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계 로맨틱 만다라

후지마루 리츠카, 얼터에고 아시야 도만, 아크틱 서머

성견변옥 by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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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만, 이번에…… 즐거웠어?"

동시에 후지마루는 짧았던 불꽃놀이를 상기했다. 그러나 소년의 서번트는 조금 다른 기억을 떠올렸다. 막아서는 자신을 정면으로 올려다보던, 파랗고 맑은 눈을. 거기에 담긴 올곧은 별의 의지를, 집행하는 순교자의 각오를. 그는 주인에게서 미약한 만류로는 결단코 말릴 수 없는 결의를 보았고 심지어는 그것을 확인하는 순간 작게 전율하기까지 했다.

"예. 어울려 주신 덕분에, 무척이나."

질문과 대답 사이에는 약간의 간극이 있었으며, 자비로운 주인은 정적을 탓하지 않는다. 지금 드디어 두 사람은 같은 기억을 더듬었다. 내려앉은 어둠, 선상, 잡은 손, 쏘아 올린 불꽃. 바야흐로 한여름의 마리아쥬. 불꽃이 터지는 소리에 맞춰 도만의 유카타에서는 나팔꽃이 깜빡였다.



그때 도만은, 지기 위해 피어나는 꽃이 있을까요, 라고 물었다. 한순간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우고 떨어지는 위작의 꽃에 스스로의 인생을 비추어 보기라도 한 것인지, 노련한 마스터인 후지마루 리츠카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놀라지 않았다. "그게 목적이라면 괜찮지 않아?" 단지 예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던 것을 입에 담을 뿐이다. "결국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거잖아. 누구나 인생의 클라이맥스에서 꽃망울을 틔우고 싶어 하지만, 제대로 내려오는 순간이 포착되는 것도 나쁘지 않지." "그건 당신 의견인가요?" "글쎄, 어딘가에서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후지마루는 웃는다. 도만도 마주 웃었다. 소년은 말을 얼버무렸지만, 그가 직접 고심해서 만든 대답인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인류사의 굴레에서, 후지마루 리츠카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른바 패배가 확정된 레이스에서는…… 어렵사리 완주해 봤자 동화가 아닌 인생이 그렇게 아름답기만 한 채로 완결될 수는 없다고 알고 있으며, 그의 옆에 선 서번트는 바로 이와 같은 내리막길을 이미 걸어왔던 것이다. 행성이 원래대로 돌아온다 해서, 이미 소실된 것들을 새하얀 대지가 온전히 돌려 줄 기대라고는 하지 않았다. 우연찮게 가진 것 안에서 일이 잘 풀려 결국 빼앗긴 미래를 되찾는다 하더라도 영웅담의 주인공이 되어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 수는 없다. 지표의 다른 모든 인류가 표백 이전을 공백 없이 누릴 수 있대도, 이러한 업적을 이루어 버린 사람이 평범함을 되찾는 것은 불가능하단 것처럼 그건 이미 손에 닿지 않는 영역의 이야기로 변했다. 벌써 세계가 그를 눈에 담았다. 세계가 그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 최후의 공상을 절제한 다음, 이야기의 짧은 절정을 누리면 지옥의 저편까지 끝없이 추락하는 후일담이 그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 징벌을 연습하는 사람도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누군가에게는 그랬다. 

몇 번이나 꿈에서 본 풍경을 그리며 지옥 입구에서 석산을 꺾는다. 기다리는 사람에게 주기 위함이다. 변옥의 이름을 편취했던 주검, 악귀 나찰의 왕. 짐승의 아류이자 이윽고 밑바닥의 동반자가 되어 줄 악의 편린. 등 뒤에 언젠가부터 느껴지는 인기척을 향해 꽃송이를 든 손을 내민다. 꺾이기 위해 피는 꽃도 없겠지, 분명……. 허나 곧 시들 아름다움을 기쁘게 받아 줄 수 있는 이도 그 사람 외에는 따로 없겠다. 이 석산이 피안 너머에서 죽음을 먹고 난만히 피어나는 꽃이라면, 꼭 도만과 닮아 있었다.


"마스터,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는지요……."

덩치 큰 남자가 성큼 다가온다.

"글쎄, 네가 내 인생의 특등석에 앉아 있는 상상?"

"…무슨 농을 또 그렇게."

"농담이 아냐. 정말."

서번트는 감히 주인의 의중을 짐작하지 못했다. 알 수 없다면 생각하지 않는 편이 낫다. 작게 기운 고개는 금방 일으켜 세워진다. 그러면 치켜든 얼굴에는 늘 같은 웃음이 남아 있었다. 그 비소야말로 얼터에고로서의 그를 특징짓기에 부족함 없는 요소였다. 그럼 이제 가실까요. 다른 분들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악성을 부리기에 짐짓 무구해 보이는 소년은 대답 대신 손을 내밀었다. 캐스터 림보, 재정의된 아시야 도만은 주인의 손을 경건하게 받든다. 그렇다. 마치 언젠가의 예행연습처럼 신중한 몸짓이었다. 여러 주인을 섬겨 온 다른 별의 신의 사도, 자신만의 신을 만들기 위한 시도 도중 아예 자기 자신이 신이 되고자 했던 모독적 인물. 그러나, 그랬던 남자가 지금 그의 주인을 보며 짓는 표정에는 일종의 신앙심 비슷한 게 깃든 것처럼 보인다. 로맨스 하나 없는 청유와 승낙 끝에 이내 두 사람은 길을 떠난다. 이들의 지옥에는 나락을 비추는 자애로운 별빛 대신 검은 태양이, 그것의 인도를 따라 49재를 넘어 오래도록 육도를 헤맬 터다. 정토는 멀고 사랑은 없어도, 나름의 행복이 코앞에 있었다.

https://youtu.be/ucKEslSdHx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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