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크주인유한] 조각글
아쿠네코 나크x주인♀️x유한
우연히 보게 되었다. 유한 씨와 주인님이 함께 서 있는 모습을.
저택에 있다 보면 그 분께서 다른 집사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는 모습 정도는 흔히 목격할 수 있었다. 그분은 저택의 모든 집사들의 안부를 일일이 물어보고 다닐 정도로 상냥한 분이니까. 그러나 평소와 달리 그 두 사람에게 시선이 꽂힐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주인님."
- 아마 유한 씨의 그윽한 눈동자 때문이겠지. 제 목에 겨우 닿을까 말까 하는 주인님이 사랑스러워 어쩔 줄 모르겠단 듯, 부드러운 그의 미소를 보고 있노라면 누구라도 알 수 있으리라. 그가 제 앞의 이를 주인으로서가 아닌, 여성으로서 흠모하고 있단 사실을.
주인님이 매력적인 분이란 사실은 진즉에 알고 있었다. 벌과 나비가 본능적으로 꽃을 쫓듯, 그 분께 끌릴 존재가 자신만이 아닐 거란 사실도. 하지만 막상 눈앞에서 목도하니 어쩐지 모래를 집어삼킨 듯 까슬까슬한 고통이 기도를 찌르는 기분이 들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자신을 눈치채지 못했는지, 유한은 성대에 꿀을 바른 듯 매끄러운 목소리로 주인에게 달콤히 속삭였다.
"신경 쓰지 마세요. 아마 그분들은 아름다운 주인님을 질투하는 게 틀림없을 테니까."
"그게 뭐야~"
여유롭게 받아넘기는 것처럼 보였지만, 암살자의 예리한 두 눈동자는 주인의 귀 끝이 붉게 물들었음을 놓치지 않았다. 손에 쥔 서류가 구겨진 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나크는 오도카니 선 채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오늘도 아름다우시네요, 주인님."
"하하, 나크도 여전하네."
분명히 하는 말은 유한 씨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텐데. 주인의 부드러운 구릿빛 머리칼 뒤로 보이는 것은 평소와 다름없이 하얗고 조막만 한 귀였다.
침묵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는나크를를 보며 주인은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평소의나크라면면 그리 말씀해 주시니 감개무량하다, 오늘도 주인님 덕분에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찬사를 한동안퍼부었을 텐데데.
"무슨 있어?"
"…. 그저 이렇게 아름다운 주인님과 느긋이 있을 수 있단 사실이 감사해서요."
"후후, 그래. 나도 나크와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아."
위화감은 착각이었나. 마치 대사를 읊는 극단의 배우처럼 간드러지게 말하나크를크를 보며 주인은 안심했다. 그녀가 다시 읽던 책으로 돌아가려던 찰나, 나크의 보드라운 입술이 열렸다.
"주인님, 저는 유한씨가 부럽습니다."
주인은 의아한 듯 고개를 기울였다. 나크가 유한을 부러워한다고? 한참 인생 선배인 그가 경험도, 실력도 분명 앞설 텐데.
"어떤 점에 있어서?"
"장황하게 말하지 않아도 자신의 감정을 상대에게 전달할 수 있는 호소력 짙은 표정이 부럽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표정을 숨기게 훈련되었기 때문일까요. 제게는 너무나도 힘든 일이라…. 미사여구를 붙이지 않으면 제 진심 중 어느 것도 상대에게 닿지 않을까 봐 걱정됩니다."
확실히 나크는 과장된 말투와 몸짓 탓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읽기 힘들었다. 그렇지만 그건 유한도 마찬가지 아니었나? 둘 다 늘 비밀스럽게 싱글싱글 웃고 있는 건 비슷한데.
하지만 나크가 말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어렴풋하게 알아차린 주인은 아아, 짦은 침음으로 동의했다. 유한의 말에는 무게가 있었다. 굵고 짧게 전해지는 진심이 가끔 숨 막힐 정도로 무거워서, 그와 말하다 보면 이따금 늪의 심연 아래로 끌어당겨지는 기분이 들었다.
반면 나크는 뭔가…. 너무 찬양을 남발하는 경향이 있지. 공기가 맑은 것도 주인님 덕분이라던가. 태양보다 찬란하다던가. 비현실적으로 과한 추임새 때문에 무거워야 할 것 같은 말도 가볍게 느껴지곤 했으니.
"가끔은 말에서 힘을 빼고 말하는 게 어떨까? 때론 단순한 표현이 더 잘 전달될 때도 있는 거니까."
그녀가 내민 타개책에, 나크는 싱긋 웃었다. 평소처럼 가볍게 미소 지으며.
"사모합니다."
그러나 뒤따라온 발언은 무겁게 그녀를 짓눌렀다. 항상 제게 여유롭게 호선을 그리며 휘어져 있던 그녀의 입꼬리가 굳었다. 제 얘기인 줄도 모르고 함께 열심히 고민해 주던 주인에게 기어코 진심이 담긴 고백을 뱉어버린 그는 집사의 자격조차 없으리라. 하지만 단 한 번도 그녀에게 닿지 않았던 나크의 진심을 마주한 그녀의 귀가 붉어진 것을 보며, 그는 자괴감보다는 묘한 희열을 느꼈다.
아아. 저도 그런 표정을 보고 싶었답니다, 주인님.
그리 속삭이며, 매끄러운 면장갑에 싸인 나크의 손이 그녀의 귀 뒤로 부드럽게 머리카락을 넘겼다.
* 밑의 결제선은 채널에 문제가 생기거나 사라지더라도 작품을 영구 소장하고 싶은 분들을 위해 만들어진 결제란입니다. 아래엔 아무것도 없습니다. 소장본의 금액은 글자수에 맞춰 책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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