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검은 산양

보낸 사람: Extra B

안녕하세요, 검은 산양님! 주신 편지는 잘 읽었어요. 이 쪽의 겨울도 상당히 매서운 편이고, 눈이 오면 정말 많이 쏟아지는 편인지라 큰 불편이 없으시다고는 해도 어쩐지 저에 대입하게 되어 걱정되고 마네요. 그래서 저희 세계에서 추울 때에 사용하는 손난로라는 걸 편지 봉투에 같이 넣어서 보내드려요. 아! 그리고 이 편지는.. 제가 직접 편지봉투와 편지지를 사서 작성하다보니 아마 글씨가 조금 삐뚤하거나 이상해도 이해해주세요. RQ사의 한 달간의 무료 이용 기간이 끝나가서..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 있는 편지는 조금 정성을 들여 한 글자 한 글자 적어보고 싶었어요.

아무래도 어떤 곳이든 사람을 이해하고 그 사람을 위한 물건을 팔고, 사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사실 어느 세계를 이동하지 않아도 어떤 장소나, 어떤 지역으로만 이동해도 그 차이가 어마무시하니까요. 그래도 제 편지로 마음을 회복하는 시간을 가지셨다고 하니 다행이에요. (제가 많은 가량 도움을 드린 지 잘 모르겠지만요.. 여러모로 검은 산양님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해드리지 못 해 죄송할 따름이에요.) 편지에 종이 하나를 동봉했는데, 이번에 RQ사에서 판매하던 좌표 측정기에서 기록한 제 세계의 좌표에요. (되게 신기하더라고요! 이게 어떻게 쓰는 건지 궁금했는데 그냥 버튼만 누르면 나오더라고요.) 물론 찾아오시기는 어렵지 않으시겠지만, 혹시 찾아오시는 데 좀 더 편하시라고 넣어봤어요. 휴가를 오시면 언제든 말씀해주세요. 혹은 짧게라도.. 답장으로 연락처나 그런 것이 필요하다고 하시다면 전달하고자 해요.

그리고 적어주신 편지의 친절함에 감사해요. 제가 만일 물건을 사지 않은 상태였으면, 무언가를 들어드리는 대신에 구해주실 수 있냐고 물어봤을지도 몰라요. (물론 그게 검은 산양님에게 있어서 손해가 아니라면요..) 생각해주신 점 다시 한 번 더 감사해요. 언젠가 그 친절에 보답하고 싶다고 생각해요. 그나저나 기억을 물질로 추출해낸다는 건 신기하네요. 제가 언젠가 봤던 영화의 기억구슬같은 느낌이네요. 언젠가 한번쯔음은 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이어서 적어주신 편지 내용에도 여러모로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었어요. (펜이 약간 번진 흔적이 있다.) 처음 주고 받은 편지부터 지금까지 저에 대해 생각해주시고 편지를 적어내려 주신 점이 참 기뻤어요. 어쩌다보니 이 편지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부족했던 점을 알게 되는 편지가 되어버렸네요. (아마 이게 성장의 증거같은거겠죠?) (웃는 삐뚤한 그림이 그려져있다.) 너무 많이 미안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각자가 각자만의 시선이 있는거고, 각자의 사정과 위치가 존재하는거니까요. 그리고 저는 서로 다른 세계에 사는 이들이 서로를 기꺼이 이해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고요. 제 생각에는 검은 산양님은 충분히 노력했고, 노력하고 계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부족하다고 느끼고 무언가 바뀌어 나가려고 하는 것도 참 대단하다고 생각하고요. 매번 같이 주고 받았던 편지마다 그런 고뇌와 생각들을 담아주셔서 감사했어요.

그거와 별개로 전 제가 혹여 대화 주제를 잘못 잡고 있다던가, 제가 너무 제 이야기만 하는 지 걱정되어서 적은 이야기였는데 되려 신경 쓰게 해드린 것 같아서 죄송한걸요. 그래도 서로가 고칠 수 있고, 서로가 서로를 생각할 수 있는 지점이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인 것 같아요.

(이건 혹시 몰라서 덧붙히는 문단이에요.) 제가 회사에 일이 좀 많았어서 여러모로 답장이 늦어졌죠. 죄송해요. 그래도.. 여러모로 즐거웠다는 이야기를 적고 싶었어요, 이 편지에. 제가 보고 있었던 소설에 나올법한 주인공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기분이 들어서 즐겁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어요. 무언가 새로운 걸 발견하는 기분이라 더 즐겁기도 했고요. 또 편지를 쓰게 된다면, 더 길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RQ사가 부디 이 시스템을 유료화 하지 않기를..)

편지에 부탁하신 내용을 조금 적어볼까 해요. 제 어린 시절 이야기.. (펜으로 편지지를 두드린 흔적이 있다.) 어쩐지 편지의 내용이 길어질 것 같은데 말이죠, 다 쏟아내면요. 막상 다 설명하고 나면 '평범하다'가 주 감상일 것 같아요. 태어나고, 학교에 다니고, 졸업하고.. 뭐, 그런 것들이에요. 이 세계의 누구라면 다들 겪을만한 이야기거든요. 그러다보니 다른 사람을 보다 보면 다 저와는 다르다는 느낌을 받는 것 같아요. 분명 누구라면 겪을만한 일인데도, 다른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마는 것 같아요. 뭔가.. '제 어릴 적은 이렇게 시작되었어요.'라고 글로 써내려가기엔 편지지가 너무 부족하네요. (편지지를 대량으로 사서 준비할껄 싶네요.) 제 앨범을 보여드리면서 '이랬어요~'하고 말씀드리고 싶은데, 괜스레 이런 부분이 또 아쉽기도 하네요.

막상 생각해보면 저는 제가 편지를 나누던 이들이 저보다 더 주인공답지 않았나라는 생각도 종종 들더라고요. 어쩌면.. 검은 산양님도 그럴지도 모르죠. 무언가를 사고 팔며,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무언가를 수집하다니 멋있잖아요. (물론 그게 검은 산양님의 생각과는 다를지 모르겠어요. 이전의 주신 편지를 받고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어딘가에 머물지 못 하고, 거처가 없다는 건 참, 슬픈일이니까요.) 어쩌면 제가 제 자신을 사랑하지 못 하기 때문이 그런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제가 다음 답장을 적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혹은.. 직접 제가 대답할 수 있어도 참 좋을 것 같고요. (그 쪽이 더 즐겁잖아요, 그쵸.)

이 곳에 오는 걸 기대해도 괜찮을까요? (앨범도 그 땐 준비해놓을테니까요.)

부디 검은 산양님의 이번 여정도, 안전하고 평온하며 무탈하길 기원할게요.

/ 엑스트라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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