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間
유료

홍이

오리지널

이제 나는, 행복해.

아이의 탄생은 검고 짙음-外로 나오기 전 아이의 몸은 그리 이뤄지고 있었다. 자그마한 손발, 미세하게 움직이는 심장, 수조를 헤엄치는 하나의 命. 그래, 그것이 찾아오기 전까지 아이는 가족의 태아였다. 주어진 운명대로 세상에 첫 숨을 텄다면 제 가족과 같은 흑발에 자안이었으리라. 그러나 한 번 부서진 수레바퀴는 그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 그것은 아이의 모든 걸 앗았다. 혈육과 같은 색, 기억, 名命. 남은 건 그것을 품은 뿐이다….

아이는 현재 완전히 붉어지다가만 연한 홍색, 빛을 담은 황색을 담은 채 살아가고 있다. 둥근 눈매, 처진 눈썹과 하얗고 붉은 피부는 순한 토끼가 떠오른다. 어릴 적 손질해주었던 머리 스타일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해파리 같은 단발, 뒷머리만 장발인 형태이다. 꽤 잘 뻗치는 머리카락이라 열심히 빗질하였음에도 조금씩 잔머리가 튀어나와 있다. 생활 한복이 평상복이며 여름에는 흰 반소매 옷, 겨울에는 검은 뜨개옷과 같이 착용한다. 평소에 치마끈에 보라색 노리개를 달고 있고 여름에는 흰 부채를 꼭 지니고 있다. 신발은 특별한 일을 제외하고는 검은 삼선 슬리퍼다.

홍이 紅利
18살 163cm 54kg #ED89A2

나이는 백건과 같으며, 이름은 외자이나 딱히 성과 이름을 구분 짓지 않고 같이 부른다. 한자는 붉을 홍(紅)에 이로울 이(利). 평범한 사람들과 다르게 머리와 홍채, 특히 동공 색이 이질적이다.

백호 가문에서 후원받고 있다. 어릴 때부터 사신 후계자 집안에서 같이 자랐으며, 이름과 성 모두 이때 받은 것이다. 출생 신고가 되어있지 않아 가문의 보호 아래 무술 지도와 가정교육을 받았다. 현재 백건을 따라 중앙으로 거처를 옮긴 후에는 둥굴레 찻집의 점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작은 창고 방을 청소해 거기서 머무는 중이다.

7월 8일생. 여름에 태어난 열엽모간, 홍옥. 누군가 정해준 생일이 아니고 태어나자마자 기억하고 있는 날이다. 그러나, ■에 의해 운명이 뒤틀어졌기에 탄생일은 크게 의미 없다. 이유는 후술.

취미는 한국 무술 종목 운동, 철권 게임. 그 외는 딱히 좋아하지도, 하지도 않는다. 취미 생활 외, 집안일과 찻집 일 말고 하는 활동이 딱히 없으며 모든 일을 다 끝내고 나면 늘 명상하거나 멍하니 앉아 하루를 보낸다.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하고 있다. 좋아하는 음식은 샐러드, 꿀타래. 잘 찾아 먹지 않는 것만 있을 뿐 싫어하는 음식은 없다. 식사류보다는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곡물 바, 양갱, 혹은 디저트를 선호하는 편이다.

버림받는 것을 싫어한다. 오직, 그것뿐이다.


아이는 하나로 정의할 수 없다.

  • 시작하는 봄

백건과 늘 장난치는 활기차고 긍정적인 아이로 보이나, 사실은 버림받는 걸 무서워하고 예민하며 늘 겁에 질려 살아가고 있다. 백건이 곁에 있을 땐 안정된 모습이지만, 떨어지면 분리 불안 증세를 보인다. 잔뜩 경계하고 관계의 거리를 쉽게 좁히질 못한다. 친구 사귀는 법을 모르고 학교에 다니지 않는 터라 사회성이 부족하다.

  • 젖어드는 여름

아이의 문을 열면 숨겨져 있던 상냥함이 친히 당신을 적신다. 친해지면 스스럼없이 다가가고 장난도 치며 여러모로 수다스러운 친구가 된다. 애정을 보여주는 모습은 확실히 봄과 다르다. 경계하고 의심하던 모습은 더는 보이지 않으며 나아지고 있다.

  • 드넓은 가을

성장한 아이는 이제 눈물 흘리기보다 받은 것을 나눠주게 되었다. 진실은 누군가를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아이에게 겁이 아닌 상대를 볼 수 있게 했다. 사랑은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아이는 과거보다 미래로 나아간다.

  • 기다림의 겨울

더이상 이별이 두렵지 않다. ……나는 언제나 너를 기다릴 거야.


관계를 이어가고자 함은, 마음 속에 당신을 두는 것

  • 백건

너와의 관계를 어떤 단어로 칭해야 할지 모르겠다. 너는 나에게 철없는 남동생 같기도, 가끔은 믿음직한 오빠 같기도 하며 평소에는 장난꾸러기 친구고 늘 좋아하는 마음이 넘쳐흐르는 짝사랑 상대다. 내 시작은 네 곁이고 끝도 네 곁일 테니 이는 변하지 않는 진심이다.

소꿉친구, 아니면 가족.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지 아직도 알 수 없는 아이. 세상은 부질없고 하늘로 올라가면 끝이라 생각하지만, 네 손을 잡았을 때 너만은 아니라고 누군가 속삭이는 기분이 든다.

백건, 건아, 야 ↔ 홍이, 홍아, 야

#소꿉친구, 유사 가족

  • 백호 家

소중한 가족. 외면할 수도 있던 자신을 보호해주고 키워준 은인들. 어떻게든 은혜를 갚고 싶고, 영원히 가족으로 남고 싶다. 자신을 여동생, 막내딸이라고 해주는 그들을 생각하면 너무 큰 사랑을 받은 듯해 가끔 눈물이 올라온다.

처음은 갑작스럽고, 딸과 아들의 고집으로 품은 아이였으나 가여웠고 눈치 보는 모습이 눈에 박혀 점차 품게 되었다. 이제는 가슴으로 낳은 아이나 다름없다.

남동생과 다른 여자아이, 바라던 새로운 동생이 생긴 기분이라 좋았다. 피가 이어져 있지 않아도 늘, 자신의 마음속에는 소중한 여동생이라 생각하고 있다.

홍아, 홍이야 ↔ 엄마, 아빠, 언니

#유사 가족

  • 주은찬

백건과 같이 지낼 적 네가 찾아와, 속에 있는 겁이 너를 보고 내 혈연이라 속삭였을 때 정말 반가웠다. 너는, 알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친구라 해줘서 기쁘다. 그게 전부다.

누군가의 손을 잡고 온 백건네 집에서 만난 친구.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라 꼭 친해지고 싶었다. 옛 성을 듣고 이제 깨달았지만…. 그래도 계속 친구로 남고 싶다.

은찬아 ↔ 홍아

#소꿉친구, 친척

  • 중앙

중앙에서 만난 인연은 영원히 기억하고 사랑할 것이다. 그들은 어느새 마음 속에 큰 자리를 차지해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고 말았다.


이것은 시작의 이야기다.

첫 기억은 태어날 때부터 시작된다.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기에 자신이 왜 버려졌는지 알고 있다. 처음 눈을 떴을 때 보이던 부모의 얼굴을, 자신을 버린 그 손을 기억하고 있다. 차라리 처음부터 몰랐더라면, 아니, 처음부터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과거, 봄.

유독 거센 바람이 불고 하늘과 땅이 흔들리며 무엇이 사라지고 끊어졌는지 알 수 없는 날. 신의 변덕인지 天은 유독 사신과 신선의 눈이 앞을 볼 수 없을 만큼 일그러져 있었습니다. 신선에게 착취당하던 신령, 월토는 그 기회를 틈타 지상으로 탈출했죠. 불길한 하늘 아래로 떨어지며 인간의 몸을 취해 신선이 되어 그들에게 복수하고 말겠다고 다짐한 그는, 지상의 생명 중 밝게 타오르는 혼에 홀려 막 태어나기 직전인 태아의 몸에 들어갑니다.

身主인 아이는 그가 들어오기 전까지만 하여도 집안의 기대를 받고 태어날 예정이었습니다. 신이 정했던 주작 가문의 아이-후계자는 아니더라도 가문의 일부가 될 운명의 소유자. 여자아이라는 의사의 말에, 부모는 첫딸이라며 하루빨리 만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죠. 그러나 그게 다 무슨 소용인지…….

허락되지 않은 존재가 섞여 아이는 인간도, 신령도 아니게 되어버려 눈 밖에 나고 말았습니다. 신령이 좀 더 강했더라면 아이만은 고통에서 벗어나 편하게 눈을 감았을 텐데. 가호, 신의 선택, 의지. 신령의 힘으로는 그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없었습니다. 결국 하늘에서 탈출했지만, 다시 지상에 묶인 존재가 되어버리고 만 그는 아무 죄 없는 아이를 원망합니다. 정작 자신의 罪 때문에 아이는 같이 고통받게 되었는데 말이죠.

신은, 인간이 정해진 굴레를 벗어나려 하면 대가를 치르게 합니다. 그것이 자의던, 타의던 규칙은 어떤 이유라도 예외를 둬서는 안 됩니다. 인연이 모두 흩어지는 것, 인연이 다시 이어질 수 없도록 배척당하는 것—.

아이에게 흐르던 것은 전부 사라집니다. 앞으로의 일은…….

과거, 여름.

봄이 끝나고, 혼이 섞여 태어난 아이는 전부 잃어버린 채로 눈을 뜹니다. 가족에게 잊힌, 울지도 않고 형태도 이상한 알 수 없는 존재. 母胎에서 나왔으므로 분명 혈육이어야 하는데, 이상하게 가족 모두 기억나지 않습니다……. 이 아이는 대체? 주작 가문의 일원이라 한들, 이는 평범한 인간이 견딜 수 없겠죠. 기이한 형태로 태어난 아이를 어떻게든 품어보려 해도 거부감이 드는걸요. 아이는 점차 고립되기 시작합니다.

아이는 가족들이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감정을 가졌는지 보입니다. 정신이 흐려질 때 신령이 제 몸을 차지하려고 어떤 짓을 벌이는지는 보지 못합니다. 주변을 읽을 수 있기에 어렴풋이 짐작할 뿐입니다. 또, 자기 몸을 차지한 신령이 주변을 해쳤으리라고….

신령은 몸을 차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아이를 괴롭히고, 속삭입니다. 존재를 약하게 만들기 위해 이름 없이 살아가던 無名에게 제 이름을 붙이며, 아이의 정신이 약해질 때마다 그 틈으로 나와 미약하게나마 남아있던 연-인간 사이의 정-을 완전히 끊기 위해 기이한 짓을 벌입니다.

—그렇게 8년이란 세월을 반복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같이 살아가던 가족, 그런 그들에게 이상한 시선을 받으며 자란 아이가 돌이킬 수 없는 상흔 사이에 갈라 서 있습니다. 더는 견디지 못하겠어. 어떤 것도 받지 못했던 아이는 가족의 비명에 무너져 내립니다. 세상을,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어차피 살아가봤자 언젠가는 신령에게 빼앗길 테니까…. 의지할 곳 없이 절벽에 몰린 아이의 선택은 편안한 죽음뿐입니다.

아이의 세상에는 그를 밝은 길로 인도하는 존재가 없었습니다. 오직 남은 건 죽음을 속삭이는 신령과 어두운 골목입니다. 누구도 나를 사랑해 주지 않아, 반기지 않아, 속에 있는 겁은 몸을 넘기라고 해. 이젠 지친 거예요. 그렇다고 날뛰는 존재에게 제 몸을 넘기긴 싫은 아이는 골목을 선택한 것이죠.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을,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추운 골목을….

과거, 가을.

캄캄하고 좁은 골목에 자리 잡아 눈을 감을 날이 오기를 기다리면, 세찬 비가 내리고 하늘이 다시 한번 일그러집니다. 칼날처럼 쓰라린 바람에 몸과 마음을 맡기고 아이는 눈물인지 비인지 모를 물을 먹으며 하늘을 원망합니다. 왜 나를 지켜주지 않았나요. 왜 내 잘못이 아닌데 나는 이렇게 힘들어야 하나요. 이게 運命이라면 신을 원망할 거예요. 세상이 밉고, 속에 있는 怯이 밉고, 내가 미워요. 나는 마지막까지 사랑이란 걸 받아보지 못하고 죽나요. 내가 불쌍하지는 않나요.

신령은 그런 아이의 울부짖음에도 빨리 죽기를 바랐습니다. 너만 없다면 나는 이 몸을 차지하고 신선이 될 수 있었는데, 너만 아니면 달이 생각나는 이 갑갑한 몸 안에 갇혀있지 않아도 되었는데. 죽어, 죽어….

여러 번 속삭이며 괴롭히는 아이의 겁. 그래서, 아이는 점차 미쳐갑니다. 이리 고통받는 나를 불쌍히 여긴다면 거둬가 주세요. 당신이 지키지 못한 나를 거둬가세요. 이 겁이 나오지 못하도록 몸도 거둬주세요. 내가, 죽고 나서도 나 자신으로 남을 수 있게……. 빗소리를 뚫고 들릴 정도로 흐느낍니다.

신은 사람의 운명을 정하고 지켜보기만 할 뿐이죠. 인간의 삶은 인간이 해결해야 하니까요. 그걸 알지만, 자기 삶이 너무 억울해서, 이렇게라도 원망해야 해서 빛 한 점 들지 않는 골목에서 하늘을 향해 손을 뻗습니다. 숨을 헐떡이고, 내려간 체온에 정신이 가물거립니다. 아, 끝에 다다른 기분이야. 신령은 이제야 자신이 몸을 차지할 수 있다며 미소 지었지만—

■에 의해 죄를 같이 갚아야 하는 작은 생명이 불쌍했을까요, 아니면 그저, 굴레를 벗어난 존재가 달리 굴러가는 운명을 향해 헤엄친 걸까요. 멈춘 수레바퀴가 새로운 물살에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을 작은 골목길 사이에서 아이는 그를 만납니다. 운명을 벗어난 罪人을, 인연을 갖지 못하는 罪魂을…, 구해 줄 그를.

백건은 어느 날, 늘 지나가던 길에서 비를 뚫는 울음소리를 듣습니다. 아무도 쳐다보지 않을 어두운 골목, 평소라면 그냥 지나치고 말았겠지만 어떠한 이끌림에 멍하니 발걸음을 그쪽으로 옮겼어요. 골목에는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작은 체구에 춥게 입은 옷, 벌벌 떠는 몸.

누구도 신경 쓰지 않고 지나치는 어둑한 골목에서 구해달라고 외치는 듯한 아이에게, 왜 여기서 울고 있냐고 묻습니다. 그 말에…. 왜 울고 있냐고? 말하면 네가 알아? 속에 담긴 엉킨 것을 네가, 알 수 있니? 아이는 물음에 답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죠. 시선은 어지럽고, 머리가 지끈거립니다.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보고 평소라면 하지 않을 말을 꺼내요. 계속 이러고 있으면 감기 걸리니 따라오라고요.

따라와. 따라, 와? 어디로? 우리 집으로. 내민 손,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 어서 잡으라는 눈빛. 사랑받지 못했고 겁이 무서워 그냥 사라질 거라던 아이는, 막상 따스한 온기가 다가오니 죽어버리기 위해서 온 거라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살고 싶었던 겁니다. 그 누구보다 절실히…….

손을 내밀고 집에 가자고 하는 그가, 살아가라고 말하지 않았음에도 그리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와 동시에 수레바퀴가 삐걱거리며 돌아가는 소리가 들립니다. 어서 잡아. 속삭이는 소리가 들립니다. 이제 다시는 오지 않을 기회일 거야. 속에서 겁의 발악이 멀어집니다. 이상하죠, 몸 안의 눈물은 다 쏟아냈다고 생각했는데 그의 손을 잡자 깊은 곳에서 다시 고이기 시작해요. 이 물이 내 운명을 움직이게 하는 걸까? 잘 알 수 없으나 손으로 전해지는 온기가 아이를 일으켜 세웁니다.

어서, 따스한 곳으로 가자. 지금의 가족이나 다름없는 그들 곁으로…. 흐릿한 시야 너머로 손을 잡은 그와, 같이 이끌어주는 그가 보여요. 행복을 찾도록 해. 누구예요? 행복은 무엇인가요? 내가 그의 손을 잡고 가면 찾을 수 있어요? 우느라 잠긴 목, 소리를 밖으로 낼 수 없습니다. 눈물을 훔쳐 얼굴이라도 제대로 보려 하면…. 밝은 빛에, 暗轉합니다.

과거, 봄이 잠든 사이.

아이를 처음 봤을 때 내민 손은 충동적이었습니다. 내가 왜 손을 뻗었더라…. 머리가 안개가 낀 것같이 흐릿하지만, 폭우 아래 아이의 속삭임이 들렸다는 건 확실히 기억합니다.

살려주세요. 행복해지고 싶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소리와 말을 걸자 든 얼굴에 박힌 눈이 자신을 홀린 것 같습니다. 수련하며 숱하게 들었던 사람을 홀린다는 것이 이 아이일까. 분명 누나에게 말하면 애한테 어떻게 그런 말을 하냐며 맞을지도 모르지. 헛웃음만 나옵니다. 하긴, 손을 잡자마자 기절한 녀석이 누굴 홀릴 수 있겠어. 엄마 말로는, 위급할 정도로 떨어진 체온에 영양실조라 회복하는 데 좀 시간이 걸릴 거라고 했었지. 어떻게 그 소음 속에서 나를 부른 거냐고, 일어나면 꼭 물어봐야겠다…….

—백건이 폭우 속에 흠뻑 젖은 채로 기절한 아이와 돌아오자 집안은 한바탕 난리가 났었습니다. 비쩍 마른 몸에 위험할 정도로 떨어진 체온, 영양실조. 갖은 문제를 안고 있던 아이를 위해 의사를 부르자 나아지는 안색에 다들 안도했습니다.

상황이 조금 진정되고 나고 그제야 어떻게 된 일이냐 물으면, 백건은 간단하게 말하죠. 얘가 골목에서 비 맞고 있던데? 그래서 데려왔어. 결국 도움이 되지 않는 백건의 말에 상황을 알아보는 것은 포기하고 아이가 건강하게 눈을 뜨길 기다립니다. 번갈아 가며 따스한 보살핌, 온기, 걱정을 전하면 아이는 악몽을 꾸지 않고 평안히 긴 휴식을 취하고….

과거, 겨울.

가을비가 멎고, 잠잠해진 하늘이 몇 번이고 반복하며 흘러가다 보면 어느새 겨울입니다. 흰 눈이 소복이 쌓인 날 긴 잠에서 깬 아이는 보송한 이불과 생전 처음 들어보는 소리를 내며 물을 뿜는 것을 멍하니 보다가 옆에서 손을 잡고 잠든 사람 형태에 놀라 일어납니다.

깼어? 익숙한 목소리, 흐린 시야로 봤던 형태에 조금 안심하며 주위를 둘러보면 차가운 골목길이 아닌 따스한 햇볕이 들어오는 방입니다. 여긴 어디야? 물으면, 그는 자기 집이라 당당히 말합니다. 집? 내가 왜 여기 있지? 혼란스러운 얼굴을 지으며 분명 자신을 데려왔을 게 뻔한 범인을 바라보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벌컥 열어 사람을 부릅니다.

엄마, 일어났어. 그 모습에 당황하던 것도 잠시, 말이 끝나자마자 들어오는 어른의 모습에 놀라 딸꾹, 숨을 멈춥니다. 가족-이렇게 부르는 것을 허락하지 않던 자들 외에 처음 보는 어른에 몸이 굳습니다. 어떡하지? 그 사람들처럼 소리 지르려나. 눈 깜박임도 멈춘 채 들어온 사람을 빤히 보고 있으면 성큼 다가와 제 머리 쪽으로 손을 내밀고—, 그에 질끈, 눈을 감으면….

괜찮니? 하고 상냥한 목소리와 함께 이마에 온기가 전해집니다. 어, 음, 더듬거리며 말을 잇지 못하면 간질거리는 상냥함이 톡 눈가를 두드립니다. 내 아들이 쓰러진 너를 데리고 왔다. 아주 위급해 보여서 의사를 부르고 여기 방에서 치료 중이었다. 지금은 겨울이고 너는 몇 주 만에 눈을 떴다. 그동안 힘들었겠다.

그 자극에 손을 잡았을 때처럼 앞이 흐릿해집니다. 훌쩍임에 상냥한 사람은 말을 멈추고 조심히 등을 두드려주었고, 조금씩 떨어지던 방울은 이내 큰 물줄기가 되고 멈출 수 없이 터져버리고 맙니다.

괜찮아, 괜찮아, 쉬이…….

눈가가 빨개질 정도로 울고 진정하면, 나는 누구고, 어디서 왔는지 물음이 이어집니다. 저는 이름이 없어요. 집 밖을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성이요? 오빠가 朱■■라고 불렸었어요. 잔뜩 울어 몰려오는 졸음에 고개를 꾸벅이며 답하면, 몸은 눕혀지고 작게 토닥이는 손길에 저항할 새도 없이 눈이 감깁니다.

과거, 봄이 다시 잠들고.

불확실한 답이었으나 가문의 힘으로 이리저리 수소문한 결과, 주작 가문의 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주작 가문의 넷째가 아이를 낳았으나, 가족 누구도 아이의 존재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제대로 알리지 않고 이름도 붙이지 않은 채 가둬서 키웠다는 사실을요.

연락이 닿아 전화로 아이의 존재를 말하면 그들의 반응은 이렇습니다. 모르는 일입니다. 알아서 하세요. 그래도 배에서 나온 아이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말한다면—

나도, 나도 노력해 봤어요! 모두의 기억에 없어도 내 배에서 나왔다고 하니까…. 근데, 도통 마음을 줄 수가 없었다고요. 기이한 형태로 태어나 아이처럼 울지도 않고 나를 빤히 보기만 하는데, 그걸 어떻게, 어떻게 품어요! 말을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몸속에 성인이 들어가 있는 것처럼 갑자기 자신의 이름은 성아라고 하질 않나, 엄마라고 또박또박 부르질 않나…. 방문을 분명 닫아놨는데 언제 들어왔는지 밤 중에 빤히 쳐다보고 있지 않나…. 난, 나는!

울부짖음과 함께, 난 그런 아이 모른다. 알아서, 제발 알아서 처리해라. 다시 한번 말하고는 일방적으로 통화가 끊어집니다. 중간중간 잡음으로 제대로 들리지 않았으나 결국 결론은 하나입니다. 아이는 돌아갈 곳이 없다.

출생신고도 되어 있지 않고, 주작 가문 측은 아이를 불편하게 생각하여 여러모로 찝찝한 점이 많습니다. 그러나 남매는 아이를 떠나보내기 싫어하며, 괜찮냐는 말에 울음을 터트리는 아이의 얼굴이 아른거리기에…결국 이번 겨울까지는 아이의 의사를 물어본 후 같이 지내보기로 합니다.

과거, 따스한 겨울.

갈 곳이 없다면 여기서 같이 지내지 않겠니? ……그래도, 돼요? 물론이지. 눈을 뜨니 펼쳐진 꿈같은 상황에 아이는 잠시 눈을 깜박이다가 받아들입니다. 다 나으면 나가라는 말을 들을 줄 알았으나 상상해 보지도 못한 따스한 말에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런 아이를 현실이라 깨닫게 해준 것은 백건입니다.

멍하니 앉아 있던 아이의 손을 잡더니 사전을 들이밉니다. 왜 그러냐는 듯이 바라보면 사전의 한구석을 가리킵니다. 利라 적혀있는 부분입니다. 네 이름으로 고민한 거야. 마음에 들면 이렇게 불러도 되냐? 아이는 불렸던 이름이 없었기에 그의 말에 바로 고개를 끄덕입니다.

쓸모없는 사람이 아니다. 당신은 이롭다, 그러니 살아라…….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해줄 이름을 갖게 된 아이. 홍이는 길을 걷기로 결심합니다.

행복을 찾도록 해……. 당신이 누군지, 행복이 무엇인지 아직 알 수 없으나 왠지 이곳에서 지내다 보면 발견할 거 같아요. …분명.

현재, 그리고 다시 봄.

같이 지낸 시간은 훌쩍, 10년이 흘렀습니다. 이제 곧 백건이 중앙으로 떠나지만 홍이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헤어지고 싶지 않아, 따라가고 싶어. …하지만 이별의 날은 찾아오고 백건은 홀로 중앙으로 떠납니다. 아쉬운 건 나뿐인가? 하루하루 백건의 방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보다 못한 언니가 그러면 중앙에 찾아가 보라고 전합니다. 백건이 아직 도착했다는 소식이 없으니, 그것도 확인해 볼 겸…….

그래서, 와버렸어. …폐는 끼치지 않을게요. 뭐든 할 수 있어요!

…이후 서사는 몇 사건을 제외하고 원작과 동일하게 흘러간다.


해설

  1. 홍이는 반인반신의 존재다. 인간의 몸으로 태어났으나 그 안에 신령성아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인간에게 속할 수 없다. 성아가 몸에 들어옴으로 정해진 삶은 전부 사라졌다.

  2. 홍이의 탄생 형태는 성아의 원형과 닮은 일그러진 동물이다. 축축하고, 바짝 마른…. 그것이 커가며 점차 인간의 형태를 띤다.

  3. 홍이는 말을 배우지 않았으나 속에 성아가 있기에 자연스레 세상의 이치, 지식이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다. 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신령의 것이기에 인간 세상을 앎과는 거리가 멀다.

  4. 백건을 만날 수 있었던 건 신의 자비가 아니다. 그저, 하늘로 올라갔을 때 남을 지상의 연을 찾아낸 것이다.

  5. 홍이의 운명은 백건의 물길에서 움직인다. 백건을 만난 후 만들어진 삶은 정해져 있던 것이 아니기에 틀어지지 않는다.

  6. 현 주작이 홍이의 존재를 모르는 이유는, 존재 자체가 혼란이기 때문이다. 신령이 파악할 수 없는 어떤 것.

  7. 홍이에게 속삭였던 사람은…….

아이 같지 않은 아이는 인연을 통해 아이답게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사랑이 사람을 움직이고 단단해지게 하며 행복을 찾게 만듭니다.


이후 서사는 일부 사건을 제외하고 원작 서사를 따라갑니다. 하단은 서사 관련 개인 백업이라 일부러 막았습니다. (결제 X)

카테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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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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