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귀환

청명백천 - 점소이의 일지

그저 저는 아무것도 모르는 한낱 점소이일 뿐이니까요.

보따리 by 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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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에 트위터에 풀었던 썰 하나가 길기에 내용을 살짝씩 수정하며 쓴 글입니다.

* 원본 트윗은 > https://twitter.com/gongzi_WN/status/1678468219752054784?s=20 

* 2023.07.14 일자 글 백업.

저는 화음현에 위치한 작은 객잔에서 일하는 점소이입니다. 아무래도 작고 구석진 객잔을 찾는 분들은 별로 없기 때문에 하루하루 조용하고 평화롭게 지내고 있어요. 그래도 이런 할 일 없는 객잔도 가끔씩은 특별한 손님분들이 찾아오시기도 한답니다. 그 특별한 손님들은 언제나 조용히 찾아오셨다가 시끌벅적하게 돌아가십니다. 다행히 객잔에 피해를 줄 정도는 아니니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있어요. 네, 그 특별한 손님들은 바로 화산파의 장문인과 화산검협이십니다. 간혹 세 분 또는 네 분이 더 오실 때도 있지만 대체로 두 분께서만 찾아오십니다. 해서 저는 이 두 분에 대해서 써볼까 합니다.

화산파의 장문인과 화산검협께선 화음현에 장터가 열리는 날이면 자주 내려오시곤 하십니다. 옛날부터도 간간이 내려왔다곤 하지만, 저는 그때 화음현에 없었기에 자세한 것은 모릅니다. 아무튼, 그래서인지 저잣거리 주민분들은 화산의 장문인과 화산검협을 스스럼없이 대하곤 한답니다. 저 역시 지금은 스스럼없이 대하지만 처음 객잔에 찾아오신 그 두 분을 보았을 땐, 기절할 뻔했지만요.

들려오는 얘기론 두 분의 나이가 무척이나 많다고 합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엔 두 분 다 이립에서 많아도 불혹밖에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이는 아마도 무위가 매우 높으시기 때문이겠죠? 무공에 무도 모르는 양민이지만, 길거리에서 주워들은 것은 있기에 그리 추측할 뿐입니다. 한낱 점소이일 뿐인 제가 무공에 너무 깊게 파고들 필요는 없죠.

아, 화산의 장문인께서는 높은 무위와 함께 누가 보아도 헌앙하신 외향을 갖고 계신답니다. 스쳐 지나간다 해도, 경공술을 펼치며 빠르게 지나가다가도 한눈에 들어오는 그 외향은… 차마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섬서에서, 아니. 중원 어디에서도 화산의 장문인보다 더욱 빼어나신 분을 찾기란 하늘에 별 따기일 정도로 어려운 일일 겁니다. 이것이 바로 팔방미인이라는 걸까요?

곁에 계신 화산검협께서도 높은 무위와 함께 헌앙하신 외향을 갖고 계시긴 하나, 장문인과는 달리 쉬이 다가갈 수 없는 분위기로 인해 평소엔 참으로 무서우신 분입니다. 물론 그것도 하나의 매력일 수 있지요. 하지만 잠시 멀리서 일을 보시다가 장문인께서 다시 돌아오시면 흉흉했던 기세는 어디론가 사라지곤 금세 미소 짓곤 합니다. 그래도 혼자서 화음현에 내려오실 땐, 마을 아이들에게 무척이나 다정다감하게 대해주십니다. 품속엔 언제나 달달한 당과나 알록달록한 사탕을 갖고 계시다 아이들이 다가오면 익숙하게 나눠주시죠. 저도 이번에 하나 받았답니다.

 

아, 이게 아니라. 이어서 써보자면, 화산의 장문인께선 화음현에 내려오실 때마다 늘 흰 멱리를 쓰고 내려오십니다. 그리고 언제나 화산검협께서 곁에 계시죠. 간혹 장문인께서 홀로 내려오실 땐 멱리를 쓰지 않고 오시곤 합니다. 그럴 때면 저잣거리의 상인과 손님, 아이들까지 너 나 할 것 없이 장문인을 힐끔힐끔 쳐다보곤 하죠. 하지만 그것도 잠시, 화산검협께선 장문인이 자주 쓰고 다니시는 멱리를 갖고 와 직접 씌어 주는 모습은 화음현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풍경 중 하나랍니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화산검협께선 늘 장문인께 무어라 말을 하시곤 하지만 그 내용은 들리지 않아 잘은 모릅니다. 하지만 곧 장문인께서 웃으시며 화산검협의 머리를 몇 번 쓰다듬고 나면 화산검협께선 언제 화를 내었다는 듯이 장문인을 따라 미소 짓곤 한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늘 생각하지만 장문인과 화산검협께선 매우 가까운 관계인 듯합니다.

장문인과 검협께서 제가 일하는 객잔에 찾아오시면 언제나 같은 음식들을 시키시곤 합니다. 물론 작은 객잔에서 얼마나 다양한 메뉴가 있냐고 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같은 음식들을 항상 시키신다고 할 수 있죠. 술과 고기. 간혹 고기가 빠지거나 볶음요리까지 더 추가되기도 하지만 대체로 술과 고기는 항상 시키시는 음식이랍니다. 언제나 같은 음식을 시킨다는 건 점소이인 저에게 매우 편한 일이지요. 그렇게 완성된 음식들을 드리고 나면 장문인과 검협께선 맛있게 드시기 시작합니다. 중간중간 여러 이야기를 나누는 듯하지만, 대체로 화산이나 타 문파, 또는 녹림과 같은 사파에 관한 얘기도 나오는 걸 보면 현 강호의 흐름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듯합니다. 중간중간 분위기가 심각해지거나 검협께서 난동을 부리려 할 때면, 장문인께선 앞에 놓인 고기를 집어 검협의 입에 갖다 대고 검협은 익숙하다는 듯 그 고기를 드십니다. 그러고 나면 방금 전까지 심각했던 분위기는 어느새 사라지고 다시 평화로워지죠. 이런 모습을 볼 때면 이리 쉽게도 그 화산검협을 다룰 수 있어야 장문인이 될 수 있는 건가 싶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요즘 화산의 장문인께선 장신구에 관심을 많이 가지시는 듯합니다. 화산검협 없이 홀로 저잣거리를 걸을 때면 꼭 장신구를 판매하는 노점 앞에서 오랫동안 서 있으시거든요. 장신구를 보는 눈이 신중하고 장신구를 매만지는 손길이 조심스러운 걸 보면 매우 고민이 많으신 듯합니다. 하필 며칠 내내 장터에서 그리 있으시길래 쓸데없는 오지랖으로 말을 걸고 말았지만요….

“무슨 일이시기에 그리 고민 중이신가요?”

“……아, 객잔의 점소이셨군요. 별일 아닙니다. 그저 선물을…”

다행히 장문인께서는 아주 다정하게도 저의 물음에 답해주셨습니다. 그건 그렇고 장신구를 선물하신다니… 며칠째 깊게 고민하신 걸 보면 장문인께 있어서 매우 중하신 분인 것 같습니다. 장문인께서 제게 추천할 것이 있는지 묻기에 열심히 대답해드렸답니다. 화산의 장문인이시니 상대 역시 매화와 어울리는 사람일까요? 저는 장문인께 붉고 흰 매화가 새겨진 가락지와 팔찌를 얘기했고 장문인께선 마음에 들어 하시니 추천하길 잘한 것 같습니다. 짧은 인사를 뒤로하고 객잔으로 향하는 내내 생각해 보아도 장문인께 선물 받는 분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리 마음을 다해 고른 선물이니 받으면 필시 좋아하리라고 생각해요.

이 일이 있고서 며칠간 화산의 장문인과 화산검협께선 화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셨습니다. 길거리 거지들이 속닥이는 것을 들어보면 화산의 몇몇 분들이 어디론가 향했다고 하지만, 정확히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네요. 무슨 일이실까 걱정도 되지만, 그저 한낱 점소이의 걱정은 그분들껜 도움이 될 리가 없죠. 화산의 몇몇 분들이 어디로 향했다는 것 외엔 아무런 얘기가 없는 걸 보면 그리 큰일은 아닌 듯싶습니다.

늘 그렇듯 특별한 일 없이 평화롭게 지내던 와중에 반가우신 분들이 찾아오셨습니다. 네, 바로 화산의 장문인과 화산검협이십니다. 달포 넘게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는데, 이제 시간이 되시는지 찾아오셨습니다. 늘 앉던 자리에 앉으시곤 늘 먹던 것들을 시키셨답니다. 중간중간 음식을 나르며 얘기를 들어보니 잠시 먼 곳에 다녀오신 듯합니다. 정확하게 어떤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사천에서 먹었던 음식 얘기를 하시는 걸 보면 사천에 다녀오신 것 같답니다. 이전과 다름없이 서로를 챙기며 얘기하시는 모습을 보면 달라진 것 없는 두 분의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은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이전에 장문인께서 고민하시던 선물은 잘 전해주셨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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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제 걱정은 역시나 필요 없었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장문인과 검협의 손에 달포 전에는 없었던 것을 발견했거든요. 아무래도 일을 하며 보았기에 확신을 할 수 없었지만, 네. 달포도 전에 장문인께서 고민하시던 장신구가 맞는 것 같습니다. 장문인의 손엔 붉은 매화가, 검협의 손엔 흰 매화가. 서로를 떠올릴만한 어여쁜 장신구를 착용하고 있었습니다. 이로써 제 궁금증이 해소가 되었습니다. 장문인이 중하게 생각하는 이. 그것은 바로 화산검협이셨나 봅니다. 생각해보면 장문인께선 늘 혼자 있을 때만 장신구 노점 앞에 서 있었지 화산검협과 함께일 땐 한 번도 발걸음 하시지 않으셨네요. 아마 선물을 비밀로 하고 구하려고 하신 듯합니다.

장신구를 슬쩍 쳐다보던 와중에 장문인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장문인께선 손에 있는 붉은 매화를 매만지시다 제게 은은한 미소를 지으시며 고개를 살짝 흔드셨습니다. 이는 함구하시길 원하는 거겠죠. 저는 당연히 그런 장문인께 고개를 끄덕이곤 제가 마저 해야 할 일을 하러 자리를 비웠습니다. 제 의문은 이제 해결되었고 이 이상 쳐다보는 것은 두 분께 실례인 일이니까요. 그저 두 분께서 행복하시길 바랄 뿐이죠.

일을 하는 와중에 저를 쳐다보는 시선을 느끼기도 했지만, 검협을 부르는 장문인의 목소리와 함께 검협의 부루퉁한 대답을 들으며 애써 그 시선을 무시했습니다. 그저 저는 아무것도 모르는 한낱 점소이일 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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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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