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존동룡 - 연심
그렇게 진동룡에게 매화향은 연심향이 되었다.
* 2320.08.03 일자 글 백업
* 용두사미. 끝부분이 흐지부지.
* 글을 쓰며 자주 들은 곡 → https://youtu.be/dJhp6awU5Z8?si=2gTR2LZZ4ba69dTo
연심.
그저 듣기만 해서는 사랑을 뜻하는 말 중 하나였으나 진동룡에게 있어서 조금 달랐다. 물론 진동룡 역시 처음엔 그저 사랑을 뜻하는 말 중 하나로 사용하였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리워할 련戀이 아닌 잇닿을 련連을 써 연심連心. 사람을 잇는 마음이라는 뜻으로 그리 사용하였다. 사랑 또한 사람과 사람 간의 수많은 갈래 중 하나이자 사람과 사람을 잇는 수많은 실 중 하나이니. 진동룡이 연심이란 글자를 써내려가며 이보다 더 어여쁜 단어가 있을까 생각했다.
처음은 그저 향 때문이었다. 한 번 맡으면 절대로 잊을 수 없는 향. 처음엔 톡 쏘며 공격적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꽃이 만개하듯 끝없이 달달해지고 결국엔 진득하게 눌어붙어 잡은 이를 쉬이 놓지 않는 향. 한 번 입에 넣으면 혀끝이 아릴 정도로 진득하게 달라붙는 달달한. 언제까지고 사라지지 않을 것 같지만 결국엔 바람에 흩날리고 입 안에서 녹아 은은한 잔향만 코끝에 맴돌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이것. 진동룡은 처음 이 향을 맡았을 때를 떠올린다. 첫 향은 너무나도 공격적이었기에 얼굴을 순간 찡그렸으나 결국엔 중독되어 버린 이 달달한 향. 어느 순간부터 빠르게 두근거리는 제 가슴에 손을 올렸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심장이 터질 듯 빠르게 뛴다. 이 느낌이 이유 없이 좋아서 저도 모르게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처음엔 이 향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두 번째로 맡았을 땐 안다. 매화향. 매화향이 폐부를 가득 채운다. 그러다 진동룡의 시선 끝에 누군가가 걸렸다.
진동룡은 그제서야 이 향이 화산에서 제일가는 붉디붉은 매화의 향이었음을 깨달았다.
처음엔, 그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간 종남에서 보고 배운 것이 있지 않은가. 자신이 평생을 몸담아 배워온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짐을 생각하기 싫어 진동룡은 저가 매화에, 매화향에 취했음을 인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종남산 밖에서 이따금 맡을 수 있는 매화향은 너무나도 매력적이라서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은 처음 그 향을 맡았을 때부터 이미 매화향에 중독되었고 취해있었다. 매화는 화산을 대표하니 직접적으로 매화라 할 수 없어 연심이라 하였고 연심戀心이라 할 수 없어 연심連心으로 바꾸었다. 그렇게 진동룡에게 매화향은 연심향이 되었다. 연심향. 사랑을 뜻하는 것 같으면서도 진흙 속에서도 아름답게 꽃을 피워내는 연꽃을 생각나게 하는 단어. 그리고 저에게 있어선 그와 자신을 잇게 만들어준 향을 뜻하는 단어. 너무나도 달콤한 단어였다. 당신에게도 내가 그런 존재일까, 그런 존재가 될 수 있을까. 홀로 생각해 보지만 알 수 없었다. 진동룡은 먼저 다가갈 용기도 없었으나 그의 향이 자신에게 닿은 것처럼 자신 역시 그에게 닿을 수 있으리라고 감히 생각하였다.
이제 진동룡은 종남산을 벗어나 사형제들과 서안에 가는 날을 기대했다. 오늘은 그가 서안에 왔을까, 오지 않았을까. 왔다고 해서 그와 스쳐지나가는 것조차 없음에도 진동룡은 그저 그가 궁금했다. 그의 시선에 들지 않아도 저가 그의 모습을 보고 있음에 충분하였고 언제나 다름없는 연심향을 맡음으로도 충분했다. 진동룡은 정말로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해서 선물을 보낸 것은 그저 단순한 변덕에 불과했다.
꽃 모양으로 매듭지어져 있는 붉은 술. 그것이 눈에 들었기에 진동룡은 무작정 그것을 샀다. 푸른 술이 없던 것은 아니었으나 그를 생각했을 때 파란색은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는 색이었다. 결국 파란색 도복에 붉은 술은 너무나도 눈에 띄어서 사용할 수 없음에도 진동룡은 그 술을 품에 넣곤 종남산에 돌아왔다. 자신의 처소로 들어간 진동룡은 붉은색 술을 몇 번이고 매만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에겐 어울리지 않고 사용할 수 없는 술이었다. 사용할 수 없어 버리기엔 치룬 값이 적지 않아 아까웠고 보관만 하기엔 너무나도 아쉬웠다. 해서, 주기로 했다.
진동룡은 저가 산 붉은 술을 전냥과 함께 그가 자주 찾는 객잔 점소이에게 주며 부탁하였다. 누가 주었는지는 말하지 말고 그냥 매화검존께서 오시면 전해달라고. 차마 자신이 직접 줄 용기도 없었고 제 선물을 받는 그의 모습은 너무나도 떨려 직접 볼 생각도 들지 않았다. 자신이 준 선물이 그의 마음에 들길 바랄 뿐이었다. 그것 외에는 바라는 것 없었다. 그가 그것을 받고 저에게 아무 것도 주지 않는다 해도 충분하였다. 자신이 누구인지 몰라도 충분했다. 그저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일이 있어 며칠만에 서안에 내려온 진동룡은 제 사형제들과 떨어진 후 객잔으로 향하였다. 객잔은 아직 준비 중이기에 한산했고 점소이는 할 일이 없어 보이는 듯했다.
“잘 전해주셨습니까?”
진동룡의 물음에 점소이는 순간 진동룡이 누구인지 확인하는 듯했다. 그러곤 금방 기억해낸 것인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암요, 잘 전해드렸습니다.”
“주는 이가 누구인지는 말하지 않으셨겠지요?”
다행히 점소이는 진동룡의 부탁을 잘 지킨 것인지 허리를 당당하게 피곤 에헴! 하고 헛기침을 하더니 절대로 그러지 않았다며 자신감 넘치게 말하였다. 진동룡은 그 말에 짧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품 안에서 주머니를 꺼내었다. 그러곤 주머니 안에서 전낭을 꺼내어 주었다. 점소이는 받은 전낭을 세며 좋아하니 진동룡이 슬쩍 물었다.
“검존께서 받으시곤 어떠셨습니까.”
그 말에 전냥을 세고 있던 점소이의 손이 느려졌다. 점소이는 잠시 고민하듯 허공을 쳐다보곤 생각났는지 진동룡을 바라보았다.
“좋아하시는 듯했습니다. 받으신 걸 오래 보시다가 품에 넣으셨거든요.”
그때 표정이 나쁘지 않으셨으니 좋아하셨을 겁니다. 진동룡은 그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에도 또 부탁하겠습니다.란 짧은 말을 남기곤 진동룡은 객잔에서 나와 제 사형제들이 있을 곳으로 향하였다. 걸음걸음에 맞춰 불어오는 바람이 마치 지금의 제 마음과도 같아서, 상쾌한 바람 향에서 연심향이 느껴지는 듯하여서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붉은색 술은 괜찮으셨나 보다. 그리 생각하며 진동룡은 제 마음에 대한 아주 작은 용기를 얻었다.
그 이후로 진동룡은 서안에 내려갈 때면 가끔은 물건을 사곤 했다. 평소 물건을 사는 성정이 아님을 아는 사형제들은 그런 진동룡에게 묻는 듯한 눈빛을 은근히 보이곤 했으나 진동룡은 그 눈빛들을 쉬이 무시하였다. 아니면 다른 주제로 눈길을 돌리게 하거나. 해서 진동룡의 처소 안에는 본인이 쓰지 않을 물건이 하나둘씩 늘어갔다. 단 한 명만을 향한 마음이 쌓여갔다. 언젠가 쌓여있는 제 마음도 그에게 닿았으면.
처음 물건을 하나둘 모을 땐 붉은색, 푸른색, 초록색, 노란색 등 알록달록한 물건이 모이곤 했다. 하지만 선물을 보냈을 때 반응이 그리 좋지 않았던 색은 더 이상 손이 가지 않았기에 점차 다양했던 색들은 단순해졌다. 붉은색과 초록색. 간간이 분홍색이나 흰색도 괜찮아했으나 제일 좋아하던 것은 홍매화를 닮은 분홍색이 섞인 은은하고 짙은 붉은색. 진동룡은 붉게 물들어진 가운데 간간이 초록색이 섞여 있는 제 목함을 보며 마치 꽃을 피워낸 나무와 같다고 생각했다. 이곳에 조금이라도 푸른색도 함께하였다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종남의 모든 이들이라면 뼈저리게 알 듯 매화검존은, 저가 마음에 품고 있는 그는, 종남을 무척이나 싫어했고 그래서인지 푸른색 선물은 그리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물건이 문제인가 하고 다른 물건으로 몇 번 바꾸어 주었을 때도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그 물건들도 기쁘게 받지는 않았다. 진동룡은 결국 푸른색을 선물하는 것을 포기했다. 좋아하라고 억지로 안겨줄 마음도, 그러다 미움받을 용기도 없었다. 어차피 혼자서만 주는 마음이지 않은가. 그저 혼자 뒤에서 전해주는 선물이기에 진동룡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는 선물들은 하나하나씩 제 목함에서 빼내었다. 그러곤 사매나 사저에게 주었다. 단 한 명을 생각하며 고른 물건들이었으나, 그 단 한 명이 마음에 들어 하지 않기에 다른 이에게 나누었다.
이제 진동룡은 그간 조금씩 쌓고 쌓았던 용기를 냈다. 그렇다고 직접 전해줄 마음이 생겼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제 선물을 받는 그의 모습을 직접 보자는 결심이었다. 선물을 그에게 전하기 시작한지 몇 개월을 지나 벌써 한 해를 향해가는 와중에 이 정도 용기가 생길법하다고 진동룡은 생각했다. 다른 이에겐 몰라도 진동룡에겐 이것이 매우 큰 용기이자 결심이었다. 이제는 친해진 객잔의 점소이를 통해 그가 올법한 날짜를 골라 종남산을 나섰다. 옷은 눈에 띄지 않을, 양민들도 입을 법한 수수한 옷으로. 진동룡은 종남산을 나서면서 두근두근 빠르게 뛰는 제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를 직접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쉬이 진정되지 않았다. 그저 이 두근거림에 점차 익숙해지는 것이 최선이었다. 진동룡은 이 두근거림에 어색해하면서도 또 수수하게 기뻐했다. 저가 정말로 그를 마음에 품고 있음이 맞구나. 연심戀心과 연심連心을 알려주는 박동이구나.
진동룡은 서안에 도착하곤 자연스럽게 길을 걸으며 지나치는 모든 이들의 말에 귀 기울였다. 저에게 필요 없는 얘기가 있는가 하면, 필요한 얘기도 들려왔기에 그 이야기들을 조용히 들으며 길을 나서니 어느새 저가 그리던 향이 점차 짙게 풍기기 시작했다. 아, 다행히도 날이 잘 맞은 듯했다. 진동룡은 이전보다 살짝 더 가벼워진 발걸음을 이끌며 익숙하게 객잔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는 익숙한 점소이의 안내를 받으며 진동룡은 2층으로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밥을 먹으러 온 것은 아니었기에 간단하게만 시킨 진동룡은 점소이에게 물건을 맡기곤 곧 1층을 내려다봤다.
오시午時*을 훌쩍 지나 이제는 신시申時*를 향해가는 시간이었기에 술을 즐기는 이들이 많았다. 어쩌면 이 객잔 안에서 술 대신 차를 마시는 이는 저뿐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진동룡은 가만히 그들을 바라보았다. 신나게 웃고 떠들고 마시고 먹으며 즐기는 그 모습들이 진동룡에게 있어선 너무나 자유로워 보였기에.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뜨거웠던 차는 이제 미지근해졌고 술을 먹는 이들은 점차 끝을 향해가고 있었다.
* 오시午時 : 11시 ~ 13시
* 신시申時 : 15시 ~ 17시
곧이어서 객잔의 문이 열리고 점소이의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동룡은 고개를 돌려 지금 들어온 이가 누구인지 확인하는 순간,
제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
진동룡은 바로 앞에서 그를 본 것이 아니었음에도 황급히 얼굴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계속 보았다간 그가 제 시선을 눈치챌 수도 있었지만, 그보다 제 얼굴을 주체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진동룡은 더워진 얼굴을 식히기 위해 바로 미지근한 차를 벌컥 들이켰다. 마음이 쉬이 가라앉지 않는다. 어찌 해야 할까. 진동룡은 괜히 제 앞에 놓인 애꿎은 탕초리척을 젓가락으로 쿡쿡 찌르거나 뒤적거렸다. 먹지도 않을 탕초리척을 뒤적거리며 애써 자신을 가라앉히려 했지만, 자신의 시선이 계속 해서 그를 향해 간다는 것을 깨달은 진동룡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제 마음 때문에 몸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음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었다.
순간, 진동룡의 눈에 점소이가 들어왔다. 저가 아까 주었던 검붉은 주머니. 진동룡은 그것을 보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1층으로 내려갔다. 이제 점소이가 그에게 물건을 건내줄 터이니 더이상 이곳에 있을 이유가 사라졌다.
점소이는 그 주머니를 갖고는 술을 마시며 즐기고 있는 그에게로 향했다. 둘 사이에 짧게 말이 오가더니 곧 그가 주머니를 받아들었다. 그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주머니를 열곤 안에 든 물건을 바라보자 그의 얼굴엔 희미한 미소가 지어진 듯했다. 진동룡은 계산을 위해 점소이에 향하는 내내 그런 그의 행동을 전부 눈에 새겨넣었다. 만약 저 모습을 직접 앞에서 보았다면 무사하지 못하였으리라. 지금도 이렇게 가슴이 뛰어 위험한데 정말로 심장이 터져버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저가 직접 전해주지 않았음이 다행임을 느낀 진동룡은 안도의 한숨을 짧게 내뱉었다. 곧 그와 그의 친우 사이에 짧은 다툼이 이어지는지 웅성거림이 커졌지만 진동룡은 상관 쓰려하지 않았다. 자신이 오늘 객잔에 찾아온 목적을 달성했음에 앞서, 쳐다보았다 실수로 눈이라도 마주치면 당황해할 것이 분명한 저를 알았기에 진동룡은 그저 만족감을 느끼며 점소이에게 제가 먹은 값과 함께 조금의 값을 더 치룰 뿐이었다.
객잔을 나서기 전 진동룡은 더욱 소란스러워진 객잔 안을 느끼며 슬쩍 뒤를 바라보았고……
곧바로 객잔 밖으로 뛰쳐나갔다.
뛰쳐나가는 와중에 들려오는 살짝 호탕하기도 한 웃음소리와 거리를 가득 채운 연심향에 진동룡은 순식간에 얼굴에 열이 올라 벌게진 얼굴로 쉬지도 않고 서안을 도망치듯 달려 나왔다.
완전한 어둠이 찾아와서야 종남산에 도착한 진동룡은 다급히 자신의 처소 안으로 뛰쳐 들어갔다. 뒤에서 누군가 부르는 듯한 소리가 들렸지만 진동룡은 그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하였다. 장지문을 닫고 나니 한순간 힘이 빠진 진동룡은 미끄러지듯 자리에 주저 앉았다. 거센 숨을 내쉬며 진동룡은 두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그러곤 천천히 숨을 가다듬었다. 크게 들썩이던 등이 점차 작아지기 시작했다. 천천히 두 눈을 깜빡였다. 그때마다 객잔에서 마주쳤던 홍매화를 닮은 짙은 분홍빛 눈동자가 아른거렸다.
그 아른거림이 더해질수록 심장은 더욱 세차게 뛰었다. 이대로 가다간 제 심장 소리가 점점 더 커지다 못해 바깥까지도 들릴지 모를 일이었다. 진동룡은 차마 지금 느끼는 이 기분을 뭐라 해야 할지 단정 지을 수 없었다. 너무 기쁜가 싶으면서도 너무 떨렸고, 두려웠으며, 고통스럽기도 했다. 생각도 않던 선물을 받은 것만 같았다. 그것도 꿈에 그리고 그리던 선물을. 그 선물을 받았을 때 마음이 이럴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시간이 흐르니 처음보단 괜찮아진 자기 자신을 보며 진동룡은 제대로 생각이란 것을 할 수 있게 됐다. 하여 생각이란 것을 깊게 좀 해보기로 했다.
그 일이 있고서 진동룡은 꽤 오래 서안에 내려가지 못했다.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 길었던 것도 있었지만 더욱 결정적인 이유로는 그날 말도 없이 종남산 밖에 나갔다 왔음을 들켰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그렇게 시끄럽게 돌아왔는데 안 들켰다면 참 용하다는 말밖에 안 나오는 상황이었다. 그 외에도 장로의 물음에도 말없이 무시하곤 갈 길 갔다는 점도 후에 알음알음 귀에 들리게 됨에 따라 진동룡은 여러 가지 이유로 저를 기사멸조다 뭐다 하며 참회동에 넣는 대신 자숙의 의미로 외출 금지를 준 장문인의 결정에 박수를 쳤다.
해서 그날 느꼈던 감정을 정리하고 추스며 깊게 생각해본 바 진동룡의 결론은 단 하나였다. 제 연심이 더욱 깊어졌구나. 그렇지 않고서야 그리 행동했을 리가 없었다. 진동룡은 지금의 제 행동이 초련初戀*으로 갈피를 잡지 못하는 아해와 같음을 느꼈다. 하지만 그렇다고 먼저 다가갈 생각이 드는 것은 아니었다. 진동룡에겐 아직 그럴 용기가 부족하였다.
*초련初戀 : 첫사랑. 처음으로 느끼거나 맺은 사랑.
그렇게 진동룡은 그날 밤의 작은 일탈들을 뒤로한 채 세 달만에 종남산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안타까운 점은 꼭! 사형제들과 다녀야 했다는 점이었다. 그렇기에 오랜만에 서안에 왔음에도 그를 위한 선물을 맡기지 못하였다.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기회는 다음에도 있음을 알기에 진동룡은 그저 오늘 하루 같이 나온 사형제들과 즐기는 것으로 하였다. 서안에 내려와 사형제들과 함께 있는 것은 매우 오랜만이기도 하였기에.
꼬치나 당과와 같은 것들을 사고 먹으며 얼마나 돌아다녔을까. 저 멀리에서 누군가 달려오고 있었다. 그 사람은 점차 진동룡에게 가까워지더니 진동룡의 바로 앞에 서서는 진동룡을 불렀다.
"진동룡 도사님!"
진동룡을 부르는 목소리에서 힘껏 반가움과 즐거움이 담겨 있었다. 진동룡은 그 부름에 고개를 돌렸다. 진동룡을 부른 이는 자주 부탁을 맡기던 점소이였다. 점소이는 진동룡을 보며 미소 짓고 있었고 진동룡도 오랜만에 보는 이가 반가워 짧게 인사를 나눴다.
"헌데, 무슨 일이십니까?"
그 물음에 점소이는 매우 기쁜 일이라는 양 두 손에 꼭 쥐고 있던 검은 주머니를 건넸다.
“이걸 드리려고 달포 넘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진동룡은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면서도 주머니를 받았다. 종남에 돌아간 뒤 볼까 하였으나 저를 바라보는 점소이와 사형제의 눈길에 못 이겨 결국 받은 자리에서 주머니를 열어보았다. 열어본 주머니에는 새카맣지만, 빛에 따라 은은히 푸른 빛이 도는 술이 들어있었다. 꽤 값이 나가는 물품 같았다. 진동룡이 놀라 점소이를 바라보니 점소이를 크게 미소 지으며 그 분입니다! 그 분! 이라 말할 뿐이었다. 점소이의 말에 진동룡의 사형제들은 그분? 그게 누구야? 하며 서로 아냐고 물었으나 오직 진동룡만이 그 분이 누군지를 알았다.
진동룡은 한순간에 차오르는 기쁨에 눈을 크게 뜨고 말았다. 그러곤 점소이에게 정말입니까? 정말로? 하고 몇 번이고 되물었다. 그럴 때마다 점소이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그렇습니다! 하고 몇 번이고 대답해 주었다. 진동룡은 술을 다시 주머니에 넣으며 점소이에게 고맙다는 말을 빠르게 하곤 혼자서 자리를 벗어났다. 저 멀리서 사형제들이 진동룡을 불렀지만 진동룡에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홀로 종남산에 도착한 진동룡은 장문인께 짧은 인사를 남기곤 바로 제 처소로 들어왔다. 그러곤 다시 제 품에서 받은 물건을 꺼내었다. 사람이 많은 저잣거리에선 별로 눈치채지 못하였으나 혼자 있는 방 안에 들어오니 확실했다. 은은하게 풍기는 달콤한 꽃 향. 진동룡은 정말로 그가 저에게 선물을 주었음을 깨달았다. 진동룡은 지금 당장이라도 침상에 뛰어들어 데굴데굴 구르고만 싶었다. 하지만 정말로 그렇게 할 수는 없어 진동룡은 그저 술이 든 주머니를 코에 갖다 대곤 그 향을 깊게 맡았다.
연심향이 폐부를 가득 채운다. 진동룡은 이 향이 사라지지 않고 영원하길 바랐다. 도대체 어떠한 마음으로 저에게 이런 선물을 전하게 된 것인지, 그 마음을 어찌 정하게 된 것인지, 그 무엇도 알 수 없었음에도 진동룡은 그저 행복했다. 그도 자신과 같은 마음인가. 제 마음이 드디어 그에게 닿은 것인가. 그 무엇도 알 수 없음에도 진동룡은 연심향에 취한 듯 혼자 웃어 보였다. 저가 그에게 선물을 보내기 시작한지 어연 일 년만에 이뤄낸 성과였다.
진동룡은 한 사람만을 위해서 물건을 모아둔 목함을 열었다. 목함 안에는 언제나 그렇듯 붉은색과 초록색 물건이 어우러져 꽃이 핀 나무가 있었다. 진동룡은 그 목함 안에 검지만 푸른 빛이 도는 술을 넣었다. 꽃이 핀 나무 사이로 검푸른색의 하늘이 생겨났고 연심향이 목함 안을 가득 채웠다. 진동룡은 그것을 보며 감히 바랐다.
나의 연심戀心이 그와 나 사이의 연심連心이 되어 결국 그의 연심戀心이 될 수 있길.
만약 그리된다면 나는 그것의 이름을 연모戀慕라고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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