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브게일] 환상에 빠진 남자
발더스게이트 / 게일, 타브(드래곤본)
공황에 대한 소재가 있습니다.
날조 있습니다.
타브가 게일을 좋아합니다.
워터딥의 추운 겨울.
담요가 널브러진 바닥으로 게일이 앉아있었다. 그의 눈이 타들어가는 장작을 보았다. 불씨가 화로에서 튀어 오르면서 새로운 불꽃을 일으키길 반복했다. 이곳은 게일의 방이다. 그의 몸과 마음이 가장 편안해지는 공간이었지만 오늘은 조금도 편안하지 않았다.
이번엔 파도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겨울에도 얼어붙지 않는 파도는 좋은 안정제였다. 눈을 감고 들으면 더욱 효과가 좋았다. 그러나 지금 게일의 심장은 계속해서 조여왔다.
흉부가 갑갑해진다. 숨을 크게 들이쉬어도 폐가 쪼그라드는 느낌이 들고, 식은땀이 났다. 급기야 기침까지 터져 나오며 신음은 멈출 줄을 몰랐다.
게일은 황급히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널브러진 담요들, 방 안을 감싸던 화로의 열기, 멀리서 들려오던 파도 소리가 사라진다. 이 모든 것은 위브로 만들어낸 환상이었다. 환상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양초 불 하나에 의지한 어두운 방이 드러났다.
게일은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러나 푹신한 시트는 증상을 진정시키기엔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끓는 기름 위로 쏟긴 물처럼 맥박이 끊임없이 튀어오르는 것 같았다.
증상이 시작 된 것은 불과 7일 전이었다.
미스트라가 게일을 향해 죽으라고 한 게 발단이었다. 정확히는 보주를 터트려 엘더브레인을 죽이라는 것이었으나, 그리하면 게일도 죽는다는 것을 미스트라가 모를 리 없었다.
게일은 일행을 만나기 전부터 몸속의 허기진 보주를 달래느라 심사숙고했다. 그동안은 타브의 도움을 받아 보주가 폭발하진 않았지만 미스트라의 통보로 그 모든 노력들이 헛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은 여신이 명령한 죽음을 마다하지 않기로 했다. 게일은 그것을 단순한 죽음이 아닌 여신의 용서라는 새로운 신념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타브를 비롯한 모두가 그 결정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게일도 죽음이 두려웠지만 마음속 아우성을 틀어막을 뿐이었다.
그로부터 엘더브레인에 다가갈수록 게일의 증상은 심해졌다. 증상이 극대화되면 호흡 곤란까지 일으킬 정도였다. 전투를 계속 이어가기 위해 마음을 진정시켜야만 했고, 환상으로 편안한 공간을 만드는 것이 게일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었다.
다시, 어두운 방 안에는 양초 불이 흔들리고 있었다.
밖은 모두가 잠든 새벽이었고, 게일도 이제는 잠에 빠져야 했다. 요란하던 기침이 잦아든 그는 다시 환상을 일으켰다. 따뜻한 난로와 포근한 담요, 여러 번 읽어 너덜거리는 책들, 창밖 얼지 않는 파도 소리 -
그는 그제야 잠에 들 수 있었다.
"신전 위치를 찾았대. 민스크와 자헤이라가 정보를 줬어. 우리는 거기서 오린을 찾아낼 거야."
타브가 딱딱한 말투로 상황을 정리했다. 야영지에서 대기 중이던 섀도하트와 아스타리온, 게일이 바로 알아들 수 있게 정돈된 내용이었다. 모두가 무기를 집어 들고 있을 때였다. 타브가 어깨너머 게일을 힐끗 쳐다봤다. 게일은 그 시선을 바로 꼬집어 물었다.
"왜 그렇게 봐?"
게일의 질문에 타브가 그에게로 시선을 고정했다. 그러자 게일은 두려움을 느꼈다. 타브의 그 눈동자를 똑바로 보기가 힘들었다. 드래곤본 특유의 매서운 눈빛은 항상 속내를 해석하기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게일은 끝내 다른 곳으로 시선을 옮긴다.
타브가 말했다.
"오린을 상대하고 나면 엘더브레인도 그 즘에 있다고 들었어."
"..그래서?"
"오늘 엘더브레인을 마주하게 된다면. 너도 보주와 함께 터질건가, 싶어서."
타브의 말이 공기를 무겁게 만들었다. 죽음에 대한 질문이 게일의 속을 움켜쥐었다. 그동안 애써 무시했던 아우성이 들려왔다. 게일의 눈동자가 흔들렸지만 그는 침착한 표정을 지었다. 오히려 일행들의 얼굴이 크게 일그러진다.
"타브.. 말은 좀 가려서 해."
"너 생긴 거랑 어울리는 말이긴 한데 말이야... 너무 당돌한데."
섀도하트와 아스타리온이 타브를 향해 나무랐다. 그리고 둘의 시선도 곧 게일을 향했다. 진심으로 가슴에 박힌 보주를 터트릴지 물어보고는 싶지만 말을 꺼내지 못하는 눈치들이었다.
"엘더브레인을 마주하게 된다면 터트려야지. 이미 예정된 일이었잖아."
게일은 담담하게 말하며 저를 바라보던 타브를 제치고 정문을 향했다. 스쳐 지나가는 게일을 향해 섀도하트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본다. 아스타리온도 속 편한 얼굴은 아니었다.
타브 또 한 편안해 보이지는 않았다. 날카로운 손톱으로 스스로의 옷소매를 매만지는 것을 보니 꽤나 안절부절못하는 것 같았다. 이건 마치 용암에 뛰어들으러 가는 강아지를 보는 주인의 모습같았다. 애석하게도 게일은 자신의 뒤에 일어나는 그 진심들을 몰랐다.
신전은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하수구에 숨어있었다.
바닥의 암석들은 가시밭처럼 날카로웠고 곳곳엔 머리 없는 시체들이 나뒹굴었다. 지하로 들어갈수록 음침한 기도 소리가 가까이 들려왔지만 일행은 지체 없이 바알의 신전 깊은 곳으로 향했다.
재단에 도착했을 때 그곳엔 여유로운 모습의 오린이 있었다.
창백하다 못해 자주색으로 뒤덮인 피부, 뒤집어진 흰자, 입가의 굳은 피. 오린은 악마 중에서도 가장 악랄한 모습으로 일행을 맞이했다.
타브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공격했다.
오린은 상처를 입은 동시에 형체를 변형시켰다. 눈도, 귀도 없는 사족보행하는 살덩어리의 모습은 어떤 괴담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끔찍한 모습이었다.(어쩌면 그것이 본모습일지도 모른다.)
모습이 변한 오린은 더욱 날카로워진 육체로 타브를 향해 뛰어들었다. 타브가 피를 흘리며 뒤로 넘어진다. 섀도하트가 급하게 치유 마법을 걸었고, 아스타리온은 오린의 뒷통수로 단검을 찔러 넣는다.
오린은 깊게 찔린 상처에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다리를 휘둘렀다. 아스타리온은 그것에 맞고 바닥 위로 내팽겨진다. 오린이 무서운 속도로 아스타리온을 향해 돌진한다.
그 때 게일이 그 앞을 막아서며 충격파 마법을.
"...어?"
찰나의 순간이었다.
게일은 이 상황을 이해하고자 수많은 사례들을 떠올려봤다. 그러나 그럴 시간이 없었다. 오린은 이미 코앞까지 다가왔다. 하지만 마법이 사용되지 않는 이유라니. 그런 사례는 없었잖아..!
오린의 날카로운 다리가 게일을 자빠트린다. 그녀는 당혹감으로 창백해진 게일을 내려찍었다. 게일은 몸이 찢겨진다. 섀도하트가 게일을 부르며 다급하게 치유 마법을 걸었지만 또다시 오린은 게일을 찍어내린다.
눈앞으로 새하얀 점멸이 일어났다. 몸은 모든 신경이 엉켜진 듯 경련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가장 공포스러운 건 마법이 막혔다는 것이었다.
워터딥의 게일, 게일 데카리오스, 위브의 여신 미스트라에게까지 인정받던 그 위자드가 마법을 쓰지 못했다는 것이다.
게일은 죽어가는 와중에도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 ."
욱신거리는 몸이 게일을 깨웠다.
오랜 시간 잠들었는지 채 떠지지 않는 눈등이 부르르 떨렸다. 허리에 힘을 주어 상체를 일으키자 푹신한 시트 위로 눕혀진 몸이 눈에 들어섰다. 이곳은 야영지였다. 오린을 처치하고 돌아온 것인지, 아니면 후퇴를 한 것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게일이 살아있으니 동료들도 무사할 것이다.
게일은 몽롱했던 정신이 돌아오면서 오린에게 처참히 찢기던 자신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보다 좀 전에 마법을 쓰지 못해 당황스러워하던 제 모습도 떠올랐다.
게일은 아픈 몸을 일으켜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이어서 위브를 다뤘다.
그러자 겨우 작은 마법진이 생성되었다. 게일은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이렇게 작은 건 어린 위자드에게서나 볼 법했다. 태산을 만들어내기도 했던 자신이 고작 개울을 만들 정도로 한없이 약해졌는데,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왜 갑자기 힘이 약해진걸까.
그 때 불안한 예감이 뇌리를 스쳤다.
몸에 박혀있는 보주는 지금껏 위브로 통제되어왔다. 그런데 지금 그 위브의 힘이 약해진 것이다.
잔잔하던 심장이 튀어 오른다. 귓가로 떨리는 숨소리가 들려온다. 게일은 상의를 들어올려 보주를 바라보았다. 이미 폭발할 준비가 된 듯 보주 사이로는 균열이 일어나고 있었다. 게일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사색에 질린 얼굴은 속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 안돼. '
보주가 터져서는 안됐다. 한순간에 주변에 있는 모든 건물과 지형, 죄 없는 사람들을 날려버릴지도 몰랐다. 그럴 수는 없었다. 게일은 균열이 오르는 곳을 손으로 더듬었다. 자신을 먼 곳으로 옮긴다면 큰 피해는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순간 이동을 구현하기엔 위브가 턱없이 부족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손까지 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게일은 한 시라도 빨리 불안감을 잠재워야만 했다. 그래서 환상을 펼칠 생각도 했다. 워터딥의 겨울, 게일의 방을 이곳으로 끌고 와보려 했다. 하지만 몸은 환상을 다룰 수 없는 처지였다.
몸이 창백해지고 있었다. 숨이 차오른다, 심장이 요동친다, 흉부가 조여온다. 보주의 균열은 벌어지고 있었고 끊임없이 튀어 오르는 심장은 세상을 향해 윽박지르는 것 같았다.
게일은 균형을 잃으면서 나무 바닥으로 넘어졌다. 보주 위로 균열이 더 커지고 있었다.
게일의 이마 아래로 식은땀이 떨어진다. 이미 몸 전체는 땀으로 젖어있었다. 게일은 균열이 새겨진 가슴을 손으로 짓눌렀다. 손 아래로 요동이 느껴졌다. 이게 맥박인지 보주가 터지려는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요란하게 뛰어오르고 있었다.
게일은 도움이 필요했다. 바닥을 기어간다. 복도로 나가기 위해 손잡이로 손을 뻗는다. 그러나 팔은 저주에 걸린 것처럼 아래로 주저앉았다.
'죽을 거야, 모두 죽을 거야....'
게일의 귓가로 공포가 속삭였다.
흐린 시야에는 눈물과 입가에서 떨어진 침들이 바닥을 엉망으로 만든 것이 보였다. 심장은 자신을 죽일 듯이 흉부를 두드렸고, 보주가 터지고 싶다는 듯 가슴 위로 찢어지고 있었다. 게일은 온 힘을 다해 다시 손잡이로 손을 뻗었다.
그러나 고개를 들어 올려본 곳엔 손잡이가 없었다.
이미 열려 있는 문 앞에는 한 사람이 서있었다. 자신은 그 사람의 손을 잡고 있었다. 흐릿한 시야로 드래곤이 보였다. 드래곤본, 타브였다.
타브는 방문을 닫으며 게일에게 무어라 말하는 것 같았다. 벌려졌다가 닫히길 반복하는 타브의 입이 보이는 게 그 이유였다. 하지만 게일의 귀에는 심장소리만 들릴 뿐 다른 소음은 들리지 않았다.
"도,와줘... "
게일이 말하자 타브가 황급히 무릎을 굽혀 게일을 살펴보았다.
게일의 이마를 조심스레 짚더니 보주 위에 갈라진 균열을 알아본다. 가슴 위에 누르고 있는 게일의 손 옆으로 타브가 손을 올려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흉부 위로 무게감이 느껴졌고 맥박이 차츰 진정되기 시작했다. 게일은 문득 드래곤본의 손이 육중하면서도 근력이 좋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 정도 세기로는 부족했다. 게일에겐 시간이 없었다. 맥박을 바로 되돌리지 못하면 증상은 더 심해지고 보주는 터질것이다. 게일은 다급한 두 손으로 타브의 손목을 꽉 붙잡았다. 그리고 더욱 강하게 가슴 위로 당겼다.
게일이 타브를 향해 애원한다.
"좀,더.. 세게..."
타브는 마치 한 대 얻어맞은 표정을 지었다. 게일은 그걸 알아차릴 여유도 그가 왜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 이해할 시간도 없었다. 그저 타브의 손을 끌어다 제 가슴을 압박시키기에 바빴다.
타브의 눈빛이 돌아왔고 한 박자 느리게 강한 압박감이 밀려왔다. 짓눌리는 흉부가 갑갑했지만 확실히 증상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게일은 어서 이 심장을 잠재워야 했다. 게일은 타브의 손목을 붙잡은 채로 애원했다.
"더,더..세게..."
다급한 상황 속에서 타브는 한 손으로 게일을 끌어안았다. 끌어안은 손으로 게일의 등을 힘껏 당기면서 흉부 위에 올렸던 손에 힘을 강하게 실어 넣는다. 압박감이 최대치로 밀려오자 게일은 고통스러움에 신음을 내었다. 그러나 게일의 두 손은 타브의 손목을 놓지 않았다. 꽉 쥔 채로 흉부가 제대로 짓눌리게 어깨를 벌려주기까지 했다.
타브는 벌려진 게일의 어깨를 다 덮을 정도로 덩치가 컸다. 타브의 품 안에서 게일은 샌드위치 처럼 타브의 손 사이로 짓눌리고 있었다. 타브는 강하게 압박을 시키면서도 게일을 뭉개뜨리지는 않는 조심스러움을 보였다.
"헉.. 허억... 헉.... "
길게 내뱉은 숨을 마지막으로 미친 듯이 뛰던 맥박이 가라앉았다.터질 것 같던 심장은 리듬을 찾았고 순식간에 게일의 불안감도 사그라들었다.
곧이어 제 얕아진 숨소리가 들렸다. 아까처럼 거세진 않았지만 아직도 불규칙하게 몰아쉬고 있었다.
"숨 쉬어. 게일."
타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게일은 그제야 긴장이 풀린 듯 앞으로 기울어졌다. 타브가 그를 받아안아주듯 품에 가둬준다. 게일은 혼미한 정신으로 숨을 천천히 고른다. 타브에게 안겨있는 것이 어색하긴 했지만 느껴지는 안도감에 그대로 몸에 힘을 빼었다.
계속 짓눌렸던 흉부가 서서히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아직 보진 못했지만 멍이 시퍼렇게 들었을 게 뻔했다. 그렇지만 드래곤 본의 힘으로 눌린 걸 생각하면 갈비뼈가 아작나지 않은 것에 감사해야 할 따름이었다.
"..죽고있던거야?"
타브가 물었다. 게일은 거기에 대답할 수 없었다. 타브가 때마침 나타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게일도 확신할 수 없었다. 지금 죽는 것은 아니었지만, 증상으로 인해 죽을뻔했다는 말을 어떻게 설명해 줄지 고민했다. 게다가 곧 엘더브레인을 마주하면 죽을 목숨이긴 했으니까. 여러모로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흐릿한 눈으로 타브의 오르내리는 어깨가 보였다. 게일은 다시금 타브에게 안겨있음을 깨달았다. 생소했지만 품이 불편하진 않았다. 드래곤본의 품은 생각 외로 푹신했다.
이젠 보주 위로 벌어져 나오던 균열도 가라앉았다. 마법이 약해진 것도 어쩌면 제 불안감에서 비롯된 증상 때문이었던 것 같았다. 머릿속으로 모든 상황이 정리되고서야 게일은 타브에게서 몸을 일으켰다.
" 도와줘서 고마워."
게일은 자신의 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건지 궁금할 텐데. 사실은.. "
그는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타브를 바라봤다. 동시에 자신이 하려던 말을 잊어버린다. 게일의 눈동자가 조용히 커졌다.
.. 드래곤본은 특유의 매서운 눈빛을 갖고 있었다. 해석하기 싫은 날카로움도 보였다. 그랬었다.
그런데 지금 타브의 눈은 너무도 슬퍼보였다. 그 속도 한없이 여려보였다.
"타브..?"
게일은 놀란 마음에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더 가까워진 타브의 눈동자는 게일을 향해 움직였다. 물기가 어린 게 마치 울기 직전의 아이의 눈동자를 보는 것 같았다. 이게 타브의 눈이라고? 게일은 믿을 수가 없었다. 동시에 그것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게일, 죽는거야..?"
매번 딱딱하기만 했던 목소리가 구슬펐다. 문득 죽고 있던 거냐는 물음에 대답하지 못한 것이 떠올랐다. 게일은 다급하게 말했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드래곤본이 우는 걸 처음으로 목격할 것만 같았다.
"아냐, 아니, 아니야. 잠시 죽을 뻔했던거야. 지금 죽는 건 절대 아니야."
대답하는 중에도 게일은 타브의 눈동자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다. 계속 보고, 또 보고, 타브의 눈을 피하고 싶지 않았다. 게일은 이 순간 속에서 위브의 원천을 발견했던 그 황홀하고, 기쁘고, 감동적이었던 감정들이 떠올랐다.
"다행이다. 널 잃는 줄 알았어."
타브는 드래곤의 모습으로 해맑게 웃었다. 게일은 제 심장 사이로 숨어있었던 여린 감정들이 껍데기 밖으로 솟아나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동안 자신을 억눌렀던 죽음에 대한 공포들과 구원에 대한 신념들이 흐무러지고 있었다.
게일은 혼자 앞서 나가는 생각들을 자신만의 꿈으로 두고 싶지 않았다. 혹시나 자신만의 착각이 될까 봐 그가 곧 장 타브를 향해 물었다.
"타브.. 날 좋아해?"
"응. 좋아해."
이럴 수가. 타브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인정하였다. 대답이 이리도 빠르게 돌아올 줄은 몰랐다. 게일은 진정하려는 듯 숨을 골랐다. 그동안 같이 다녀온 동료가 자신을 좋아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숨이 다시 벅차오르지만 이건 증상과는 다른 영역이었다. 타브의 눈동자에 빠지기라도 한 듯 게일의 시선이 저절로 따라갔다. 게일의 두 눈엔 안광이 차올랐고 얼굴은 부드러워졌다. 타브는 그 표정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타브가 자연스럽게 게일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날카로운 손톱을 숨기느라 타브의 손가락 관절이 삐걱대는 것 같았다. 하지만 타브도 지금이 가장 좋은 기회임을 알았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이 게일의 죽음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게일, 죽지 마. 나랑 같이 있자."
게일은 선뜻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이미 타브에게 매료된 듯 하였다.
타브가 손바닥을 펼쳐 게일의 등을 쓰담았다. 게일은 타브의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는 환상에서 느꼈던 화로의 열기보다 타브의 체온이 더 따스하다는 걸 깨달았다. 심지어 마음까지 편안해지자 이미 환상에 들어와있는 것만 같았다. 평소엔 상상도 못했던 상황이었지만 게일은 이 분위기가 싫지 않았다. 몸은 오히려 이런 온기가 그리웠다는 듯이 타브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자 타브가 몸을 더 밀착해왔다. 게일은 타브가 자신을 가까이서 바라보는 걸 마다하지 않았다.
둘은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끌어안았다. 타브의 손은 게일의 로브자락을 들췄다. 그 이후는 어둠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둘은 촛불 하나에 의지한 어두운 방에서 서로의 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게일은 혼자가 아니었음을 알았다.
"너와 함께하는 단 한 순간으로, 난 평생 만족할 수 있어. 그 순간 마음에서 공포가 사라져. 와줘서 정말 고마워. 그 순간을 나눠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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