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온
겸 일기. 아마도.
7시쯤 이른 잠에 들었다가 깼다. 냉장고에서 저녁으로 먹다 남은 닭발을 꺼내 뚜껑을 뜯어냈다. 옆에는 냉수 반 컵이 담긴 반투명한 머그잔. 갓 꺼내 차가운 닭발은 생각보다 맛있었다. 두 개쯤 먹자 슬슬 무언가 매움을 중화시켜 줄 만한 것을 먹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물은 기본, 거기에 냉장고에서 아몬드 치즈를 꺼내왔다. 가장 좋아하는 맛이라 그런지 치즈는
친구가 죽었다. 경찰이 조사를 하고, 장례식이 열렸다. 눈물을 쏟아내는 그 애의 어머니를 뒤에서 안았다. 나는 가장 친한 친구였기에 가장 오랫동안 조사를 받았다. 지금 그 애의 책상에는 하얀 국화꽃이 한 송이 물도 없이 멀건 화병에 꽂혀있다. 앞으로 며칠에서 몇 주, 저 꽃이 책상 위에 버티고 있는 동안은 누구도 책상 가까이 가지 않을 것이다. 꽃이 그 애
연보라색 꽃이 하늘거린다. 얇은 잎이 열매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사방은 온통 연보라색이다. 나는 그 속을 천천히 거닌다. 발을 내디딜수록 온종일 신경을 거슬리게 했던 두통이 사라져 간다. 기억이 희미해져 간다. 이리저리 날 뒤흔들어댔던 온갖 감정들도 서서히 소멸해 간다. 나는 걷는다. 옅은 미소를 띠고, 손끝으로 꽃잎을 쓰다듬으며 계속해서 걷는다. 나
아지트가 하나 있다. 눈을 감고 평평한 길, 울퉁불퉁한 길, 질퍽한 길, 갈라진 길, 부드러운 길을 순서대로 걸어가자 커다랗고 하얀 나무문이 보였다. 주머니 속 열쇠를 꺼내 들었다. 고리에 달린 장식이 햇빛에 반사돼 오색 빛깔로 영롱히 변한다. 조그만 열쇠를 구멍에 넣고 찰칵 소리가 나게끔 돌리자, 문이 슬며시 열렸다. 문 안쪽의 공간은 마치 바깥세상과
냉장고 문을 열고 조그만 원통형 상자를 꺼냈다. 눈을 향해 내리쏟는 빛을 무시하며 뚜껑을 열자 끝이 둥그런 큐브형 초콜릿들이 모습을 보였다. 곧장 하나를 집어 입 안에 넣었다.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쓴맛이 퍽 마음에 들었다. 문을 닫고 그대로 방으로 왔다. 슬리퍼를 신지 않은 맨발이라 그런지 오는 내내 바닥이 조용했다. 올려달라고 꼬리를 치는 강아지와 함께
냉장고 구석에 처박혀있던 호두 파이를 꺼냈다. 접시에 올려놓은 뒤 비닐을 씌워 전자레인지에 30초 간 돌렸다. 데워진 파이를 방으로 가지고 와 조용히 포크를 집었다. 파이가 혀 끝에 닿자마자 진한 시나몬 향이 곧바로 파고들어왔다. 호두가 무심히 씹혔다. 정말이지 내 취향은 아니었다. 한 입 삼킬 때마다 자꾸만 누군가의 잔상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까맣게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