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ain in New York

Villain in New York 11

총과 칼 (3)

Words Fail by 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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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바일로 접속시 새로고침을 한 번 해주시고 감상 부탁드립니다 (문단이 중간중간 통째로 사라지는 오류가 있습니다)


치치는 이 떨고 있는 서점 주인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대충 알 것도 같았다. 서점 대쉬우드의 주인 안토니오 “토니”는 분명히 자신을 알아본 눈치였다. 서점에 올 때마다 책을 살까말까 망설였던 소년이 그 보체티의 도련님이라니, 마피아가 책을 왜? …… 대충 이런 생각을 하고 있겠지. 확실히 마피아가 건드릴만한 사업은 아니다. 물론 못 건드릴 건 없지만, 수지가 전혀 맞지 않기 때문에 고려조차 하지 않는 게 대부분이었다. 물론 이 이야기까지는, 저 표정을 보아하니 말하지 않는 게 더 나을 듯했다. 루치아노가 정말로 함께 왔다면 진짜로 기절했을지도 모른다. 치치의 서재를 가득 채울 책을 주문받은 날부터 배달한 그날까지 자신의 신변을 하나씩 정리했다고 한다. 떨리는 목소리로 큰 길가에 있는 서점을 추천해주기까지 했다니, 치치는 그가 느꼈을 위협을 충분히 알 것도 같았다. 그렇기에 치치는 되도록이면 혼자 가려고 했으나, 어쩔 수 없이 로베르토를 데리고 나왔다. 토니는 비교적 서글서글한 인상인 로베르토를 보고도 긴장한 것 같았으나, 어차피 그를 보내버릴 것이기 때문에 상관없었다.

인사 이후로 반응이 없는 토니를 향해 치치는 방긋 웃어 보이고, 의욕에 불타 그의 뒤쪽에 딱 붙어있는 로베르토에게 손짓해 귀를 가까이하게 했다.

“저번에 부탁한 거, 지금 찾아와 줘.”

치치는 루치아노 모르게 한 가지 일을 더 할 작정이었다. 바로 친부모를 찾는 일이었다. 정확히는 그의 진짜 이름을 찾는 일이었다. 그의 친부모는 써니보이의 기억이 시작되기도 전에 죽었으니, 그들을 찾는 방법은 병원의 기록을 뒤져보는 일밖에 없었다. 물론 그가 직접 뒤져볼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루치아노의 귀에 들어가는 건 시간문제다. 그가 알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치치는 자신의 곁에 있기로 한 이 어린 솔져를 이용하기로 했다. 그가 알기로는 개인 임무는 이것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치치는 첫 임무를 맡았을 때의 설렘이 주는 열정을 알고 있었다. 비록 본인은 그 열정 때문에 임무를 망쳤지만, 이 어린 솔져는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해낼 것이다. 불안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롸코가 계속 데리고 다니고 있는 것을 보면 기대 이상은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조용히.”

비밀이라는 말이 붙으면 모든 것이 매력적으로 변한다. 로베르토는 조금 상기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토니에게도 공손하게 고개를 숙인 다음 바깥으로 사라졌다. 토니가 한숨을 내쉬는 걸 치치는 모른 척해주었다.

로베르토가 떠나자 치치는 곧바로 자신을 편하게 불러달라고 했고, 토니는 그 한마디에 경계를 푼 것 같았다. 치치가 애써 무해한 미소를 지어 보이려 했던 노력이 헛된 것은 아니게 되었다. 그가 치치를 서점의 안쪽으로 이끌었다.

서점은 저택에 있는 서재와 겉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았음에도 단지 주인의 손길이 곳곳에 닿았다는 이유만으로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대쉬우드라는 이름답게 전체적으로 포근한 분위기였지만 묘하게 거슬리는 점이 특히 그랬다. 누가 봐도 제인 오스틴이잖아. 이 서점이 구석에 자리 잡은 이유도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리틀 이태리 구석에 자리 잡은 19세기 영국. 사람들은 아닌 척해도 사랑 이야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이곳에선 그 누구도 그것을 함부로 드러내지 않았다. 사랑은 약점이 되기 쉽다. 이곳에서는 아닌 것 같았지만.

“물어볼 게 있니?”

한 바퀴를 돌고 난 후, 토니가 차분한 목소리로 운을 뗐다. 그가 조금 전까지 흥분한 목소리로 <두 도시 이야기>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놓은 사람이었다는 걸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누구나 좋아하는 게 있잖아? 갑자기 왜 스티비가 떠올랐는지 치치는 알 수 없었다. 그 새벽에 스티비는 대본을 고치면서 치치에게 좋아하는 게 있냐고 물었고, 치치는 고민도 않고 없다고 답했다. 이미 다 들켜버린 판에 그 말이 의미가 없는 걸 알면서도 그랬다. 이건 치치의 오래된 습관이었으니까.

“책을 정말 좋아하시나 봐요.”

적절한 질문은 아니라고 치치는 생각했다. 칭찬으로 바꿔서 들어도 마찬가지였다. 서점 주인에게 책을 좋아하냐고 묻는다니? 물론 모든 사람이 자신의 직업을 좋아하는 건 아니겠지만, 당장 자신만 봐도 그랬지만. 이 오래되고 빛바랜 서점에 보낼 수 있는 찬사가 고작 이것뿐이라는 사실이 치치는 조금 괴로웠다. 겨우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라는 사실이. 토니가 자신의 시선을 피하고 있는 마피아 패밀리의 도련님을 바라보면서 방긋 웃었다. 그럼.

“이건 책을 좋아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인 걸.”

토니는 그에게 문학 부분을 맡기기로 했다. 다음 출근일부터 그는 책의 재고와 배치 등을 전반적으로 관리하게 될 것이다. 좋아하지 않으면 할 수 없지. 치치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붉어진 것을 토니는 놓치지 않았지만, 이 예민한 사춘기 소년을 위해 모른 척해주었다. 젠장, 젠장. 치치 역시 그 사실을 알아차렸다.

 

*

 

대쉬우드를 나와 치치는 산타 루치아 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로베르토와는 산타 루치아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들과 그들이 오가는 상점들, 그리고 치치가 가져본 적 없었던 한낮의 시간들이 이곳에 있었다. 치치는 괜히 어색해졌다. 그는 언제나 이곳에서 누군가에게 쫓기거나, 누군가를 뒤쫓기만 했었다. 모두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치치가 수상할 정도로 눈치를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고 있었다. 그는 이제 계속 이 거리를 걷게 될 것이다.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이 그러하듯, 한낮의 일원이 되어.

확실히 산타 루치아에 가까워질수록 인적은 드물어졌다. 저녁이 다 되어가는 오후인데도 그랬다. 길은 좀 더 좁아졌고, 건물들은 빽빽해졌으며 골목 사이로 스며드는 빛도 줄어들었다. 멀찍이 군데군데 불이 켜져 있는 산타 루치아가 보였다. 로베르토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치치는 문득 멈춰서서, 오른쪽에 보이는 골목을 바라보았다. 길 건너 아폴로니아 바, 라고 했지. 아직 해가 떠 있으니 바는 열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곧바로 걸음을 옮겼다. 언제나 뒷문은 열려있는 법이다.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골목은 생각했던 것보다 어두워졌다. 간간이 들리던 소리도 완전히 멎자 이곳에는 오로지 치치 혼자만 남았다.

감비노 놈들이 날 쫓아와.

잠깐, 뭐라고? 반사적으로 치치가 허리춤을 더듬었다. 총, 총이 없었다. 총이 없어, 날 죽이러 오는데, 총이 없어. 치치는 벽을 짚었다. 날 죽일 거야. 아니, 아니야. 그는 한 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날 그랬던 것처럼, 벽을 짚으며 달렸다. 나는 괜찮아,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야!”

단말마의 비명이 들렸다. 넘어진다, 생각했지만 넘어지지 않았다. 그와 부딪힌 건 작은 아이였다. 아이는 나동그라져 있었다. 눈앞이 흐렸다. 치치가 이마를 짚으면서 말했다.

“미안, 미안해.”

넘어진 아이는 놀란 듯 보였다. 치치는 숨을 몰아쉬며 손을 내밀었다. 아이는 머뭇거리다 그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스티비?” 그가 문득 중얼거렸다. 아이는 잠깐 멈칫했지만 대답하지 않고 치치를 지나치려고 했다. 잠깐, 잠깐만. 여기가 어디지?

“아폴로니아.”

얇고 앳된 목소리가 귀에 꽂혀왔다. 내가 방금 뭐라고 했지? 그 생각을 하기도 전에 아폴로니아라는 단어가 들어왔다. 주변을 둘러보니 확실히 뭔가 많이 있었다. 어쨌든 제대로 찾아온 거 같긴 했다. 아이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걸음을 옮겼다. 치치는 다급해졌다.

“얘, 얘.”

아이가 흠칫 놀란 티를 숨기지 못하고 멈춰 섰다.

“너 저기서 일해?”

아이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얼굴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치치는 흐릿한 초점을 맞춰보려고 노력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모자를 다시 한번 누르며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고 바로 가장 가까운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름, 이라고 묻기도 전이었다. 치치는 발로 차면 바로 부서질 것 같은 낡은 문을 바라보다가 빛이 비쳐오는 방향을 향하여 걸어 나갔다. 일단 여기를 벗어나고 싶었다.

 

 

*

 

 

인기척이 완전히 사라지자 낡은 문이 슬쩍 열렸다. 아이는 고개만 빼꼼 내밀고 치치가 향한 쪽을 쏘아보듯 바라보았다. 아이가 한참을 그러고 있자 뒤에서 누군가가 달려오며 소리쳤다.

“로잘린!”

“오스카!”

쉬잇, 하고 로잘린이 거의 입을 막을 것처럼 손가락을 갖다 댔다. “너 정말 괜찮은 거 맞아? 내가 잡아 올까?” “그냥 조용히 있어.” 단호한 태도에 오스카는 툴툴대더니 이내 자리를 떴다.

로잘린은 오스카가 떠난 후에도 계속 골목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치치 보체티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 것 같았다. 약해빠진 놈이라고? 로잘린은 틈만 나면 그의 욕을 하던 제 오빠를 떠올리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저건 약한 게 아니다. 단순히 약하다고만 결론지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뭔가가 있다. 분명히 뭔가가 있었다. 지난번 파티에서도 그랬으니까.

산타 루치아 개관식 파티는, 파브리치오가 이야기를 듣고 지은 표정만 아니었어도 안 갈 생각이었다. 로잘린은 제 오빠가 그딴 표정을 지으면 반드시 무슨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았고, 그 일로 파파의 심기가 무조건 불편해질 것이리라는 것도 진작 깨달은 지 오래였다. 오빠를 감시하는 건 항상 제 몫이다. 그는 모든 일을 귀찮게 만드는 경향이 있었다. 아폴로니아로 다시 가려면 파파의 기분을 잘 살펴야 했다. 적어도 수요일에는 무조건 나가야 했다. 대문을 통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파티는 뻔했다. 슬쩍 무리에서 떨어져나온 로잘린은 최대한 그들과 멀리 떨어진 곳으로 움직였다. 재미없어. 파티 내내 재미없는 남자애들이나 만나고 다닐 테지. 다행히 테이블은 로잘린의 몸을 가리기에는 충분했다. 그는 타르트를 하나 입에 물고서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오빠랑 같이 있기는 싫었지만, 어쨌든 그가 혼자 있다면 잽싸게 달려갈 생각이었다. 테이블과 그 주변 사람들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로잘린은 한숨을 내쉬고 사탕을 하나 입에 넣고 계단으로 향했다.

파더 감비노를 찾는 건 쉬웠다. 그가 항상 하고 다니는 스카프만 찾으면 된다. 다행히 파브리치오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오히려 그가 로잘린을 찾는 것 같았다. 로잘린은 아무 말도 않고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눈이 마주치고 제게 달려오려는 오빠를 제지하는 파파의 모습을 보면서 손이나 흔들어주었다. 분개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로잘린은 계속 이곳에서 사람들이나 구경-사실은 파브리치오를 감시하는 거에 가까웠지만-하기로 결심했다. 앉을 곳을 찾기 위해 몸을 돌리려는 찰나, 로잘린은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리차드?”

로잘린이 중얼거렸다. 아니, 그가 여기에 있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리차드는 저렇게 시린 눈을 가지지도 않았다. 그는 로잘린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로잘린은 저도 모르게 뒤로 한걸음 물러났다. 써니보이 보체티. 써니보이가 그 모습을 보더니 고개를 돌렸다. 치치 보체티랑 정반대라더니, 정말이네. 로잘린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고, 괜히 분해져 그의 노란 정수리만 쏘아보았다. 그는 로잘린에게서 시선을 뗀 이후로 줄곧 한 곳만 바라보고 있었다. 구석에 서 있는 치치 보체티였다. 그는 안색이 좋지 않아 보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새하얗게 질린 채로 뒤쪽으로 뛰어나갔다.

써니보이 보체티의 안색도 그와 비슷해졌다. 그는 망설이는 것 같았다. 누군가 뒤를 조금만 밀어준다면 그대로 달려갈 수 있을 것처럼 보였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곧바로 어떤 금발의 소녀가 치치의 뒤를 쫓아 나갔다. 써니보이는 그 모습을 모두 지켜보다가 짧게 한숨 같은 걸 내쉬었다. 로잘린은 의아했다. 분명 둘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니라고 들었었는데? 하지만 그건 누가 봐도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로잘린은 파브리치오를 감시하겠다는 본연의 목적도 잊어버리고 내내 써니보이만을 바라보았다. 단지 아폴로니아의 키드쇼 스타를 닮아서만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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