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들바람은 유하며,

여덟: 산들바람에서 난 이여

돌이켜 보자면 어린 목동은 꾸준한 이였을지언정 빠른 이는 되지 못했다. 처음 무기란 것을 손에 쥐었을 때도 그랬으며 새로운 지식을 익힐 때도 그랬다. 내달리는 것을 즐겼으나 속도는 그의 장기가 아니었고, 내세울 만한 것은 그 끈기였으므로.


그에게 기민함이란 난제였다. 내내 부러움에 좇으면서도 제가 얻을 수 없음을 순순히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 그러나 어디 인간에게 포기가 쉽던가? 알레이 에버그린은 발목의 재빠름과 머리의 민첩함을 오래도록 동경했다. 상록의 이름을 달았던 때부터 사크라 테라에 도달한 지금 이 순간까지.


그러니까, 그것이 최초의 대지에 숨 몰아쉬는 양치기가 여즉 달리고 있는 이유겠다.








반 시간 전.


“언제나 느린 것이 제 고민이어요.”


청년은 무릎 위에 턱을 얹은 채 중얼거렸고, 이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붉은 인영 곁에는 자그마한 세계수의 주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어린 용기사가 가르침을 구하던 참이었다.


그리고 양치기는 뒤늦게 깨닫는다. 어쩌면 조언을 구할 상대를 잘못 구한 것이 아닐까, 하고.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의 주위에 둘러앉은 것은 드워프도, 엘프도, 노움도 아닌 요정들이다. 풀빛 눈동자가 굴러 최초의 대지의 장난꾸러기들을 바라본다. 흰 낯은 이어 제가 내뱉은 말의 대가를 결심하는 듯 사뭇 비장해진다…….


예상은 적중했다. 요정들이 유쾌한 웃음을 꺄르르 터뜨렸다. 느린 게 걱정이야? 그럼 우리랑 연습하면 되지! 해본 적 있잖아! 그렇지, 기억하지이~?


그렇게 제 2차 술래잡기가 시작된 것이다. 첫번째 것과 다른 점이 있다면 요정들의 손에 그 어떤 것도 들려 있지 않고, 그러므로 청년이 눈을 질끈 감은 채 달리는 것은 오롯이 그의 의지라는 점. 후, 훈련 좋지요! 그런데 제가 말한 건 단순히 다, 달리기가 아니라—!! 아니, 좀, 헉, 천천히 같이 가주시면—!!! 애처로운 외침이 울려퍼졌다.


그 정도 당했으면, 처음 요정들에게 조언을 구할 적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미리 꿰뚫어볼 법도 한데. 이 느린 청년은 스스로가 눈치도 좋은 편이 아님을 여실히 보여준다. 도대체 이것 또한 그들의 장난이라는 사실을 언제에나 깨달을 모양인지. 뭐, 그래도 내달리는 이 모두가 즐거우면 된 일 아니겠나. 오늘도 사크라 테라에는 요정들의 웃음이 메아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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