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주인] 한여름 밤의 추억
2023 유한 생일 축전글
※ 해당 글은 공식 설정을 차용하지 않았습니다. 순전히 필자의 서사 날조로 이루어진 IF 2차 창작입니다.
※ 흰토끼 서커스 - 2부 후반부 사이의 시간대로, 유한이 악마 집사가 되기 전의 이야기 입니다. 한섭 유저도 즐길 수 있는 글을 작성하였으나, 일섭 유저라면 더욱 즐겁게 읽으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사람에 따라 성적으로 불쾌한 묘사 및 트리거 요소가 있을 수 있습니다. 유의해서 열람해주세요.
"오늘도 적당히 술이나 받아마시다 갈 생각이더냐, 유한."
청중을 압도하는 목소리에 유한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송구합니다, 후부키 님."
질끈 감은 눈과 90도로 굽혀진 그의 허리는 영락없이 사죄하는 이의 자세였으나, 그의 목소리에서는 굳은 결의가 느껴졌다. 후부키는 홍옥 같은 붉은 눈동자를 가늘게 뜨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재미없는 녀석 같으니라고."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유한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후부키의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다.
"사내로 태어나 계집 하나 안아보지 못해서 되겠느냐, 유한."
"괜찮습니다."
"네가 원한다면 홍등가의 천사도 줄 수 있건만."
그래도 관심 없느냐? 후부키는 그리 말하며 제 옆에 앉아있는 여인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머리털 끝부터 발끝까지 새하얀 여인은 붉은 눈을 가늘게 뜨며 후부키의 팔에 매달렸다.
"어머, 전 후부키님 밖에 없는데."
후가야마 홍등가의 천사. 본디 평범한 기녀였던 이 여인은 백색증이라는 희귀한 병에 걸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의 색이 빠지고 말았다. 천사를 닮은 듯한 모습 탓에 더 이상 변장 없이 나돌아다닐 수 없는 몸이 되었지만, 홍등가에서 그녀보다 자유로운 기녀는 없었다. 백색증을 앓고 다시 돌아왔을 때 그녀의 몸값은 그야말로 날아오르는 천사처럼 치솟았으니까. 천사를 닮은 듯한 그 외모가 사내의 정복욕을 부추긴다던가. 후부키의 말에 유한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진짜 천사와 목숨을 걸고 전선에서 대치해 봤더라면 저런 존재에게 욕정할 수 없을 텐데. 매일 같이 천사를 베어 넘기는 악마 집사들이 이 광경을 보았더라면 얼마나 가소로워했을까.
"... 잘 알지 못하는 상대와 쉬이 정을 트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면 차라리 다행이지. 네가 남색에 흥미 있단 소문이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
후부키의 모욕적인 언행에도 유한의 얼굴은 여전히 평온했다. 소년병 시절의 자신이라면 표정을 관리하지 못하거나, 그의 말에 감히 이의를 제기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후부키를 수년이나 섬긴 유한에게 이러한 처사를 참아내는 일은 이제 익숙했다.
최근 유한은 10년 가까이 몸을 담가온 사르디스의 군대에 회의를 느끼고 있었다. 때때로 알 수 없는 불합리함이 제 가슴 속에서 치미는 게 처음은 아니었지만, 최근엔 그보다 더욱 심하게 가슴이 울렁거리곤 했다. 그저 잠시 스쳐 지나가는 감정에 일을 그르칠까, 가슴 속의 울렁임이 심한 날이면 유한은 눈을 감고 자신이 소령으로 진급한 날을 떠올렸다. 기쁜 소식을 안고 고향으로 한 아름에 달려갔을 때, 부모와 친지들이 저를 어찌나 자랑스러워하던가. 그날 동네의 모든 남자는 발을 벗고 나서 잔치를 위한 멧돼지를 잡아 왔다.
아버지가 젊은 시절에 쓰던 검을 물려받던 순간엔 얼마나 가슴이 뛰었던지. 그건 외지인의 출입이 드문 산골짜기 고향에서 유한이 보물이라 부를 수 있는 몇 안 되는 물건이었다.
유한은 허리춤에 찬 아버지의 검을 매만졌다. 검에 박힌 크고 붉은 보석의 매끈한 감촉이 서늘하게 감돈다. 다시금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사르디스 군인으로서 동기를 되새긴 유한은 눈을 떴다. 그러나 비음으로 아양을 떠는 홍등가의 천사와 그녀에게서 술을 받아마시고 있는 제 주군을 보고 있으니, 구역질이 밀려온다.
아아, 지긋지긋하다.
"하아... 슬슬 천사 녀석도 질려가는구나."
후부키는 한탄했다. 애초에 흰 머리와 흰 피부를 갖기 전까진 그렇다 할 장점이 없는 여자였으니. 진작에 남자를 붙잡아 둘 끼가 있었더라면 천사 같은 용모를 갖기 전에도 제 귀에 소문이 들어왔을 터였다. 그저 하룻밤의 돈벌이로 만족했더라면 제 눈 밖에 나는 일도 없었을 텐데, 오냐오냐해 줄 때마다 계속 기어오르는 꼴이 요즘 따라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계집은 진심으로 이 후부키 사르디스의 애첩이 될 수 있을 거라 믿는 건가.
"슬슬 눈앞에서 치워버릴까 싶은데."
그렇다기엔 그녀를 대신할 만큼 마땅히 눈에 띄는 여인도 없고. 후부키의 말에 유한은 눈을 굴렸다. 자신은 이곳에서 내로라하는 미녀는 다 본 것 같은데. 그마저도 후부키의 성엔 차진 않는 모양이었다. 그릇이 크다 해야 할지, 아니면 탐욕스럽다 해야 할지. 유한은 후부키의 뒤에서 그저 조용히 그림자처럼 소리 없이 걸었다.
자박자박. 어두운 밤의 복도 건너편에서 누군가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기척을 감추고 다가오는 습격자는 아니었다. 필시 이곳에서 일하는 이 일 터. 복도의 창틀로 비치는 달빛 아래 모습을 드러낸 여인은 희고 고운 기모노를 입은 기녀들과 달리 수수한 삼베옷을 걸치고 있었다. 기방의 청소부들이 입는 옷이었다. 그녀는 제 앞의 손님에게 예를 차리려는 듯, 고개를 푹 숙인 채 조심스럽게 후부키의 옆을 지나쳤다.
아니, 지나치려 했다. 후부키가 그녀의 턱을 잡아채기 전까진.
우악스럽게 지나치려던 여인의 턱을 움켜쥔 후부키는 그녀의 얼굴을 감상하듯 찬찬히 뜯어봤다.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와 부드럽게 머리를 감싼 긴 갈색 생머리. 짙은 분을 바른 기녀들과 달리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은 마치 청조한 수련 같았다.
유한은 숨을 쉬는 것도 잊은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동료가 보았더라면 틀림없이 그가 그녀의 아름다움에 홀딱 반했을 것이라 착각했으리라. 허나 유한이 소스라치게 놀란 건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그녀는 유한이 매우 잘 알고 있는 이었다. 고작 얼마 전에도 마주치지 않았던가. 동쪽 대륙과 중앙대륙 그사이, 마을 사람들이 대량으로 사라지는 사건에서 -
악마 집사들과 동행해 왔던 그녀를.
그녀가 대체 왜 여기 있는 거지? 유한은 초조하게 손을 쥐락펴락했다. 상황은 좋지 않았다. 특히 갖고 놀던 장난감에 막 질려 새로운 장난감을 찾아다니던 후부키를 맞닥뜨렸다면 더더욱. 후부키의 압도적인 시선에 미약하게 떨리던 그녀의 눈동자가 시선을 피했지만, 후부키는 도리어 흥미롭다는 듯 피식 웃으면서 그녀의 턱을 잡아 제 눈앞으로 돌렸다.
"제법 귀엽게 생긴 아이군."
"후부키님, 그 아이는 기녀가 아닌 듯한데."
유한이 재빠르게 끼어들었지만, 후부키는 그저 가소롭다는 듯 웃을 뿐이었다.
"그 정도는 이 아이의 옷을 보면 안다. 척 보니 잡일꾼인 것 같군. 근데 아무렴 어떻냐. 내가 동쪽 대륙에서 안지 못할 여인이 있을 것 같더냐, 유한. 대답해보거라."
후부키의 말에, 유한은 주먹을 꽉 쥐었다.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그가 이 동쪽 대륙에서 안지 못할 여인은 없다. 설령 지아비가 있는 여인이라 할지라도. 차라리 악마 집사라도 근처에 있으면 좋았을 터인데. 유한은 재빠르게 주변을 살폈지만 복도에는 세 사람 이외엔 아무도 없었다. 평소 그녀의 곁에 딱 붙어있던 악마 집사들은 코빼기도 보이질 않았다.
'이대로 악마 집사들의 주인이 후부키에게 넘어가면 바스티앙과 로노를 볼 면목이 없다.'
유한은 눈을 꾹 감고 제 검 자루를 움켜쥐었다. 생각해. 생각해라, 유한. 무언가 협상할 거리는 없을까.
... 수단이라면 있었다. 리스크는 크지만, 도박에 걸어볼 만한 수단이.
"후부키 님, 제가 원한다면 홍등가의 천사도 줄 수 있다 하셨습니까."
악마 집사들 주인의 팔을 잡아채려던 후부키의 손이 허공에 멎었다. 호오, 흥미롭다는 듯 후부키의 시선이 유한에게로 돌아간다. 어둠 속에서 악마의 눈처럼 붉게 빛나는 후부키의 애꾸눈을 마주하며, 유한은 차분히 말을 이어 나갔다.
"오늘 밤, 제가 그 여인을 안고 싶습니다."
확률 낮은 도박이었다. 주군이 점찍으려 한 여인을 탐하다니, 후부키가 제 목을 치더라도 변명할 수 없으리라. 유한이 한가지 믿고 있는 것은 후부키 사르디스는 자존심이 강한 사내라는 점이었다. 그는 제가 입 밖으로 뱉은 말은 절대 철회하는 일이 없었으니.
"... 간이 크구나, 유한."
가시 돋친 말과 달리,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지 목소리만큼은 나긋했다.
"송구합니다."
"후후... 아끼는 부하에게 계집 하나 하사하는 것쯤이야 어렵지 않지. 내가 네 능력을 높이 사고 있단 사실에 감사해라."
후부키는 주인을 끌어당겨 유한에게로 밀쳤다. 유한의 너른 품에 악마 집사들의 주인이 날카로운 신음과 함께 내동댕이쳐졌다. 앙심으로 빛나는 그녀의 시선이 후부키를 향하려던 찰나, 유한은 재빨리 그녀의 눈을 가렸다. 괜히 심기를 거스르게 할 만한 것을 후부키에게 보여서 좋은 것이 없었으니.
좋은 밤 보내거라. 후부키는 그리 말하며 유한의 곁을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분수를 아는 개로 사는 법을 잊지 말아라, 유한."
후부키가 속삭이듯 흘린 말에 유한은 침을 꿀꺽 삼켰다.
"... 감사합니다, 후부키 님."
그리 말하는 유한의 목소리가 떨리는 것을 느끼며, 후부키는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를 짓곤 제 침소가 있는 방향으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유한과 주인은 그의 검은 머리와, 끝에 홍염처럼 타오르는 붉은 머리가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서 오도카니 서 있었다.
"죄송하지만, 그 아이에겐 접대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소령님의 입맛에 맞으실지…."
유한이 돌아오길 기다리며 그의 침소 앞을 지키던 기녀들은 말끝을 흐리며 악마 집사들의 주인을 힐끗 살폈다. 그 말에는 명백히 조롱의 의미가 담겨있었다. 유한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신경 쓰지 말아주십시오."
"뿐만 아니라 저희 기방에선 기녀 이외의 종업원을 함부로 침소에 들이는 것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여타 하급 기방들과 다른 곳이니까요, 이곳은."
"후부키 님께서 허락하셨습니다."
후부키. 유한의 입에서 그 이름이 나오자, 기녀들의 안색이 변했다. 기녀들은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자리를 떴다. 유한은 방 안쪽으로 그녀를 들였다.
우와, 방 진짜 넓다. 너 진짜 잘나가는구나. 주인은 감탄하며 유한을 올려다보았지만, 심각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유한과 맞닥뜨리자 어쩐지 더 이상 말이 나오질 않았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왠지 모르게 유한에게 사과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느껴졌다.
"하하... 유한, 밥은 먹었어?"
"자초지종부터 설명해 보십시오. 대체 왜 당신이 여기 있는지, 악마 집사들은 어디에 있는지."
어색하게 웃으며 화두를 돌리려는 악마 집사의 주인에게 유한은 거침없이 본론을 꺼내 들었다. 그렇게 악마 집사들의 주인에게서 듣게 된 이야기는- 동쪽의 한 기방에서 천사가 드나든다는 소문을 듣고 악마 집사들이 최근 조사에 착수했다는 내용이었다. 대체 제 주인을 두고 다들 어디를 갔나 싶었는데, 아마 다른 방에서 손님으로 위장한 채 접대받고 있었던 것 같다.
"사르디스에 도움을 요청하지 그러셨습니까."
"천사와 사르디스가 손을 잡았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었거든..."
"그것이 정말로 가능했으면 천사들 때문에 사르디스의 주민들이 사라지는 일도 없었겠지요. 애초에 그것들과 손을 잡는 게 가능합니까? 지능도 없는데."
유한이 던진 말에 주인은 그러게, 라는 대답과 함께 웃을 뿐이었다. 유한은 그 짧은 순간에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느꼈지만, 악마 집사들의 주인은 그에 대해 더 말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의구심은 남았지만, 유한에게 굳이 파고들 마음은 없었다. 악마 집사든, 그들의 주인이든, 허튼짓할 무리는 아니었으니.
"어쨌거나 안심했어. 천사라는 게 설마 백색증에 걸린 기녀였다니. 우린 내심 불안했거든. 천사라는 기녀에 대한 소문만 무성하고, 아무도 그 실체를 파악할 수는 없었으니까. 큰 권력이 비밀을 지키기 위해 움직이고 있냐는 아니냐는 추측이나, 이대로 철수하는 게 좋지 않냐는 얘기도 여러 번 나왔어."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홍등가의 천사는 동쪽 대륙의 유명 인사가 아닌 이상 절대 만날 수 없을 테니까. 정체를 숨기고 한낱 외지인으로 위장한 악마 집사들이 감히 홍등가의 여왕인 그녀를 알현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계획을 바꿔서 이곳의 직원으로 잠입하려 했지. 근데 이 여관은 잡일꾼과 힘쓰는 일도 전부 여성들만 뽑더라고... 그래서 내가 발 벗고 나서서 직원으로 들어온 거야."
그게 전부야. 진짜로. 뭐 딱히 사르디스에 이상한 짓을 하려고 온 건 아니니까... 후부키인가 그 사람한텐 비밀로 해주면 안 될까? 응? 그리 말하며 두 손을 모으고 제게 부탁하는 주인을, 유한은 묵묵히 내려다보았다.
"당신이 위험해질 수 있단 생각은 못 하셨습니까. 여긴 동쪽 대륙의 모든 권력자가 모이는 곳입니다. 조금 전처럼 허튼 인간과 엮이면 어쩌려고 그러셨습니까."
짧은 침묵 뒤에 온 건 유한의 훈계였다. 집사들과 어쩜 이렇게 똑같은 소릴 하는 건지. 그의 말에 멋쩍은 듯, 그녀는 제 목덜미를 쓸어올렸다.
"그렇지만 이것 말고는 다른 방법도 없었으니까. 집사들이 저렇게나 노력하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가만히 있겠어. 그리고 또, 집사들도 손님으로 같이 잠입해서 교대로 내 곁을 맴돌면서 지켜주고 있었으니까..."
당신이라는 사람은 정말... 그리 말하려다 유한은 입을 꾹 다물었다. 후부키가 과연 자신을 위해 몸소 현장에 뛰어드는 날이 올까. 아마 영원히 없겠지. 유한은 제 가슴을 짓누르던 회의감이 짙어지는 것을 느끼며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술을 제 잔에 따랐다. 평소에는 남이 주는 술 이외엔 마시는 일이 잘 없는데, 어쩐지 가슴이 답답해서 술을 식도에 들이부어야 할 것 같았다.
"... 악마집사들이 부럽네요. 당신 같은 자를 주군으로 두어서."
"하하, 그건 칭찬이야? 나야말로 후부키가 부러운걸. 유한 같은 멋진 부하가 있으니까."
"후후, 그런 말은 헤프게 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사내는 본디 단순한 생물이라 그런 말을 들으면 멋대로 함께하는 미래를 그려버릴지도 모르니까요."
"그 말대로면 유한은 지금 나와 함께하는 미래를 그렸다는 말일까."
그리 말하며 반달처럼 곱게 접힌 주인의 눈이 제 눈을 들여다본다. 어쩐지 가슴이 간질간질해지는 기분에 유한은 저도 모르게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 푸훗, 악마 집사의 주인이 웃음을 터뜨리는 소리가 테이블 건너편에서 들렸다.
참으로 사내의 호승심을 자극하는 도발이 아닌가. 유한도 이에 질세라 주인과 눈을 마주쳐 오며 요염하게 웃었다.
"어쩌다 당신이 이곳에 오게 된 건지 잊은 건가요. 아마 지금쯤 '즐겁게 지내고 있을' 저희를 배려해 이 침소 근처의 사람들은 전부 물러났겠죠."
유한의 상체가 테이블 위로 기울어진다. 그녀의 귀에 입술이 아슬아슬하게 닿을 듯 말 듯 한 거리에서, 유한은 나긋이 덧붙였다.
"저도 어엿한 사내인데 그만 자극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악마 집사들의 주인."
슬슬 한계입니다만. 주인의 뺨이 잘 익은 복숭아처럼 달아올랐다. 아아, 방금 그건 조금 지나쳤나. 악마 집사들의 주인에게 농담이라는 말을 덧붙이려는 찰나 -
"유한은 그렇게 사람을 함부로 대할 남자로는 안 보이는걸."
그리 말하며 손가락으로 갈색 머리를 배배 꼬는 악마 집사들의 주인과 눈이 마주쳤다. 아까 가슴께에서 간질거리던 감각이 죄여 들어가는 듯한 감각으로 번져간다. 얼굴이 홧홧하는 건 술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일까.
실은 어렴풋이 그 감정의 이름을 알 것 같단 생각이 들었지만, 유한은 들추지 않고 묻기로 했다. 그야 함께 할 수 없는 사람에게 미련을 품는 것만큼 잔인한 일은 없을 테니.
'... 당신이 악마 집사들의 주인이 아니라면 좋았을 텐데.'
유한은 못다 한 말을 삼키며 조용히 그녀의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주곤 떨어졌다. 제가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갔을 땐, 언제 미련을 내비쳤냐는 듯 이미 교묘히 잘 만들어진 미소가 얼굴에 덧씌워져 있었다.
"좋게 봐주셔서 영광이군요."
그의 매끄러운 목소리는 감쪽같이 그의 심장 고동 소리를 감춘다. 그날 품었던 마음을 주인에게 직접 고백하게 될 날이 그리 멀지 않았단 사실을 알지 못한 채, 후가야마에서 두 사람의 밤은 그렇게 깊어져 갔다.
* 밑의 결제선은 채널에 문제가 생기거나 사라지더라도 작품을 영구 소장하고 싶은 분들을 위해 만들어진 결제란입니다. 아래엔 아무것도 없습니다. 소장본의 금액은 글자수에 맞춰 책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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