의 가려진 눈이 푹 숙인 탓에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실책을 저질렀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나온 요리는 나온 요리. 어쩔 수 없다.

“음식, 남기면 벌 받아요…….”

“제가 대신 받을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으으으음. 잘 먹겠습니다…….”

결국 마음을 정한 듯 프레미네는 나이프와 포크를 손에 집어 들었다. 입에 작게 자른 고기를 집어넣고 우물우물, 그리고 표정이 환해지는 걸 보니 맛은 문제없는 모양이었다. 결국 정말 반 조금 안 되는 양을 남겼다. 같이 있다보니 이런 것도 맞출 수 있게 되고, 느비예트는 조금 뿌듯했다. 프레미네는 남은 음식이 영 찜찜한 모양이었지만, 몬드성 주변 호수에 가보자고 이야기하자 고개를 여러 번 끄덕였다.

성을 둘러싼 호수는 고요하고 평온하다. 물가에 다가가면, 점심 무렵을 지났기 때문에 밝기가 조금 줄어든 햇빛이 반사되어 반짝였다. 호숫물은 감탄이 나올 만큼 깨끗했다. 날씨도 좋아서, 폰타인에서는 잘 볼 수 없는 맑은 날이었다. 닮은 듯 다른 풍경. 역시 이국異國에 도착했음을 실감한다. 날씨 탓인지, 프레미네는 평소보다 기분이 좋아 보였다. 느비예트는 장갑을 벗고 손으로 호숫물을 떠 입에 넣었다. 평소 마시는, 몬드에서 공수해 온 물은 수원지가 이쪽이 아니지만, 색다른 맛이었다. 지금껏 맛본 물의 기억 중 가장 평온했다. 필시 이 땅도 누군가 흘린 피 위에 평화를 얻었을 것이 틀림없음에도, 그것이 몬드의 본질인지도 모르겠다.

“잠수해 보고 싶은데……. 옷이 상할 거예요.”

프레미네의 고민하는 소리가 들렸다. 앓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분명 원장님이 선물해 주신 옷이라고 하셨지요.”

“……소중한 옷이니까, 아껴야죠.”

“그렇다면 옷을 사서 저녁에 다시 나오도록 합시다.”

폰타인 특유의 가호가 미치지 않는 땅은 아무리 물이 깨끗해도 깊은 곳까지 잠수하기는 힘들다. 프레미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느비예트는 굳이 그것을 언급하지 않고, 한쪽 무릎을 꿇어 프레미네의 신발을 벗기기 시작했다.

“저기, 느비예트 님……?”

“직접 물에 닿고 싶다면 잠수하지 않아도 여러 방법이 있지 않습니까.”

“……아.”

말뜻을 알아들은 듯 프레미네는 맨발인 채로 호수에 들어가, 느비예트를 지나서 무릎까지 수위가 올라오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참방참방, 다리가 얕은 곳의 모래를 밟을 때마다 경쾌한 소리가 울렸다.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후후, 이것도 즐겁네요.”

맑은 햇빛, 맑은 호수, 맑은 눈을 한 소년. 좋은 피사체다. 느비예트는 무심코 카메라를 꺼내 셔터를 눌렀다. 누름과 동시에 순간이 영원으로 변하는 감각. 어쩌면 새로운 취미생활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현상하고 알게 된 사실이지만, 필름에는 공중에 튄 물방울과 함께 보기 드물게 환하게 웃고 있는 프레미네가 찍혔다.

한동안 프레미네가 노는 것을 지켜 보다 저녁에 쓸 옷을 사기 위해 몬드성 안으로 되돌아왔다. 돌아오는 길, 대낮부터 취해서 즐겁게 웃는 사람들이 모인 건물 한 채가 눈에 띄었다. 분명 느비예트가 듣기로, 몬드에 들어오는 길에 보았던 와이너리에서 직접 운영한다고 하는 술집이었다. 낮부터 이렇게 문전성시라니, 참으로 대단한 곳이다.

“형씨, 한잔하고 가지?”

“아닙니다. 미성년자가 있으므로 사양하겠습니다.”

그 포도를 보고 난 이후다. 확실히 이곳의 술이 신경 쓰이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었지만, 우선해야 할 건 제 입맛이 아니었다. 프레미네에게 술을 마시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자 호객을 한 가게 관계자가 무슨 말을 하느냐며 껄껄껄 웃었다.

“당연히 도련님을 위한 무알코올 칵테일도 있으니까, 사양 말고 들어오라고.”

“으음…….”

느비예트는 잠시 고민했다. 그러자 프레미네가 느비예트의 옷자락을 가볍게 잡아당겼다.

“저, 궁금해요. 가게.”

“그렇습니까?”

“다들 즐거워 보이니까, 왜 즐거운지 궁금해서요.”

“그렇군요. ……들어가 보도록 할까요.”

문전성시라고는 해도 아직 낮인지라, 가게 안은 군데군데 테이블이 비어있었다.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메뉴판을 본다.

“기간 한정……, 바캉스 과일주……?”

“기간 한정이라는 건 나중에 오면 맛볼 기회가 없을 수도 있겠군요. 개인적으로는 「한정」이 붙은 건 그때 입수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편입니다.”

“느비예트 님, 소비 습관 문제없는 거 맞아요?”

“문제없습니다.”

그러한 대화와 함께, 현재 준비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와인 한 잔과 바캉스 과일주를 주문했다. 바텐더가 미리 내어온 찬물을 마시던 프레미네가 와인 가격을 듣고 사레들려 기침을 컥컥 해댔으나 그것은 또 별개의 이야기로…….

“……맛있다.”

“그렇군요. 향이 비슷한 생산일의 다른 와인보다 풍부하고……. 무엇보다 보관 방법에서 특별한 느낌을 받습니다. 기대 이상이로군요.”

숙성하는 방법의 차이일까. 폰타인의 와인보다 깊은 맛이 났다. 알코올 특유의 떫은맛은 최대한 배제한 와인 자체가 미각의 호기심을 충족했다. 혀가 판단하는 한, 알코올의 맛이 덜할 뿐 도수는 다른 와인보다 높았다. 느비예트가 생각하기에 한 잔 이상은 마셨다간 추태를 부리게 될 것 같았다. 아쉬운 일이다.

“엄청 달아요. 시원하고……. 그래도 빨리 커서 다음에는 느비예트 님이랑 같이 술 마시고 싶어요.”

“술을 일찍 마셔서 좋을 건 없습니다. 다만……, 그렇군요. 프레미네 군의 첫 음주를 감독하고 싶은 마음은 있습니다.”

메로피드 요새의 관리자―, 「공작」에게 전해 들은 갓 성년이 된 후 첫 음주의 위험성은 너무나도 심각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공작의 프라이버시와 인권 존중을 위해 느비예트만이 알아두기로 했다. 어쨌든 위험하다. 여러 가지 의미로.

“그러면, 첫 술은 느비예트 님이랑 마셔야지.”

“좋습니다. 기꺼이 상대가 되어드리지요.”

느릿하게 도는 알코올의 효과가 적당히 기분이 좋다. 느비예트는 제 얼굴이 잘 붉어지지 않는 걸 알고 있었다. 벽창호니 하는 소리를 들을 때도 있지만 이럴 때는 정말 도움이 되는 체질이다. 몬드를 떠나는 날, 와인을 한 병 사러 천사의 몫에 다시 들르기로 내심 결정하고 바텐더에게 미리 언질을 줘둔 후 가게를 나왔다. 바깥바람을 쐬며 현지의 옷을 사러 가는데, 프레미네가 작게 웃었다.

“왜 그러십니까?”

“아, 아니에요. 그냥……. 기분 좋아 보이셔서.”

“음, 들켰습니까. 미안합니다. 정말 괜찮은 와인이었어요.”

“궁금해요.”

“오늘 예약한 와인을 프레미네 군이 성년이 될 때까지 보관해 두도록 하지요.”

“그, 그럴 것까지는.”

“제가 그러고 싶습니다.”

어차피 인간의 몇 년 따위, 금방 흘러버리는 세월이다. 그 사이에 와인은 더욱 숙성될 것이고, 프레미네의 성장을 생각하면 오히려 느비예트는 시간이 흐르는 게 기대되었다. 그리고 프레미네와 제 사이즈에 맞는 적당한 현지의 옷을 사고, 숙소로 돌아가 갈아입고. 어느새 석양이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호수로 발을 옮길 때마다 천천히 천체가 돌았다.

“프레미네 군, 밤 잠수는 할 만하던가요?”“네. 밤에 잠수는 주로 일이 있을 때 하지만……. 일이 끝나고 돌아오면, 평소보다 물 아래가 고요해서 좋아요.”

“그렇군요. 저도 가끔 한밤중에 짧은 자유를 즐기곤 합니다. 비가 온다면 그것보다 좋은 날이 없지요.”

“오늘은 계속 맑네요.”

“어중간하게 흐린 날보다는 낫습니다. 별이 잘 보이니, 만족스럽습니다.”

멀리 보이는 은하수가 아름답다. 「심연」에 무엇보다 가깝기 때문일까, 맑은 밤하늘은 경외심마저 들었다. 물론 「심연」 따위는 방해되지 않았다. 느비예트는 자신의 의지로 어항에 있는 물고기와 같았다. 어항 속에서 해야 할 일은 많았고, 소중한 것도 전부 그 안에 있었으니까. 그것을 사람들은 정착이라고 한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

낮에는 호숫가에 드문드문 보이던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다. 경비가 성내에 집중되는 밤, 혼자 츄츄족이라도 마주쳤다가는 원소의 힘을 사용할 수 없는 일반인은 큰일이 난다. 그런 의미에서는 호수를 전세 낸 것과 같았다. 며칠만의 물이 반가운지 프레미네는 콧노래를 부르며 깊은 수심으로 헤엄쳤다. 반면 느비예트는 물 위에 누운 채 둥둥 떠 있었다. 맑은 하늘, 폰타인 내부의 섬 사이를 오가는 배와 레일 보트. 그런 것이 없는 진정한 고요. 이래서 숨을 돌리기 위해 사람들은 여행한다는 걸 깨달았다.

물 아래를 조사하던 프레미네는 이내 얕은 호수에 흥이 식었는지 느비예트의 곁으로 돌아왔다. 언제나 생각하지만, 신기할 정도로 물에 젖은 모습이 잘 어울리는 아이다. 마치 지상이 아닌 물 아래가 원래 있어야 할 곳이었던 양. 하기야, 폰타인 사람이라면 모두가 물 아래가 원래 있어야 할 곳이기는 했다. 그것도 이제는 허무맹랑한 옛날이야기가 되었지만.

“더 물 아래에 있고 싶지 않습니까?”

“으음……. 싫은 건 아니에요. 근데 조금, 쓸쓸해요.”

프레미네는 느비예트의 손을 잡고 제 뺨에 가져다 댔다. 그 짧은 말로도 느비예트는 어느 정도 그가 하고 싶은 말을 깨닫는다. 원인은 물의 기억이 다르기 때문이다. 본능적으로 타향의 낯섦을 감지하고 만다. 수면에 떠 있던 몸을 바로잡아 그런 프레미네를 꼭 끌어안았다. 어찌 된 영문인지, 서로의 체온을 가까이하면 외로움은 멀어지곤 했다.

“세상이 너무 넓군요.”

“……네, 혼자는. 약간, 버거워요. 형편없는 소리네요.”

“프레미네 군만 괜찮다면, 같이 알아갑시다. 저도 아직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그렇게 상냥하면, 언젠가 부서질 거예요.”

품 안의 푸른 눈이 물에 젖은 채 다정하게 웃었다. 그러자 느비예트도 웃었다. 조금, 소리를 내서.

“재미있는 말을 하는군요. 저는 그렇게 약하지 않습니다. 장담하지요.”

어린 팔이 느비예트의 등을 감쌌다. 그러면 결합은 더욱 강해져, 존재하기 때문에 느껴지는 자연스러운 외로움조차 잊게 된다. 수면이 일렁일 때마다 새로이 체온이 느껴지는 건 썩 마음에 들었다.

“네. 부수지 않도록, 저도 노력할 테니까요.”

그는 뭘 걱정하는 걸까? 물을 통해 전해지는 감정이라고는, 끝없는 서글픔이었다. 그 근원을 알고 싶어 느비예트는 프레미네에게 입 맞췄다. 혀를 통해 타액에 담긴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역시나, 서글픔이었다. 잃은 모든 것에 대한, 앞으로 잃을 것에 대한 두려움. 이해할 수 있었다. 어찌할 수 없었다. 그저 그 자리에 변함없이 있는 것이 느비예트가 내놓을 수 있는 최선의 답이었다.

“아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변함없이 곁에 있습니다.”

여전히 주변은 조용했고, 달 또한 은은하게 빛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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