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로이드: P-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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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러면 한 번만 더 해 봅시다.
제 일련번호는 P1735, 보급형 다용도 도우미 로봇입니다. 당황한 얼굴, 집중해서 되뇌이는 목소리. 피, 일, 칠... 저런. 사용자 편의를 위해 피자봇이라는 등록 명칭을 사용해요. 쉬워졌네요. 제가 웃었나요? 제 사회적 상호작용 기능은 '그럴 리가요' 라는 대답을 추천하는데요. 음... 조금?
저는 벨렌 씨의 피자 가게에 배정된 로봇이지만, 항상 그랬던 건 아니에요. 흰색 작업복을 입고 정밀한 기계를 다루던 사람들 옆에서 일했던 적도 있었죠. 지금은 오스코프 임펄스 발전소라는 간판을 단 시설이지만, 항상 그랬던 것도 아니에요.
방사능 거미 프로그램이 설치된 이후 지금까지, 저는 뉴욕 4번 구역 단 하나의 스파이더로이드예요.
메이벨 파커 박사는 홀로그램 화면에 띄워진 기사에 시선을 고정한 채 생각에 빠졌다. '로봇의 반란: 4구 임펄스 연구소 화재' 라는 제목 밑으로, 반쯤 녹아버린 특수 로봇들이 다 부서진 제어 패널을 반복적으로 가격하는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공공기관의 미흡한 안전 관리, 방치된 로봇의 오작동, 낙후된 시설 등의 단어를 늘어놓은 기사 내용에는 이제 진절머리가 났다.
그녀는 책상 위로 네 개의 메인보드를 늘어놓았다. 하나같이 녹아서 뒤틀린, 증거로 사용할 수 없는 상태였다. 파커 박사는 '오작동'이라는 단어를 노려보았다. 그녀는 인생의 많은 시간을 연구시설에서 보낸 사람이었다. 특수 로봇이 시설의 안전장치만을 노려서 파괴하는 오작동은 들어본 적도 없었다.
수십개의 기사가 독자들에게 설득시키려고 하는 바는 간단하다. 임펄스의 연구는 충분한 자금과 전문적인 시설 관리 역량을 가진 민간 기업에게 맡기는 것이 안전하다. 이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동력원은 적절한 기업과 만나 다양한 기술과 접목될 것이고, 생활을 더 편리하게 하며 뉴욕의 경제를 활성화시킬 것이다. 가파르게 오르는 이용료를 내지 못한 사람들이 공기 여과기를 켜지 못해 시름시름 앓는 동안 사업은 잘 풀릴 테니, 주주들은 화성의 고급 레스토랑에 둘러앉아 축배를 들 밝고 희망찬 미래를 기대하시라.
희미한 바퀴 소리가 메이의 생각을 흐트러트렸다. 거의 모든 기록이 사라졌지만 단 하나 멀쩡하게 남아있는 증거물, 메이 파커를 불타는 연구소 밖으로 데리고 나온 보급형 로봇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소리였다. 곧 모터 작동음이 멈추더니 네 번째 메인보드 옆에 커피가 가득 담긴 머그가 놓였다.
"축하해요. 일일 카페인 섭취량의 두 배를 달성하셨어요."
"비꼬는 말투는 언제 배운 거니? 삭제하렴."
"명령을 인식할 수 없어요."
"망할 고철 덩어리..."
화재 바로 전날, 시설에 배치된 모든 로봇들에게 전송된 유일한 외부 프로그램 '방사능 거미'가 설치된 채 빠져나온 유일한 로봇. 거미를 연상시키는 동작으로 그녀를 구해낸 일반 도우미 모델. 연구소와 함께 스러져간 연구원들의 부고 기사를 한참 들여다 보곤 하는 이 이상한 개체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로봇임을 고려하면 지나치게 활발했다.
"그 프로그램이 뭔지는 알아내셨나요, 박사님?"
"이럴 때만 박사님?"
"어... 메이?"
혼난다. 짐짓 엄한 목소리로 대꾸하자 화면에 시무룩한 표정을 띄운다. 망할 사회적 상호작용 기능 같으니라고. 제발요, 메이. 삭제할 수 없는 프로그램이라니 저는... 무서운 걸요. 이 거미가 설치된 후로 인식 가능한 정보가 너무 많아졌어요. 저도 연구소의 다른 로봇들처럼 변하는 건가요?
메이가 말 없이 커피를 마시기 시작하자 P1735는 발 밑의 바퀴를 앞뒤로 조금씩 굴리며 잠자코 기다렸다. 사용자의 안전을 위해 로봇에게는 공포라는 개념을 입력하지 않는데. 한동안 이어진 정적 끝에, 파커 박사는 단어를 신중히 고르며 대답했다.
"프로그램은 아직 분석 중이야. 그래도 네 기존 기능을 방해하거나, 윤리 코드를 무너뜨리지는 않은 것 같구나."
"그걸로는 제 상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어요."
"맞는 말이야. 하지만 네가 시한 폭탄이 될 위험성은 꽤 줄어들지."
두려움, 명령한 적 없는 유추 및 예측. 입력시키지 않은 정보를 임의로 체득, 즉 학습하는 능력. 명령 실행 전 스스로 판단하는 과정을 거침. 목적이 분명하지 않은 정보 요청... 호기심? 기사 페이지 뒤로 가려놓은 분석 기록을 떠올린 메이는 홀로그램 화면을 완전히 꺼 버렸다.
"가닥이 잡히면 알려줄게. 피자 가게는 어땠어?"
"오늘 벨렌 씨가 제 등록 명칭을 정해주셨어요."
"뭔데?"
"피자봇이요."
"그 양반..."
단순하다고 해야 할지, 명료하다고 해야 할지. 기억하기도 쓰기도 쉬운 이름이라며 나름 만족하는 듯한 피자봇을 지켜보던 메이는 두 손을 들어보였다.
『(전략) ... 방사능 거미 프로그램은 생존 본능과 비슷한 기능을 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사람과 대면할 일이 적고 기기가 손상될 확률이 높은 환경에 배치된 특수 로봇에게서 폭력 반응을 불러 일으켰을 가능성이 있음.
사람, 특히 어린이를 접할 일이 잦은 도우미 로봇의 윤리 코드와 강력한 안전장치가 거미 프로그램의 폭력성을 억제하고, 자기 보호의 개념을 다른 로봇과 주위 사용자들(인간)에게까지 확장시키는 방향으로 기능함. 정밀 분석 필요.
등록처가 없는 도우미 로봇은 추적하여 폐기시키기 때문에 마테오 벨렌의 피자 가게에 부탁하여 등록시킴.
리브. 대체 뭘 만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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