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ain in New York

Villain in New York 6

노란 장미 (6)

Words Fail by 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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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바일로 접속시 새로고침을 한 번 해주시고 감상 부탁드립니다 (문단이 중간중간 통째로 사라지는 오류가 있습니다)


팔이 완전히 붙은 후에도 롸코는 여전히 써니보이와 치치의 곁에 있었다. 물론 루치아노의 지시도 있었지만, 패밀리가 대내외적으로 흉흉한 탓이 더 컸다. 하지만 롸코는 주로 써니보이의 곁에 있었다. 치치는 전에는 방에서, 이제는 새로 생긴 그의 서재에서 내내 두문불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롸코는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아닐지 알 수 없었다.

롸코는 써니보이가 고쳐 매는 목도리를 바라보았다. 체크무늬부터 재질까지 모두 고급스러운 목도리였다. 아마 자신의 보스가 써니보이에게 생일날 주었던 선물이었던 거 같았다. 그는 칠 년 전 그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써니보이도 같은 기억을 떠올리고 있으리라. 그렇지 않고서야 아직 춥다고 말할 수 없는 날씨에 굳이 목도리를 할 이유가 없었다. 루치아노의 방식이다. 그는 써니보이를 내정해놓고도 전과 별 다를 바 없는 태도를 보였다. 아니, 오히려 전보다 더 심해진 것 같았다.

그럴수록 써니보이가 치치를 찾아가는 수도 늘었다. 치치는 달갑지 않다는 티를 내면서도 그에게 가라는 말은 하지 않았고, 써니보이를 안쓰럽게 여긴 사용인들이 함께 들려 보낸 간식도 곧잘 먹었다. 써니보이는 처음에는 전처럼 안절부절못하면서 치치를 바라보다가, 좀 시간이 지난 후에는 그의 옆에서 자신도 할 일을 했다. 어느 순간부터 써니보이가 주방에 들러서 간식을 가지고 치치에게로 가는 것은 하나의 루틴이 되었다.

그러나 오늘따라 주방의 기류가 심상치 않았다. 롸코는 그것을 복도에서부터 느꼈다. 주방은 여느 때처럼 시끌벅적했으나, 평소랑은 다른 분위기였다. 써니보이도 그걸 느꼈는지 발소리를 죽이고 천천히 걷고 있었다.

롸코는 순간 벼락처럼 치치의 상태-소문이었지만 몇 달을 거쳐 거의 기정사실화된-를 떠올렸다. 써니보이는 아직 모르는 게 확실했다. 그들은 분명 그 이야기를 하고 있을 것이었다. 얼마전 치치가 먹을 음식을 신경쓰라는 루치아노의 말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롸코가 일부러 인기척을 내려는 순간 열린 문틈에서 말소리가 흘러나왔다.

“……도련님이 먼저 돌아가시면 어떡하죠? 많이 슬퍼하실 텐데.”

“그런 말은 하지도 마!” 써니보이가 멈칫하는 게 느껴졌다. 롸코는 다시 한번 그를 부르려고 했으나, 말이 더 빨랐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을 거야. 적어도 정리할 시간은 충분하겠지.”

그럴듯한 뼈대와 살을 갖춘 소문들. 써니보이는 모든 걸 이해했을 것이다. 써니보이의 뒷모습만 보더라도 알 수 있었다. “도련……” 써니보이가 성큼성큼 걸어가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짧은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롸코는 써니보이의 뒤에 서서 주방에서 떠들고 있던 이들의 안색이 실시간으로 창백해져가는 걸 보았다. 써니보이는 그들을 한 번 둘러보더니 마지막으로 고개를 돌려 롸코를 바라보았다. 써니보이는, 온 몸의 피가 다 빠져나간 얼굴이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써니보이가 롸코를 지나쳐 뛰어나갔다. “도련님!” 뒤에서 새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롸코는 그들에게 반드시 책임을 물으리라 다짐하며 급하게 그 뒤를 따라갔다.

 

 

*

 

 

치치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린 방문을 황당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핏기가 가신 얼굴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써니보이가 눈에 들어왔다. 치치는 지금이라도 소리를 지를까 잠깐 고민했으나 써니보이가 성큼성큼 자신에게 다가오는 바람에 그럴 수 없었다. 치치는 의자에 앉은 채 저도 모르게 몸을 뒤로 물렸다.

“뭐, 뭐야?”

“치치, 너 죽어?”

“뭐라고?”

“너 어디 아파?”

이렇게 말하면서 상원의원은 어떻게 되려고 한 것일까? 아니, 그나저나 무슨 소리야. 치치는 도무지 그가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가 소리를 바락 높였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죽었으면 좋겠어?”

말하고 그는 또 후회했다.

“아니.”

단박에 튀어나온 말에 치치는 조금 민망해졌다. 써니보이는 여전히 숨을 고르고 있었다. 숨소리가 이렇게 커도 되는 건가. 그는 얼굴이 홧홧하게 달아오르는 걸 느끼며 더듬더듬 말했다.

“내가, 왜 죽어? 나는,”

써니보이가 치치의 말을 채 듣기도 전에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 치치는 당췌 써니보이가 왜 이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놈의 저택은 자신이 뭘 하지 않아도 고요하지가 않았다.

“약속했잖아.”

“뭐, 뭘?”

“여기 계속 있기로.”

“갑자기 무슨 소리야?”

그는 써니보이가 잡은 손을 좀 빼내고 싶었다.

“안 떠난다며.”

꿈이라도 꾼 걸까? 어째 악몽에서 깨자마자 달려온 모양새였다. 써니보이가 자신의 손을 꽉 잡고 있는 걸 빼면 그랬다. “지금은 안 떠나지!” 힘이 조금 빠진 틈을 타 치치는 손을 잽싸게 빼버렸다. 벌겋게 자국이 남았다. 다른 손으로 그 자국을 주물거리면서 치치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언젠간 떠나지 않을까? 난 니 솔져는 싫은,”

데…….

문장을 끝맺을 즈음 치치가 고개를 들었고, 눈물 한줄기를 주륵 흘리고 있는 써니보이와 그대로 눈이 마주쳤다.

 

 

*

 

 

똑같이 요란하게 문을 열고 들어온 롸코에게-치치는 이번에도 소리 지를 타이밍을 놓쳤다- 소문의 내용을 들은 치치는 오랜만에 길길이 날뛰었다.

“미쳤어? 누가 그런 소리를 해! 난 안 죽어!”

써니보이는 아무 소리 없이 줄줄 눈물만 흘리다가 난 안 죽는다라고 말하는 치치의 말을 듣고나서야 조금 진정한 거 같았다. 치치는 그런 써니보이의 모습을 왜인지 더 볼 수가 없어서, 벌떡 일어나 방을 돌아다니며 방방 뛰는 척을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써니보이는 웃었으나 여전히 눈물은 그칠 기미가 없어보였다. 그래서 썩 내키지는 않지만, 써니보이의 손을 잡고 그 푸른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난 안 죽을 거야.”

적어도 할 일을 끝마칠 때까지는.

물론 그는 기왕이면 편하게 살고 싶었다. 물론 그가 없는 삶이 더 낫다면, 그래서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면 기꺼이 사라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말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써니보이는 치치가 잡은 손에 제 이마를 묻었다. 그는 제 형제의 이마가 뜨겁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이것이 꿈이 아니라는 사실을 오랜만에 체감했다. 꿈에는 온기가 없다. 꿈이 아니라면 이런 순간들쯤이야 얼마든지 견딜 수 있었다. 꿈이 아니라는 건 그에게 시간이 있다는 증거이므로.

 

*

 

 

치치는 창가에 앉아있었다. 소파를 밟고 올라서면 한 명 정도는 앉을 수 있는 그 창가는 치치가 이 서재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였다. 가만히 바깥 풍경을 내려다보는 일은 라스베이거스에서부터 이어져 내려온 버릇이었다. 그는 물웅덩이가 고이는 일도 드문 도로와, 그 위에 굴러다니던 나뭇잎 따위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게 익숙하고 생경한 것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우는 것도 잊어버릴 수 있었다. 물론 그 사막의 바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쉽게 눈물을 말려버려서, 잊어버릴 일도 없었지만.

그러나 뉴욕의 바람은 진한 물기를 머금고 있어서, 치치는 한동안 책에 눈물 자국을 내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했다. 루치아노는 이제껏 단 한 번도 치치에게 이런 종류의 관심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왜 그랬을까, 왜 이전의 당신은 아무런 말이 없었던 걸까. 이런 식의 가정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아는데도 치치는 곱씹지 않을 수 없었다. 얼마 전에는 의사가 치치를 찾아왔다. 루치아노 역시 그 소문을 들은 모양이었다. 치치는 잠을 잘 잘 수 있도록 노력해야한다는 말을 들은 것 빼고는 멀쩡했다.

소문 이후로 치치는 어떠한 운명 같은 것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전 생에서 그는 서른 살 정도에 죽었다. 만약 이번에도 그렇다면? 치치 보체티가 사실상 시한부인 것이 변하지 않는 운명이라면? 그는 그가 겪을 수 있는 온갖 종류의 죽음을 상상하다가 그만두었다. 죽음들을 상상하는 것보다 죽음 그 자체를 생각하는 게 더 나을 것이다. 그의 수많은 미래 계획에 하나를 더 추가하는 것에 불과하다. 지금까지의 삶은 치치가 생각해놓은 것이 하도 많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대부분 그가 예상하고 겪었던 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자잘한 것들이 많이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대표적으로, 그는 이제 내내 서재에서 하루를 보냈다. 서재는 깜빡깜빡 잠이 들 정도로 아늑하고 편안했다. 이번 겨울에는 눈이 조금씩 자주 내렸다. 딱 발자국이 남을 만큼만 내리고, 뭉쳐지는 눈도 아니었지만. 라스베이거스에 있던 10년 동안 눈을 본 적이 없었던 것을 떠올리면 충분히 낭만적이었다. 오늘도 눈이 내리고 있었다. 치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책을 읽다가, 어째 점점 밝아지는 것 같은 기분에 다시 고개를 들었다. 굵은 눈발이 흩날리고 있었다.

눈은 무서운 속도로 쌓이고 있었다. 이 정도면 눈사람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무심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가 뒤로 흠칫 물러났다. 써니보이가 정원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치치는 그 빛나는 금발을 모른 척하려야 할 수가 없었다.

사박거리는 소리를 분명히 들었을 텐데도 써니보이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치치가 우산을 씌워주고 나서야 그가 고개를 돌렸다.

“뭐하냐?”

써니보이는 치치의 붉은 뺨을 바라보다가, 그가 내쉬는 대로 증발하는 허연 김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어깨와 정수리에 눈이 한 마디는 쌓여있는 것 같았다. 치치는 꼭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써니보이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던 그때로. 그래도 생일 이후로 이전보다는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그것도 모두 치치의 착각이었던 것 같았다. 이전에도 그랬듯이. 치치는 여전히 써니보이를 몰랐다. 생각해보면, 써니보이는 치치에게 무엇을 물어본 적이 별로 없었다.

너는 내가 궁금하긴 할까? 써니보이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치치는 갑자기 짜증이 확 치솟아 써니보이의 손을 붙잡고 우산을 넘겨주었다. 그가 몸을 돌리려는 순간 써니보이가 말했다.

“네가 저번에 이러고 있었잖아.”

“뭐?”

써니보이가 치치 쪽으로 우산을 뻗었다. 치치는 눈을 털어내는 척하면서 표정을 갈무리하려고 노력했다. 눈을 맞고 있었던 일은 기억도 나지 않았다. 한참 전의 일이었으려니, 대충 생각했다.

“네가 저번에 이러고 있어서…… 궁금했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나는 네가 무슨 생각 하고 있는지가 더 궁금한데. 치치는 말을 삼켰다. 대신 물었다. 우리는 계속 질문해야 했다. “그래서, 알겠어?” 눈을 계속 마주쳐야 했다. 어색해서 견딜 수가 없지만.

“응. 네가 왔잖아.”

많은 것이 변했다. 정체불명 외계인 같은 놈.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았다.

 

 

*

 

 

저녁을 다 먹은 루치아노가 치치와 써니보이에게 각각 편지를 하나씩 건넸다. 초대장이었다. 치치는 그것을 들어 앞뒤를 번갈아보다가 펼쳐서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루치아노의 글씨로 쓰여있었다.

“이번에는 우리가 열기로 했다.”

치치가 의례적인 문장을 눈으로 읽어 내려가며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마피아 연합에서 매년 정기적으로 여는 파티였다. 뒤에서 무슨 짓을 벌이고 있든지 이 파티에는 대부분 참석하는 것이 암묵적인 규칙이었으니, 수많은 파티 중에서도 제일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잠깐만, 저번에도 이 파티가 보체티 저택에서 열렸었나? 그러면 이걸 기억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 루치아노는 치치를 인사만 시키고 뒤로 보내버렸을 것이고, 자신은 방에 처박혀서 울기나 했을 것이다. 노랫소리에 자신이 묻히길, 하지만 파파만이 이 소리를 들어주길 원하는 모순적인 감정을 품고서. 그걸 잊어버렸을 리가 없다.

“저도 참석하나요?”

“그래.”

루치아노가 당연하다는 투로 말했다. 역시 이상했다. 그는 파티에 자신을 잘 데리고 다니지 않았다. 애초에 그는 파티에 제 아들들을 동행하는 편이 아니었다. 동행해야 한다면 써니보이만을 데리고 갔었다. 아, 물론 보체티 저택에서 여는 파티니까 체면상 참석하라는 거겠지. 싱그러운 정원이 아름다운 보체티 저택. 치치는 그 문장에 오랫동안 시선을 두다가 문득 날짜를 보았다.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치치와 써니보이의 생일이었다. 생일? 그는 자신이 기억하는 생일이 정말 이날이 맞는지 생각해보았다. 틀림없었다. 분명히 파티 날은 그들의 생일이었다.

치치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초대장을 읽고 있는 써니보이를 힐끗 보았다. 그는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그리고 그는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있는 루치아노를 슬쩍 보려다가, 그만 눈이 마주쳤다. 치치는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는 급히 시선을 돌리고 먼저 일어나겠다고 말하며 방으로 도망치듯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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