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거센 폭풍을 거치어
알을 깨고 나온 아기새는 언젠가 둥지를 떠나고 말듯이, 무릇 세상은 어린 것들이 그저 안주하기만을 바라지 않는다. 어린 것들은 날갯짓해야 할 때를 본능적으로 알았다. 그리고 그것은 붉은 머리카락의 어린 용기사도 마찬가지였다.
깨달음은 그저 어느 순간부터 자리했다. 계약이 이루어졌으므로, 머지않아 이곳을 떠나야 할 것이라고. 힘을 받았으니 응당 그에 맞는 의무를 져야 할 것이라고. 서툴고 어리석음은 더이상 용납되지 않는 세계로. 무기를 들고 끊이지 않는 춤을 춰야 하는 세계로.
오롯한 두려움도 오롯한 설렘도 아니었으며 그 둘이 혼재한 감정. 그의 심장 박동을 거세게 하는 것. 그에 목동은 내내 생각만 했던 일을 실천에 옮기기로 했다. 날갯짓하기 전, 깃털을 다듬을 때다. 더 높이, 더 멀리, 더 빨리 날아가기 위해.
청년은 발걸음을 재게 놀렸다. 행동하기 전에도 행여 실례는 아닐지 몇 번이고 고민했던 터라, 길 찾는 것에 서툰 이 치고는 드물게도 오래 헤매지 않았다. 어쩌면 그가 이 대지에서 꼭 그만큼의 시간을 보냈다는 증거겠지.
“오랜만이에요…!”
처음 이곳에 왔을 적엔 균형의 묘리와 제련의 아름다움을 배웠다. 그렇다면 지금은 그 대가大家에게 제 일부와도 같은 것을 내맡길 때. 뜨거운 열기와 낭랑한 쇳소리가 자리하는 곳에 붉은 머리칼이 빠끔히 고개를 디민다. 등에 짊어진 것은 매일 아침 지고 나가던 창과 대검 한 자루씩.
긴 설명은 필요 없었다. 그는 곧은 랜스 형태의, 클로버가 새겨진 창을 드워프에게 건넸다. 이어 건네지는 것은 날이 널찍한 대검이었다. 둘 모두 새것으로, 맞춘 지 얼마 되지 않았으나 손잡이는 이미 길이 들어 있었다.
이미 무기는 크게 흠 잡을 곳 없었고 분명 근사했다. 그러나 양치기는 이곳의 대장장이들을 그 누구보다 믿었으며, 무엇보다, 최초의 대지에 제가 발을 딛었다는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 기억은 시간으로 인해 옅어진다. 오래도록 남는 것은 손에 쥔 실체 뿐.
그렇게 어린 새는 자신의 깃털을 기꺼이 세계수의 주민에게 맡긴다. 이 기억 또한 무기를 잡을 때마다 오래도록 되새겨질 테다. 그러므로 머지않아 이곳을 떠날 때, 단 한 점의 아쉬움도 남기지 않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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