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귀환

청명백천 - 花魁 (上)

그들을 신경 쓰려하지 말아라. 그들에게서 귀를 막고 눈을 돌리거라.

보따리 by 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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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을 금하는 숲에 들어와 곧게 자라난 매실나무를 보았을 때, 진동룡은 묘한 느낌을 받았다. 꽃이 피고 진 뒤 푸른 나뭇잎만을 보여야 할 매실나무가 붉은 매화만을 만개한 채 아름드리 달달한 매화향을 풍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시기를 본다면 매화는 고사하고 매실조차 수확하고도 남은 시기였기에 만약 진동룡이 아닌 다른 사람이 보았어도 이상함을 느꼈을 법한 풍경이었다. 하지만 진동룡은 그 안에서 또 다른 느낌을 받았다. 이것을 뭐라 설명해야 할까.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는 진동룡은 그저 이것을 ‘감’ 또는 ‘기운’, ‘흐름’이라고 일축하였다. 진동룡은 찬란히도 빛나는 매화를 보며 저도 모르게 한 발 내디디려 했을 때, 순간 번개가 눈앞에 떨어진 듯 놀라 멈출 수밖에 없었다.

‘자불어子不語 괴력난신怪力亂神. 공자께서는 괴이한 것, 폭력과 패란, 그리고 귀신에 대한 얘기는 입에 담지 않으셨다. 그러니 동룡아, 너는 괴이한 것과 귀신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말거라. 보아도 보지 못한 척, 들어도 듣지 못한 척해야만 한다. 우리의 조상은 본래 괴이한 것과 귀신을 잡고 부리는 것을 업으로 삼았다지만 우리는 아니다. 우리는 귀신의 틈이 아닌 인간의 틈에서 살아가야만 해. 이제는 그래야 더 큰 일을 도모할 수 있다. 네 형들을 보거라. 첫째는 무武를, 둘째는 문文을 업으로 삼고 뜻을 펼치려 하잖니. 

계로문사귀신季路問事鬼神 자왈子曰 미능사귀未能事人, 어능사귀焉能事鬼. 계로가 귀신을 섬기는 것에 대해 묻자 공자께서 말하시길, 사람도 제대로 섬기지 못하면서 어찌 귀신을 섬기려 하느냐. 왈曰 미지생未知生, 언지사焉知死? 계로가 죽음에 대해 묻자 공자께서 말하시길 삶을 다 알지 못하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 성인의 말씀처럼 우리는 생사生死 중 생生에 있어 신경 써야 하고 알아가야 할 것이 여전히 많은데, 그것을 알 수 없는 존재에게. 사死에 속한 이들에게까지 신경 쓸 수가 없다. 그러니 더는 그들을 신경 쓰려하지 말아라. 그들에게서 귀를 막고 눈을 돌리거라.’

진동룡의 귓가엔 어려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말들이 귓가를 맴돌았다. 한마음 한뜻으로 진동룡이 멍하니 한 곳을 바라볼 때면, 누군가에게 말을 걸 때면, 세뇌하듯 언제나 같은 말을 전한 이들의 목소리가 진동룡을 옥죄었다. 이유라도 모르면 원망이라도 했겠지만 안타깝게도 진동룡은 그들이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알고 있었다.

진동룡은 어렸을 때부터 보통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았고 듣지 못하는 것을 들으며 느끼지 못하는 것을 느꼈다. 사람들은 흔히 이것을 영안靈眼과 영감靈感이라 하였다. 아주 먼 조상부터 대대로 무축巫祝*으로 명망 높았던 능력이 진동룡에게도 나타난 것이었다.

*무축巫祝 : 무당과 박수, 주술사, 음양가.

진동룡의 가문은 이 능력으로 이전 왕조에서 신관으로써 하늘을 점쳤고 국사로써 섬김을 받았다. 하지만 시간에 흐름에 따라 국교가 바뀌고 나라가 무너지고 다시 세워지며 현재와 지금, 현실을 탐구하는 이가 많아지게 됨에 따라 무축으로 유명하던 가문은 점점 위축되었다. 신관과 국사를 맡던 가문은 이제 한 지역의 유지일 뿐이었다. 거기에 양민들까지도 죽음 후가 아닌 죽음 이전의 삶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하니 명망 높던 가문은 대대로 천한 일을 하는 가문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이런 와중에도 인간에겐 믿음이란 것이 필요하여 진동룡의 가문이 무축이 아닌 무관과 문관으로 살아가려 할 때면 그 길을 막곤 했다. 다행히도 가문에서 무축에 종사하는 이의 수가 줄어감에 따라 후대의 아이들은 영감과 영안을 갖지 않고 태어나거나 갖고 태어난다 해도 지학志學이 되기 전엔 눈이 닫히고 감이 옅어지거나 사라지곤 했다. 하지만 오직 진동룡만이 영안과 영감이 닫힐 낌새를 보이지 않았다. 그런 진동룡을 보며 사람들은 무축의 집은 어떻게 해도 무축이라고 비웃곤 했다. 아무리 형제가, 부모가, 친척이, 가문 대대로 천한 일을 하였던 과거를 지우려 노력해도 결국 핏줄에는 새겨져 있다며 말이다.

하지만 웃기게도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도 진동룡의 가문의 무축에게 도움을 받곤 했다. 옛날보다는 신神을 받들고 영靈을 부르며 귀鬼를 부리는 일에 능통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말하는 그 ‘핏줄’에 어느 정도 능력이 남아있는지 일반적인 무축에 비해 능력이 뛰어나니 어쩔 수 없이 허리를 수그리고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그 일이 끝나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입을 싹 닦고 뒤에 가서 말을 얹었다.

진동룡은 그런 사람들을 보며 자라왔기에 어른들의 말을 새겨 담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다 씻겨 내려가는 과거의 잔재가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로 수면 위로 떠오르다 가라앉길 반복하였으니 말이다. 이를 깨닫기 전 어렸던 진동룡은 제 능력으로 그들에게 다가갔고 친구를 만들며 그들을 부렸다. 생生보단 사死에 가까운 삶을 살았다는 말이다. 하지만 현실을 깨닫게 되고부턴 진동룡은 사死보단 생生에 가까운 삶을 살게 되었다.

진동룡은 눈에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는다며 눈을 감았고 귀에 들려오는 것을 들려오지 않는다며 귀를 막았다. 영감으로 느껴지는 촉감조차 느껴지지 않는다고 하니 그제야 진동룡을 향했던 시선들은 어느덧 평범한 무언가가 되어있었다. 고을에 오래 살아 진 가家를 깊이 아는 이들은 여전히 진동룡을 향해 의심의 눈길을 보냈으나 다행히 젊은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진동룡은 그제야 자신의 행동으로 가문의 평판이 좌지우지되지 않게 되었음을 깨달았다. 그 깨달음을 알게 된 것은 진동룡이 지학이 되기 오 년 전의 일이었다.

진동룡은 그렇게 살아왔다. 모든 것이 구속되어 몸에 맞지도 않는 옷을 억지로 껴입은 채 주변 사람들의 의심스러운 시선을 피하고 가문 사람들의 원망이 담긴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그렇게 살았다. 그렇게 살아오다 도저히 버틸 수 없을 때면 진동룡은 무작정 혼자가 될 곳을 찾았다. 이제 더는 잘 사용하지 않는 무巫를 위한 도구가 쌓인 광이나 사람들이 잘 찾아오지 않는 폐가, 오랜 세월 고을을 지켜준 고목의 곁. 진동룡이 그렇게 생의 곁에서 사의 곁으로 향하고 나면 자유로움을 느꼈다. 무에 쓰이는 도구가 쌓인 광에선 선선한 익숙함을,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에선 쓸쓸함과 슬픔을, 고목의 곁에선 따스함을. 그간 감았던 눈을 뜨고 닫았던 귀를 열며 무언가가 닿는 촉감을 느꼈다. 그 누구도 자신을 의심하지 못하게 조용히.

진동룡이 출입을 금하는 숲에 들어오게 된 이유 역시 이와 같았다. 도저히 사람들 속에 있을 수가 없어서, 이 답답함을 한시라도 빨리 해결하고 싶어서, 가문에 폐를 끼칠 수가 없어서. 하필이면 음의 기운이 가득 차 귀신들이 날뛰는 망혼일亡魂日*을 코앞에 두고 있었기에 진동룡의 마음은 더욱 세차게 뛰고 있었다. 그렇게 무작정 도망쳐 들어온 숲에서 처음 보는 무언가를 보게 될 것이라고 진동룡은 생각하지 못했다.

*망혼일亡魂日 : 음력 7월 15일. 본래 불교 명절 중 하나로 백종百種, 중원中元 우란분절盂蘭盆節 등으로 불린다. 도교에선 1년을 삼원으로 나누어 상원上元, 중원中元, 하원下元 이라 하는데 이때 천제가 선악을 심판하는 날이며 초제를 지낸다. 또한 중국은 7월을 귀신의 달이라 하여 의례 및 이동을 금기시한다.

귓가에 들려오는 목소리가 점점 작아져 더는 들려오지 않게 되고서야 진동룡은 비로소 제 앞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매화가 절대 피지 않을 계절에도 홀로 만개하고 있으니, 저것은 필시 자연의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저것을 귀鬼라고 부르기엔 음蔭의 기운이 옅었고 신神이라 부르기엔 양陽의 기운이 강하지 않았다. 두 기운 중 하나가 더 앞서가는 것이 없어 귀신鬼神이라 불러야 했지만 귀신이라 부르기에는 저것의 본질은 인간이 아니었다. 사람의 손을 타긴 했으나 저것은 인간이 섞여 만들어 진 게 아니라는 의미였다. 진동룡은 저것을 무엇이라 정의를 내려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문득 한 단어가 떠올랐다. 괴怪. 저것은 괴怪였다.

진동룡은 그간의 삶에서 괴를 볼 일이 없다시피 했기에 이렇게 눈앞에서 괴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살다 보니 본다 해도 대부분은 귀신이었고 사당 또는 도당禱堂에서 신을 보고 고목의 곁에서 영을 보는 것이 전부였다. 과거에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사는 요물이 있다곤 했으나 그것도 옛날이야기로 이젠 설화를 통한 구전이나 고서로 내려 오는 게 전부였다. 괴에는 대체로 요수妖獸와 영수靈獸, 요괴妖怪, 요물妖物이 포함되었다. 요수는 상서로운 동물로 주로 기린을 뜻하니 길한 의미를 가졌지만 영수와 요괴, 요물은 전부 좋은 의미의 괴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과연 제 눈앞에 있는 괴는 과연 어느 쪽에 속하는 괴일까. 진동룡은 그 의문을 가지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한 발짝. 두 발짝. 진동룡은 걸음을 옮길수록 매화 특유의 달달하면서도 고아한 향이 더욱 진해지다 못해 이 공간을 가득 채우는 것을 느꼈다. 아무리 매화가 만개하였다지만 고작 한 그루만으로 풍길 향이 아니었다. 아무리 주변을 둘러보아도 매화나무는 눈앞에 있는 것이 전부인 것으로 보아선 이 매화나무가 보통이 아닌 것만은 확실했다. 진동룡은 그간의 경험을 통해 이 이상 매화나무에 가까이 다가가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진동룡은 태생부터 가지고 있던 호기심과 능력을 죽이지 못했다. 오히려 그간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않았던 존재에 대한 탐구심이 진동룡을 자극했다.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너무 어릴 때부터 억압받고 자라오면 후에 어른이 되었을 때 그 고삐가 풀려 더욱 날뛰게 된다는 말 말이다. 진동룡은 현재 그런 상태였다. 그간의 억압을 풀러 도망치듯 들어온 곳에서 자신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을 발견하였고 자신을 막을 어른은 주변에 없으니 제멋대로 한다 해서 뭐라 할 어른도, 삿대질할 주변인도 없었다. 귓가에선 진동룡을 말리는 어른들의 목소리가 맴돌았지만, 아까처럼 놀라거나 몸을 떨거나 하는 것은 없었다. 진동룡의 귓가에선 끊임없이 말이 들려왔다.

‘생자生者는 생과 어울려야지 사와 어울려서는 안 된다. 괴력난신은 결국 인간이 아니니 함께할수록 한쪽이 희생해야 하는 관계다. 그것과 어울렸을 때 그 끝이 좋았던 적은 거의 없었다. 그것에게 너를 다 줘버리기 전에 얼른 사자死者가 아닌 생자生者의 틈으로 숨어들거라.’

만약 다른 이와 함께 있었다면 진동룡은 황급히 이 자리를 벗어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오직 혼자 있는 이곳에서 진동룡은 거리낌 없었다. 진동룡은 점점 더 커지는 귓가의 소리를 무시하며 매화나무에 점차 가까워졌다. 멀리서 보았을 때도 붉게 물들어 있던 매화나무는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더욱 붉게 물들어 그 색을 탐스럽게 뽐내고 있었다. 그 풍경은 아름다웠으나 뜨거운 뙤약볕 아래에서 보아왔던 풍경이 아니었기에 그 간극에서 오는 어색함이 존재했다. 하지만 이런 어색함도 매화나무 위에 있는 어떠한 물체에 의해 금방 사그라들었다.

진동룡은 뜨거운 바람을 타고 흔들리는 매화 사이로 무언가를 발견했다. 그것은 나뭇가지 위에 앉은 채 나무에 기대어선 잠들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바람이 불어오는 것에 맞춰 흔들리는 검은 머리카락과 기다란 장포, 암록빛의 술띠, 그리고 감겨있는 눈과 일자로 굳게 다문 입술. 순간 진동룡은 그것을 보곤 이곳에 홀려들어 온 사람으로 착각했다. 하지만 곧 나무와 맞닿아 있는 부분엔 뚜렷한 경계가 없고 발끝 부분을 보니 바람이 불어오는 것에 맞춰 꽃잎이 흩날리듯 잘게 부스러졌다가 형체를 유지하려는 듯 다시 모이는 것을 보곤 사람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것은 사람이 아닌 매화나무 괴였다. 하지만 이만큼 사람의 모습을 완벽히 흉내 내고 있음에 진동룡은 이것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오래 존재한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이 지금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놓여있는지도 말이다. 지금은 눈을 감은 채 잠에 든 모습을 하고 있으나 언제 눈을 뜨고 인간인 자신을 공격할지 모를 일이었다. 어른들에게 수십 번이고 들어온 설화나 읽었던 고서에서처럼 인간을 먹는 존재일 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럼에도 진동룡은 굳이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저 검디검은 그것을 보고 있으니, 그것의 색이 궁금해질 뿐이었다. 하지만 진동룡은 반쯤 그것의 색이 무엇일지 예상이 갔다. 그럼에도 진동룡은 그것이 눈을 떴을 때의 색이 궁금해졌다. 필시 그것의 색은 아름다우리라.

진동룡은 결국 의문을 떨치지 못하고 매화나무로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것이 언제 눈을 뜰지도 모르면서, 그것이 눈을 뜨면 자신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면서, 괴력난신은 백해무익하다는 어른들의 소리도 떨쳐내며 진동룡은 그저 사부작사부작 나아갔다. 바지 끝자락과 길게 자라난 잡초가 스치며 부스럭부스럭 소리를 내었다. 하지만 그 소리가 크지 않아 간간이 불어오는 뜨거운 바람 소리에 묻혔다. 하지만 진동룡이 한 발 더 내딛는 순간 딱, 하고 경쾌한 소리를 내며 나뭇가지 하나를 밟아 부셔버렸다. 진동룡이 이 소리를 듣고 눈치채기도 전에 시야가 순식간에 뒤집히며 세상이 거꾸로 보였다. 진동룡은 당황하여 몸을 비틀었으나 발목이 무언가에 붙잡힌 듯 시야가 다시 뒤집어지지도, 허공에서 떨어지지도 않았다.

그런 진동룡의 앞으로 검은 것이 떨어져 내렸다. 나무 위에서 사뿐히 떨어져 내린 그것은 어딘가에 앉아 있다가 일어나면 사람들이 그러는 것처럼 옷을 털어내고 있었다. 그리곤 휙, 고개를 들어 진동룡을 마주했다. 그것의 눈은 이곳에 만개한 매화보다도 더 진한 붉음을 눈에 담고 있었다. 진동룡의 예상대로였다. 매화를 눈에 박아 넣은 이. 아니, 것이라고 칭해야 할까. 진동룡은 눈앞에 있는 것을 무엇이라 칭해야 할지 여전히 생각하고 있었다. 괴라고 생각했으나 정말 괴가 맞는 것인가. 그런 진동룡의 귓가로 날카로운 목소리가 스쳐 지나갔다.

“넌 또 뭐야?”

그것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인간의 말을 완벽히 구사할 줄 알았다.

“─어떤 놈인가 했더니만, 호랑말코잖아?”

……예의는 밥 말아먹은 듯하지만 말이다. 진동룡은 그것을 향해 뭐라 말을 꺼내기 위해 입을 열었으나 순간 눈앞이 돌았다. 곧 쿵 소리를 내며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진동룡은 땅에 얼굴이 부딪침과 동시에 윽! 하고 억눌린 신음이 터져나왔다. 얼굴이 부딪친 땅에는 다행히 돌이나 나뭇가지처럼 부딪힐만한 것이 없었기에 상처가 나지는 않았으나 땅에 코가 눌리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진동룡은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을 새도 없이 빠르게 몸을 일으켜 눈앞에 있는 그것을 보았다. 그것은 진동룡을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어쭈, 째려보냐? 흙투성이 얼굴로 째려보면 뭐가 나온다고 그렇게 쳐다봐.”

진동룡은 그것의 말에 차마 말대꾸도 하지 못하고 신경질적으로 얼굴을 닦아냈다. 흰 옷소매로 얼굴을 닦아내니 소매엔 갈색빛의 흙먼지가 묻어났다. 평소 단정함과 깨끗함을 추구하던 진동룡의 입장에선 그 작은 오염이 못마땅하여 눈살을 찌푸렸다. 

“대답 안 하냐.”

그것은 눈살을 찌푸리고 있는 진동룡을 향해 말했다. 진동룡은 더러워진 흰 소매에서 시선을 옮겨 그것을 보았다. 다른 그 무엇보다도 붉음이 눈에 바로 들어왔다. 진동룡은 그 붉음에 시선을 완전히 빼앗겨 버리기 전에 황급히 시선을 내려 짙은 초록빛 술띠를 보았다.

“아닙니다.”

“뭐?”

“저는 호랑말코가 아니라 무축입니다.”

진동룡은 호랑말코란 말이 마음에 들지 않자, 진동룡은 본인을 무축이라 하였다. 가문에선 이제 더는 그리 불리길 꺼려하지만 가문 대대로 무축으로써 살아왔고 지금도 나이가 많은 웃어른들은 무축을 업으로 삼고 있었으니 틀린 말은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진동룡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 

“아니, 그게 그거다.”

“무축과 호랑말코는 엄연히 다릅니다.”

“속세를 벗어나 그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으며 살아야 하는 스님이 사찰을 세워 재물을 취하고 술과 고기를 먹고 마시며 삶에 집착하면 땡중이 되는 것과 같이 무축도 사가 아닌 생의 길을 걸으며 사자가 아닌 생자 속에 살아가며 명성을 좇고 지위를 좇으면 호랑말코가 되는 거다. 무축은 생과 사의 길에서 흑백무상黑白無常*이 놓친 존재들을 거느리고 다스리며 산 자와 죽은 자의 간극을 이어주는 존재여야지 생자 틈에 어거지로 몸을 구겨 맞추는 존재가 아니야.”

*흑백무상黑白無常 :  흑무상과 백무상. 중국 한족 민속문화에 나타나는 2인 1조의 저승사자. 백무상은 선한 망자의 후손에게 복을 내려주며 남성의 혼을 거둬가고 여성의 백을 흩뿌린다. 흑무상은 악한 망자의 후손에게 불운을 내리며 남성의 백을 흩뿌리고 여성의 혼을 거둬간다.

진동룡은 차마 목구멍 깊이 박혀있는 목소리를 내뱉을 수 없었다. 자신은 아니라고, 그렇지 않다고 내뱉고 싶었으나 그것의 말이 맞았기에 차마 반박할 수가 없었다. 물론 지금 자신의 상황이 스스로가 원하였기 때문이 아닌 가족의 억압때문이었으나 본인은 아무 말하지 않고 따르고 있었으니 말이다. 홀로 급격히도 변하는 감정의 굴레 속에서 진동룡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이만 가라. 망혼일 때문에 벌어진 틈새로 우연히 들어온 것 같으니 그냥 보내주마.”

그것은 그렇게 몸을 돌려 매화나무의 곁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것의 걸음걸음마다 붉은 꽃잎이 내려앉았다가 바스러졌다. 매화 특유의 달달함은 한순간에 사라지고 쌉쌀한 향이 톡하고 튀어나와 진동룡의 코를 건드렸다. 매화가 피고 떨어져 사라지는 것이 이별을 말하는 것과 같았다.  진동룡은 문득 그것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싫습니다.”

“뭐?”

매화나무 옆에 선 그것이 미간을 찌푸리며 진동룡을 돌아보았다. 역시나 매화나무가 본체인 듯 그것이 매화나무 가까이 서자 둘의 경계는 허물어져 있었다.

“싫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진동룡의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쳐다보았다. 그러곤 골치 아픈 것을 만났다는 듯 머리를 벅벅 긁어댔다.

“호랑말코가 아니라 그냥 미친놈이구나?”

“아뇨. 호랑말코도, 미친놈도 아닙니다. 당신이 그 무엇도 아닌 것처럼요.”

그것의 눈에 순간 흥미가 감돌았다가 금세 사라졌다. 정말 한순간에 일어났기에 그 누구도 보지 못했음이 맞았지만 어려서부터 주변의 시선에 노출되어 온 진동룡은 확실히 보았다. 진동룡은 두 손을 가슴 앞으로 내밀어 포권을 취하였다.

“이 자리에서 당신에게 정식으로 배움을 청합니다.”

“싫은데.”

그것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거절을 내뱉었다. 진동룡은 그런 대답이 놀랍지 않았기에 무념무쌍하게 바라보았다. 그런 진동룡의 시선이 아무렇지도 않은지 그것은 그저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파며 짝다리를 짚었다. 그러곤 곧 귀를 파던 새끼손가락에 후ㅡ, 하고 숨을 뱉었다.

“다시금 당신께 배움을 청합니다.”

“일 없으니까 가라.”

그것은 진동룡을 향해 손을 휘휘 흔들었다. 명백히 축객령의 의미였으나 진동룡은 발이 땅에 붙어버린 듯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그것이 자신을 받아줄 때까지 이곳에 서있겠다는 듯 그를 쳐다보았다. 진동룡은 그것에게서 작은 희망을 보았다. 그렇기에 진동룡은 가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어떤 성향의 존재인지는 모르겠으나 자신을 아직 이렇게 살려두고 있다는 것에 의의를 두었다.

그것은 그런 진동룡을 보며 으, 소리를 내며 얼굴을 와락 꾸겨버렸다. 제 말을 듣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일 존재임을 뒤늦게 깨달은 탓이었다. 그것은 이대로 있으면 결국 결론이 나지 않는다고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것은 진동룡에게서 몸을 돌려 다시 매화나무의 곁으로 더욱 가까이 향하였다. 매화나무와 그것이 더욱 가까워지자, 그것의 몸은 서서히 흩날리며 매화나무와 하나가 되어갔다.

진동룡은 그 풍경을 보며 황급히 입을 열어 소리쳤다.

“다음에 또 찾아오겠습니다!”

그것은 몸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코웃음을 쳤다. 망혼일만 아니면 함부로 찾을 수도, 들어올 수도 없는 곳인데 과연 어떻게 찾아오련지. 주변에 쳐놓은 결계를 한 번 더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을 끝으로 그것은 매화나무와 하나가 되었다. 그리곤 아까 진동룡을 허공에 들어 올렸다가 놓아버린 것처럼 멍하니 서서 여전히 갈 생각을 하지 않는 진동룡의 발목을 잡아 결계 밖으로 가져다 버렸다.

인간 한 명이 사라진 자리엔 적막이 내려앉을 새도 없이 바람 불어오는 소리와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꽃잎과 나뭇잎이 부대끼는 소리가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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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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