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ain in New York

Villain in New York 9

총과 칼 (1)

Words Fail by 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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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바일로 접속시 새로고침을 한 번 해주시고 감상 부탁드립니다 (문단이 중간중간 통째로 사라지는 오류가 있습니다)


산타 루치아 개관식은 일전 저택에서 치러진 파티보다는 간소했으나, 보체티 패밀리와 친분이 조금이라도 있는 이들은 거의 다 참석했기에 사실상 그 파티의 연장선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이곳은 앞으로 패밀리 사업에 있어서 전초지가 되는 곳이었다. 즉, 써니보이의 자리를 더욱 탄탄하게 만들 수 있는 기회였으며, 굳이 치치가 따라오지 않아도 되었을 곳이었다. 루치아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모양이었지만.

진짜로 집에 가고 싶다. 치치는 급격히 몰려오는 피로에 미간을 꾹꾹 눌렀다. 산타 루치아는 반가웠으나 파티는 그렇지 않았다.

루치아노는 서점에서 일하고 싶다는 치치의 말을 듣고 조건을 제시했다. 본인과 함께 파티에 참석할 것. 왜? 치치는 반사적으로 나오는 물음을 꾹 참고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 조건이라면 못할 것도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는 정말로 파티가 싫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감비노 패밀리까지 참석했다. 아마 이 건물의 이전 주인이었으니, 그리고 여전히 이곳이 감비노 세력 하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친히 온 것일 테다. 하지만 치치의 기억에 따르면 얼마 안 가 이 리틀 이탈리아 멀베리 스트릿 전체가 보체티의 구역이 된다. 일이 진행되는 것을 보아하니 그건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들의 행차는 한마디로, 쓸데없는 일이었다. 물론 치치를 괴롭히기 위해 온 거라면 성공한 거라 할 수 있었다. 치치는 저 멀리서 파브리치오 감비노를 발견하고 속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토기를 느꼈다. 그는 미리 봐둔 뒤쪽 발코니로 달려갔다.

빈속이었기에 공기 말고는 나올 수 있는 게 없었다. 그 공기들이 자꾸만 목에 걸렸다. 누군가 목을 짓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목이 졸려본 적이 없는데, 목을 졸라본 적도 없는데. 눈앞이 어지러웠다. 너무 많은 숨을 내뱉어서 그런가, 제대로 호흡을 할 수 없었다. 분명 뛰쳐나오기 직전에 누군가 자신을 부른 것도 같았는데, 그런 것들은 일단 뒷전이었다. 그는 발코니로 빠져나와 손에 닿는 것을 부여잡고 천천히 숨을 골랐다. 더운 공기가 천천히 그의 안을 채웠다.

숨을 쉴 수 있게 되자 치치는 천천히 현실로 돌아왔다. 분명 루치아노도 이 모습을 봤을 것이다. “미스터 보체티?” 뒤쪽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언제나 그는, 이런 식으로 비참해졌다.

“괜찮으세요?”

플로렌스였다. 하필 제일 마주하고 싶지 않던 두 사람을 이렇게 연속으로 보게 되다니. 뭐라 답을 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지금 대꾸할 힘까지 끌어모아 최대한 숨을 제대로 쉬는 것에 집중해야만 했다. 안 그러면 정말로 쓰러질 것 같았다. 플로렌스는 그 모습을 보고, 아슬하게 매달려있는 치치를 떼어내 그 난간에 등을 기대게 하고 어깨를 세게 눌러 바닥에 주저앉혔다. 퍽 소리가 꽤 크게 났고, 동시에 크게 숨을 들이켜는 소리도 들려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에 반항 같은 걸 해볼 새도 없었다. 틈이 있었더라도 힘이 없으니 할 수 없었겠지만. 치치는 난간에 머리를 완전히 기대고 눈을 감았다.

“미스터 보체티.”

치치는 눈을 뜨자마자 플로렌스의 푸른 눈과 마주했다. 그는 눈높이를 맞춰 쭈그려 앉은 채 잔을 하나 내밀고 있었다. “물이에요.” 치치는 그것을 받아 천천히 들이켰다. 플로렌스가 우물쭈물 눈치를 보더니 치치의 옆에 약간 거리를 두고 앉았다. 치치는 일어나라는 말도 하지 못했다. 분명 바닥이 깨끗하진 않을 텐데. 그는 플로렌스를 바라보았다. 모든 것이 꿈처럼 느껴졌다. 비행기에서도 이런 기분이었던 거 같은데, 산소가 부족해서 이런 거였구나. 실없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나저나 플로렌스가 이곳에 있는 줄 알았으면, 당연히,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또 무례한 짓을 저질렀다. 차라리 발코니에서 뛰어내리고 싶었다. 이제서 의연한 척 해봤자 소용없을 걸 알면서도, 치치는 말했다. 차마 플로렌스를 바라볼 수는 없었다.

“방해해서 미안,”

“죄송해요.”

동시에 말을 꺼냈지만 끝맺은 건 플로렌스가 먼저였다. 그렇게 대담하게 행동해놓고, 그는 어쩐지 눈치를 보고 있었다. 치치는 잠자코 기다리며 힐끗 그를 바라보았다. 플로렌스는 입술을 다문 채 눈을 굴리다, 종래에는 꾹 감았다 뜨더니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가 실례되는 행동은 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정말 죄송해요.”

치치는 이 예의 바른 소녀에게서-그 소녀가 자신을 눌러 앉혔다는 것은 죄다 잊어버리고- 다시금 깊은 죄책감과 자괴감을 느꼈다. 사과해야 할 건 자신이었다. 설령 아직 아무것도 모른다고 해도.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잘못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닙… 니다. 제가 방해한 거 같네요. 실례가 많았습니다.”

말투가 격식에 맞는지 알 수 없었다. 시비를 거는 거로만 들리지 않길 바라며, 그가 손을 짚고 일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팔에도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휘청거리는 치치를 플로렌스가 다시 붙잡았다가, 황급히 손을 떼고 거듭 사과했다.

“아니에요, 써니보이가 부탁했거든요.”

써니보이가? 벌써 이름을 튼 사이가 되었나. 그는 와중에 제 형제의 연애 전선에 기뻐하는 자신이 어이가 없었다. “물론 저도 걱정했어요! 봤거든요, 갑자기 뛰쳐나가시는 거.” 플로렌스가 급한 투로 덧붙였다.

“아직도 많이 아프신가 보네요.”

아직도. 그는 순간 되물으려다가 보체티 저택에서의 일을 떠올렸다. 그래, 아프다는 핑계만큼 좋은 건 없었을 것이다.

“그렇, 진… 않아요.”

플로렌스는 이미 다 알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굳이 거짓말하지 않아도 된다는 그런 미소. 이런 것까지 써니보이를 닮을 필요가 있나. 그는 빨리 이 대화를 끝내고 싶었다.

“감사해요. 미스 윈스턴.”

치치가 웃어 보이려고 노력하며 말했다. 이게 미소로 보일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지만.

“플로렌스.”

“예?”

“플로렌스로 불러주세요. 써니보이하고는 그러기로 했거든요.”

치치는 거절하려다, 써니보이를 생각하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럼 저도 그렇게 불러요.”

“그래요, 치치.”

플로렌스가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뭔가 말려들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어쨌든 지금은 숨을 쉬는 것도 어려웠으므로 그냥 머리를 난간에 기대고 눈을 감았다. 눈치가 있으면 알아서 떠나주겠지. 하지만 플로렌스가 움직이는 기색은 없었다. 말도 걸지 않았다. 꼭 계속 여기에 있고 싶어 하기라도 하는 듯이. 결국 돌려 말하지 않기로 했다. 그는 정말로 혼자 있고 싶었다.

“이제 돌아가 보셔도 될 텐데요.”

치치가 말했다. 그래, 혼자 있고 싶다는 건 둘째치더라도, 그는 플로렌스와 한 공간에 있고 싶지 않았다. 있을 수 없었다.

“아니요, 환자를 두고 갈 순 없어요.”

단호한 투였다. “그리고 저도 파티가 싫거든요.” 어째 좀 수줍게 웃으면서 플로렌스가 덧붙였다. 이상하게도 그 말을 듣고, 치치는 자기도 모르게 안심이 되는 걸 느끼고 당황했다. 대체 왜? 당신도 결국 나와 별다를 게 없다는 걸 알아서? 여전히 숨을 몰아쉬면서, 치치는 플로렌스를 바라보았다. 이제야 두 번째로 만나는 사람의 곁에 기꺼이 남아주겠다는 이가 얼마나 될까. 그것도 대놓고 날을 세우는 사람의 곁에. 그가 있으면 써니보이는 정말로 괜찮을 것이다.

파티가 싫다던 말은 거짓이 아니었는지, 플로렌스는 아예 편하게 자세를 고쳐 앉고 치치가 그랬던 것처럼 난간에 고개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치치는 그걸 보며 자신도 플로렌스도 없는 파티장에 홀로 있을 써니보이의 모습을 떠올렸고, 지워내려고 노력했다. 매번 이렇게 제 형제를 생각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무엇보다, 써니보이는 잘 해낼 것이었다.

 

*

 

플로렌스가 입을 연 건 둘이 그렇게 눈을 감고 더운 바람을 느끼며 침묵을 지킨 지 오 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런데요,”라고 운을 뗄 때까지도, 치치는 플로렌스에게서 그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멋진 서재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숨을 잘못 삼키는 바람에 마른기침이 튀어나왔다. 그가 과장되게 느껴질 만큼 큰 소리를 내며 가슴팍을 두들겼다. 플로렌스는 오히려 제가 더 당황한 표정이었다.

“죄송해요, 비밀이었나요?”

아니, 그건 아닌데. 치치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치치는 뻔했지만 물었다.

“그건…… 누구한테서,”

“써니보이에게서요.”

역시나. 보체티 저택에서 있었던 파티와 오늘, 산타 루치아 개관식 사이에 있었던 몇 번의 파티에서 만났을 것이다. 치치가 없었던 그 파티들 말이다. 써니보이는 물론이고, 루치아노조차 그에게 몇 번 참석을 종용했지만 가지 않았다.

“많이 친해졌나 보네요.”

“써니보이는 당신 이야기밖에 안 해요.”

치치가 의아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플로렌스를 돌아보았다. 플로렌스는 치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떤 웃음기도 담지 않은, 올곧은 눈으로. 치치는 그 눈빛을 알았다. 스티비가 <미아 파밀리아>를 같이 써달라고 부탁해왔을 때와 비슷했다. 나는 네가 누군지, 너보다도 더 잘 알고 있다는……. 치치는 순간 플로렌스가 자신의 뒤에 놓여있는 삼십여 년간의 세월을 읽은 게 아닐까 생각했다. 물론 써니보이는 자신에 대해 구구절절 늘어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도 제대로 하지 않으므로. 아마 플로렌스는 써니보이가 꺼내놓은 몇 개의 문장들을 조합해 그렇게 결론 내렸을 것이다.

“그렇군요.”

“책이 많다면서요?”

“그렇긴 해요.”

“책을 좋아하세요?”

“……그렇죠.”

플로렌스가 입꼬리를 내리면서 말했다. “그렇군요.” 치치는 이제 자신이 어떤 이야기를 꺼내야 할 타이밍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나, 무슨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는 알 수 없었다. 치치가 도르륵 눈만 굴리자 플로렌스가 말했다.

“형제 아니랄까 봐, 진짜 똑같네요.”

치치와 써니보이는 닮지 않았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우리가 가진 것 중 서로를 떠올리게 할 수 있는 것은 성밖에 없었다. 보체티라는 성이 없었다면 우리는 영영 만나지도 않았을지 모른다. 치치도 그걸 알고 있었다. 치치는 언제나 써니보이를 생각했다. 그것은 우리가 영원히 닮을 수 없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나는 내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너를 떠올릴 것이고, 그건 너 역시 마찬가지일 테다. 너는 네가 잃어버린 것들을 생각할 것이고 나는 내가 뺏어간 것들을 떠올릴 것이다. 우리는 전혀 같을 수 없을 것이다. 사람들 역시 그렇게 말했다.

“똑같다고요?”

“네. 말도 없고 반응도 없고. 원래 보체티들은 다 그런가요? 부티는 안 그러던데.”

우리가 어디가 닮았다고.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치치는 이 대화를 계속 이끌어나가고 싶어졌다. 그는 왜인지 정말로 플로렌스가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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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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