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자시프] 철지난 음유시인의 노래

두번째 리퀘박스 02

글쓰는 오이 by 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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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반 썰 https://x.com/runningcucumber/status/1709799204783321211?s=20

체자렛 알티온은 가끔 알 수 없는 노래를 흥얼거리곤 했다. 본인 말로는 100년 전 꽤나 유행했던 유행가라고 했으나 백년을 넘게 살아온 이들도 모른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러게 꽤나- 유행했던 곡이라고 말했잖아요? 지금은 아무도 모를거예요. 아, 한 명 쯤은... 알지도?”

체자렛의 시선이 로드에서 벗어나 오른쪽의 시프리에드로 향했다. 시선을 받은 시프리에드는 곧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글쎄요. 모든걸 다 기억할 수 있는건 아니라.”

체자렛이 미소지었다.

“그 노래를 상당히 좋아했나봐.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는 걸 보면.”

“좋아한다라.. 그럴지도요. 어쩌면 오기일 수도 있겠네요.”

“오기?”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은 로드에게 체자렛은 그저 웃으며 찻잔을 입으로 가져갈 뿐이었다.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침묵 속에서 셋의 티타임이 끝이 났다.

평화로운 시절의 이야기다. 자세히 뜯어 보면 크고 작은 분쟁이 있지만 멀리서 보면 평화롭기 그지없던 시절, 마찬가지로 평화로운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일이다.

마을에서 떨어진 숲속에서 범인들은 이해 못 할 마도학을 혼자 연구하는 여자란 으레 범상치 않은 소문을 달고 다니기 마련이었다. 사람을 잡아먹는다거나, 심기를 거스르면 저주를 내린다거나 그런, 범상치 않지만 진부한 소문들. 체자렛 알티온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체자렛이 어느 숲속에 자리 잡은 후 근처 마을의 어머니들은 자신들의 아이들에게 숲속에는 가까이 가지 말라고 단도리했다. 그곳에는 마녀가 한 명 살고 있다고.

같은 인간이라도 자신들과 다른 생활 양식을 가지고 있다면 배척하기 마련인게 인간이었다. 하물며, 외형에서부터 인간과 구분되는 뿔과 꼬리, 피부를 가진 이를 반가이 맞아주는 곳은 그리 많지 않았다. 자신의 레어에서 나와 세계를 유랑하는 고룡의 후예가 마을에서 혼자 떨어진 체자렛의 집에 방문한 것은, 어쩌면 필연일지도 몰랐다.

똑똑-

나무문이 울리는 소리가 체자렛의 시간을 방해했다. 부모님의 당부에도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찾아온 아이들을 대충 혼내준 이후로 처음 있는 누군가의 방문이었다. 아이들의 방문보다 정중한 노크 소리였지만 잔뜩 집중했던 그녀의 심기를 거스르기엔 충분했다.

벌컥 열어젖힌 문 앞에는 체자렛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여자가 서 있었다. 몸 전체를 가리는 로브를 쓴 여자는 하룻밤 신세 지기를 청했다. 순간 보라색과 황금색으로 빛나는 눈동자를 마주친 체자렛에게 전율이 일었다. 이제껏 책으로만 보았던 용의 눈동자와 닮아있었다. 순식간에 동한 호기심에 체자렛은 굳힌 표정을 풀고 다정한 미소를 보이며 그녀를 집안으로 안내했다.

“로브, 이리 주세요.”

체자렛의 말에 여자는 잠시 멈칫했다. 체자렛은 최대한 이유를 모르겠다는 순진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여자가 천천히 머리에 뒤집어쓴 로브를 벗었다. 조금 놀란 표정을 짓고, 이내 웃으며 다시 손을 내민다. 경계가 풀어진 여자는 로브로 완전히 가렸던 몸을 드러냈다. 머리의 뿔, 귀 뒤의 날개, 꼬리와 팔, 다리까지. 그 일련의 과정들조차 체자렛은 재미있어 견딜 수 없었다.

“어쩌다가 제 집까지 오셨나 했어요. 아무래도 이쪽은 찾아오길 꺼려해서...”

대답 없이 여자는 로브를 건넸다.

“먼저 씻으시겠어요?”

그녀가 욕실로 들어가자 체자렛은 로브를 샅샅이 뒤졌다. 그녀의 몸에 대한 흔적 하나라도 있다면 좋을텐데. 머리카락 한 올, 비늘 한 조각이라도.

하룻밤만 묵으려 했던 시프리에드의 애초 예상과는 다르게 그녀는 체자렛과 며칠을 함께했다. 오랫동안 혼자 떨어져 살면서 외로웠다며 며칠 더 묵기를 체자렛이 먼저 제안했다. 한참을 떠돌아다니며 자신을 적대하지 않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꽤 드문 일이었기에 시프리에드는 흔쾌히 승낙했다.

그럼에도 시프리에드가 떠나야 할 날은 다가왔다. 다음 행선지를 묻는 체자렛에게 그녀는 ‘글쎄요...’ 라는 애매한 대답만 할 뿐이었다. 실제로도 정해진 것은 없었다.

그날은 시프리에드가 떠나기 전 마지막 채비를 위해 근처 마을에 들른 날이었다. 시장에서 야영을 버틸 식료품들을 사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강한 바람이 불었고, 시프리에드의 로브가 한껏 날렸으며 드러난 뿔에 사람들이 아주 놀랐다.

“엄마, 뿌.”

시프리에드에게 손가락질하며 말하는 아이의 입을 어머니로 보이는 여자가 황급히 막았다. 떠나야 하는 때는 갑작스레 찾아왔다. 체자렛에게 마지막 인사를 고민하던 시프리에드는 곧 반대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자신이 체자렛과 교류하는 것이 퍼진다면 그 결과는 뻔했다.

레어에서 나와 유랑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고룡의 후예는 순진하기 짝이 없었다. 그 마지막 인사의 여부는 결과에 유의미한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어차피,

“숲의 마녀의 집에서 나오는걸 봤어!”

라고 외치는 사람은 나타나게 되어 있다는 걸 그녀는 몰랐다.

노랫말은 간단했다. 어느 숲속의 마녀에 대한 이야기였다. 알 수 없는 주문을 외며 마을과 단절된 여자는 자신의 구역을 침범하면 저주를 내리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여자는 마물을 소환하기에 이르는데 드디어 모든 준비를 끝낸 여자는 세상을 멸하기 시작할 것이다. –라는 항간에 떠돌던 소문을 엮어 만든 노래였다.

멍청하긴, 그게 어딜 봐서 마물이야.

자신을 올곧게 바라보던 보라색 눈동자를 떠올린다. 자애롭기 그지없는 목소리도, 비늘이 돋아난 팔과 다리도, 뿔도, 날개도, 꼬리도, 그렇게 시프리에드를 떠올린다.

‘그땐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죠.’

언젠가 노랫말을 유심히 듣던 시프리에드가 차갑게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렇게나 잘 알면서도 단명종들을 사랑하고야 마는 그 성정이 흥미롭다. 또다시 몸에 전율이 일었다.

체자렛은 조용히 노래를 흥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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