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켄

어림

짐작 위에 짐작을 덧붙이니 결국 보기 싫은 꼴이 되었다. 어린 마음으로는 쉬이 받아들일 수 없을 난잡하고 허술한 모양새에 대한 해설.

상록 by 수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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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행적인 복기를 이어 보아도 도대체 어느 날 당신이 르노의 문을 두드렸는지를 알 수 없었다.

라이켄에게는 하루가 없었다. 눈을 감았다 떴을 적 날짜가 얼마나 지나 있는지도 알 수 없으니 해가 뜨고 지는 시간도 모른 채 몸이 이끄는 그대로의 삶을 살아 온 것이 오래, 언젠가 한 번 즈음은 생체의 시계가 뒤로 밀려 낮에 잠에 들고 밤에 깨어나는 삶을 이었을지도 모른다. 연구실의 바닥을 구르는 캔과 통조림이 그 수를 늘리고 삼켜 보았던 독의 가짓수 역시 늘어났다.

언젠가 바깥으로 돌아가 재생을 이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그러한 연장만이 이어졌다. 저조차 남지 않은 르노라는 공간이 붉은 빛을 반짝이며 주변의 인간들을-마치 불에 날아드는 불나방처럼-모아 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 즈음, 바깥의 시간 대로라 서술하면 이미 꽤 많은 시간이 지난 후였다. 아마 당신이 유리벽에 달려든 것도 그것과 비슷한 때가 아니었을까, 어느 해의 어느 달, 어느 날이었는지는 몰라도…….

 르노 주변을 구르고 있는 시체 위에도 흙을 덮었다. 그들의 삶을 알 수 없었으니 그 위에 어떤 꽃을 심어야 할지조차 알 수 없었다-허나 그들은 ‘르노’의 일원이 아니었으므로 그러한 애도의 방식을 원치 않을지도 모르는지라! 그저 흙만을 덮고 되뇌였다. 기억하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못한 채 죽어가던 이들의 이름 없는 묘가 온실의 주변에 자리하기 시작한다. 당시의 저는 그 중 하나가 당신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따위는 가늠해 보지도 않았다. 르노는 누구에게나 미지의 공간이자 존재조차 모호한 공간이므로 감히 그 존재를 아는 당신이라 한들 그 곳으로 걸음할 것이라는 가정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겠지! 그리 이름도, 얼굴도 모를 이들의 죽음만을 기록하며 살아왔다. 제 손으로 묻은 죽음이 쌓일수록 마음이 짊어지는 생의 무게는 더욱 거대해져만 갔다.

죽음이 쉽게 일어나는 세계에서 인간의 생은 쉽게 그 가치를 잃고 만다. 그것이 싫어 끝없이 삶을 애도해 왔다. 존재조차 몰랐던 이들의 죽음에 눈물을 흘렸으며, 때로는 현실로부터 도망치고 싶어 끝도 없이 망가진 침대 위에서 뒤척여 보기도 했다. 천장을 바라보며 강박적으로 타인의 이름을 입 위로 올렸다. 벤자민, 디오니아, 솜니, 세쿼이아, 스파티필름……. 수많은 이들이 그 삶을 이 땅에 맡긴 채 정지를 가리켰으므로 재생 버튼을 누르는 것은 그 땅을 아는 제가 되어야만 했다. 그들의 생이 더 이상 죽음으로 인해 무가치해지지 않도록, 그들이 바랐던 공존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그것이 개념과 가정만이 아닌 현실으로, 글자 뿐만이 아닌 실재함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그러니 다시 한 번 이름을 부른다. 카멜리아, 릴리움, 헬리안서스, 곰프레나, 위스테리아.

“바라보려 노력조차 하지 않으며 헐뜯기에 바쁘군 그래. 네가 이해할 수 없음을 네 탓으로 돌리지는 않겠다. 애도는 살아남은 이들이 그 슬픔을 딛고 나아가는 방식이고, 또한 그들이 완전히 잊혀지지 않도록 되뇌이는 과정이기도 하나……. 원근에 무관하게 죽음을 단지 이야기의 소재로 여길 뿐인 이에게 설명의 가치를 느끼지는 못하겠어. 이것만 확실히 해 두지. 네가 본 적 없는 눈물이라 해서 흐른 적 없는 것은 아니야, 산티노.”

마른 낯을 한 채 그리 이야기한들 당신은 그조차 가면이라 여기며 우스이 생각할까. 온실 속에서의 사치스러운 삶을 영위하던 자신은 그 헛된 명예와 개념 따위에 자신을 내걸며 그 삶을 바쳤다. 치열하게 밀림을 헤쳐 나아가던 생존 전문가 ‘산티노 페라리’에게는 이마저를 위선이며 안온이라 여길 뿐일까! 생명, 안전, 자연, 때로는 신비-현재는 재앙일 뿐인 재생 속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는 시선을 가지지 못한 당신은. 또한 그 너머의 절망을 알면서도 발굴하기 어려운 희망만을 내려다보는 자신의 눈이기에 당신의 절박을 온전히 포용하지 못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수천번을 반복했던 애도의 과정을 복기한다. 때로는 머리가 멍해질 정도로 눈물을 흘리기도 했으니 온실 속에 비가 내리지 않는다는 말은 옛말이었다.

 

 “그 정도로 나를 높이 사 줄 줄이야, 감사하군. ……. 이라고 말할 때인가.”

중얼거림에 불과한 말이다. 침체된 목소리가 고개를 들어올린 이후로도 바닥을 기는 듯 이어지고 있었다. 애초 신의 존재를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인간적인-동시에 타인과 쉬이 분리될 지경으로 지극히 비인간적인 삶을 살아온 저는 그것에 어떠한 표정으로 답을 하는 것이 옳은가를 알지 못했다. 신의 이름은 수도 없이 들어 보았으나 믿음 없는 자에게는 그 역시 하나의 이야기에 불과할 뿐이니, 그것에 높고 낮음을 부여하는 것부터가 꺼끌거리는 단어를 뱉듯 기분을 괴상하게 일그러뜨려 놓았다. 허나 무엇인가를 쌓아올리고 무너뜨리는 것에 능하며 자신의 관할 아래에 있는 것들을 자유로이 놀리는 모든 것이 신이라 이른다면 가장 신의 이름을 받기 적합한 것은 다름 아닌 당신이 아닌가 하여 희미한 의문을 느낀다. 초록이 아닌 삶의 방식을 알지 못하는 저는 때로 무지하여 타인의 표정이 의미하는 바를 읽어내지 못할 때가 있었는데 지금이 꼭 그랬다. 무던한 낯이 옆으로 슬그머니 기울여지는 꼴을 보라.

 

인간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전무한 수준이었으나 경험적인 지식이라 하면 감히 아주 없지는 않노라 이야기할 수 있었다. 최근 그 온실 속으로 굴러 들어온 돌을 닮은 것이 있었는데, 툭툭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내뱉으며-대부분은 저를 상처 입히려 하는 의도가 다분해 보였다-정성스레 길러 온 초목을 물어뜯고 그것에 또 몇 마디를-이 또한 보통은 구리다느니, 쓸모가 없다느니, 헛짓거리를 하고 있다는 것 따위의 말이었다-덧붙이는 것이 아닌가! 퍽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었지만 그 회색을 파악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 존재가 그리도 즐겨 쓰는 거친 말을 빌리자면 그야말로 생떼 그 자체가 아니겠는가. 내가 너를 이렇게 원망해, 너 때문이야, 그러니 어서 내가 듣고자 하는 말을 해 줘, 기왕이면 그간 힘들었던 것도 이해해 주면 좋고……. 이 또한 자기애라 이야기할 수 있는가? 타인을 확신할 수 없어 제 애꿎은 뒷목만 멍청히 긁어내리고 있는 꼴이 이어졌다. 그리 맹한 눈을 하고 있으면 홀로 성을 내며 발을 구르기도 했다. 퍽 길게 말을 늘어놓는데, 한 문장으로 축약하자면 이 정도이다: 왜 내 마음을 몰라 주는데!

그리고 당신의 말에 따르면 저는 자신밖에 모르는 녀석인지라 그 답을 내놓을 수가 없었다. ‘자신’만을 아는 이가 어찌 타인의 마음을 완전히 헤아려 바라는 말을 전해주겠는가! 그러나 어린 마음에 무턱대고 타인을 물어뜯으려 하는 모습을 아주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아닌지라 유치가 저를 물어뜯고 물렁한 발톱이 제 뱃속을 박박 긁어 헤집어 두도록 둔다. 그리도 자신을 잘 아는 제가 첨언한다면 저는 퍽 항상성이 좋은 인물에 속했으며, 이끼라는 이름이 무색하지도 않게 쉽게 극복을 이어가는 인물인지라 그 정도의 작은 생채기를 상처로 여기기에도 부끄러웠다 이르리라. 이르자면, 상처를 입히기 위함이 그 목적이라면 명시적으로는 성공이었을 것이나 그 스스로가 그를 ‘상처’라 인지하는 것까지를 기대했다면 애석하게도 꼴 좋은 실패를 경험한 것이라는 것이다. 지금껏 어떠한 방법으로든 바라던 것을 얻어 왔노라면 이 챕터는 꼴사나운 실패기와 다름이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포기를 모르는 당신은 실패기를 극복담으로-억지로라도-맺기 위해 노력할 것임을 알았다.

“아니, 알고 있어. 네가 꽤 오래 전부터 그 미안하다는 말을 고대하고 있었던 것도 알고.”

그렇다면 왜 그 말을 입 바깥으로 내지 않았느냐 묻겠지. 그 이유를 나열하자면 종이 한 장을 빼곡히 채울 정도의 분량으로 흘러내릴 것이 뻔했는데, 이미 당신과 갈등을 겪은 적 있던 저는 그 수많은 이유를 줄줄이 나열하는 것은 논쟁이 격화만을 가져 올 것을 알고 있었다. 아, 한 줄의 변명이 더 추가된다-지금에 와서 그 모든 것을 설명하고 사과한다 한들 애초 이해의 이理도 해解도 해낼 마음이 없는 당신에게는 사치스러운 변론에 불과할 것이라서……. 웃음은 본디 곡선을 띄고 있는 것이거늘, 한 쪽의 입꼬리만을 들어올려 짓는 미소는 퍽 직선적이다.

“솔직한 대답을 바라겠지? 네 사정을 전부 이해한 다음에는 미안하다는 마음이 들었어. 그러니 기왕 말이 나온 김에 사죄하지. 네 마음을 고려하지 않고 가볍게 머무를 곳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것, 그 이야기에 책임을 지지 않고 문을 닫았던 것, 그래 두고서는 그 무책임함을 반성하는 기색조차 없이 뻔뻔스럽게도 고개를 들고 네 앞에 존재하고 있는 것까지 말이야. 그 이상의 사과가 필요하다면 역시 덧붙일 용의가 있다.”

‘자신밖에 모르는 이‘라는 것은 곧 ’자신만큼은 잘 아는 이‘라는 단어로 수식될 수 있다. 열 아홉의 그가 늘 그러했듯 스물 아홉의 그 역시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선 하나는 기민하여 그 스스로가 제 행동의 무게에 대해 저울질하는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명백한 유죄, 이후에 사과가 이어져야 할 것 즈음은 알고 있다. 사과를 요구받은 때에 자신이 지각한 그대로의 사죄를 올리니 억지로 내뱉은 때이른 사과보다는 그 색이 탁하지 않을 것이라 여겼다-당신은 그마저를 위선으로 여겨 끝내 이 장에 종지부를 찍지 못할까! 허나 애초 타인이 아닌 자신만을 바라보던 이는 투명해진 제 죄를 내려다 볼 뿐이었다. 평가된 위선은 해석의 죄, 제가 저지른 그대로의 것은 아니니 제가 정원사라는 이름을 흘려보냈듯 다시 접어 날려보내면 그만일 것이다.

“잘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너희를 생각하는 양 그 이야기를 듣고 너희를 곱씹기만 했던 것은 일방적인 재생이었지. 이것에 대해서는 변명하지 않겠다. 그러나 지금 네가 하는 이야기는 꼭……. 모순적이군 그래.”

타인이 필요하지 않을 듯 굴면서도 그의 터전에 들어서지 못함에 원망한다. 스스로도 타인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듯 행동하면서도 자신이 아주 버려지는 듯한 감각을 버티지 못한다……. 미묘한 결핍과 연민 따위가 느껴져 캔이 구겨지는 소리가 들려옴에도 가는 눈을 뜬 채 상대를 바라볼 뿐이었다. 가만 보면 진작 자신의 낯에 침을 뱉고 돌아설 수도 있었을 자가 끝까지 그 앞에 남아 사과를 요구하고 이미 두 번 가량을 접힌 분노를 다시 고이 펼쳐 질리도록 눈에 들이미는 것은 모순적이다 못해 기만적이다. 그래서, 무엇을 바라는 것인데? 내가 용서를 빌며 무릎꿇기를 바라? 그것을 지나 아주 붕괴해 눈물이라도 닦기를 바라나? 혹은 지난 날, 그 심정을 불태우고 사라진 재를 쥐고 그것에 대한 보상을 바라고 있는 것인가? 사고가 점멸한다. 이럴 때면 꼭 눈이 흐리다. 마른 눈을 소매로 비볐다.

“이거, 순 도둑 놈 아닌가……. 어차피 문도 찾지 못할텐데 으름장 놓기는.”

그럼에도 미약한 죄책감만은 잔존하여, 두 번 당신을 그 문 앞에 방치해 둘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은 들지 않았다. 수많은 이들이 지적했듯 제게는 과하게 무른 면이 있었다-스스로도 그것이 우스워 자조적인 미소를 띄웠다.

“지금 이 자리에서 정식으로 초대하지. 두 번의 거짓말은 없을 거다, 리톱스. 네가 문을 두드리면 기꺼이 맞아 주마. 그 날이 오기 전까지 생을 다루는 올바른 방법에 대해 다시 되짚어 보는 것이 좋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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