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ain in New York 15
총과 칼 (7)
* 모바일로 접속시 새로고침을 한 번 해주시고 감상 부탁드립니다 (문단이 중간중간 통째로 사라지는 오류가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치치는 토니가 아주 의심스러웠다. 그는 알면 알수록 수상할 정도로 순진하고 착해빠진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이 라스베이거스에 온다면 반나절도 안 되어 전 재산을 잃고 길거리에 나앉을 게 뻔했다. 그리고 구걸해서 얻은 빵을 길고양이들과 나눠서 먹겠지. 하지만 치치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 오히려 타인의 모든 수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토니는 날씨에 따라 책의 배치를 바꾸었고 때에 따라 틀어놓을 플레이리스트도 만들어두었다. 그는 로베르토와도 빠르게 친해졌고 가끔 오는 롸코와도 말을 텄다. 사람이 사람에게 착하게 굴 수 있는 이유는 그 사람이 무슨 짓을 하든 다 받아줄 준비가 되었거나, 혹은 그 사람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거나, 아무것도 모를 때뿐이었으므로, 치치는 토니의 물음에 아니라고 말을 돌릴 수가 없었다. 그는 치치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으니까.
“요즘 써니보이가 안 오던데.”
토니는 단순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이 나이대 애들의 고민이라고는 학업과 교우관계, 그리고 가족밖에는 없을 테니까. 설마 이 앞에 있는 애가 삼십 년을 살다가 비행기에서 죽어서 열여섯으로 돌아왔을 거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었다. 그가 아는 것은 보체티라는 성뿐이고, 그 이름이 붙어서 시행되는 온갖 사업과 기사들뿐일 테니까.
정말로, 치치의 앞에서 써니보이의 이야기를 대놓고 꺼낼 수 있는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도 동생이 있거든. 써니보이는 걔를 닮았어.”
치치는 토니를 힐끗 보았다. 관대하게 보더라도 토니가 써니보이를 닮은 구석은 하나도 없었다. 물론 그의 동생은 닮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도 치치와 써니보이 같은 형제일까? 그래서 지금 이렇게 말하는 것일까? 이 모든 질문을 꾹꾹 눌러두고 치치는 말했다.
“걔가 너무 바빠요.”
“우리도 그래.”
가업-책방-을 잇지 않고 워싱턴으로 가 지금은 공무원으로 일한다는 동생은 새해에만 안부를 짧게 주고받을 뿐, 그 외에는 남이나 다름없다는 이야기를 토니는 줄줄 늘어놓았다. 치치는 어렵지 않게 알아차렸다. 그는 지금 후회하고 있는 것이다. 돌아가면 그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치치에게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너에게는 기회가 있다. 물론 그는 알고 있었다. 이 삶 자체가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받은 기회라는 걸.
“귀찮아할걸요.”
치치 보체티는 기회를 얻었다. 모든 것을 올바른 방향으로 되돌릴 기회. 몇몇 이들에게는 이미 실패했는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제일 중요한 사람이 남았다. 써니보이의 인생에서 빠져주기 위해 가까워져야 한다는 것은 매일 아침 해장술을 퍼마시던 파울로만큼이나 모순적이었지만 어쩌겠는가. 그리고 열 받는 건 그게 꽤나 효과적이라는 것이었다.
“말하기 전에는 아무도 모르지.”
이전에도 자신의 삶에 그가 있었으면 많은 게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너무 단순하네요.” 치치는 그러니 일찍 들어가 봐도 된다는 토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가족은 원래 단순한 거야.”
*
“일찍 오셨네요.”
롸코가 반가운 기색을 내비치며 그를 맞았다. “써니보이는? 사격 연습?” 롸코가 그렇다고 답했다. 치치는 주저 없이 그곳으로 향했다. 사격장으로 갈수록 주변은 조용해졌다. 간헐적으로 총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도 발걸음 소리를 들킬까 소리를 죽였다. 아니, 왜 숨는 거야? 애초에 들키려고 찾아온 건데.
치치는 최대한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써니보이가 눈치챌 때까지 서 있을 참이었다. 그동안 할 말을 정리해야지, 왜 왔냐고 물어보면…… 그냥. 그냥이라고 답해야지. 오랜만에 총이나 쏴보려고 왔다? 퍽이나 그렇다고 하겠다. 멀끔한 뒷모습이 바로 눈에 들어왔다. 탕, 소리가 들릴 때마다 어깨만이 조금씩 흔들릴 뿐 굳건했다. 저 드레스 셔츠에 평생 주름 하나 가지 않을 것 같았다. 어떻게 그렇게 평생을 살 수 있는 거야? 너무 단단해 두드려볼 엄두도 나지 않는 큰 문을 마주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냥 두드리면 되잖아, 문이라고! 써니보이가 빈 탄창을 떨어뜨리고 새 탄창을 권총에 집어넣었다. 그래, 딱 일곱 발, 일곱 발만 쏘고 말해야지.
한 발 한 발 쏠 때마다 치치는 불을 앞에 둔 폭탄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냥 두드리면 되잖아, 문은 두드리면 열리는데. 탕. 이제 한 발이 남았다. 써니보이는 숨을 고르는 듯했다. 한 발, 한 발 남았다. 딱 한 발이면 된다. 그러면 되는데.
“써니보이.”
치치는 저도 모르게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수납장 뒤에 숨었다. 파파? 써니보이의 곁에 언제 온 건지 루치아노가 있었다. 어디서 오신 거지? 처음부터 여기 계셨던 건가? 써니보이가 귀마개를 벗는 것이 보였다. 또 숨었다. 미쳤나, 대체 왜? 그러나 숨은 이상 들키면 끝장이다. 들키는 순간 그는 당장 짐을 싸서 라스베이거스로 날아가 콜롬비아 형제를 찾아야 할지도 몰랐다. 그는 커지기 시작한 심장 박동-숨소리인가? 둘을 구분할 수 없었다-을 진정시키기 위해 주먹을 꽉 쥐었다. 그들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파파.”
루치아노는 과녁을 힐끗 돌아보는 것 같았다. 써니보이는 치치를 등지고 있었다. 덕분에 치치는 루치아노의 표정을 정면에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건, 치치에게 익숙한 것과 많이 다르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감정을 억누른 얼굴. 나는 네게서 아주 많은 것을 기대했으며, 따라서 실망했다는 얼굴. 써니보이의 자리에 치치를 둔다면 그건 이상할 것이 없는 그림이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건 써니보이가 아닌가?
그는 언제나 써니보이에게 다정한 사람이었다. 적어도 치치와 비교하자면 그랬다. 써니보이의 앞에서 치치가 혼날망정 치치의 앞에서 써니보이가 혼나는 일은 없었다. 칭찬을 받았으면 모를까. 게다가 루치아노는 종종 보이는 웃음마저도 치치에게는 허락하지 않았다.
“목도리를 하지 않았구나.”
목도리? 추워지기는 했지만 아직 목도리를 할 날씨는 아니다. 게다가 써니보이는 살이 벌겋게 얼어붙는 한겨울에도 목도리는 잘 하지 않았다. 근데 뭔 뜬금없이 목도리를? “죄송합니다.” 대화가 이상했다. 왜 사과를 하는지 알 수도 없었다. 써니보이는 약간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루치아노는 그런 써니보이를 말없이 보다가, 과녁을 한번 보고 말했다.
“끝나고 내 방으로 와라.”
루치아노는 그가 들어온 듯한 문으로 돌아나갔다. 치치는 그때까지 자신의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그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아졌다. 짧게 고개를 끄덕인 써니보이는 미동도 없이 서 있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비로소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정확히는, 그 손에 들린 총을 바라보았다. 딱 한 발이 남은 총을.
*
다 엎어. 처음부터, 다시 써.
*
써니보이는 복도 한가운데에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린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치치는 자신이 놓친 것들을 전부 기억하지는 못했다. 그가 모든 것을 바꿀 수 없다고 인정한 것처럼. 하지만 그가 이걸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다. 써니보이의 일거수일투족을 꿰고 있던 그가 이것을 몰랐을 리가 없다.
라스베이거스에서도 그는 이런 사람을 봤었다. 모두가 그 사람이 술에 취해서 기억을 못 한다고 말했지만 치치는 그것이 술에 취한 자의 표정이 아님을 알았다. 무엇보다 그는 눈앞에서 카드를 뺏어갔을 때 가만히 있을 사람이 아니었다.
플로렌스가 일어날 일들은 일어난다고 말했을 때 아니라고 해야 했다. 그건 운명 같은 게 아니라 바꿀 기회를 놓쳐버린 것에 불과하다고. 그가 놓치지 않았다면 모든 게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 너는 내가 빌려준 책을 기억하지 못할 사람이 아닌데.
“야.”
써니보이가 치치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눈동자가 텅 비어있어서, 치치는 순간 써니보이를 향해 뻗을 뻔한 손에 힘을 꽉 쥐었다. 갑작스러운 접촉은 좋지 않았지만, 먼저 말을 거는 건 괜찮았다. 심지어 써니보이가 먼저 말을 걸 때도 있었다. 그날에도 그랬던 것처럼. “치치.” 문제는 하나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거겠지만.
“들어가서 자.”
천천히 치치가 힘을 풀고 손을 내밀었다. 먼저 손을 잡게 하는 것 역시 괜찮았다. 써니보이는 고분고분 손을 올리고 이끄는 대로 걷기 시작했다. 맞잡은 손에는 힘이 없었지만 따뜻한 건 그대로였다.
그날 써니보이는 끝내 마지막 한 발을 쏘지 않았다. 치치는 그것을 핑계 삼아 써니보이가 사격장을 나갈 때까지 입을 틀어막고 숨어있었다. 대신 그는 조용히 그의 뒤를 밟았다. 언젠가 써니보이가 그랬듯이. 이번에는 치치 차례였다. 뭐, 굳이 밟지 않아도 갈 곳은 뻔했다. 루치아노의 서재가 아니면 써니보이의 방이겠지. 써니보이는 좀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루치아노의 서재였다. 치치는 가만히 문 틈새로 귀를 가져다 댔다. 써니보이는 굳이 이럴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루치아노는 웬만하면 치치에게는 큰 소리로 이야기했으므로.
그러나 정말로 둘이 들어갔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설마 그 방으로 들어갔나? 루치아노의 서재에는 비밀 공간이 있었다. 외부로 나갈 수 있는 문으로 이어져 있는 숨겨진 공간. 치치는 그곳에 딱 두 번 들어갔었다.
써니보이가 함께 산 지 얼마 안 된 날이었는데, 여느 때와 다름없이 치치는 혼났고 그날따라 조금 많이 울었다. 파파는 써니보이만 사랑하시는 거 같아. 치치는 이런 것까지 전부 기억나는 자신이 꼴사납게 느껴졌다. 아무튼 치치는 역시 그 모습을 들켜버렸고, 무슨 치기였는지 속마음을 그대로 말해버렸다. 아니, 그렇게 말했다.
파파는 써니보이만 사랑하고, 왜 쟤를 길에서 주워 온 거예요?
루치아노는 그 자리에서 치치를 혼내는 대신 낮은 목소리로 본인을 따라오라고 했었지. 그러다가 서재 안쪽 비밀 공간까지 들어간 것이었다. 치치는 겁을 먹었다. 창 하나 없는 어둡고 좁은 조용한 방. 루치아노는 등을 돌려 화를 참는 듯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끝났다. 치치의 본능이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루치아노가 주먹을 꽉 쥔 손이 세상 그 무엇보다 커 보였다. 눈물을 멈춰야 하는데, 파파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눈물이라는 걸 아는 데도 치치는 그저 그 상태로 굳어서 눈물만 계속 흘렸다. 분명 소리를 지르시겠지, 실망하셨을 거야……. 루치아노가 뒤를 도는 순간 눈을 꼭 감았다. 눈물은 삐질삐질 틈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루치아노가 치치를 품에 안은 건 그때였다. 큰 소리를 막아서려 치치가 몸을 웅크린 그 순간.
루치아노는 다정하게 치치의 등을 쓸어주며 말했다. 저번에 갖고 싶다던 장난감을 사주마. 치치는 소리 내 울기 시작했고, 루치아노는 그 눈물을 닦아주는 대신 그칠 때까지 가만가만 등을 도닥이며 기다려주었다. 그때, 파파의 표정이 어땠더라? 기억이 나지 않았다. 서로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문 너머는 여전히 조용했다. 치치는 방으로 뻗었던 손을 뒤로 물렸다. 어쩌면 루치아노는 그때 사실을 밝히려고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온갖 비밀이 겹겹이 둘러싸인 곳에서 아홉 살의 그에게 모든 걸 말하려고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정작 이곳이 바깥으로 연결된다는 사실은 죽을 때까지 말하지 않고서는. 그는 감비노 패밀리가 피의 복수를 선언한 직후, 롸코가 일러준 대로 이곳을 통해 바깥으로 도망치면서 그날을 떠올렸다. 부드러웠던 코트, 등을 두드리던 큰 손…….
그날 밤부터 치치는 방 앞 복도에 서 있는 써니보이를 보았다.
치치는 묻고 싶었다. 우리의 파파는 뭘 숨기고 계신 걸까? 치치도 알고 있는 비밀은 아닌 것 같았다. 그것이라면 써니보이에게 그럴 이유가 없었다. 루치아노는 써니보이에게는 언제나 다정했고 상냥한 아버지였다. 최소한 그가 기억하기로는.
어느새 써니보이의 방 앞이었다. 치치는 멈춰서 써니보이를 돌아보았다. 써니보이가 나른한 목소리로, 그러나 또렷하게 말했다. 그는 매일 치치에게 묻고 있었다.
“무슨 일 있어?”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치치가 물어보고 싶은 것이었다.
“없어.”
써니보이 역시 이렇게 대답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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