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공허
여름 보충도 막바지였다. 갈수록 커지는 매미들의 울음을 들으며 나무 그늘 없는 운동장을 가로지르던 흰 운동화에 모래알이 채였다. 대강 맨 책가방 안에서 덜그럭거리는 쇠 필통 소리가 났다. 집에 빨리 가고 싶다. 다만 느릿한 걸음은 야속했다. 가끔씩 부는 모래바람은 시원하지도 않았다. 집에 가면 뭐 하지. 숙제 뭐였더라. 아, 개학하면 모의고사 볼 텐데 이
문고리가 덜걱이는 집이었다. 그거 전에 살던 사람이 고장내놓고 갔다던데. 너는 누렇게 뜬 벽지를 꾹 누르며 말했다. 그럼 고쳐달라고 해야지. 그건 안 된다더라, 대신 방이 싸잖아. 요령껏 열어봐. 나는 대답 대신 문고리를 가늘게 뜬 눈으로 노려보았다. 어긋나 조금 돌아간 손잡이가 엉성한 폼으로 박혀 있었다. 그래도 현관문은 멀쩡한데. 내가 언짢은 줄 알았
흘러나오는 노래는 분명 너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오전 한 시의 라디오. 잠이 오지 않아 머리맡에 지나가도록 두었던 지직대는 말소리 사이에 네가 불쑥 끼어들었다. 익숙한 이름을 아주 오랜만에 낯선 사람의 입으로 듣는다. 나는 일부러 궁금해한 적은 없는 너의 근황을 공교롭게도 생각지 못한 방식으로 알게 된다. 이어 들어본 적 있는 몇 밴드의 이름과 네가 속한
더운 바람이 뺨을 스쳤다. 습한 숨을 내쉬자 일렁이는 공기가 공중에서 느릿한 춤을 췄다. 이서는 눈을 깜박였다. 간간이 흔들리는 머리카락이 속눈썹을 건드렸다. 따가운 눈을 손으로 대강 훑어내자 손가락 끝에 땀방울이 얕게 묻어 나왔다. 선배, 더워요? 한 발짝 떨어져 도로를 건너다보던 영석이 돌아보았다. 영석의 뺨이 약간 달아올라 있다. 그렇게 묻는 자신도
오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개어 있다. 일어나자마자 걷어낸 빨래에서 햇살 향이 날 정도였다. S는 커피 한 잔을 들고 소파에 앉았다. 불을 켜지 않아도 환한 아침은 참 간만이었다. 며칠째 눈 대신 내린 비가 몰고 온 먹구름이 한국 전역을 메운 참이었으니. 하지만 오늘의 하늘은 그야말로 청명하기 그지없다. 덕분에 TV를 켜고 채널을 돌리는 동안에도
오늘의 거리는 온통 젖은 불빛이다. 시끌시끌한 점포마다 웃음이 새고 걷는 길마다 익숙한 멜로디가 깔린다. 비가 사흘째 멈추지 않는 도시에서 사람들은 우산을 돌리고 휘저으며 웃는다. 그런 도시의 빗방울 사이에 네 우산이 끼어 있다. 떨어진 열쇠를 주우려 허리를 숙일 때, 네 우산이 함께 고개를 숙인다. 낮은 무지개가 아스팔트 기름 사이에서 번들거린다. 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