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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님 커미션
오늘의 거리는 온통 젖은 불빛이다. 시끌시끌한 점포마다 웃음이 새고 걷는 길마다 익숙한 멜로디가 깔린다. 비가 사흘째 멈추지 않는 도시에서 사람들은 우산을 돌리고 휘저으며 웃는다. 그런 도시의 빗방울 사이에 네 우산이 끼어 있다.
떨어진 열쇠를 주우려 허리를 숙일 때, 네 우산이 함께 고개를 숙인다. 낮은 무지개가 아스팔트 기름 사이에서 번들거린다. 넌 무지개를 밟고 조금 더 손을 뻗는다. 나는 변색 되어가는 너의 등을 쳐다본다. 머리 위 네온사인은 자꾸만 몸을 뒤틀고 손톱 끝에 발이 걸린 열쇠가 제 목구멍을 긁어대는 밤. 여전히 난 젖어가는 너를 보며 카펜터스의 곡을 흥얼거린다. 건너편 길목 매장과의 가벼운 합주인 셈이다.
그러다 문득 나는 그런 말을 하고야 만다. 네가 천천히 허리를 들어 올려 고개 든 우산이 막 하늘을 가린 참이었다.
사랑은 모두 다양한 형태잖아.
너는 열쇠의 물기를 문질러 털어낸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나의 눈을 본다. 입을 달싹인다. 응, 그렇지. 짧은 대답과 맞춘 시선 사이 장마철 여름의 축축한 밤공기가 스민다. 우산에서 미끄러져 떨어진 빗방울들이 경사로를 타고 하수구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사랑을 몰라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어.
통상적인 사랑 말이지.
그 가사를, 나는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는데.
카렌 카펜터의 웃음과도 같은 노랫소리를 듣는다. 건반을 짧게 두 번 미끄러지는 손가락의 움직임이 이어 울린다. 난 이제야 왜 네가 지나갈 때마다 하늘에서 별이 떨어지는지 알 수 있어. 1) 속삭임처럼 말한다. 네 번을 깜박이는 두 사람의 눈, 너의 곱슬머리에 맺힌 오늘의 분위기. 나는 그런 것들을 느낀다. 그래, 이해와 느낌은 다른 것이다. 허공을 가로지른 바람이 중얼거린다. 그간 수십 번 들어 왔던 노래들은 사실 이런 떨림으로 만들어졌던 것이었다고.
밤길의 가로등이 불빛을 흔든다. 머릿속의 스위치가 켜진다. 당신에게 지금, 이 말을 해야 한다.
S. 이게 사랑이야.
사랑.
나는 웃는다. 입술이 달싹인다. 너는 무어라 말하려다 그저 웃어버리는 것 같다. 대신 흩어지는 단어가 하나 있고, 도시에 내린 작은 별들을 눈길로 매만지며 우산을 접는 내가 있다.
같이 쓰자.
어느새 빗방울 사이에는 너의 우산과 나의 노래가 있고, 도시가 있고, 우리가 있다. 네 손의 열쇠가 내게 쥐여진다. 어깨가 닿는다. 사랑이다.
1) Carpenters, ‘Close To You’(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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