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ain in New York

Villain in New York 4

노란 장미 (4)

Words Fail by 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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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바일로 접속시 새로고침을 한 번 해주시고 감상 부탁드립니다 (문단이 중간중간 통째로 사라지는 오류가 있습니다)


롸코는 더 자세히 치치의 동태를 살피기 시작했다. 저택은 내내 살얼음판이었다. 루치아노의 집무실에서는 매일 밤만 되면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써니보이는 그걸 들었다. 방 안에 틀어박힌 치치는 그걸 듣지 못했다.

치치가 도대체 왜 그랬을까를 가지고 의미 없는 추측들이 쏟아졌다. 모두들 치치의 그 의미심장한 미소를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이 떠날 것을 암시-소문은 후계자뿐만 아니라 보체티라는 성도 버리고 나가겠다고 말한 것으로 되어있었다-하는 미소였다는 것은 둘째치더라도, 다들 왜 그가 떠나려 하는가에 대한 그럴듯한 이유를 대지 못하던 차였다. 심부름을 온 김에 이 흥미진진한 대화에 끼어들어 있던 한 솔져가 말했다. 그는 솔져 중에서도 어린 편에 속해서, 평소에도 치치와 써니보이를 제 동생처럼 생각하던 자였다.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

그가 짐짓 진지한 어투로 꺼낸 이 말은, 한순간의 변덕이네 사춘기네 하던 대화로 떠들썩하던 주방을 단숨에 얼어붙게 했다. 치치는 순식간에 시한부 환자가 되었다. 그의 미소는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열여섯 소년의 마지막 편지가 되었다. 이야기는 순식간에 솔져들 귀에도 들어갔다. 롸코는 소문을 듣자마자 차마 아니라고는 못하고-그도 아는 바가 없었으니- 루치아노 모르게 입단속을 하러 다녔고, 지금까지도 매일매일 피 마르는 심정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내내 써니보이와 치치 곁에 있었고, 집사를 포함한 루치아노의 최측근들과도 입을 맞추었다.

소문이 사실이라는 것에 힘을 실어준 건, 롸코의 모호한 태도도 한 몫 했지만 무엇보다 치치의 일상이 달라졌다는 것에 있었다. 그는 이제 방에만 틀어박혀 있지 않았다. 치치는 다시 정원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그는 틈만 나면 벤치에 앉아서 책을 읽었다. 치치 보체티는 더 이상 자신이 장미 좋아하는 문학소년이라는 것을 숨기지 않기로 한 것 같았다. 롸코는 그가 이따금 통증을 견디는 사람처럼 인상을 찌푸리는 것같다고 생각했다.

써니보이와 치치의 관계도 이전처럼 돌아왔다. 아니, 정확히 이전이라 말할 수는 없었다. 그들의 대화는 이전과는 정확히 반대로 오로지 써니보이에게서 시작되었다. 치치는 무심하다 생각될 정도로 제 형제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고, 써니보이는 안쓰러울 정도로 치치의 뒤를 쫓았다. 하지만 롸코는 지금 치치가 써니보이에게서 정을 떼려고 하는 것임을 알아차렸다. 아니면 써니보이가 제게서 정을 떼게 하려고 하거나. 설상가상으로 써니보이는 치치만큼이나 말을 거는 재주가 없었다.

치치는 눈치가 빨랐다. 써니보이는 말할 것도 없었다. 이 모든 것을 지켜보면서 롸코는 차라리 소리를 지르고 싶다는 충동을 몇 번이나 느꼈다. 물론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소문은 치치가 생각했던 것보다 빠르게 퍼졌다. 그는 모든 걸 포기한 사람이 되었다. 모든 것. 치치는 중얼거렸다. 물론 그것이 한때 그의 모든 것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치치는 유독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사람들을 보면서 조금 짜증을 느꼈다. 그는 동정받고 싶지 않았다. 특히 써니보이에게는 더더욱.

써니보이는 분명 전부 들었다. 치치가 그걸 모를 리 없었다. 답지않게 안절부절못하면서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는 얼굴을 보고 치치는 순간 울컥했다. 써니보이의 눈이 더 커지는 게 보였다. 이 눈치만 빠른 새끼. 놀란 표정에서 그는 루치아노를 보았고, 정말로 기분이 나락까지 떨어졌다. 치치와 루치아노와 닮은 부분이라며 주장하고 다녔던 것은 사실 모두 제 형제의 것이었다. 특히 이 눈빛과 목소리.

“치치…….”

들었잖아. 전부 들었잖아. 너도 그렇게 될 줄 알고 있었을 거잖아.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은 열여섯 살의 써니보이다. 치치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를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떤 것들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서나 저기에서나 그는 혼자였다. 그리고 이 모든 건 치치가 스스로 선택한 일이었다.

“그래. 빨리…… 꺼져. 무르기 전에.”

답도 듣지 않고 치치는 자신의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좀 더 상냥하게 말해줬어야 했을까? 달라진 치치 보체티를 보여주려면, 내가 네 앞길을 막지 않겠다는 걸 보여주려면. 그러니까, 그가 적어도 치치 보체티로 살아가려면.

아니, 어쩌면 보스가 된 써니보이는 그를 전처럼 패밀리에서 쫓아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차라리 그게 더 마음은 편할 것 같았다. 모든 것이 응당 있어야할 자리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보체티라는 성은 애초에 치치의 것이 아니었다. 아, 생각해보면 치치가 가진 대부분의 것들이 그랬다. 온전히 그의 것임이 분명한 건 ‘치치’라는 이름밖에는 없었다. 어쩌면 이 이름도 써니보이의 것이었을지 모른다. 자신의 생일 역시 원래는 써니보이의 것이었을 것이다. 그를 이루는 뼈대들이 모두 다른 이의 것이었다는 것이 치치는 제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차라리 모래로 만들어졌대도 전부 제 것인 게 훨씬 나았다.

내쳐질 준비를 하는 건 어렵지 않다. 지금 당장 자신을 라스베이거스에 보내버린대도 상관은 없었다. 치치는 충분히 각오하고 있었다. 그가 썼던 수많은 시나리오에도 분명히 존재하는 결말이었다.

그러니 다음 날 아침 치치가 문을 열었을 때 방 앞에 떡하니 있던 써니보이를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는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써니보이가 어색한 미소로 좋은 아침, 이라고 말했을 때 치치는 너무 놀라 방문을 그대로 닫아버릴 뻔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써니보이는 계속 치치의 뒤를 쫓아다녔다. 미친놈인가? 이 와중에 써니보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가만히, 치치의 뒤를 지키기만 했다. 정원에 가면 책을 읽고 있는 치치의 옆 모습을 쳐다보기만 했다.

처음에 치치는 괜히 약이 올라 어디까지 하나 지켜볼 심산이었다. 하지만 써니보이는 정말로 치치가 방에 있을 때를 제외-그러면 써니보이는 방 앞에 서 있었고, 치치는 그게 더 신경 쓰여서 결국 방에서 나와버렸다-하고는 내내 옆에 붙어있었다. 그런 상태로 며칠이 지났다. 미친놈. 졌다. 분명히 치치의 패배였다. 그들은 정원에 있었다. 치치는 여느 때처럼 다리를 꼬고 책을 읽는 척을 하다, 탁 소리 나게 덮었다. 그가 목소리를 낮게 깔고 말했다. 졌다는 티를 절대 내지 말 것. 라스베이거스에서 배운 많은 것들 중 하나였다.

“너 지금 뭐 하자는 거냐?”

치치는 써니보이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눈동자만 바라보았다. 그곳에 비친 자신의 얼굴만 바라보려고 했다. 얼굴이 흐려지지만 않았어도 말하려고 했다. 너는 왜 항상 말이 없느냐고, 왜 너는 언제나 그렇게 나를 무시하냐고. 한참을 말이 없던 써니보이가 입을 열었다.

“떠날 거야?”

“뭐?”

치치가 황당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예나 지금이나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써니보이는 치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자신의 눈동자에서 무엇을 보고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여길 떠날 거지?”

“왜?”

지금은 아니야, 라고 말하지 않을 정신은 남아있었다. “솔져 형들이 그랬어…… 보체티를 아예 버린다고.” 버린다고, 내가 버려지는 게 아니라. 치치는 살짝 눈을 내리깔았다. 그가 더 이상 아무것도 바라보지 못하도록. 써니보이의 입술이 자꾸 달싹이고 있었다. 언젠가 치치는 여길 떠날 것이다. 그걸 부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치치가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은 애초에 몇 개 없었어서, 그러니까, 그의 인생은 온통 부정의 연속이었어서.

하지만 그의 인생에서 확신할 수 있는 게 얼마나 있었던가? 어쩌면 그는 남아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그는 솔져가 되고 싶지 않았다. 도박장도 지긋지긋했다. 하지만, 그는 열여섯 살이었다. 치치는 어쨌든 자기가 열여섯이라는 사실을 자주 잊어버렸다. 열여섯의 그는 하루에 에스프레소를 세 잔 마시면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 잠들 수 없었고, 쉽게 눈물을 흘렸고, 매끈한 귓불을 가지고 있었다. 습관적으로 귀를 만지작거릴 때마다 느껴지는 감촉은 왜인지 낯설었다. 귀는 라스베이거스에 간 뒤에 뚫은 것이었다. 치치는 술에 취해있었고, 온갖 게 주렁주렁 달려있던 손님의 귀를 본 다음 날 아침 자신의 귓불에 귀걸이와 함께 엉겨있는 진물 덩어리를 발견했다. 충동적이었지만 치치는 그것이 꽤 마음에 들었다. 귀를 만졌을 때 무언가가 걸린다는 것도 좋았다. 가끔은 오직 그것만이 치치를 이 아름답고 텅 빈 도시에 붙잡아두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뜬 눈으로 해가 완전히 떠오른 것을 본 어느 날 치치는 혼자 시내에 나가 귀를 뚫었다. 전에 했던 것과 비슷하지만, 훨씬 더 고급스러운 것이었다. 대충 술을 귀에 들이붓는 대신 꼼꼼하게 소독했으니 진물이 흐르고 덧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는 아직 완전히 아물지 않은 귓불을 만지작거렸다. 약한 통증이 천천히 퍼져가는 게 느껴졌다. 그래, 치치는 열여섯 살이었다. 솔져들의 말로는, 뭐든지 할 수 있는 열여섯 살. 정말로 그가 여기에 있을 수 있을까? 그가 하고 있는 이 귀걸이가 이번에는 뉴욕에 치치 보체티를 붙잡아 놓을 수 있을까? 하지만 어떻게, 하지만.

“아니, 안 떠나.”

그제야 써니보이는 웃었다. 이런 약속은 하는 게 아닌데. 치치는 그 모습을 보고 귀를 뚫고 오던 날 만났던 신문 파는 소년을 떠올렸다. 익숙한 얼굴은 아니었다. 망설이다 이름을 물었다. 아이는 활짝 웃으며 이름이 없다고 말했다. 치치는 동전을 건네주고 빠르게 그곳을 벗어났었다. 급할 건 없었다. 하지만 그는 많은 것들을 놓쳤었다. 이번에는 그러고 싶지 않은 거라고, 치치는 인정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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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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