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이 동안이라는 건

텐마 츠카사가 동안

마지막으로 쉬었던 게 언제였더라, 루이는 오랜만에 거실 소파에 몸을 뉘었다. 근래에 감사하게도 대극장에서 공연이 예정된 유명한 극의 연출에 총책임자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대극장이라는 이름의 무게도 그렇지만, 연출가라는 직함을 가진 이상, 맡은 연출에는 최선을 다해야지만 성이 풀리니, 현장에 가지 않는 날에도 자신의 방 책상 위에서 계속해서 연출 안에 대한 고민을 골똘히 하는 것은 루이에게는 당연한 수순이였다. 때문에 당연하듯 철야는 기본, 식사도 빵이나 주먹밥 등 간단한 것으로 때웠으며 간혹 아예 젤리로 연명하던 날도 더러 있었다.

휴일에도 책상에 앉아 도구를 재차 검사하거나 정해진 집합 시간보다도 먼저 도착해 현장에서 안전 점검을 하는 등 신체와 정신의 피로는 누적될 대로 누적되는 것 또한 당연했다. 동거하던 제 연인, 츠카사는 이를 꽤나 걱정하였으나, 자신에게도 할당받은 일이 있으므로 오롯이 연인의 건강만을 신경 쓸 수는 없었기에,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에서 루이를 도와주곤 했다. 자신의 아침 식사를 만들 때, 1인분 만큼을 더 만들어서 일어났을 때 바로 먹을 수 있게끔 준비해두거나, 바쁠 때 간단하게 섭취할 수 있게끔 루이가 자주 먹던 라무네나 젤리 등을 주문하여 루이가 쉽게 볼 수 있는 위치에 놓곤 했다. 뿐만 아니라, 부실한 식사량에 곤두박질칠 영양상태를 염려하며 아침밥을 먹고 난 뒤 챙겨 먹으라며 성인 남성용 멀티 비타민 한 통 또한 준비해두었다.

루이는 자신 또한 바쁜 와중에도 이리 챙겨주는 제 연인에게 감사해했다. 자신도 알 만큼 자신의 몸을 혹사하는 와중에도 용케 쓰러지지 않은 것은 제 연인의 덕이 매우 컸으리라. 아는 사람 치고 나아지는 행동은 없었으나 어쨌든 루이는 츠카사에게 마음 깊이 고마움을 느꼈다.

 

* * *

대극장에서의 쇼는 성황리에 마쳤고, 한동안 기나긴 휴식을 가지게 된 루이는 츠카사가 촬영을 위해 집을 나가 있는 사이에 거실 소파에 몸을 뉘며 쉬고 있었다. 한동안 자지 못한 잠을 몰아서 자느라 점심시간 마저 지나간 느지막한 오후에 일어난 루이는 오전에 집을 나서는 츠카사를 배웅할 수 없었다. 겨우 맞은 휴일 첫날에서 연인의 그림자조차 마주하지 못한 채 보내버린 것이 못내 아쉬웠으나, 이참에 보지 못했던 츠카사의 촬영분이나 몰아서 볼 생각이었다. 전원이 켜진 TV 화면 속에서는 때마침 타이밍 좋게 제 연인의 모습이 떠오르고 있었는데, TV로 마주한 연인의 모습은 루이에게 꽤 큰 충격을 남겼다.

 

텐마 츠카사, 이제는 일본에서 꽤 이름을 떨친 배우였다. 작품에 쏟는 열정과 현장에서 같이 작업하는 배우와 스태프들을 살뜰히 챙기는 성품, 엄청난 데시벨을 자랑하는 성량, 학창 시절에 괴짜로 통했으나 대부분의 학우들과 준수한 교우관계 가졌기에 그와 얘기 좀 나누어본 옛 동창들은 그의 학창 시절 일화들을 인터넷에 남기기도 했다. 때문에, 그의 졸업사진은 인터넷에 이미 몇 번 오르내리기도 하였는데, 때마침 텐마 츠카사를 논하던 TV 화면 속에서 연예인을 다루던 예능 프로그램은 그의 졸업사진과 최근 촬영에 마치고 상영 중이던 드라마 속 출연 부분을 함께 보여주었는데, 루이의 충격은 두 사진의 간극에서 비롯되었다.

 

달라진 게 없다. 이제는 저나 연인이나 둘 다 20대 후반에 머물고 있으며, 얼마 안 가 30대에 오를 나이임에도 텐마 츠카사의 얼굴은 최근 사진과 고등학생 시절 사진을 나란히 두어도 몇 달 사이의 간극만이 짐작될 뿐, 십 몇 년 간의 간극이라곤 생각지도 못할 차이였다. 루이 또한, 제 연인이 동안이라는 인식은 하고 있었다. 잡아 오는 배역의 6할은 20대 초반의 청년, 3할은 아직도 학생 역할에 심하면 중학생까지도 맡지 않았던가. (1할만이 제 나이와 맞먹는 배역이었으나 그 마저도 동안이라는 설정이 따라붙곤 했다) 그러나 그것은 메이크업의 영향과 대중들에게 박힌 텐마 츠카사라는 배우의 인식의 탓도 있으리라 생각했거늘. 또한, 옆에서 매일 본다면 그 차이를 실감하기가 어렵다고들 이야기 했기에 제 연인의 액면가가 학창 시절에 비해 크게 변하지 않는 것은 매일매일 옆에서 바라보며 오랜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루이는 소파에서 곧장 일어나 화장실 세면대로 향했다. 세면대에 배치된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살폈다. 눈 밑에는 다크서클이(며칠간의 철야로 인해), 입 주위에는 수염 자국이(하루 종일 잠만 자느라), 피부의 상태 또한 영 좋지 않아 보였다(최근 비루했던 영양섭취로 인해). 루이는 꽤 큰 위기감을 느꼈다. 학생 때만 하더라도 며칠 간의 철야로 인해 이리도 초라한 몰골(그럼에도 평균을 웃돌 외모였다)이 되진 않았거늘, 루이는 거울 앞에서 학창 시절의 자신과 20대 후반에 도달한 자신의 차이를 뼈저리게 깨달았다. 텐마 츠카사는 배우다. 게다가 현역 배우다. 다시 말해, 그의 옆에는 젊은 청춘의 신인 배우나, 오랫동안 빠지지 않는 관리와 셀 수 없는 경험으로 관록이 느껴지는 중년 배우 등 어찌 되었든 제 모습을 꾸미는 것과 어떻게 하면 제 외관을 훌륭하게 뽐낼 수 있는지에 대해 능통한 사람들이 모여있다는 것이다. 심각함을 느낀 루이는 재빨리 소파 옆 협탁에 엎어두었던 제 핸드폰을 다시 들고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빠르게 검색했다. '20대 남성 화장품 추천목록'

 

여러 미디어에서 중복으로 추천하던 소비자 평이 좋은 화장품들을 체크한 뒤 루이는 외출 준비를 빠르게 마치고 집을 나섰다. 화장품 가게에 도착하자, 입구에서부터 보이는 손님의 9할은 여자 손님이었다. 그나마 있던 1할의 남자 손님도 연인과 함께 온 것으로 보였다. 이 시점에서 루이는 익숙지 않은 화장품 가게라는 관문에 차라리 돌아갈까 하는 생각을 일순간 했으나, 지금도 매력 넘치는 타 배우들 사이에서 촬영을 하고 있을 제 연인이 떠올랐다. 애초에 연인은 배우라는 직업 상 관리를 꾸준히 하는 편이었으니 이제라도 따라 관리하면 적어도 크나큰 격차가 생기는 것은 면할 것이라 생각했다. 이에 루이는 다시금 각오를 다지며 가게에 들어서면 큰 소리로 “어서 오세요! 필요하신 게 있으시면 불러주세요 고객님!”이라는 일 잘하는 점원의 멘트에 영 익숙치 않은 이 상황에서 재차 도망치고 싶어졌으나, 제 연인을 생각하며 참아냈다. 복잡한 매장 진열대에서 사야 할 품목들을 재빠르게 골라 구매한 뒤 돌아가려 했던 루이는 익숙지 않은 진열대에서 10분 동안 헤매다 스스로 찾는 것을 포기하고 근처에서 매대를 채우던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하며 화장품을 구매했다. 신속하게 계산을 마친 루이는 집에 돌아와 자기가 사 온 물품들을 늘어놓으며 미리 작성과 목록과 하나하나 비교하며 확인했다. 제대로 구매했음을 인지한 후에는 서랍 구석에 대충 욱여넣은 뒤, 촬영을 마치고 돌아오고 있을 제 연인을 마중하러 나섰다. 오늘은 이미 늦어버렸으나 내일부터는 가벼운 운동이라도 시작해야지 하는 다짐과 함께.

 

* * *

긴 촬영 대기 시간을 보내던 중, 츠카사는 최근 꽤나 이상해진 제 연인을 떠올렸다. 평소에 불규칙한 생활만을 일삼던 이가 난데없이 오전(정오가 되기 전 아슬아슬한 시각)에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그뿐만이랴, 평소에는 제가 챙겨주어야 마스크팩, 립밤, 핸드크림 등을 사용하던 이가 이젠 잔소리를 하지 않아도 저 스스로 찾아서 사용하니 이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는 방금 전, 오랜만의 통화하는 친동생이나 다름 없는 후배에게서 이전에 길에서 카미시로 선배를 만났다기에 츠카사는 그때가 도통 언제냐 물으니 토우야는 제가 일하러 나간 시간을 알려주었다. 평소에 제가 나가자고 하면 군말 없이 따라주던 연인이었으나, 결코 먼저 나서자고 말하는 법이 없었던 이가 내가 없는 사이에 혼자서 외출을 하고 돌아온다니? 츠카사의 마음속에서 의심이 싹 트는 순간이었다. 촬영이 진행되는 순간 만큼은 잠깐이나마 잊을 수 있었으나, 촬영이 끝나고 나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불안감은 도통 덜어질 생각을 못했다. 때문에 츠카사는 마지막 촬영까지 마음 한쪽에 불안감을 떠안은 채로 진행할 수 밖에 없었다.

촬영을 마치고 큰 걸음으로 저의 집으로 향하던 츠카사는 현관문을 열어젖히자마자 어서 오라며 저를 향해 팔을 벌리는 연인을 벽 한쪽으로 밀어내고 팔을 뻗어 연인을 제 팔에 가둬둔 채로 쳐다보며 물었다. “루이... 혹시나 해서 물어 보는 거다만...” 머뭇거리며 꺼내어진 뒷말에 제 연인의 표정에 방금까지 떠오르던 반가움은 어디 가고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연인은 그게 무슨 말이냐며, 무슨 일이 있었든 바람은 오해라며 황급히 제 어깨를 붙잡고 다급히 말했으나, 츠카사는 여태 변해버린 연인의 행동을 낱낱이 읊었다. 속 내에 쌓인 불안을 쉬지 않고 전부 꺼내는 동안 현관의 센서 등이 2번 꺼졌다가 켜졌다.

루이는 츠카사가 꼽았던 저의 행동들에 대해 하나하나 사실대로 털어놓으며, 결론은 최근 바빴던 일정 탓에 몰골이 말이 아니라, 그것을 신경 쓰고 있었다며 심지어 츠카사의 곁에는 잘생긴 외모를 가진 이들이 곁에 널려있을 테니 그 불안감에 더 잘 보이고 싶어 그랬던 것이라며 결코 바람 같은 게 아니라며 상세히 자신의 행동의 이유를 설명했다.

연인에게서 모든 일의 정황을 들은 츠카사는 놀란 눈이 되어 자신이 크나큰 오해를 했다고 사과를 건네며 그렇지만 나는 네가 설령 하루아침에 못난이 난쟁이가 되더라도 타 배우들 보다 너를 사랑하고 있을 거라는 둥 콩깍지가 제대로 낀 사람처럼 장황하게 사랑 고백으로 말을 이어가며 제 연인을 품속에 꼬옥하고 안아주었다. 난데없이 현관이라는 장소에서, 연인에게 사랑 고백을 듣던 루이는 그 말에 재차 감동하며 제 연인은 이리도 다정한 로맨티스트라고 생각하며 자신을 안아주는 사랑스러운 연인의 등에 자신도 팔을 두르며 둘은 영원에 대해 주절주절 떠들었다. 츠카사가 현관에서 미처 신발도 벗지 못한 채 두 사람의 공간에서 계속해서 떠들 동안 현관 등의 센서는 3번이 더 꺼졌다가 켜졌으며 한 번 더 꺼졌을 때 비로소 이제 들어가서 쉬자며 이끄는 루이에 츠카사는 근심이 사라진 낯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다음날, 루이와 나란히 휴일을 맞이한 츠카사는 좋은 생각이 났다며, 냉장고에서 알록달록 색도 이쁘고 건강에도 좋지만 맛없는 채소들을 한 바가지 꺼내 들며, 루이를 식탁 의자에 앉힌 채, 채소들이 가진 영양소와 그것들이 피부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인터넷에서 조사한 정보들을 빠짐없이 읊었다. 결론은 채소를 먹자는 것이었다. 루이는 사색이 되어 거절하려 했으나, 자신을 쳐다보며 이제는 슬슬 우리도 건강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때가 왔다며 함께 건강하게 오래오래 같이 살자며 권하는 연인을 차마 거절하기엔 쉽지 않았다. 바로 어저께 현관에서 함께 영원을 논하지 않았던가.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움직이지 않는 고개를 겨우겨우 움직여 위아래로 끄덕이니 확연하게 기뻐하는 츠카사의 낯이 보였다. '그래... 츠카사군이 기뻐한다면'하는 생각도 잠시, 츠카사는 바로 꺼내 들었던 채소를 루이에게 들이밀며 원하는 메뉴가 있으면 만들어 주겠다며 기대에 찬 눈빛으로 루이에게 물었으나, 애당초 채소 따윈 어떤 요리로 변하든 관심 없으니 거절하고 싶었던 루이로서는 제 연인을 향해 그저 낮은 침음을 내뱉을 뿐이었다. 난색을 보이는 루이에게 츠카사는 그러면 조금이라도 좋으니 맛에 익숙해지자며 생당근을 작게 채를 썰어 하나 건네었다. 난데없이 눈앞에 들이밀어지는 당근에 노골적으로 싫은 표정을 짓는 루이였으나 이에 개의치 않고 가까이 내밀어지는 당근에 마지못해 끝부분만을 살짝 집어 받아들였다. 루이의 눈에 보이는 당근은 벌써부터 흉물스럽기 그지없었으나, 조금이라도 노력하자는 연인의 말에 용기 내어 새끼손톱 크기만큼 입에 넣고 씹었다. 이에 츠카사가 어떠하냐고 묻기도 전에 잇속으로 들어간 당근은 잠깐도 입 안에 머물지 못하고 3초 만에 싱크대 바닥으로 내뱉어졌다.

루이는 생생하게 느껴지는 아삭거리는 식감, 씁쓸한 맛, 수분감, 씹을 때 목구멍에서 코로 올라오듯이 풍기는 채소 냄새 따위에 딱 한 번 씹었을 뿐임에도 헛구역질을 되뇌었다. 먹은 건 조금만치도 없었으나 입 속에 남은 채소의 맛은 가히 충격적이었는지 입을 헹구기를 반복했다. 생당근은 달다고 하던 츠카사의 말은 거짓임이 분명했다. 이제는 주위의 모두가 포기하여 먹을 일이 없었기에 잊고 있었던 채소의 쓴맛이 재차 떠오르자 루이는 끙끙 앓기 시작했다.

 

츠카사는 영 상태가 말이 아닌 연인을 소파로 끌어와 제 무릎에 눕히며 남은 당근을 씹어먹었다. 남은 손으로 연인의 머리를 쓰다듬자, 아래에서는 끙끙거리는 소리만 들려왔다. 오랜 기간 저와 생활하며 채소와 마주 보는 것쯤은 괜찮아진 제 연인이 여태껏 제가 몰래 넣은 채소는 눈치채지도 못한 채 잘만 먹더니 생채소 한 번에 이리 될 줄은 몰랐다며 츠카사는 고등학교 때만큼이나 채소를 거부하게 된 루이의 편식에 한숨을 내쉬며 앞으로도 형태가 보이지 않을 만큼 다져야만 제 연인에게 채소를 먹일 수 있겠다는 사실에 텐마 츠카사는 가슴 속 깊이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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