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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켄

by 수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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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
최신화부터
1화부터
  • 흘림

    두고 온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무심하게 내던져 둔 초고, 내리지 않는 비, 끊어진 서체의 기둥.

    쾅, 눈 앞에서 문이 단단히 닫힌다. 찰칵, 그것보다 작은 소리가 은빛으로 문 틈을 튕긴다. 분명 잠에서 깬 것은 몇 시간 전일 터인데 여즉 꿈에 의식을 푹 담가 놓은 듯 정신이 눅눅하다. 나무 냄새가 물씬 풍기는 거실에 홀로 남는 게 되는 것은 모든 것이 시작된 것만큼이나 순식간이었다. 시선이 순식간에 가라앉으며 앞뒤로 삐걱인다. 등 뒤의 안락의자는 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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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11
    10
  • 소림

    여전히 구멍처럼 수많은 자리가 남아 깔려 있는 고요는 쓸쓸함과 환대의 낯을 동시에 띄운다.

    “눈을 감고 응시할 수 있는 것은 과거나 미래 뿐이니, 계속해서 그 검은 빛을 바라보는 것은 너머를 응시하는 일을 아주 두렵지만은 않게 해 주지, 아마?” 장난스러운 기색 하나 없이 뱉어진 말이나 실상 눈을 덮는 것들의 색이 붉다는 것을 알아 비죽, 특유의 웃음을 내뱉을 수 있었다. 정말로 검은 색인지 한 번 보자고, 그리 중얼거리며 눈을 감으면 시야 바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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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12
    6
  • 황림

    때로는 녹색 외의 색을 하고는 했던 온실의 구석, 생을 저주라 이른다면 그 저주가 거두어지는 과정이라 할 수 있을까.

    삶을 저주라 이른다면 제 혀로 얽어낸 수많은 것들은 말뚝처럼 이 땅의 곳곳에 남는 병과 같은 것이 될 것이다. 살아남기를 바라, 네 몸이 스러지더라도 내가 그것을 재생시켜 이 세상에 네가 존재했던 사실이 사라지지 않도록 만들게, 그런 날카롭고 깊은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살아가기 힘들거든 내게로 찾아와도 좋다는 얕은 언어에 이르기까지……. 말은 씨앗과도 같아

    상록
    2024.06.11
    13
  • 어림

    짐작 위에 짐작을 덧붙이니 결국 보기 싫은 꼴이 되었다. 어린 마음으로는 쉬이 받아들일 수 없을 난잡하고 허술한 모양새에 대한 해설.

    순행적인 복기를 이어 보아도 도대체 어느 날 당신이 르노의 문을 두드렸는지를 알 수 없었다. 라이켄에게는 하루가 없었다. 눈을 감았다 떴을 적 날짜가 얼마나 지나 있는지도 알 수 없으니 해가 뜨고 지는 시간도 모른 채 몸이 이끄는 그대로의 삶을 살아 온 것이 오래, 언젠가 한 번 즈음은 생체의 시계가 뒤로 밀려 낮에 잠에 들고 밤에 깨어나는 삶을 이었을지도

    상록
    2024.06.07
    10
  • 문림

    수도 없이 많은 활자가 잡초처럼 난무한다. 무엇을 취하고 또한 무엇을 취하지 않을 것인가, 그는 자신을 취하기를 택하며 또한 생을 취했다.

    빚어지고 있다. 나의 손이 아닌, 나를 죽이려 했던 타인의 손에 의해! 자신이 식물을 다룰 때 보였던 섬세한 손길도, 제가 타인을 대할 때 늘상 두르고 있던 확신에 찬 손길도 되지 못할, 오로지 충족만을 위한 악의에 의해. 제가 스스로를 극단적인 선인이라 여겼으며 그 질서를 추구했더라면 그것에 더욱 분노하였을지 몰랐으나 그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 분노의 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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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06
    16
  • 우림

    끊임없이 비가 내려온다. 타인의 생에 의한 우수, 꺾이지도 않은 누군가의 삶에 대한 울림, 피치 못할 기우.

    평생을 온실과 벽, 돔, 유리 따위에 감싸진 채 살아왔다. 그리하여 깊은 악의를 알지 못하느냐 하면 부정, 그 속에도 뿌리를 얽고 땅을 마르게 하는 것들은 있기 마련이었으니 그것을 모를 턱이 없었다. 허나 살아남기 위한 악의와 타인을 해하기 위한 악의는 그 손길의 길이부터가 다르다. 그 외침의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의 색과 형태에 차이를 두었으며, 때로는

    상록
    2024.06.01
    14
  • 밀림

    누군가는 그 속에서 삶을 갈구했고, 누군가는 그 바깥에서 삶을 가꾸었다. 어느 것이 안이고 밖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주관이니 선택하라.

    10년, 그 공백의 기간 동안 인간보다는 식물의 낯을, 눈빛보다는 햇빛을 오래 바라보았던 것도 같다. 그렇다 하여 사람을 대하는 나름의 재주를 잊었느냐 하면, 아니. 굳어져 있는 목소리와 능청스러움을 구분할 정도의 분별력 정도는 여즉 남아 있다. 고개를 돌려 마주하는 것은 피로한 기색이 역력한 이의 옆모습이다. 사람을 대할 적에는 눈을 마주치는 것이 예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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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30
    13
글리프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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