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에 동룡학생

청명백천 - 別有乾坤 (完)

분명 아름다울 거예요.

보따리 by 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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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10 일자 글 백업


*필자는 화산귀한 800화 후반까지만 읽은 상태로 설정 오류 및 미래 날조가 존재합니다.

진동룡은 편안하고도 상쾌하게 아침 햇살을 맞이했다. 살짝 열린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빛은 따스했고 그 사이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은 쌀쌀했다. 그리 덥지도, 춥지도 않은 것이 다행히 알맞아 진동룡은 자리에 앉은 후 창문을 좀 더 열었다. 빽빽이도 나 있는 험준한 산맥들 사이로 찬란히 빛을 내는 태양과 눈이 마주친 진동룡은 그대로 멍하니 그것을 바라만 봤다. 그때 들려온 커다란 기합 소리가 아니었다면 진동룡은 누군가 찾아오기 전까지 그 풍경을 계속 보고만 있었을지도 모른다. 진동룡은 오랜만에 듣는 기합 소리와 따스한 햇살, 적당히 쌀쌀한 바람을 느끼며 잠시 벽에 기대었다. 평소라면 느낄 수 없었던 편안함이었다.

얼마나 창에 기대어 있었을까. 막 밖에서 들어갈게요. 라는 말과 함께 당소소가 막을 살짝 걷어내며 안으로 들어왔다. 당소소는 창 옆에 기대앉아 있는 진동룡을 보곤 잠깐 멈칫하였지만, 진동룡이 이상함을 눈치채기 전에 다시 움직여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춥지 않아요? 아무래도 산꼭대기에 있어서 조심해야 해요.”

 

햇살 때문에 지금 좀 따뜻하다고 방심하다가 또 열이 오를 수도 있어요. 당소소는 침상 주변을 훑어보며 그리 덧붙였다. 이제 괜찮아요. 덕분에 다 나았어요.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걱정 받은 게 언제였을까, 이리 걱정 받아본 적이 언제일까. 아이라면 못 해도 한 번 정도는 겪는다는 병치레도 겪어본 기억이 거의 없는 진동룡은 처음 보는 자신을 이렇게까지 걱정해 주는 사람들로 인해 저도 모르게 저절로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진동룡은 이곳이 좋았다. 화산이 좋았다. 이렇게 다정한 사람들로 가득한 곳이구나. 진동룡은 홀로 그렇게 생각했다.

 

“뭐 찾고 계시나요?”

 

진동룡의 물음에 당소소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웃어 보였다. 별거 아니에요. 곧 당소소는 한쪽 구석에 놓여있던 화로를 발견하곤 그것을 들곤 다가왔다. 당소소가 침상과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적당한 위치에 화로를 내려놓았다. 화로 안에는 여태 꺼지지 않은 불씨가 남아있었는지 침상 위에 있는 진동룡에게도 화로 특유의 열기가 은은하게 다가왔다.

 

“창 좀 더 열게요.”

 

그리 말하며 당소소는 곧바로 창을 활짝 열었다. 활짝 열린 창으로 쌀쌀한 바람이 더욱 흘러 들어왔다. 그 바람 사이사이로 아까 전만 해도 힘차던 기합 소리는 어디로 가고 시끄러운 비명 소리가 섞여 있었다. 이 새끼가아아악─!!! 아주 우렁찬 욕설이 메아리쳐 진동룡의 귓가에 닿았다. 진동룡은 그 힘찬 욕설에 놀라 눈을 땡그랗게 뜨곤 천천히 고개를 돌려 당소소를 바라보았다. 당소소는 조용히 그 눈길을 피하며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밥은 어떻게 하실래요?”

 

아침은 이미 끝난 탓에 가서 먹지는 못하지만, 숙수분들게 부탁해서 가지고 올 수는 있어요. 여전히 건물 밖 어느 봉우리에서는 비명 소리나 욕설이 들려왔지만, 당소소는 그 소리를 전부 무시한 채 진동룡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동룡은 저 비명 소리의 이유를 물어볼까 싶었지만, 당소소의 모습을 보아선 자주 있는 일인 듯하기에 본인도 조용히 묻어가기로 했다.

 

“간단하게 부탁드릴게요.”

당소소는 그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은 죽뿐이겠지만, 못 먹는 건 없죠? 금방 가지고 올 테니까 잠깐 기다리세요. 당소소는 걸음을 옮기려다가 문득 생각난 것인지 어디선가 두꺼운 이불 하나를 가져와 진동룡을 덮어주었다. 안은 화로도 있고 해서 따뜻하다지만 창을 열어놨으니 추워질 거예요. 지금은 좀 더워도 하고 계세요. 그렇게 말하곤 바삐 걸음을 옮겨 밖으로 나갔다. 괜찮다고 사양하려던 진동룡은 잡을 새도 없이 빠르게 사라진 당소소의 빈자리를 보며 한 겹 둘러싸진 이불을 만지작거렸다. 값비싸 보이던 이불은 생긴 것과 같이 부드럽고 따뜻했다. 바깥 공기가 몸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누가 자주 아프기라도 했던 걸까. 진동룡은 이불을 매만지며 생각했다. 아무리 독한 감기라 해도 며칠이면 낫는 것이 감기다. 여기선 아닐지도 모르지만, 진동룡의 상식에선 그랬다. 그렇기에 그 잠깐을 위해 이런 값나가는 물건을 덥석 사기엔 사치였다. 짧게나마 이야기를 나눈 바로 이곳 사람들은 쉽게 아프지 않은 듯했고 만약 아프다 해도 목숨이 위험한 것이 아니라면 금방 낫는 듯했다. 해서 진동룡은 궁금했다. 이 값비싼 이불을 쓰던 이가 누구인지 말이다.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필시 중요한 사람이었을 것이라. 물론 한 명이 아닌 여러 명이 돌아가며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사용했다기엔 또 생활감이 별로 없어 진동룡은 문득 궁금했다.

그렇게 이불을 매만지며 홀로 고민에 빠져 있다 문득 고개를 들어 창문을 바라보았다. 순간 창밖에 서 있는 이와 진동룡의 눈이 마주쳤다. 빛을 등지고 서 있음에도 새하얀 옷에 은은하게 빛이 투과되어 몸이 빛나는 것과 같으니, 순간이 인간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귀신?

 

“숨 쉬어.”

 

어느 순간부터 숨을 쉬지 않은 진동룡을 향해 유이설이 입을 열었다. 짧지만 단조로운 목소리. 진동룡은 그제야 자신이 숨을 쉬지 않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진동룡은 유이설의 목소리에 따라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유이설은 그런 진동룡을 보며 천천히 창 가까이 다가왔다.

걸어오고 있음에도 발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아무리 조용히 걷는 사람이라 해도 아주 작게라도 발소리가 들릴 법도 할 텐데. 진동룡은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이 정말 사람이 맞는 것인지 아니면 이곳은 다들 이 정도는 할 수 있는 것인지 잠시 생각하다가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괜찮아?”

“아, 네. 괜찮습니다.”

“……그렇게 놀랄 줄 몰랐어.”

“잠시 다른 생각을 좀 하느라 오셨는지 몰랐습니다. ……눈치를 챘을 땐 순간 귀신인 줄 알았거든요.”

 

진동룡이 슬며시 웃으며 말했다. 사실 뒷부분은 얘기하지 않으려 했으나 혼자서 심각해지려는 그를 보곤 분위기를 풀어주기 위해 말하였다. 그 말을 들은 유이설은 아. 하고 짧게 소리를 내뱉곤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보아선 자주 그런 얘기를 들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들어오시겠습니까?”

 

나이가 어린 자신은 이리 따뜻한 곳에 앉아있는데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이를 바깥에 계속 서 있게 만들 수 없던 진동룡이 창을 통해 들어와도 괜찮다는 듯 몸을 뒤로 물렸다. 유이설은 잠시 고민하는 듯 서 있다가 익숙하게 창을 통해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유이설이 익숙하게 한편에 놓인 의자를 하나 가져와 앉았을 때 때마침 당소소가 안으로 들어왔다. 당소소는 들어오다 말고 진동룡 곁에 앉아있는 유이설을 발견하자 활짝 웃으며 다가왔다.

 

“오늘은 웬일로 내려왔네요!”

 

신나는 듯한 목소리로 말을 거니 유이설은 응. 그냥.하고 짧게 답할 뿐이었다. 유이설의 시선이 살짝 내려가 당소소의 손으로 향하였다.

 

“이건 진 소협이 먹을 거예요. 일어난 지 별로 안 됐거든요.”

 

당소소는 유이설에게 설명하며 진동룡이 밥을 먹을 수 있게 준비하기 시작했다. 중간에 진동룡도 도우려 움직이려 했으나 환자는 돕는 게 아니라며 막는 당소소와 유이설에 의해 다시 가만히 이불에 파묻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진동룡이 도울 것은 그다지 없었다. 여러 명이 먹는 것이면 모를까 한 명이 먹을 자리를 준비하는 것에 그리 큰 인력이나 시간이 필요한 것이 아니니 말이다. 그렇기에 진동룡이 이불에 잠시 파묻혀 있는 사이 준비는 이미 다 끝나있었다. 이제 드세요. 당소소의 말을 들으며 진동룡은 이불에서 벗어나 밥을 먹기 시작했다. 다만, 밥을 먹는 사람 한 명에 그 앞에 앉아있는 사람이 두 명이나 되니 진동룡은 살짝 눈치가 보였다. 밥을 잘 먹고 있는지 확인하는 두 쌍의 시선에 진동룡은 자신도 모르게 점점 먹는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했다.

 

“맛이 없나요?”

 

당소소의 물음에 유이설도 고개를 끄덕였다. 진동룡은 어색하게 웃으며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하나 고민했다.

 

“음, 두 분의 시선이 좀…….”

 

당소소는 깨달았다는 듯 작게 탄식했다. 그러곤 미안한 듯 울상을 지었다.

 

“아, 죄송해요. 버릇이다 보니 실수했네요. 나가 있을 테니까 다 먹으면 불러주세요.”

 

유이설도 그렇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의견을 내비쳤다. 당소소와 유이설이 일어섰다. 진동룡은 문득 자신이 둘을 내쫓아 내는 느낌이 들었지만, 밥을 다 먹을 때까지 관찰당하는 것은 도저히 원치 않았기에 차마 둘에게 괜찮다고 답할 수는 없었다. 진동룡은 막 밖으로 나가는 둘을 보며 다시 밥을 먹으려 했다.

 

“다 먹고서 나가자. 같이.”

 

유이설의 권유였다. 혼자서 돌아다니기엔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았던 진동룡은 그 권유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유이설은 그 수락이 좋다는 듯 살짝 미소를 지으며 밖으로 나갔다. 그제야 자유롭게 밥을 먹을 수 있던 진동룡이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도 제대로 살피지 못한 이곳, 화산은 제 생각보다 넓고 자신의 생각보다 더욱. 아니, 훨씬 잘 사는 곳 같아서 돌아다니는 내내 놀랄 수밖에 없었다. 건물은 전부 문화재로나 볼법한 잘 관리된 건물에 그 건물 한 채 한 채가 전부 조금씩 생김새가 달랐다. 건물 기둥에는 직접 하나씩 새긴 듯한 꽃이 새겨진 곳도 있었고 다채롭게 만들어진 건물도 있었다. 진동룡은 그 건물들 사이를 지나가며 유이설과 당소소에게 설명을 들었지만, 그 내용이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양반들은 검소함을 미덕으로 삼았지만 사실 그 검소함을 위해 쓰는 비용이 엄청나다고 하는데 여기도 뭐 그런 건가? 휘황찬란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밋밋하지도 않은, 검소함에서 오는 아름다움을 느끼며 진동룡은 생각했다. 하지만 당소소가 매화 모양의 신물이 있다고 말한 순간 진동룡은 한순간 돈지랄, 이라고 생각하자마자 이래선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잘 사는 곳 같은데 그런 거 한두 개 즈음은 가지고 있을 수 있지 않은가. 백자를 봐라. 그 허옇기만 한 그 도자기가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누가, 어떤 이유를 담아서 만들었는지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 되니 말이다. 진동룡은 속으로 자문자답하다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진동룡을 유이설과 당소소가 무슨 일이라는 듯 쳐다봤으나 진동룡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웃어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화산을 돌아다니며 중간중간 지나다니는 사람들과 인사를 주고받는 유이설과 당소소룰 보며 진동룡은 이 둘이 지금은 자신과 함께 돌아다니고 있지만 이곳에서 확실히 높은 곳에 있음을 알 수밖에 없었다. 이전에 보았던 이들도 전부 그런 이들이리라. 당소소를 향해 의약당주, 유이설을 보며 태상 장로라 부르는 것을 보며 진동룡은 자신도 저리 부르면 되리라 생각했다. 진동룡이 홀로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며 있을 때, 유이설과 당소소는 다가오는 이들을 얼른 보내버리기 바빴다.

유이설과 당소소는 모두 수련하거나 일을 하고 있어 많이들 밖에 나오지 않는 시간으로 생각하고 나왔건만 오늘따라 사람이 많이 지나다녔다. 오늘 무슨 행사라도 있나 싶었지만 그건 또 아니었기에 그저 운이 따라주지 않는 듯했다. 진동룡에게 관심을 보이는 어린 제자들과 뭐라 말을 걸려 하는 자기 배분의 이들을 빠르게 보내버리며 유이설과 당소소는 한숨을 내쉬었다. 점점 사람이 적어지고 화산 안의 위치를 거의 다 알려주었을 때 진동룡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이곳은 매화가 많네요. 아까 말씀하신 신물도 그렇고 건물에도 매화가 많이 새겨져 있고 옷에도 전부 있지 않습니까.”

“지금은 꽃을 피울 시기가 아니라서 이파리만 좀 나 있지만 사실 이곳에 있는 나무 전부가 매화를 피웁니다.”

“꽃 피면 예쁘겠네요. 제가 사는 곳에도 매화나무가 심어진 곳이 있어서 지나가며 몇 번 봤거든요.”

“매화 볼래?”

“어, 지금은 매화가 피는 시기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기 나무들도…….”

“피워낼 수 있어.”

 

유이설의 표정은 진지했다. 마치 여전히 피어있는 매화가 있는 것처럼. 진동룡은 그런 유이설이 당황스러웠다. 자신이 매화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고는 하나, 언제 피는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매화나무가 늘어진 길을 항상 지나쳐 왔으니까. 봄이 오면 항상 활짝 만개한 그 길을 좋아했다. 굳이 그 길을 지나쳐 가겠다고 길을 돌아갈 정도로. 그렇기에 진동룡은 자신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유이설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전에 말한 신물이나 사람의 손으로 만든 장식품과 같은 매화를 의미하는 것인가 생각해 보아도 그것은 아닌 듯했다. 진동룡은 결국 이해하지 못하곤 당소소를 바라보았다. 뭐라도 말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었으나 당소소는 그런 진동룡의 마음도 모른 채 유이설의 말이 당연하다는 듯 서 있을 뿐이었다.

 

“보면 알아.”

 

유이설이 단호하게 말하고 그 옆에 서 있던 당소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동룡은 결국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보면 뭘 안다는 것일까. 이곳에는 아직 인위적인 환경을 조성할 정도의 기술이 발전되지 않았음을 안다. 그런 상황에서 과연 매화를 피워낼 수 있는가. 혼자 이렇게 생각해 보았자 해결되는 것이 없음을 아는 진동룡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고작 이것을 믿을 수 없으면 어떡하랴. 지금 자신이 겪는 일 자체가 믿을 수 없는 일인데. 그럼, 좋아요. 진동룡이 무덤덤하게 답하자 유이설과 당소소는 살짝 상기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진동룡과 함께 연무장으로 향하였다.

 

연무장에 도착한 진동룡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넓고 텅 비어 있어서 담장으로 둘러싸인 것이 뭔가 학교 운동장을 생각나게 했다. 당소소의 말에 따르면 이곳에서도 아이들이 수련받는다고 하는 걸 보면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이곳엔 매화나무의 이파리나 나뭇가지조차 보이지 않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을 때 유이설이 앞으로 나아갔다. 진동룡은 그런 유이설을 의문스럽게 쳐다보며 당소소의 곁에 살짝 다가갔다.

 

“무얼 하시려는 거죠?”

“이제 보시면 알 거예요. 말로는 설명하기 어렵거든요.”

 

분명 아름다울 거예요. 당소소의 자신감 있는 목소리에 진동룡은 당소소의 시선을 따라 유이설을 보았다. 유이설은 허리에 찬 검집에서 칼을 꺼내 들었다. 평소 잘 관리한 듯 보이는 칼은 조금 거리가 있는 곳에서 보아도 확실히 날카로웠다. 진동룡은 진검을 저렇게 막 꺼내도 괜찮은 것인지 묻고 싶었으나 어린아이와 같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유이설을 열렬히 바라보는 당소소의 모습에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잘 봐.”

 

유이설의 낮고 단단한 목소리가 시선을 돌린 진동룡을 붙잡았다. 진동룡의 시선이 그 목소리에 저절로 앞을 보게 만들었다. 진동룡이 다시 자신을 보고 있음을 느낀 유이설이 천천히 칼을 들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검이 움직인다. 빠르지 않지만 그렇다고 너무 느리지 않게. 느릿하지만 부드러우면서 유려하게. 검을 무작정 휘두르는 것만 보아온 진동룡의 눈에 유이설의 검은 승부보단 예술을 위한 행위와도 같았다. 주변엔 그를 방해할 것은 그 무엇도 없었기에 그는 자유로이 검을 휘둘렀다. 그의 몸짓은 춤사위와 같았으나 자세히 보면 내려치고 막고 베는 검의 기본이 되는 동작들이 규칙이 있었다. 이 동작 하나하나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면서 마치 검무 劍舞를 추는 것처럼 만들었다. 유이설의 검이 조금씩, 점점 더 빨라지면서 검의 잔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유이설이 검을 휘두르며 걸음을 옮기는 것에 맞춰 새하얀 도복이 휘날린다. 풀어 헤친 검은 머리카락도 몸짓에 맞춰 휘날렸다.

그렇게 몇 번 더 검을 휘둘렀을까, 유이설의 몸짓에 집중하고 있던 진동룡은 어느새 익숙한 향이 이 공간을 가득 채웠음을 깨달았다. 달콤한 꽃내음. 자신이 봄이 되면 늘 맡던 익숙한 향이었다. 매화. 매화가 피지 않는 계절임에도 매화향이 났다. 매화나무가 주변에 없음을 보았음에도 매화향이 났다. 진동룡이 이상함을 느끼고 있을 때, 유이설의 칼끝에서 천천히 붉음이 맺혔다. 하나, 둘, 셋…… 셀 수도 없이 많은 붉음이 생겨났다.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수많은 붉음이 맺혔고 휘두름 한 번에 수많은 붉음이 휘날렸다. 꽃이 핀다. 매화가 필 계절이 아님에도 붉게 피어난다. 소담한 매화들이 만개하여 휘날린다.

진동룡은 그 광경에 입을 살짝 벌리곤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게 정말 사람이 가능한 일이 맞는 것인가? 진동룡은 믿을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그들이 봐야만 안다고 답했던 것일 수도 있다. 저를 향해 날아오는 매화에 진동룡은 저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손에 닿은 매화는 어느샌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사라진 붉음에 아쉬움을 가진 채 진동룡은 뻗었던 손을 원래대로 하였다. 순간 제 손끝에서 매화향이 맴돌았다. 매화향만을 남긴 채 사라진 꽃을 떠올리며 진동룡은 매화가 휘몰아치는 가운데서 끊임없이 검을 휘두르는 유이설을 보았다.

곧 휘날리던 꽃들이 하나둘 땅으로 떨어지고 매화향만을 남긴 채 유이설은 그 안에 홀로 서 있었다. 유이설이 묵묵히 검을 검집 안으로 넣었다. 탁─. 검집과 손잡이 부분이 맞닿는 소리만이 조용한 공간에 짧게 울렸다. 곧 곁에 있던 당소소가 박수치며 멋지다, 예쁘다, 하고 환호했다. 고개를 돌린 유이설과 진동룡의 눈이 맞닿는다.

 

“어서 와.”

‘잘 왔어.’

 

진동룡은 유이설의 목소리와 함께 겹친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으며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곤 밝게 웃어 보였다. 이곳은 정말 자신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있지만, 그럼에도 좋은 곳임은 틀림없었다.

 

別有乾坤 별유건곤 : 좀처럼 볼 수 없는 아주 좋은 세상. 또는 딴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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