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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홍차에 독을 탔어.

키워드 - 네 홍차에 독을 탔어, HL

“네 홍차에 독을 탔어.”

덤덤한 목소리였다. 옅은 갈색 머리칼에 어울리는 녹빛 드레스를 차려입은 이가 부드러운 손짓으로 찻잔의 끄트머리를 매만지다가 느리게 고개를 들어 메이슨을 바라보았다. 케일리 헤올. 옅은 갈색 머리칼과 붉은 눈동자가 상징적인 연인이었다. 짙고 채도가 낮은 드레스 자락이 바람결에 살랑이는 것이 보였다. 메이슨은 제 앞에 놓인 찻잔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마치 ‘오늘 날씨가 좋네요’라는 얘기라도 들은 사람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찻잔에 아니면, 찻물에?”

“찻잔에 둥글게 발랐지. 이렇게.”

드레스와 같은 얇은 레이스 장갑을 낀 손이 그녀의 찻잔을 빙 둘러 매만지고는 떨어졌다. 아직 입도 대지 않은 찻물이 그 손짓을 따라 물결을 그리며 움직이는 것이 눈에 띄었다. 메이슨은 낮게 흠하고 목울대를 울리고는 천천히 그의 잔을 손에 들었다.

“그럼 이걸 마시면 나는 죽나?”

“그렇겠지. 내가 받은 게 올바른 독이라면.”

케일리가 그렇게 말하며 찻잔을 든 이를 바라보았다. 짙은 저녁해 노을과도 닮은 눈이었다. 지금 찻잔에 따라 놓은 색보다 좀더 채도가 높고 갈빛이 섞이지 않은 온전한 붉은 빛깔의 눈동자. 메이슨이 들어올린 잔은 입가에 다가져 가볍게 향을 맡아보고는 잔을 내려놓았다.

“그게 네가 원하는 건가?”

“…….”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메이슨이 남은 차의 잔향을 음미하며 색이 바랜 자신의 갈색 머리칼을 바라보았다. 케일리와는 전혀 다른 갈빛이었다. 밀빛에 가까우면서도 햇살 아래서도 금빛으로 산란하지 않고 그저 갈색으로 반짝일 뿐이었다. 눈 앞에 앉은 이의 머리칼이 햇살에 옅은 금발로 산란하는 것과는 다르게도. 그가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코끝에 남아있는 잔향을 흐트러트렸다. 홍차의 옅은 나무 껍질향과 베르가못의 향기가 그의 날숨과 함께 사라졌다.

“케일리 헤올.”

“메이슨 케이든.”

서로의 이름을 주고받고 오래된 연인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붉은 눈동자와 녹음이 드리운 눈동자가 서로를 마주했다가, 붉은 눈동자가 먼저 시선을 피했다. 시선을 어긋낸 케일리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테이블을 두번 툭툭 두드렸다. 멀어져 있던 사용인들이 이내 문 밖으로 더욱더 멀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달칵거리는 짧은 소음과 함께 그녀가 입을 열었다.

“넌 내가 원하는 건 뭐든지 다 내게 해주겠다고 맹세했지.”

“그리고 난 네가 원하는 건 뭐든지 다 네 발밑에 다 무릎 꿇게 만들어주었지.”

“그래, 그것들이 내 발치에서 비굴하게 구는 꼴이 볼만했었지.”

“내가 네게 방해 되는 존재인가?”

“그럼, 그걸 마셔줄거야?”

“네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그러나 끝내 마시라는 명은 떨어지지 않았다. 메이슨이 툭툭 찻잔을 두어번 두드린 후에 일렁거리는 찻물을 바라보았다. 케일리는 어려운 사람이었다. 지혜의 올빼미 헤올가의 골치덩이, 반푼이, 반쪽이라는 오명에 뒤엉켜 가장 비참하게 버려진 채로 늑대의 송곳니 케이든가에 거두어져 메이슨의 손 아래서 그녀가 받았던 모든 모욕을 되갚아주었다.

“지혜의 올빼미, 헤올.”

“늑대의 송곳니, 케이든.”

그리하여 가장 높인 곳까지 오른 자였다. 메이슨은 그녀의 명이라면 황제의 관마저도 그녀에게 바칠 각오가 되어있었다. 그는 그녀의 가장 유용한 말이었다. 체스판 위의 나이트였으며 제국의 받치는 네개의 기둥 중 하나로 나머지 한 기둥은 그녀 자신이었다. 두개의 기둥이 그녀의 발치에 있는 셈이었다.

“네가 죽었으면 좋겠어.”

그 말에 망설임없이 메이슨이 찻잔을 들었다. 짙은 녹빛의 레이스 장갑을 쓴 손이 움찔거렸다. 그녀가 포독스럽게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는 잔을 내려놓으라 손짓으로 명했다. 메이슨은 충실한 그녀의 개답게 그 말 역시 군말없이 따랐다.

“내 비참한 모든 시절이 네 얼굴을 보면 떠올라.”

“네가 바란다면 평생 네 앞에 나타나지 않고도 살 수 있어.”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내가 사랑하는 남자의 얼굴이 그곳에 있어서.”

그래서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지혜의 올빼미마저도 사랑이라는 감정 앞에서는 겨울 바람의 흔들리는 촛불과도 마찬가지여서 꺼지지 않고 흔들리기만 했다. 메이슨은 고개를 돌리는 케일리의 흐트러지는 머리결 하나에도 존경과 애정을 담은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사랑.

그 하나가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메이슨은 가장 비천하게 버려진 사생아의 보석같은 단면을 바라보았고 그녀를 거두어 키웠다. 그리고 케일리는 마치 순리처럼 그런 메이슨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메이슨은 늑대의 송곳니 아래 정통있는 모든 올빼미들을 물어뜯었으며 케일리는 그 모든 순간은 그의 뒤에서 직접 바라보았다.

“내 감정을 거세할 수 있는 독이 있다면 그 무엇보다도 좋겠지.”

“그러나 세상에 그런 건 없지.”

“그러니 네가 사라진다면 내 혼탁한 감정 또한 사라지지 않을까?”

“네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실험해볼 수 있지. 나를 대신할 자는 이미 마련되어 있고 그자는 나와 같이 네 발치에서 개처럼 엎드릴 거야.”

그자가 누구인지 케일리도 알고 있었다. 케일리와 같이 메이슨에게 거두어졌으며 그를 신처럼 여기는 이였다. 그러니 메이슨이 신처럼 여기는 케일리에게 그 누구보다도 충실한 메이슨의 대용품이 되어줄 이였다. 레이스 장갑이 느리게 입술을 훔치고 떨어져 나갔다. 그녀가 혀를 내어 입술을 핥으며 피처럼 붉은 입술을 달싹였다.

“그러나, 그 역시 내키진 않아. 난 네가 필요해.”

“케일리.”

답이 없는, 의미없는 대치였다.

메이슨이 나지막히 케일리의 이름을 부르자, 케일리가 작게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메이슨을 노려보았다. 그녀의 단정한 녹빛 드레스가 사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그에게로 기울어졌다. 입술이 맞닿는 건 한순간이었다. 혀가 얽어지는 것은 그 다음이었으며 진뜩한 입맞춤 끝에는 피비린내가 났다.

메이슨의 입술을 물어뜯은 케일리가 피로 물든 입술을 혀로 햝으며 찻잔을 들어 차를 한모금 마셨다.

“내 잔에는 독이 있을까 없을까?”

“내 잔에 독을 발랐다고 했지.”

“난 삶의 모든 목표를 이루었어. 나를 가장 비참하게 버렸던 이들에게 복수를 했고 그 무엇보다 충실한 연인을 가졌으며 그리고 모든 것들이 다 손쉽게 이루어졌지. 너를 가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건 내 복수였을까? 내 손으로 이루어낸 완벽한 복수라고 말할 수 있는가?”

당연히 그녀의 것이다.

그녀의 것으로 이루어낸 정당한 복수였으며 완벽하기 그지 없는 복수였다. 그들은 모두 목숨을 구걸하며 그녀의 발치에서 죽어갔다. 피빛으로 물든 그녀의 아름다운 눈동자에 걸맞는 완벽한 만찬이었다. 메이슨은 붉게 피로 번진 연인의 입술을 바라보며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든 것이 그녀가 이루어 낸 것이라고 확언하며.

“네가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그리고 그 다음 순간, 그녀의 입에서 선혈이 흘렀다.

독을 발랐다고 말한 건 그녀였다. 그리고 그 독이 그의 잔에만 발려져있으리라는 의문을 표한 것도 그녀였다. 겨울의 사시사철 녹음이 드리운 듯한 차가운 온도의 녹빛 눈동자가 흔들렸다.

“케일리 헤올!”

그가 노여워하며 몸을 일으키자 의자가 나뒹구는 소리가 그녀의 이름 뒤로 울렸다. 메이슨이 느리게 쓰러지는 그의 연인을 끌어안았다.

“해독제는?”

“나는 늘 완벽하지. 내가 죽을 자리는 그 자리였어. 저주받을 헤올은 전부 사라져야 했거든.”

“케일리, 해독제는.”

“그런데 네가 나타나서 변수가 생긴 거야. 네가 나를 뒤흔들어서 내 만찬이 완벽하지 못하였지. 하나, 늑대의 송곳니. 이게 맞는 거야. 저주받을 헤올의 핏줄은 단 하나도 살아남아서는 안돼. 그들이 저지른 악행을 생각하면 그들에게 모욕받았던 나 역시도 사라져야만 하는 거지.”

“케일리, 헤올. 해독제.”

“나는 언제나 완벽을 추구해.”

붉은 눈동자가 흐려졌다. 메이슨은 그녀가 지금 유언을 남기고 있음을 알았다. 그녀가 그날 그 만찬장에서 그들과 함께 죽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의 잔을 바꾸어두었다. 케일리는 그에 분노하였으나, 그러나 사랑. 그 하나만으로 그를 용서했다. 그리고 그의 곁을 지켰다.

그의 아이를 낳아주고 그와 일생을 함께 할 것처럼 십년을 보냈다.

메이슨이 결코 그녀를 따라 갈 수 없도록, 족쇄를 만들어 두고 지금 그의 앞에서 독을 마셨다. 그녀는 언제나 완벽을 추구했다. 해독제는 없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메이슨은 그를 허락할 수 없었다. 그녀를 놓을 수 없다. 처음 그 불타는 붉은 눈동자를 마주했던 그 순간부터 단 한 순간도 그녀를 손에서 놓은 적이 없다.

“케일리 헤올, 해독제.”

그리하여 메이슨은 자신의 잔을 입에 담았다. 미지근하게 식은 찻물을 모두 들이키고 피를 흘리며 흐려지는 시야로 그의 얼굴을 쓰다듬는 이의 입술을 입에 담았다.

“내 완벽은 이걸로 이루어지는 거야.”

그러나, 케일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역시 독을 입에 담았다. 그럼에도 해독제도 아무런 방법도 제시하지 않았다. 그녀가 그가 죽도록 내버려둘리가 없다. 그녀와 그의 어린 자식을 위해서라도 메이슨은 견제해야 했음으로. 그리하여 메이슨이 그가 이미 이 독에 면역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케일리, 제발.”

“네 제발은 절대 이루어지지 않을 거야.”

잔인하게도. 그 말은 그 만찬장에서 그가 했던 말과 같은 것이었다.

“내 제발이 이루어지지 않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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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연성소재 수집가(@Ynseong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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