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실점 2부

소실점 2부

Prol.

laid back by A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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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8 작성



〈 소실점 2부 〉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오래 걸릴지도 모르는데.”

“내가…… 기다리는 건 좀 잘하는 편인데. 어때, 이리트?”

간혹 그리페는 이런 식으로 실없는 소리를 해 댔다. 아양이라도 떠는 듯한 행동을 마주한 이리트의 입꼬리가 슬그머니 호선을 그렸다. 그리페의 뺨을 감싼 손이 희미한 흉터 위를 부드럽게 쓰다듬더니 그대로 입을 맞추었다. 맞닿은 입술로 전해지는 온기. 이리트가 다가오는 순간부터 눈을 감은 그리페의 손이 제 연인의 목덜미를 스치고, 부드러운 머리칼을 쓸었다.

“얼른 다녀올게. 오래 안 기다리게.”

이리트가 멀어지고, 아쉬움에 잡았던 손마저 떨어졌다. 금방 다시 보게 될 줄 알면서도, 왜 이리트와 떨어지는 일은 이토록 아쉽기만 할까. 며칠 내내 한시도 빠짐없이 이리트와 붙어 있었던 탓일지도 몰랐다. 늘 저보다 낮은 체온의 잔상이 멀어지는 것이 싫어, 그리페는 주먹을 말아 쥐었다.

자신과 달리 미련이라고는 없는 듯 멀어지던 이리트가 문득 뒤돌아섰다. 당연히 눈이 마주치리라 생각했는지, 놀란 기색도 없이 이리트가 손을 흔들어 보였다. 마주 손을 흔들고 나서야 이리트는 복도 한쪽의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섰다. 가슴 한구석에서 불안감이 자꾸만 고개를 치켜들었다.

이리트와 협회장이 맺은 계약은 당사자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자신은 말할 것도 없었으며, 협회 내의 모든 정보를 알고 있다고 해도 모자라지 않은 웨이드조차. 이리트는 계약에 대해 거의 말하지 않았지만, 여러 정황을 종합해 봤을 때 그 계약은 어떤 조건을 만족하면 효력이 사라지는 식일 터였다. 제가 알 수 있는 건, 팔마가 무너지며 이리트는 계약의 조건을 충족했다는 사실뿐이었다.

불안은 무지에서 온다. 지금의 제가 그렇듯이. 그리페는 여기저기 상흔이 새겨진 제 손을 한참이나 응시하다가, 벽에 등을 기대고 섰다. 이리트가 계약을 대수롭지 않은 듯 얘기했으니 분명 괜찮을 터였다. 그는 제게 그런 거짓말을 하느니 차라리 입을 다물 사람이었으므로. 닫힌 문 너머로 이리트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용을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희미한 소리였으나 그리페는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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