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비프레] SS 1
네 색으로 물든다면
눈을 뜨니 품 안에 프레미네가 없었다. 곁에 없는 건 아니었다. 시선 끝에 걸리는 위화감에 고개를 위로 돌리면, 이불이 내팽개쳐져 드러난 침대 시트에서 조금 떨어진 공중에 프레미네가 곤히 자고 있었다. 느비예트는 멍한 머리로 생각했다. 인간이 하늘을 날 수 있던가. 그럴 리가. 벼락 맞은 것처럼 잠이 깨면서 튀어 오르듯 상반신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프레미네가 공중에 떠 있었다. 천사 같은 얼굴로, 아무것도 모른 채로.
인간사회와 손을 잡은 지 400년, 느비예트는 별 해괴한 사건을 다 경험해 왔다. 그 말은 곧 어지간한 일에는 놀라지 않을 만큼 단련되어 있다는 뜻이었다. 그런 그도 당황했는데, 당사자인 소년은 말할 것도 없었다. 눈을 뜬 이래로 프레미네는 새하얗게 얼굴이 질려서 느비예트에게 딱 달라붙어 있었다. 평소에는 끌어안기를 조금 주저하는 편이었는데, 그런 걸 따질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몸이 멋대로 부유하는 감각이 소름 끼쳤다. 약 세 뼘 정도. 앉건 서건 눕건, 침대에 올라가건 의자에 올라가건 바닥에 서건 간에 프레미네와 지면에서의 거리는 일정했다. 덕분에 느비예트와 시선이 잘 맞았다. 높은 곳의 공기는 불편하다.
“곤란하군요.”
움찔, 하고 프레미네는 몸을 떨었다. 확실히 이렇게 계속 끌어안고 있다면 곤란할 것이다. 그렇지만 떨어지면 더욱 위로 몸이 떠오를까 두려웠다. 자기도 모르게 울먹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왜 짐이 되어버린 걸까.
“저기, 미안해요…….”
“음? 아니, 프레미네 군을 탓하는 게 아닙니다. 프레미네 군 주변에서 이상을 찾을 수가 없어서 하는 말이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우우…….”
앓는 소리를 내며 바르작거리는 등을 토닥이며 느비예트는 프레미네를 안심시키려고 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단서가 없었다. 입맞춤으로 내부 원소를 확인해 보았지만, 그 또한 특별히 이상한 점은 찾을 수 없었다. 프레미네는 훌쩍거리며 느비예트에게 조금 더 달라붙었다.
“이래서는 집에도 못 돌아가요…….”
“그렇군요. 가족분들이 걱정하실 테니, 일단 전갈을 보내두도록 하지요.”
“응…….”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렇지만, 둥둥 떠서 이상해요…….”
어려운 말이지만, 불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을 담아 프레미네를 살며시 제 앞으로 옮겼다. 잠시 떨어진 탓에 잡을 거라고는 느비예트의 손뿐인지라, 프레미네는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런 프레미네를 빤히 쳐다보다가 느비예트는 문득 떠오른 생각에 입을 열었다.
“얼굴이 가깝군요.”
“……예?”
“평소보다 프레미네 군의 표정이 잘 보입니다.”
“…….”
머뭇거리다가 프레미네는 다시 느비예트의 목을 끌어안았다. 제 뺨을 느비예트의 뺨에 문지르면서.
“……부끄러운 소리 하는 거, 싫어요…….”
“그렇군요. 실례했습니다. 일단은 계속 이렇게 있을 수도 없으니, 조금 참아주십시오.”
필사적으로 달라붙는 프레미네를 가볍게도 떼어낸다. 그러더니 느비예트는 제 머리카락을 묶은 리본을 풀어서 프레미네의 오른 발목에 묶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프레미네는 약간이지만 지면과 가까워졌다.
“다행히 오늘은 잡혀있는 외부 인사와의 예약이 없습니다. 불편하겠지만 서류 작업이 끝날 때까지 집무실에 함께 있도록 하지요.”
무슨 일이 더 생길지 모르니, 라는 말은 삼켰다. 불안을 늘려서 좋을 게 없었으니까. 느비예트는 새 리본을 꺼내 머리를 정돈했다. 프레미네에게 묶어준 리본은 물 원소의 「무게」를 실었다. 실수로 원소를 압축해 둔 힘이 넘치기라도 하면 멜모니아궁이 홍수 날 정도의 양이었다. 평소에 입던 옷은 되 입히기가 너무 불편했기 때문에 준비되어 있던 프레미네 몫의 여분을 찾아 입혔다. 리본을 쉽게 풀 수는 없었기에 부츠도 신길 수 있을 리가 없어서, 발을 포함한 맨다리가 그대로 드러나는 게 느비예트의 눈에 심각하게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쩌랴.
“지금도 부유감이 불안합니까?”
손을 잡고 1층으로 내려가면서 느비예트가 확인하자 프레미네는 조심스레 고개를 저었다. 찌든 표정의 공무원들이 느비예트에게 인사하면서 프레미네를 흘깃흘깃 보았으나, 신경 쓸 여유가 없어서인지 시선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집무실에 도착하자마자 느비예트는 책장을 뒤지더니 책 한 권과 서류철, 그리고 빈 종이와 펜을 프레미네에게 건넸다. 받아 들어 놓고도 눈만 깜빡이는 프레미네를 보고, 느비예트는 작게 웃었다.
“일하는 저는 평소보다 지루한 사람으로 느껴지실 겁니다. 필요하다면 다른 걸 찾아도 좋으니, 이곳에 있는 책은 편하게 봐도 좋습니다.”
뒤늦게 깨달았다. 서류철은 종이를 받치라고 준 것이었고, 종이는 낙서라도 하라고 준 것이었다. 책은 말할 것도 없었고. 그대로 프레미네의 머리를 쓰다듬고 책상으로 향하는 느비예트를 보니, 잊어버린 것도 생각이 났다.
“자, 잠깐만요.”
“음?”
지금 이런 걸 말해도 되는 걸까. 하지만. 프레미네는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시선을 피했다.
“오늘 굿모닝 키스……, 안 했어요.”
그러자 느비예트가 작은 소리를 내면서 웃었다. 다가오는 기척에 고개를 들면 아까보다 조금 낮은 곳에, 그러나 평소보다는 높은 곳에 느비예트의 얼굴이 있었다. 긴 속눈썹, 예쁜 눈동자. 아까 높이 있었을 때 잘 봐둘걸. 후회해도 리본의 무게는 이미 프레미네를 끌어내렸다. 가까이 다가오는 고운 얼굴이 프레미네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프레미네도 느비예트의 뺨에 입을 맞췄다. 행동은 자연스레 포옹으로 이어졌다.
“눈에 닿지 않는 곳에 가지 마십시오. 제가 견디지 못할 것 같습니다.”
솔직히 말해 장담할 수 없었지만, 프레미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 다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프레미네의 허벅지에 자리 잡은 신의 눈이, 푸른 빛이 섞여 일렁이고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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