픠페스

당신의 영원이 되고 싶어요

편지글

To. 사랑하는 당신께.

어느덧 가을의 향기가 거리를 꾸미는 계절이네요. 저택의 정원도 붉은 옷으로 새 단장을 마쳤어요. 분명 언니가 돌아와서 정원을 본다면 깜짝 놀라겠죠? 언니가 지금 계신 곳은 어떤가요. 북부에 있는 나라라고 들었는데, 춥진 않으신가요? 혹시 몰라 가방에 겉옷 여분을 챙겨뒀으니 여차하면 꼭 입어주세요. 언니에게 어울리는 옷으로 골랐으니, 분명 잘 어울리겠죠.

우리가 영원을 약속한 지 벌써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어요. 문득 달력을 보니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이 바로 그 3년 전의 날이더군요. 기억하시나요? 그때 제가 언니에게 했던 말을. 언니와 제가 주고받았던 그 말들을. 언니는 말했었죠. 나와 달리 금방 아스러질 너를 내 품에 안는다면 네가 사라질 것 같아 두렵다고. 그때 저는 이렇게 답했죠. 나는 절대 쉽게 아스러지지 않아, 영원을 살아가는 당신의 품에 기대어 그 영원의 찰나라도 되고 싶다고. 지금 생각하니 굉장히 저돌적인 말이었던 것 같아요. 영겁의 세월을 산 당신에게 고작 20년이라는 시간을 살아온 내가 말하기엔 좀 건방졌으려나요? 그렇지만 내 말대로 되고 있잖아요. 나는 지금 이렇게 언니 곁에서 그 자그마한 찰나를 벌써 3년이나 새겨왔는걸요.

3년이 흐르니까 또 다른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찰나는 너무 짧지 않나, 하는 생각. 기왕이면 좀 더 큰 것을 목표해도 되지 않을까 싶어졌어요. 예를 들면, 그래. 언니의 영원이 되고 싶어요. 물론 언젠가 언니 곁을 떠나야 할 때가 오겠지만 내가 살고 있는 동안엔 언니의 영원이 나였으면 좋겠어요. 언니가 사는 이유가 나였으면 좋겠고, 언니의 끝에는 항상 내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너무 무거운 마음이려나요?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언젠간 언니가 날 잊어버릴까 무서운걸요. 어쩌면 내 조바심일지도 모르겠어요. 이건 정말 언니가 책임져야 하는 것 아녜요? 날 조바심이 들게 만든 거잖아요. 농담이에요.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진 말아줘요. 하지만, 언니의 영원이 되고 싶단 마음은 진짜니까 그건 생각해 주셔야 해요?

벌써 밤이네요. 지금 자지 않으면 내일 아침 저택에 들르는 우편부께 이 편지를 전해줄 수 없겠죠. 언니에게 제 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얼른 잠에 들어야겠어요. 오랜만에 언니가 꿈에 나왔으면 좋겠네요. 그럼, 이만 여기서 줄일게요. 사랑해요, 나의 언니. 사랑해요, 나의 뱀파이어. 사랑해요, 나의 영원.

From. 당신의 영원에 기대어 사는 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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