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완벽한 살인

미즈치치 미즈게게 역할 반전

게게게 by ᄋ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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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주 어렸을 적의 일이다.

기억이 맞다면 그 시각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고 있었다. 키타로, 혹은 다나카 케타키치라는 인간은 예나 지금이나 빈말로도 절대 사교성이 좋다고는 말할 수 없는 인간이고, 따라서 대부분의 하굣길에서 나는 혼자였다. 뒤에 있을 강렬한 풍경에도 불구 내가 이 도로의 광경을 이렇게나 정확하게 떠올릴 수 있는 건 이날 드물게 동행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동행인이란 반푼어치 인간을 말한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탓에 모두가 그를 생쥐 인간이라 부른다. 유난히 두드러진 덧니 탓에 붙은 이름이라 했는데 과연 적절한 작명이다. 생쥐 간만큼이나 옹졸하고 추레한 심보를 가진 그는 호시탐탐 내 가죽 코트며 지갑 따위를 누리고는 했다. 객관적인 평가는 아니고. 난 그를 싫어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좋아하지도 않는다. 녀석에 대해선 기회가 될 때 더 자세히 말하도록 하겠다.

놈은, 솔직히, 정말 솔직히 말하자면 믿을 놈이 못 되지만, 생쥐인간을 믿을 바엔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겠지만, 적어도 이 일에 있어서 그는 무고했다.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코스모스 가득한 논두렁 길을 그와 같이 걸은 사람이 바로 나 아니던가!

그를 원망했던 적 있다. 그가 나를 붙잡지 않았더라면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가 깨진 접시 탓에 들을 꾸중을 두려워 하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나를 찾아와 같이 시장에 가지 않겠냐며 사정하지 않았더라면, 그랬다면 아버지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적이 내게도 분명 있는 것이다. 이 착각 때문에 나는 몇 년이나 녀석과 서먹했다. 이제 와 회상하면 참 부끄러운 일이다. 아버지가 죽었을거라 생각되는 시각, 그는 까탈스런 할멈의 주문으로 아궁이에 불을 떼고 있었고 난 문학 선생에게 발음을 지적 받고 있었다. 내가 대충 사과하자 놈도 대충 넘어가 주었다. 우리 사이는, 언제나처럼 그런 식으로 유야무야 유지되고 있었다. 추측컨데 녀석은 나를 동정하고 있었던 것 같다. 생각이 그곳에 닿으면 또 기분이 나빠졌다. 이유는 모르고. 그래서 난 또 그를 미워하는 쪽을 선택하고……. 관두자. 중요하지도 않은 얘기.

아무튼 그래서 그날 나는 집에 늦게 도착했다. 생쥐인간을 감싸준 댓가로 아이스바 두 개를 얻었고 하나는 아버지에게 줄 심산이었다. 대단한 미인이었다고 하는 어머니는, 그러나 나를 낳고 바로 죽어버렸기 때문에, 얼굴을 본 적이 없고, 그래서 그 때의 나는 묘하게 아버지의 인정이며 칭찬 따위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었다. 물론 아버지가 잘못된 방법으로 나를 양육했다는 뜻은 아니다. 그는 내게 자신이 내어줄 수 있는 모든 것 — 돈, 시간, 사랑, 그리고 그 외 많은 것들 — 을 내어 줬고 난 그 사실에 참으로 감사했다. 그 헌신 덕에 나는 살짝 삐뚤어진 사회 부적응자일지언정 어떻게든 사람 구실을 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면, 음, 아마 문을 두드렸던 것 같다. 아버지는 낮엔 집 문을 잠궈 두지 않았고, 나도 그 사실을 알았지만, 그냥 매일, 문을 두드렸다. 나는 아버지가 웃는 얼굴로 나를 반기러 나오는 게 좋았다. 게다가 내 손엔 나름의 깜짝 선물도 있었다. 여느 때처럼 아버지가 문을 열면, 내가 이것을 건네고……. 아버지가 눈을 크게 뜨면서 나를 본다. 키타로, 이건 어디에서……. 그럼 나는 오늘 있었던 일을 설명한다. 아버지는 내게 매일 같이 다른 사람을 도우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니 아버지는 아마 나를 칭찬할 것이다. 머리를 쓰다듬을 것이고, 부엌에 있다 나온 게 아니라면, 두 손을 내 겨드랑이에 끼우고 나를 안아들 것이다. 기특하구나. 기특해. 엄마가 안다면 널 자랑스러워 하셨을 거야. 그 다음엔 평소와 같은 일상. 같이 저녁을 먹고 같은 이부자리에 누워,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꿈을 꾼다. 그럴 것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나오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문을 열어주지도 않았다. 그래. 그것은 잠겨 있었다. 나는 아버지가 멀리 외출을 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다면 아침에 내게 열쇠를 주었어야 했는데, 뿐만 아니라 오늘은 미즈키 씨가 오지 않았다. 미즈키 씨는 아버지완 막역한 사이로 우리 집의 실질적인 가장 노릇을 해 주는 사람이다. 무슨 말인고, 하면 우리 아버지란 인간은 인격 자체엔 결함이 없으나 현실 감각이 영 떨어져 홀로 가계를 운영하려고 하면 어디선가 사기꾼이 나타나 바가지를 씌우려고 하거나 하여… 그 꼴을 그냥 보고는 못 사는 사람이라 사사건건 우리 집안 소비에 관여하고 도움을 주는 사람이 미즈키 씨다. 좀 우스운 말이지만 난 그 사람을 제 2의 아버지처럼 생각했다. 다른 아이들에게 어머니와 아버지가 있는 것처럼 내겐 아버지와 아버지가 있는 거다. 내 생각이 아주 틀린 건 아닌 모양인지 아버진 멀리 갈 일이 있으면 미즈키 씨에게 곧잘 집을 맡기곤 했다. 나를 그의 집으로 보내는 게 아니라 그를 우리 집으로 오게 하는 부분이 바로 둘의 신뢰 관계를 보여주는 대역이다. …또. 자꾸 말이 샌다. 곤란하다. 그 시절이 자꾸 이런저런 향수를 일으키는 탓이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잠깐 급한 일이 생겨 어딘가 갔다 돌아오는 길인 것이다, 나는 그렇게 결론 짓고서 현관 문 앞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아버지는 금방 올 것이다. 속으로 육십을 세면, 백을 세면, 삼백을 세면 올 것이다. 그러나 셈하는 숫자가 삼천이 되도록 그는 돌아오지 않았고,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이 다 녹아 옷과 손이 끈적끈적해졌다. 나는 표정을 찌푸렸다. 이래서야 칭찬은 커녕 혼이 나고 만다. 하지만 중요한 건 아버지가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는 거다.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아버지는 내게 저녁 주는 일은 잊지 않는단 말이다. 그리고……. 아. 눈을 감았던가. 문이 열리는 건 그로부터 한참 지난 후다. 나는 까무룩 잠이 들어 방금 일어난 참이었는데, 나를 깨운 것은 앳된 얼굴의 순경이었다. 얘 꼬마야. 너 이 집 아들이니?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 발소리 여러 개가 겹친다. 소란스럽다. 두통이 밀려온다. 내가 미간을 찌푸리자 경찰 몇 명이 더 다가와 내게 손전등을 들이밀었다. 그것이 싫어 고개를 푹 숙인다. 얘, 꼬마야. 봤니? 나는 고개를 내젓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바로 대답해선 안된단 생각이 들었다. 아무렴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다, 문 앞에 그어진 샛노란 폴리스 라인을 본다면……. 익은 벼와 비슷한 색임에도 불구 그것에선 유난히 불길한 기운이 느껴졌다. 얘, 꼬마야, 대답하렴, 봤니? 나는 다시 고개를 내젓는다. 그가 다시 되묻지 못하도록 되도록 강하게. 그러나 내 신호를 몰지각한 그들은 알아채지 못했고, 얘, 꼬마야, …그리고 익숙한 발소리. 미즈키 씨다. 막 퇴근한 모양인지 흐트러진 정장 차림을 하고 있었다. 광을 낸 구두로 잘도 여기까지 달려왔다.

제가 이 애 보호잡니다. 이 집에 무슨 일 있습니까?

순경은 그의 행색을 살피고, 방 안을 가만 바라보고, 내 생김새를 바라보다,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집주인과의 관계는?

친구입니다만,

아, 네, 그건 조사하면 나올 일이지요. 무미건조한 투였다. 별 건 아니에요. 직후 미즈키 씨는 내 귀를 막고 눈을 가렸다.

별 건 아니구요, 사람이 죽었어요.

그리고 나는 그제서야 봤다.

아마 이 집 주인인 것 같은데 아직 신원 파악이 덜 되서요.

아버지를 죽인 건 사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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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잠자는 조랑말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미즈치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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