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에 동룡학생

청명백천 - 別有乾坤 (3)

이래도 괜찮은 걸까?

보따리 by 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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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09 일자 글 백업


*필자는 화산귀한 800화 초반까지만 읽은 상태로 설정 오류 및 미래 날조가 존재합니다.

진동룡은 윤종과 몇 번의 질의문답─질의문답이라 하기엔 같은 질문을 재차 확인하는 과정이 많았지만 아무튼─을 주고받고 난 뒤 급속도로 망연자실해졌다. 윤종은 그런 진동룡에게 뭐라 말을 걸긴 하였으나, 진동룡은 그 말을 거의 흘러듣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반쯤 정신이 나간 듯하니 윤종 곁에 있던 조걸이 저거 한 대 때리든 흔들든 뭐든 해서 정신 차리게 만들어야 하지 않냐고 속삭였지만, 윤종의 눈짓에 합! 하고 입을 다물었다. 윤종 역시 눈앞에 있는 진동룡의 상태를 보아선 지금 자세히 말해준다 하여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추후 다시 한번 더 설명해 주어야 함을 알았기에 설명은 길어지지 않았다. 더군다나 병상에서 일어난 지 몇 시진도 되지 않은 병자이지 않은가. 복잡하고 어려운 이야기보단 쉽고 재밌는 이야기가 더욱 나으리라.

윤종은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어떻게 된 것인지 알 수는 없으나 진동룡이 살아가는 곳과 자신들이 살아가는 곳이 다름을 알 수밖에 없었다. 사실 처음엔 입고 있는 의복이나 갖고 있는 물건들로 인해 새외 중에서도 서역. 서역 중에서도 중원과는 저 멀리 떨어진 어딘가라고 예상하고 있었으나 지금 보니 그것보다 차원이 달랐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직 고뿔의 흔적이 여력 한 상태로, 제대로 생각하기 아직 무린인 진동룡이 저와 이렇게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것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자신들보다 현저히 연약한 몸뚱어리를 가졌을 진동룡을 오래 붙잡고 있는 것이 과연 좋은 선택인가를 생각하던 윤종은 목을 가다듬곤 잔잔한 목소리로 진동룡을 불렀다.

 

“진 소협. …소협?”

“……아, 네! 부르셨습니까.”

 

윤종의 말을 흘러들으며 반쯤 정신이 나가있던 진동룡은 어느새 저를 부르는 윤종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찻잔을 잡은 두 손에 살짝 힘이 들어간 상태로 무릎 위에 얌전히 올려놓은 채 윤종을 바라보았다. 윤종은 그런 진동룡의 모습에 살포시 미소를 띠었다. 그 미소는 무척이나 포근하면서도 그리움이 은은히 담겨 있었지만, 진동룡은 그저 상대의 얼굴이 인자하게 생겨서 그리 느껴지는구나 하고 넘겨짚을 뿐이었다.

 

“화산은 화산에 찾아온 객을 아무런 이유 없이 내치지 않습니다. 부당하게 피해를 당한 이는 더더욱이요. 더군다나 진 소협께선 갑작스럽게 어떤 일에 휘말려 이곳에 떨어진 듯하니 되돌아가기 전까진 화산에서 책임지고 도와드리겠습니다.”

 

화산은 진, 소협을. …언제든 반길 것입니다. 윤종은 몇 번을 불러보아도 악착같이 입에 붙지 않는 소협이란 호칭을 조금은 힘겹게 내뱉었다. 실수로 사숙이라고 말할까 걱정이 어려있던 윤종은 다행히 실수로라도 내뱉지 않았다. 윤종에게 소협이란 호칭은 진동룡을 위한 선이었다. 자신들이 알고 있는 사숙과 진동룡이란 아해를 나누는 선. 그렇기에 윤종은 실수로라도 진동룡에게 사숙이라 불러서는 안 되었다. 아무리 닮은 모습에 같은 이름을 가진 이고, 영혼이 같은 이라 할지라도 둘은 달랐다. 살아온 길이 달랐고 살아온 흐름이 달랐다. 그렇기에 둘은 절대 동일인으로 두어서는 안 됐다. 또한, 진동룡은 갑작스럽게 이곳에 떨어진 이방인이자, 이곳에 대한 지식이 하나도 없는 외부인이다. 마지막으로 그런 행동은 그 누가 됐든 무례였다. 자신이 이 아해에게 사숙이라고 불렀다간 다른 이들도 무의식적으로 따라 부를 수 있었다. 아직 남아있는 백자 배가 몇이고 청자 배가 몇인가. 아직 이립도 채 되어 보이지 않는 아해에게 남을 투영하는 지천명을 넘은 어른들이라니, 그런 몹쓸 짓을 해서는 안 됐다.

진동룡은 윤종의 말을 들으며 양손으로 쥐고 있는 찻잔을 몇 번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윤종의 말이 끝나자 고개를 살짝 끄덕이곤 감사의 말을 전했다.

 

“이렇게까지 제 편의를 봐주실 줄은 몰랐는데, 덕분에 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저, 그리고…….”

 

진동룡은 말을 하다 말고 잠깐 고민에 빠진 듯하자 윤종은 조용히 그런 진동룡을 기다려주었다. 덩달아 곁에 있던 조걸도 진동룡이 무슨 말을 하려나 궁금하여 쳐다보았다. 진동룡은 조금씩. 아니, 강렬하게 느껴지는 시선에 으음, 소리를 짧게 내더니 닫혀있던 입을 열었다.

 

“소협이란 호칭 대신 그냥 이름으로 불러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아, 싫다는 건 아닙니다! 그냥 제가 살던 곳에선 사용하지 않던 호칭이다 보니 너무 어색해서….”

 

진동룡은 그리 말하며 어색하게 웃어 보이며 볼을 긁적였다. 윤종은 그런 진동룡의 모습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딱 그 또래에 맞는 수줍음과 어색함이었다.

 

“그럼 어떻게 부르는 것이 좋습니까?”

“그냥, 이름으로요. 편하게 동룡이라고 부르셔도 괜찮습니다. 저보다 연세가 있으실 테니.”

 

진동룡은 그렇게 말하며 시선을 슬쩍 흘렸다. 저보다 못해도 30살 이상은 차이가 날 것이라 예상하며 한 말은 생각보다 파급력이 있는 듯했다.

 

“저희가 그렇게 나이 들어 보입니까?!”

 

가만히 윤종과 진동룡의 대화를 듣고 있던 조걸이 화들짝 놀라 소리치며 튀어나왔다. 진동룡은 반사적으로 예, 뭐……. 고개를 살짝 끄덕이려다 아차 싶었는지 금방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조차도 부족하다 느꼈는지 양팔을 교차시키며 절대 아니라고 주장했다.

 

“아, 아닙니다!”

 

하지만 그런 진동룡의 부정에도 이미 잠깐의 망설임과 짧은 긍정의 대답을 들은 조걸은 곧 시무룩해져서는 윤종의 어깨에 얼굴을 묻으며 축 늘어졌다. 윤종은 그런 조걸의 머리를 밀어냈다. 징그럽다 이놈아. 조걸은 그런 윤종의 손길에 살짝씩 밀릴 뿐 완전히 밀리지는 않았다. 아니, 그래도…. 거칠어 보이는 겉모습과는 다른 정반대의 모습에 진동룡과 윤종은 보면 안 될 것을 보았다는 듯 얼굴을 찌푸렸으나 진동룡은 금세 표정을 풀어냈다. 윤종은 징그럽게도 달라붙는 조걸을 계속 밀어내다 결국은 못 참겠는지 팔을 크게 휘둘러 조걸을 떼어냈다. 순간 우당탕─! 소리를 내며 조걸이 힘 없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조걸은 살짝 눈가에 눈물이 차오른 채 윤종을 쳐다보았으나 윤종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온화한 표정으로 진동룡을 쳐다보았다. 그 표정을 마주 본 진동룡은 차마 윤종에게 저리 두어도 괜찮냐고 물을 수 없었다. 진동룡이 한없이 눈동자로 윤종과 쓰러져 있는 조걸을 쳐다보았으나, 그럼에도 윤종은 제 옆에 아무것도 없다는 듯 익숙하게 무시하는 모습에 진동룡은 질끈 눈을 감았다 떴다. 이래도 괜찮은 걸까? 진동룡이 마음속으로 고민하고 있을 때, 할 일이 있어 잠시 밖으로 나가있던 당소소가 막을 걷으며 안으로 들어왔다.

 

“아니, 큰 소리가 나서 와봤더니 보기도 안 좋게 사형은 또 왜 바닥에 앉아계세요? 얼른 일어나세요. 자자, 얼른!”

 

조걸은 그런 당소소의 말에 억울하다는 듯 얼굴을 찡그렸으나 당소소는 그 표정을 무시한 채 얼른 일어나라고 재촉할 뿐이었다. 결국 당소소에게도 버림받은 조걸은 터덜터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쓰러진 의자를 세우곤 당연하다는 듯 다시 윤종의 곁에 앉았다. 당소소는 그 모습을 보곤 어휴. 한숨을 내쉬더니 본인 역시 한쪽에 놓여있던 의자 하나를 가져와 앉았다. 두 쌍의 시선이 세 쌍으로 늘어나자 진동룡은 조금 어색해졌다. 그런 진동룡의 마음을 눈치챘는지 중간에 들어온 당소소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래서 방금 전까지 무슨 얘기 하고 계신 거예요?”

“아니, 글쎄 우리가 나이가 들어 보인다고 진 소협 말고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하지 않냐!”

 

순간 윤종보다 먼저 치고 나온 조걸의 말에 진동룡은 자신이 언제 그렇게 말했냐고 소리치고 싶었으나 차마 그럴 수가 없어 금방 어긋날 것 같은 비뚜름한 미소를 지은 채 두 손에 힘을 주어 찻잔을 꽉 쥐었다. 윤종은 그런 조걸의 말에 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곤 조걸의 뒤통수를 가차 없이 한 대 가격했다. 경쾌한 소리와 짧은 비명소리에 진동룡의 마음이 한순간에 홀가분해졌다. 맞을만했지. 진동룡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윤종의 행동을 정당화했다. 조걸은 억울하다는 듯 입이 툭 튀어나와서는 맞은 뒤통수를 매만지며 윤종을 쳐다보았으나, 윤종은 또다시 그런 조걸의 시선을 무시했다.

 

“그게 아니라, 진 소협께서 소협이란 호칭이 불편하니 이름으로 불러달라 했던 거다. 그리고 우리가 나이 들어 보이면 어떠냐. 진 소협과 비교하면 나이가 많은 게 당연할 터인데.”

 

지천명을 넘은 지가 몇 년이나 지났는데, 나이 들어 보인다는 말에 그리 발작해선…. 윤종이 혀를 찼다. 아니, 그래도 사혀어엉…. 조걸이 말끝을 늘리며 윤종을 보자 윤종은 으. 소리를 짧게 내며 시선을 피했다. 그 뒤로 그렇죠. 지천명이 넘은 지가 언제인데…. 하는 당소소의 말에 조걸은 결국 작게 쪼그라들었다. 진동룡은 그런 조걸의 모습이 참으로 안쓰럽게 느껴져 괜찮다며 웃어 보였다. 조걸은 그런 진동룡의 행동이 좋다는 듯 금세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진동룡을 보았다. 그렇죠? 그러자 진동룡은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렇게 넷은 지금의 주제에서 다른 주제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며 얘기를 나누었다.

중간중간 진동룡이 알 수 없는 단어들도 있었으나 대충 유추할 수 있는 단어들도 몇몇 있었기에 진동룡은 그들과의 대화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물론 단어 선택에 있어서 그들의 배려가 있었으리라. 그 덕에 새로운 곳에 대한 이야기들은 진동룡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처음엔 알 수 없는 곳에 홀로 남겨졌다는 생각에 당황스럽고 두려웠던 마음도 이 셋이서 다양한 얘기를 펼쳐내니 두려움은 점차 줄어들고 즐거움이 차올랐다. 윤종이 차분히 얘기를 시작하면 그 중간중간 있었던 즐거운 얘기나 소문을 조걸이 덧붙였고 거기에 당소소가 부연 설명 또는 너무 부풀려진 이야기들을 적당히 쳐내었다. 그렇게 얘기를 이어가니 이렇게 재밌는 이야기도 없었다. 덕분에 진동룡은 얼추 이곳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마치 무협이나 판타지 소설에서나 볼법한 얘기들이었으나, 지금은 그것이 상상이 아닌 현실일 뿐이었다. 본인이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된 것인지 알 수는 없었으나 그래도 정말 괜찮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오래 깨어있어서 그런지 다시 열이 오르려는 진동룡의 몸 상태를 빠르게 눈치챈 당소소가 진동룡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열이 오른 것 같으니 이제 쉬어야겠어요. 다음 얘기는 내일 마저 하도록 해요. 그땐 서로 소개도 하고요.”

 

우리들, 아직 소개도 제대로 안 나눴잖아요. 진동룡은 그 말에 이제야 눈치챘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생각해 보면 조걸과 인사를 나누고 이름을 말해줬을 뿐 그 후에 있었던 일 때문에 서로 소개를 하지 않았다. 그냥 서로 얘기하는 걸 듣다 보니 저 사람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을 뿐. 진동룡이 아쉬운 표정을 짓자 당소소는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진동룡의 손에 있는 식다 못해 차가워진 찻잔을 가져가 탁상 위 쟁반에 올려두었다. 너무 아쉬워하지 마세요. 지금 두 명이 더 없기도 하고 저희는 진 소협이 살던 곳도 많이 궁금하거든요. 오늘은 저희 얘기만 들었잖아요. 진동룡은 그 말에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진동룡이 천천히 침상에 몸을 눕자 당소소는 그 위로 이불을 덮어주었다. 이불이 빈틈없이 따뜻하게 덮여져 있는 걸 확인하고 진동룡이 잠에 드는 것을 보고 나서야 당소소는 제 사형들과 함께 막을 치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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