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my pleasure
2022.08.31
툭, 머리끈은 그 작은 소리를 끝으로 바닥에 나뒹굴었다. 바람이 불어오자 시린의 머리는 그의 맞추어 이리저리 휘몰아쳤다. 마치 폭풍처럼, 귀신처럼, 지옥에서 올라온 악귀처럼. 그는 그런 모습을 하고 당신을 바라보았다. 표독스러운 눈과, 증오로 이빨을 드러낸 입과, 힘을 너무 준 나머지 창백해진 손을 한 채로.
우리의 말은 서로에게 닿지 않는다.
마치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로 헛되이 도는 수레바퀴처럼 우리의 대화는 빙글빙글 원을 그린다. 마치, 결코 서로를 만나지 않을 선들처럼 우리의 대화는 평행을 달린다. 너는 너의 아픔이 있고, 나는 나의 아픔이 있다. 네 족속들은 나의 가족을 죽였다. 그리고 나는, 나의 무리는 네 언니를 죽였다.
하지만 그것이 뭐가 어떻단 말인가? 나는 다시 한번 이빨을 간다. 빠드득거리는 마찰음이 기분 나쁘게 입안에서 메아리친다.
“세상이 당신을 상처 입혔다고 당신에게 세상을 다시 상처 입힐 권리가 생기는 건 아니니까요⋯.”
아니, 네 말은 틀렸다. 나에게는 복수할 권리가 있다. 나에게는 세상을 저주할 권리가 있다. 나에게는, 세상을 상처입힐 권리가 있다. 세상은 나를 저주했고, 세상은 나를 몰아냈고, 세상은 나를 비천한 자로 만들었으며, 세상은 나를 상처입혔다. 그러니 세상은 마땅히 그 대가를 치루어야 할 것이다.
너도, 너의 그 언니도 그 세상에 속해 있었다. 내가 너희를 죽인, 죽일 이유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러나 어쩌면 너 역시 그럴 권리가 있을 지도 모르겠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너에게 나의 증오를 쏟아낸다. 나는 개처럼 으르렁대고, 뱀처럼 쉭쉭거린다.
마치 너의 말은 결코 나에게 닿지 않으리라는 것을 드러내려는 것처럼. 네 말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이.
아, 그것은 얼마나 공허한 몸짓인가. 허무한 발버둥인가.
“내가 그것을 알아야 하나? 내가 그것을 신경써야 하나? 너희가 먼저 신경쓰지 않았잖아. 너희가 먼저 알려 하지 않았잖아.”
여기서 나는 주먹을 꽉 쥔다.
파르르, 몸이 떨려온다. 이것은 흥분일까, 아니면 두려움일까?
“그런데 왜 나는 너희에게 그런 호의를 돌려주어야 하지? 내가 왜, 왜! 너희에게 그래야 하지?”
복수 할거면 복수하라고, 나는 말한다. 내가 저지른 일 따위 후회하지 않는다고, 너희는 죽어 마땅했다고 나는 대답한다. 너희의 죄는 내가 증오하는 세상에 속해 있던 것으로 충분했다고. 네가 비명을 질렀듯이, 나는 절규에 가까운 소리를 내뱉는다.
내가, 내 죄인의 집을 불태우는 대신 온 세상을 불모지로 만들 셈이냐고?
나는 대답한다.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증오로 번뜩이는 눈빛을 한 채로.
“오, 그래. 기꺼이, 기꺼이 그래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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