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경

빗물이 맺힌 차창 너머로 미술관 건물이 내다보였다. 흐린 날씨로 탁해진 회색 외벽에 전시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고풍스러운 건축양식을 두르고 한 블록 전체를 차지한 미술관은 평소 상당한 위압감을 자랑했지만, 지금은 현수막 뒤로 애써 거대한 몸집을 숨기려는 듯했다. 헛웃음을 내뱉은 형사가 차에서 내렸다.

젖은 현수막에는 며칠 전까지 이어지던 특별 전시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저명한 유화들 가운데 가품 하나를 섞어놓고, 전시를 관람한 뒤 무엇이 가짜였는지 맞추도록 기획된 전시였다. 정답을 맞춘 사람에게는 아마 포스터나 무료 관람권 따위였을 상품이 주어질 예정이었다. 소위 그림 볼 줄 아는 사람들의 허영심을 자극한 마케팅으로 인해 많은 인파가 몰려들었고, 혼란을 틈타 작품 하나가 사라진 것이다. 

형사가 미술관 안으로 들어섰다. 젖은 신발에서 물 자국이 비어져 나와 잘 닦인 복도 바닥을 더럽혔다. 원래 이렇게 무례한 사람은 아니었건만, 쌀쌀한 휴일 아침에 들어온 호출이 그의 심기를 망쳐놓은 탓이었다. 고무 밑창이 바닥을 짚으며 울리는 짧고 날카로운 소음이 그의 신경을 더욱 곤두서게 만들었다.

그는 벽에 걸린 그림들을 곁눈질로 무성의하게 지나쳤다. 복도를 따라 걸린 초상화들이 그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촉감이 느껴질 만큼 사실적으로 묘사된 의복과 장신구를 걸친 채 기이하게 고정된 시선. 형사는 텅 빈 그림 속 눈을 피해 정면을 응시하며 걸음을 서둘렀다. 

사건 경위서에 따르면 범인은 몇 달 전부터 이어져 온 미술품 도난 사건들과 동일범일 가능성이 높았다. 뉴스는 이 '전문 도난범'의 소행을 떠들썩하게 보도했고, 시청자들은 벌써 다음 표적은 어디의 무엇이 될지를 점치고 있었다. 그는 피곤한 눈두덩이를 지그시 눌렀다. 전시 관계자들의 증언을 받아두고, 물증이 남았는지 살펴보고, 형식적인 보고 절차를 거치고 나면 다시 쉴 수 있으리라 믿으면서.


2층 전시실에 들어선 형사는 습관적으로 내부를 훑어보았다. 저들끼리 수근거리던 큐레이터들의 대화가 잠시 끊겼다가 도로 이어졌다. 바닥의 자국을 조사하던 얼굴만 아는 동료에게 가볍게 눈인사를 한 뒤, 그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전시실 벽 한 면을 빼곡히 덮은 그림 액자 중 하나가 비어있었다.

"외부인 통제는 잘 되고 있는 건가?"

형사가 툭 던진 질문은 비아냥거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관람용 벤치에 앉아 감탄하느라 여념이 없던 청년은 그제야 고개를 가볍게 까딱였다. 아직 앳된 티가 남아있는 얼굴은 흥분감으로 들뜬 모습이었다. 그는 옆자리에 앉은 형사의 탐탁찮은 표정에도 개의치 않고 도로 감상을 계속했다. 청년이 다른 곳에 정신이 팔린 사람 특유의 몽롱한 목소리로 물었다.


"없어진 그림이 뭔지 아시나요?"

주머니에서 경찰수첩을 꺼내 뒤적이던 형사가 대답했다. 렘브란트의 야경. 수첩을 흘긋대던 청년이 슬쩍 웃었다. 조사하고 계셨군요.

"그건 제가 그린 그림이에요."
"뭐라고?"
"그게 가품이었어요."

자신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진 형사가 청년을 돌아봤다. 청년은 겸손하게 대답하려고 노력한 듯싶었으나 그다지 효과는 없었다. 쟁쟁한 작품들을 훔친 도난범이 이번에는 제 그림을 가져갔으니, 애송이 가품 화가로서는 신나는 일이겠지. 빌어먹을. 


"왜 진작 경찰에 말하지 않았지? 뉴스에서는..."
"미술관의 보안이 뚫린 건 마찬가지라서요. 제 그림은 다른 작품들과 같은 보호를 받았거든요."

어제 만났던 경찰에게 이야기했는데요. 못 들으셨나요? 그는 재잘대는 청년의 이야기를 반쯤 흘려들으며 상황을 파악하려고 애썼다. 범인이 가품을 가지고 있는 편이 수사에도 더 유리하겠지. 머리로는 이해가 가면서도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던 그는 상대를 재차 추궁했다.

"그 작품은 단순한 야경이 아니야. 오랜 세월 동안 천천히 밤으로 깊어간 작품이라고. 범인은 전문가인데, 그가 염료의 차이를 몰랐을 것 같나? 간단한 검사로도 알 수 있는 사실이야."
"리드 화이트와 안티몬산의 납을 황에 반응시켰어요. 염료 구성 성분이 바뀌었을 수도 있고, 빠른 반응을 얻어야 했으니 아주 같지는 않겠지만..."

그는 기억을 더듬어 가며 고민하던 가품 화가와 눈이 마주쳤다. 청년의 눈은 초상화의 그것과 닮아있었지만, 비어있지 않았다. 


"형사님도 그림을 잘 아시네요."



비슷한 글 여기저기 올렸던 적 있습니다
근데 이제 내가 찾을 길이 없었던
화학 어쩌구는 틀릴지도 몰라요 대충 구글 검색한 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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