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ain in New York

Villain in New York 16

총과 칼 (8)

Words Fail by 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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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바일로 접속시 새로고침을 한 번 해주시고 감상 부탁드립니다 (문단이 중간중간 통째로 사라지는 오류가 있습니다)


이래도 되나? 치치는 뒤를 돌아보고 싶은 충동을 누르면서 생각했다. 분명히 롸코나 로베르토 둘 중 한 명은 따라오고 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안색이 파리해지는 롸코에게 미안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그가 치치에게 하는 행동-루치아노의 지시였겠지만-들을 보고 있자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치치가 써니보이를 찾아가면 롸코는 그를 막았다. 다시 써니보이랑 사격 연습을 시작하자 곤란한 기색을 감추지도 않았다. 써니보이의 일과를 꼬치꼬치 캐물었을 때는 치치가 기억하는 모습-선글라스를 끼고 무표정한-으로 대답해주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히 친하게 지내라고 한 건 루치아노가 아니었던가? 비록 그것이 아홉 살에게 해주는 당부였다고 하더라도, 치치가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내뱉은 이상 형제 사이는 좋은 것이 이득이다. 보이는 것만이라 할지라도.

설마 루치아노는 아직도 치치가 써니보이를 질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제일 그럴듯한 가정이었다. 써니보이가 똑똑해지는 게 싫어서, 잘나가는 게 싫어서, 갑자기 후계자 자리가 탐나서, 뭐 그 외 등등의 사유로 그의 수업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 그렇게 생각하게 놔두는 편이 나중에 변명하기도 쉬울 것이다. 물론 반쯤은 맞을지도 모른다. 그는 써니보이가 순식간에 온갖 것들을 말 그대로 흡수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 세상에서 너는 어떻게 될까. 이번에도 너는 상원의원이 될까.

입술을 꾹꾹 누르며 치치는 저와 보폭을 맞춰 걷고 있는 써니보이를 훔쳐보았다. 즐거워 보이진 않았다. 본인의 표정도 별다를 건 없을 것이다. 옷차림만 아니었으면 둘 다 소매치기로 몰려 곤욕을 치르고 있을 게 분명했다. 아무리 그래도 냅다 방에 쳐들어가 빼내 온 건 자신인데 왜 지가 더 눈치를 보고 있는지 모르겠다. 치치는 계속 옆모습을 흘겨보다가, 그대로 써니보이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황급히 시선을 앞으로 돌리며 계속 신경 쓰였던 걸 내뱉었다.

“목도리하고 왔네.”

“응.”

“그때 니가 하고 온 거랑 비슷한데.” 치치는 이게 제발 투정 같은 걸로 들렸으면 했다. “파파가 주셨어.” 써니보이가 목도리를 만지작거렸다. “기억해?”

“대충.”

역시나, 저게 파파가 말한 그 ‘목도리’겠지. 치치는 자신의 추측이 맞아떨어졌다는 사실이 씁쓸했다. 전형적인 마피아의 방식이다. 하지만 써니보이는 굳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알고 있을 게 분명하다. 친아들이 멀쩡하게 살아있는 상황에서 후계자가 된 양아들. 치치가 다시 사격 연습을 시작하자 패밀리 내부에서 약간의 동요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후계자 자리를 내어준 것도 그냥 도련님의 변덕이 아니었을까요? 그놈의 피. 그렇게 따지면 이 자리는 당연히 써니보이의 자리다. 치치는 차라리 정말로 십 대의 자신을 연기할까도 생각했다. 아예 못났으면 동요가 일어나지도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그는 책을 읽는 제 맞은편에 앉아 서류를 정리하는 써니보이의 모습을 보고 계획을 접었다. 굳이 그가 아니더라도 써니보이는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었다.

대신 치치는 지금처럼 냅다 써니보이를 제 일탈 아닌 일탈에 끼워 넣었다. 사격 연습은 단순히 심심했던 치치가 제 형제와 놀고 싶었을 뿐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파파의 허락도 받지 않을 만큼 절실히. 뭐, 그것도 아예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지금은 써니보이를 빼내 오는 게 중요했다. 그는 새벽에 방문을 열었을 때 써니보이가 우두커니 서 있지 않기를 바랐다. 그건 치치가 생각하고 있던 시나리오가 절대 아니었다.

써니보이가 멈춰 섰다. 생각에 빠져있던 치치는 반 박자 늦게 섰다.

“대쉬우드?”

“어? 어.”

어쨌든 여기까지 끌고 오긴 했지만, 막상 대쉬우드 앞에 오니 치치는 조금 망설여졌다. 뭘 계획하고 나올 걸 그랬나? 차라리 한 번도 안 가본 곳에 가보자고 할 걸 그랬나? 그러니까, 써니보이가 실망한다면? 치치가 대쉬우드에 온 이유는 단순했다. 그는 이곳이 편했다.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좋았고, 그가 하는 일들이 좋았다. 하지만 써니보이도 그럴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느긋하게 토니가 타주는 핫초콜릿을 마시면서 책이나 읽는 걸 싫어할 수도 있겠지, 물론. 하지만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치치는 결연하게 숨을 내쉬고 문을 열어젖혔다.

딸랑거리는 소리에 문 쪽을 바라본 토니가 치치를 발견하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으나, 뒤따라 들어오는 써니보이를 보고서 바로 그들을 서점 안쪽 작은 공간으로 안내해주었다. 그는 치치를 보고 기특해 죽겠다는 미소를 지었고 치치는 어색하게나마 거기에 화답해주었다.

 

*

 

 

“더 없어?” 치치가 연필을 굴리며 말했다.

“또 끝났어?” 써니보이가 종이를 건네줬다. “이번 건 좀 쉬웠어.” 치치는 막 토니가 주고 간 십자말풀이를 여섯 판째 완성한 참이었다. 치치는 희미한 미소를 짓다가 금세 지워내는 써니보이를 힐끗 바라보았다.

토니는 오랜만에 온 써니보이에게 말할 게 많은 눈치였으나 곧 손님이 들어왔기에 다행히 끝없는 수다는 피할 수 있었다. 토니와의 대화는 즐거운 편에 가깝지만, 오늘은 조금 피곤하게 느껴질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그는 분명 써니보이가 하고 온 목도리를 칭찬할 것이다. 보아하니 써니보이는 이 따뜻한 서점에서도 목도리를 끝까지 벗지 않을 성싶었기에 치치는 억지로나마 목도리를 떨어뜨려 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춥다는 핑계로 목도리를 담요처럼 써야겠다고 말했고, 써니보이는 껄끄러운 기색도 없이 곧바로 치치에게 목도리를 넘겨줬다. 치치가 탁자 밑으로 목도리를 넣은 순간 타이밍 좋게 토니가 책과 종이 뭉치, 그리고 핫초콜릿을 들고 들어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손님이 왔다. 토니는 더 먹고 싶으면 말하라며 웃어주고 다시 나갔다.

두 사람은 먼저 책을 펼쳐 들었다. 써니보이는 금세 집중하는 듯했으나, 치치는 책장을 넘기는 척 내내 써니보이를 살폈다. 그의 얼굴은 언제나 그렇듯 큰 동요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아까 걸어오면서 보았던 약간의 망설임마저 사라지고 없었다. 괜찮은 건가? 재미없나? 아니면, 그냥 체념한 건가. 치치 보체티는 아무튼간에 제멋대로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지. 결국 치치는 책을 덮고 종이 뭉치에 손을 뻗었다. 토니가 심심풀이로 만드는 십자말풀이들이었다. 써니보이가 드디어 고개를 들었다. 치치가 퉁명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너도 해.” 써니보이도 책을 덮고 치치가 건네는 종이를 받았다.

십자말풀이는 너무나 쉬웠다. 그가 토니의 취향을 어느 정도 꿰고 있다는 것을 고려해도 그랬다. 이거라도 잘 풀려서 다행인지 아닌지. 써니보이 역시 흥미가 있긴 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여전히 당최 정확히 읽어낼 수가 없었다.

“혹시 이거 알아?”

써니보이가 제 것을 내밀었다. 치치가 여섯 판을 채우는 동안 그는 한 판도 제대로 채우지 못했다. 여섯 번째 글자였다. 오셀로는 어느 민족인가? “무어인.” 치치가 곧바로 답했다.

“너 정말 잘한다.” 써니보이가 말했다.

“그거야 내가 당연히,” 너 두 배는 살았으니까 그렇지. 치치가 말을 하다 말고 멈칫했다. “너보다 책을 많이 읽었으니까 그러지.”

십자말풀이의 주제는 뒤섞여있었다. 역사, 정치, 문화, 하다못해 음식까지도. 그러니까 이건 그냥 살아온 날이 더 많았기에 쉬운 것뿐이었다. 근데 왜 다른 건, 아니 치치 자신의 삶은 그렇지 아니한단 말인가.

“야.” 치치는 결국 연기를 하기로 했다. 벌써 귀가 화끈거렸다.

“응.”

“……솔직히 재미없지.” 써니보이의 눈이 크게 떠졌다. 치치는 말을 이렇게까지 밖에 못 하는 자신이 조금 원망스러웠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내가 왜 몰라.”

“아…… 미안.” 써니보이의 표정이 조금 난처해졌다. “그냥 잠이 부족해서.”

“됐어. 내가 오자고 했잖아. ……아니 근데, 니가 왜 미안하다고 해?”

“……미안.”

“왜 사과하냐니까?!”

치치는 답답해서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치치가 목소리를 높이자 써니보이는 열었던 입을 꾹 다물었다. 갑갑했다. 너나 나나 왜 이러고 있는지. 토니가 틀어놓은 음악 소리가 적막을 채우기 시작하자 치치가 입을 열었다. “……미안.” 써니보이의 눈이 크게 떠졌다. 다시 귀가 화끈거리는 게 느껴졌다. “왜 사과를 하는 거야?” 이번에는 써니보이가 그렇게 물었다.

“내가 맘대로 여기로 데려왔잖아.”

써니보이는 할 말이 있는 거 같았다. 치치는 그 입을 막으려 빨리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그냥, 그냥…… 요즘은 내가 내가 아닌 거 같아. 뭐 있잖아. 사춘긴가 뭔가 하는…… 몰라. 잘 모르겠어.”

“너는 항상 너였어.”

아무렇게나 둘러댄 말에 이렇게 진지한 대답이라니. 치치는 저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멍청한 놈. 내가 지금 너 때문에 어떤 걸 선택했는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하지만 치치는 위로받고 있음을 느꼈다. 써니보이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치치는 괜히 핫초콜릿을 한 모금 들이켰다. 더럽게 달았다.

“그리고 너랑 하는 건 뭐든 재밌어.”

“거짓말.” 팩 쏘아보며 치치는 바로 대꾸했고, 바로 후회했다. 이 입을 꿰매버릴 수도 없고.

“진짜야.”

써니보이가 살짝 웃으며 말했다. 치치는 약간 눈이 아리는 것 같아 십자말풀이의 빈칸들 사이로 시선을 옮겼다. 써니보이는 언제나 자신의 진심을 무섭게 알아차렸으므로,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는 고개를 들어 써니보이를 바라보았다. 푸른 눈동자가 느리게 사라졌다가 나타났다.

“파파가 일 많이 시켜?” 졸린다면 토니의 흔들의자에 누워 조금 자도 괜찮을 것이다.

“아니.” 써니보이가 곧바로 답했다. 치치는 이렇게 딱 잘라 말할지는 예상치 못했기에, 조금 당황해서 말했다. “그, 그래? 너 요즘 저녁도 같이 안 먹길래.” 원래는 써니보이의 푸념을 들어주려고 했는데, 그래서 가끔 너를 이렇게 데리고 나오겠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파파가, 일을 다 끝내기 전에는 쉬는 걸 좋아하지 않으시는 거 같아서.”

아, 알 만했다. 루치아노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넌 써니보이인데.

“에이, 아닐걸. 파파는…….” 끝까지 이을 수가 없었다. 널 사랑하시잖아. 말이 목에 턱 걸려 넘어오지 않았다. 다리에서 스르륵 목도리가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목도리, 그러니까 이 목도리.

 

 

*

 

이제야 <미아 파밀리아>의 첫 장면을 쓸 차례였다. 떠오르는 대로 조각을 기워가며 쓰다 보니 정작 첫 장면을 잊었다. 치치는 손가락을 몇 번 튕기다가 전기면 역시 부모님 이야기부터 해야지, 라며 이번에는 루치아노 보체티를 끌고 왔다.

“정말로 이러셨어?”

스티비가 새 종이를 타자기에 끼워 넣었다. 그는 탐탁잖은 표정이었다. “뭐가?” 이제 훤히 읽히는구만. 치치는 스티비의 표정이 풍부하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정말로, 이러셨냐고.”

원고를 툭툭 두드리며 스티비가 말했다. 스무 살 때 경찰과 난투극 끝에 칼에 목을 찔려 목소리를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패밀리 저녁 식사는 늘 함께하는 전설의 마피아 루치아노. “당연히.” 치치는 씨익 웃어 보였다. 스티비의 표정이 점점 굳어갔다. 확실히 놀리는 재미가 있었다.

“아니지.”

하아, 스티비가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괜찮은 거 맞지? 부티 아가씨도 그렇고.”

“아마 거의 사실일걸? 물론 목소리는 아주 우렁차셨지.”

그가 한 번 더 한숨을 내뱉었다. 치치가 낄낄거리며 웃었다. “빨리 쓰기나 해. ‘찬장에 약이 똑 떨어져 있다. 루치아노는 써니보이를 부른다.’” “그래, 그래.” 치치가 에스프레소를 한 모금 입에 머금고 있다가 천천히 삼키는 걸 곁눈질로 흘겨보던 스티비는 이내 타자기에서 손을 뗐다.

“왜? 못 쓰겠어?” 치치가 장난기 만만한 목소리로 물었다. “난 루치아노 보체티를 잘 몰라.” 스티비는 왜인지 풀이 죽은 투였다.

“의외네. 네가 나도 모르던 내 비밀까지 알고 있던 걸 생각하면 말이지?”

“내가 아는 건 이게 다야.” 스티비가 곧 벽난로에 들어갈 원고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냥 나는…… 써니보이의 기분이 좋지 않을 거 같아서.”

“왜 자꾸 써니보이 핑계야? 애초에 ‘그렇지만 아버지는 써니보일 사랑했지’라고 쓴 사람이 누구더라? 그건 아는 거였어?”

그렇게 말했지만 치치는 사실 그 문장이 마음에 들었다.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저 문장을 그대로 살린 것도 그 때문이었다. 스티비가 치치의 눈치를 보는 듯 뜸을 들였다가 말했다.

“그건 이게 써니보이의 위인전, 아니 전기… 알잖아, 정당성과 개연성.”

“그래? 하지만 그건 하나도 틀린 말이 아니야. 아버지는 써니보이를 사랑하셨지. 친아들인 치치 보체티보다 사랑하셨지. 써니보이를 데려온 아홉 살 때부터.”

“아홉 살 때부터.”

“그래, 그때부터 내 건 모두 써니보이 게 됐어.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다.”

치치가 어깨를 으쓱했다. “이젠 왜 그랬는지 알겠지만.” 분위기는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치치는 어딘가 숙연하기까지 한 스티비의 얼굴을 보고 괜히 목소리를 조금 높였다.

“보스로서는 완벽했을지 몰라도 아버지로선…… 아니었지. 써니보이한테는 모를까. 하지만 그것까지는 굳이 써넣을 필요는 없잖아? 그러니까 그냥 내가 약병을…….”

“써니보이는 루치아노 보체티의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어.”

스티비는 치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치치는 더 해보라는 듯 눈썹을 치켜올렸다.

“목도리 이야기는 빼고.”

“목도리?”

치치가 미간을 찌푸렸다. 스티비는 그런 그를 한참 쳐다보다가 먼저 타자기로 시선을 돌렸다.

“……아냐, 미안. 착각했어. 약병이 뭐라고?”

“……어? 어, 약병을 숨긴 걸 부티는 알고 있던 거야.” 그는 약간 당황스러운 눈치였다. 치치가 스티비의 옆모습을 훑었다. “……정말로 착각한 거 맞아?” 그는 또 무엇을 숨기고 있는가?

“당연하지.”

 

 

*

 

 

오, 질투심을 조심해요. 그것은 희생물을 비웃으며 잡아먹는 푸른 눈의 괴물이랍니다.

 

- 셰익스피어, 『오셀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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